• 서울지하철 민노총 탈퇴 무산, 무얼 남겼나?
    By 나난
        2009년 12월 21일 04: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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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하철노조(지하철 1~4호선, 위원장 정연수)의 민주노총 탈퇴 시도가 결국 무산됐다. 조합원 찬반투표로 진행된 이번 투표에서 과반이 넘는 조합원이 민주노총 손을 들어줬다. 올해 초 전국 6개 지하철 노조를 중심으로 한 ‘제3노총’ 설립 시도 역시 사실상 좌초된 것으로 보인다. 

    ‘제 3노총’ 설립 사실상 좌초

    서울지하철공사는 성과급 지급율을 빌미로 탈퇴를 종용하기도 했으며, 노조는 ‘민노총 탈퇴 가결시 휴대폰 기본요금 지원’이라는 문자를 보내면서 탈퇴를 강요했다. 회사쪽의 한 관계자는 “정연수 위원장이 (민주노총 탈퇴안 가결에) 자신감을 보였으니 뭔가 보여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회사와 노조의 노골적인 탈퇴 압박에 현장에서는 “해도 너무 한다”, “이럴 때일수록 탈퇴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터져나왔다. 서울지하철공사 해고자 출신인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공사의 치졸한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이 민주노조 사수를 실천으로 옮겼다”며 “현장 노동운동이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지난 4월부터 민주노총 탈퇴를 추진해 온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개표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공기업, 공무원노조에 대한 정부의 정책에 조합원들이 긴장한 것”을 탈퇴안 부결의 원인으로 꼽았다. 또 “반대파의 근거 없는 선전전에 조합원들이 위기감을 가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 7월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사실상 민주노총 탈퇴를 의미하는 ‘지하철연맹 결성의 건’이 대의원 반대에 부딪혀 부결되며 탈퇴와 제3노총 건설은 탄력을 잃었다. 이와 함께 ‘제3노총’을 약속했던 궤도 사업장에서 연이어 민주파 집행부가 당선된 것도 이번 투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하철노조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서울도시철도노조(지하철 5~8호선)는 지난 8월 집행부 선거에서 민주파 허인 위원장이 당선되며, 민주노총에 남기로 했다. 지난 4월 민주노총을 탈퇴하며 ‘제3노총’ 결성에 앞장서 온 인천지하철노조에서 역시 지난 3일 민주파 허우영 위원장이 당선되며 ‘반 민주노총’ 흐름에 제동이 걸렸다. 허우영 위원장은 “상급단체 문제는 당분간 논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남아있는 변수들

    이에 따라 지난 4월 전국 6개 지하철노조가 지하철연맹 결성을 선언하며 민주노총 탈퇴를 공언했던 만큼 서울지하철노조의 탈퇴안 부결로 인해 향후 제3노총 추진 동력은 당분간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변수는 남아 있다.

    이번 서울지하철노조 투표에서 민주노총 탈퇴건에 찬성표를 던진 조합원은 3,691명으로, 전체 투표율 중 45.4%를 기록했다. 결코 적지 않은 수이다. 

    정연수 위원장이 개표 이후 “오늘 비록 실패했지만 이제부터 다시 시작한다”며 “조합원들에 대한 꾸준한 설득을 거쳐 내년 중에 민주노총 탈퇴를 재시도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절반 가까이 이르는 찬성률을 염두해 둔 발언으로 보인다. 

    서울지하철 차량지부 지축정비지회 최병윤 대의원은 “민주노총 탈퇴안 찬반에 45% 정도가 찬성표를 던졌다”며 “현장활동가로서도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탈퇴를 못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현장 활동가 모임을 중심으로 향후 현장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인 서울도시철도 위원장은 서울도시철도의 탈퇴 재시도 방침에 “가결될 가능성은 없다”며 “궤도-지하철 노조의 단결에 있어, 민주노총을 대체하는 세력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비전은 물론 동력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KT 노조, 인천지하철 노조, 쌍용자동차 노조 등 올해 초부터 진행된 일부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와 한때 주력부대 중 하나로 손꼽히던 서울지하철노조의 탈퇴 시도와 관련 “민주노총이 민주노조운동을 제대로 수행하고 현장과 좀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주노총, 성찰의 기회

    허 위원장은 “현장에서 민주노총이 실질적으로 단위노조 역할에 도움을 주느냐, 실용적 부분에서 조합원 피부로 못 느낀다”며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문제를 돌파하는 과정을 지금 상황에서는 별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민주노총 활동에 지하철노조가 적극 결합하지 않은 지도 오래됐다. 피부에 와닿는 활동이 없다”며 “조합이 내주는 것 외에 역할이 없다는 게 현장의 정서인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향후 지하철노조의 역할과 함께 민주노총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임 위원장 역시 “향후 노동계 지형변화 전개에 따라 정연수 집행부의 민주노총 탈퇴가 시도될 것”이라며 “서울지하철노조 투표로 민주노조운동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역시 반성하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민주노총이 앞으로 더 잘해야 성찰의 기회”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향후 궤도 사업장의 특수성과 투쟁의 파급력 생각하면 민주노총과의 직결되는 사업체계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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