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핵화-평화체제, 두 수레 함께 돌려야
        2009년 12월 21일 11: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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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가 다가오면 그 해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자는 것은 익숙한 버릇이다. 2009년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전세계적 확산과 함께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등장에 많은 의미가 부여됐다. 특히 일방주의와 군사패권주의의 상징이었던 부시 행정부가 퇴장하고, 협력과 공감의 정치를 앞세운 오바마 행정부가 취임하면서 한반도에도 순풍이 불어올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인간의 예측 능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2009년 상반기 한반도는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으로 점철됐다. 한미일 3국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위성의 탈을 쓴 탄도미사일’이라며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 대북 제재 강화가 남긴 의장성명을 채택했고, 이에 분개한 북한은 2차 핵실험으로 맞섰다.

    그러자 유엔 안보리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고, 북한은 "6자회담은 끝났고 핵포기도 기대하지 말라"며 격렬하게 반응했다.

    이즈음 이명박 정부는 미국 주도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선언했고, 북한은 정전협정 무효화를 경고하며 전면 대결을 선언했다. 남북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해졌다.

    그러나 또 다시 한반도의 반전 드라마는 인간의 섣부른 예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미국 여기자 2명이 무리한 취재 욕심으로 북한 국경을 넘었다가 북한군에게 억류된 ‘우연한 사건’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으로 이어져 북미대화 재개의 디딤돌을 놓았다.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고(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북한의 최고위급 특사 조의단 파견과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으로 이어지면서 DJ가 우리민족에게 건넨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일본에서 54년만에 이뤄진 정권교체는 북일관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의 변화 가능성을 잉태했다.

       
      

    2009년 한반도 반전 드라마의 대미는 역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방북과 북한의 대외정책 전략가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의 회담이 장식했다. 12월 8~10일까지 이뤄진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북미간의 공식 대화에서 양측은 9.19 공동성명의 이행에 동의했다. 보즈워스는 북한과의 대화가 “매우 유용했다”고 했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했다.

    북한의 외무성 역시 “"6자회담 재개 필요성과 9.19 공동성명 이행 중요성과 관련해 일련의 공동 인식이 이룩됐다”고 화답했다. 당면 과제인 6자회담 재개까지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9.19 공동성명의 이행 필요성에 양측이 동의했다한 것이다.

    특히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앞세워온 관성에서 한발 물러나, 북미관계 정상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대체, 대북 에너지·경제 지원,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구축 등 9.19 공동성명의 다른 합의 사항에도 성의를 보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그 길은 가시밭길이 되겠지만, 2010년부터 본격화될 ‘한반도 본게임’이 주목되는 까닭이다.

    2010년의 의미는?

    매년 그래왔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2010년은 각별한 의미를 품고 있다. 우선 거시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볼 때,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들인 남북미 3자의 정치지도자들의 계산이 복잡해지는 시점이다. 북한은 2008년부터 2012년 강성대국론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왔는데, 2010년은 그 중간 결산 및 진로를 짜는데 기착점이 되는 해가 된다.

    대외관계의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개선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북한은 ‘통 큰 결단’을 통해 2012년 강성대국을 향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려고 할 것이다. 반면 자신의 요구 사항 관철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2012년 강성대국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로 향하는 불행한 길로 이탈할 수도 있다.

    또한 2010년은 오바마 행정부가 북핵 문제의 해결 여부를 판단하는 시한이 될 것이다. 중간선거와 2012년 재선을 앞두고 북핵 해결에 자신감을 갖게 되면, 미국 역시 과감한 선택을 통해 20년 가까이 끌어온 한반도 비핵화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할 것이다. 반면 북핵 해결 전망이 어둡다고 보면, ‘안보에 나약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강력한 대응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끝으로 ‘기다리기 전략’으로 일관해온 이명박 정부도 모종의 선택을 내려야 할 시점이 될 것이다. 2009년 가을에 이뤄진 남북간의 3차례 비밀 접촉은 3차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2010년 남북관계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7월에 있을 일본 참의원 선거와 하토야마 정권의 대북정책 사이의 상관 관계도 중요한 변수이다. 이미 일본은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방북을 포함한 북일관계 개선을 타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봄, 지구촌은 말 그대로 ‘핵의 계절’을 맞게 된다. 4월 워싱턴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핵 안보 정상회의가 예정되어 있는데, 미국은 25개국 정도의 각국 정상들을 초청한다는 계획이다. “적대국 지도자와도 대화하겠다”고 공언한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과 북한 정상을 초청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그리고 4월말과 5월 뉴욕에서는 비핵지대 세계회의와 핵확산금지조약(NPT) 8차 검토회의가 잇따라 열린다. 비핵지대 세계회의와 관련해 일본의 하토야마 정권이 비핵화를 적극 지지하면서 동북아 비핵지대 창설을 정책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동북아 비핵지대화’가 논의될 것인가가 주목된다. NPT 회의는 오바마의 ‘핵무기 없는 세계’ 구상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 부시 8년을 거치면서 붕괴 위기에 놓인 NPT의 재건 여부는 북한과 이란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은 이 조약에서 탈퇴한 유일한 나라인데, NPT 회의를 앞두고 복귀 의사를 피력하는 것만도 상당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북한이 NPT 복귀 시사와 오바마의 방북 사이의 ‘빅딜’을 시도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까닭이다.

    이란 내부에서는 ‘NPT 탈퇴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데, 만약 이란이 북한의 전철을 밟는다면, NPT 무용론은 거세게 일어나고, 유라시아 지정학은 지각 변동이 불가피해진다. NPT 재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미국이 두 나라를 상대로 어떤 게임을 벌일지가 주목되는 까닭이다.

    6월이 되면 지구촌은 월드컵 열기로 달아오를 것이다. 사상 최초로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남아공 월드컵은 우리에게도 각별하다. 남한은 7회 연속, 북한은 44년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했는데, 남북한이 월드컵에 동반 진출한 것은 사상 최초이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이러한 축구사적 의미를 넘어 한반도와 지구촌에 어떤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만약 월드컵 동반 진출이 한반도 정세의 획기적인 전환과 만난다면, ‘환상의 나비효과’는 2022년 월드컵 남북한 공동개최의 문까지 두드리게 될 것이다. 6월에는 또한 6.15 공동선언 10주년과 한국전쟁 발발 60주년(6월 25일)이 조우한다. 당연히 개혁진보진영에서는 6.15 10주년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조속히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반면 보수 진영에서는 ‘상기하자 6.25’를 앞세워 강력한 대북 대응을 주문할 것이다. 이처럼 2010년 6월은 ‘한반도가 미래로 가느냐, 과거로 회귀하느냐’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반전 드라마의 해피엔딩을 위하여

    환호와 탄식, 희망과 절망이 교차해온 한반도 반전 드라마의 결말은 알 수 없다. 각본을 쓰는 사람과 나라도 많을 뿐더러, 대개 불협화음을 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사건들까지 겹치면서 한반도 드라마는 인간의 예측 능력을 조롱해왔다.

    그러나 모순이 깊어지면 해법도 부상하는 법. 오늘날 한반도는 60년 넘게 우리를 짓눌러온 냉전체제와 20년 동안 풀지 못한 ‘핵 방정식’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문제의 발생과 전개, 그리고 해결에 있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는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이는 흔히 ‘북핵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악재’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앞당기는 ‘호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하나의 수레바퀴만 굴려 땅만 파면서 제자리를 맴돈 지금까지의 실책을 반복하지 말고,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함께 굴려야 할 시점인 것이다.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는 국제적 환경도 전례없이 유리하다.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겠다는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섰다. 이명박 정부가 ‘변화를 통한 주도’를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일본의 하토야마 정부 역시 총리의 방북을 포함한 북일대화 타진에 나선 상황이다.

    일본의 변화는 과거 6자회담 훼방꾼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프로세스의 협력자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이 대북강경책에 집착하면 ‘변수’가 되지만, 대북 포용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협력자로서의 ‘상수’가 된다. 가속도가 붙고 있는 미국-러시아의 핵감축 협상도 한반도와 동북아의 비핵화를 향한 좋은 신호이다.

    이제 한국은 각본 ‘없는’ 드라마를 각본 ‘있는’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전략적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북미 대화의 문이 열린 만큼, 남북대화의 문도 조속히 열어야 한다. 남북대화가 개선되면 6자회담도 자연스럽게 열리게 되어 있다. ‘그림의 떡’을 보여주면서 북한에게 핵포기를 촉구할 것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상응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은 물론이고 오바마와 하토야마에게도 방북을 권유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산 정상에 올라 미래를 설계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두 사람은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환갑을 넘긴 냉전체제와 20대로 접어들 북핵 문제를 소재로 한 한반도 반전 드라마를 ‘헤피엔딩’으로 종영해야 할 시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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