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양당 통합논쟁, 진실 혹은 거짓
        2009년 12월 21일 10: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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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민주노총 사이에 통합 의제가 ‘돌출적’으로 부상하면서 국민적 관심사로까지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연대연합 전술 논의에 진보정당의 통합이라는 변수가 끼어들면서 논의 지형이 복잡하게 돼가고 있다.

    현재까지 상황으로 보면 외형적으로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통합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진보신당을 ‘통합 반대세력’으로 비판하고 있고, 진보신당은 이에 대해 충분한 논의와 당원 등을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없이 성급하게 ‘묻지마 통합’을 강요하는 것은 현실성과 진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묻지마 통합 반대 vs 합치는 것만으로 희망

    진보 양당의 통합 의제가 급부상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지난 16일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2010년 선거방침을 발표하고 나면서부터다. 노 대표는 당시 발표에서 ‘묻지마 반MB’ 연대, ‘묻지마 통합’에 대해 비판적, 회의적 입장을 분명히 천명하고 나서면서 진보진영의 공동선거대응을 위한 논의 테이블 제안했다. 

    같은 날 민주노동당 부산시당이 16일 민병렬 시당위원장의 부산시당 출마선언 당시 통합을 선거연합의 전제 조건이라는 식의 ‘돌출적’ 발언으로 이 문제가 지역의 주요 이슈로도 부각됐다.  

       
      

    민주노동당이 17일 공식논평을 통해 노 대표의 제안에 대해 “진보정치 대통합에 대한 당원들의 관심이 높고 다양한 의견들이 활발하게 제출되고 있는데 노회찬 대표가 지방선거 전 통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밝히면서 통합의 이슈가 양당 간 갈등 요소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민주노동당 이정희 정책위의장은 18일, <오마이뉴스> 기고를 통해 “진보에게 요구되는 과제는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흔한 생각을 바꿔내는 것”이라며 “갈라진 것만으로도 실망을 안겼기 때문에, 합치는 것만으로도 다시 희망의 출발선에 설 수 있다”고 ‘통합’을 요구했다.

    이 의원은 이어 “통합하는 절차에 시간이 걸릴 수 있으나 통합하겠다는 뜻 만큼은 지방선거 전에 합쳐져야 한다”며 “복잡한 셈법과 추론은 다 접어두고, 오직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싶어하는 국민들의 말을 되새겨 따르고 유불리를 따지지 말자”며 노 대표의 지방선거 전 통합 불가론에 대해 비판했다.

    인화성 높은 의제

    민주노총도 18일 성명을 통해 노 대표가 ‘묻지마 통합’은 안 된다고 밝힌데 대해 “불쾌하다”는 입장을 내면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진보신당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에서 “민주노총이 제시한, ‘진보정당 대통합과 진보적 민중진영을 포괄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한 주체로 서달라는 요구에 대해 고민이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양당과 민주노총 사이에 흐르는 통합의 갈등은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양당 내부에는 ‘통합’에 대한 입장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인화성 높은 의제로 남아 있으며 이 문제가 당 내에서 어떤 방식으로 분출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진보신당의 경우 주요 지도부와 당직자들은 2012년에는 ‘통합 진보정당’으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노회찬 대표가 몇 차례에 걸쳐 이런 입장을 밝힌 바 있으며, 심상정 전 상임공동대표도 18일 <원음방송>과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2012년 선거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의 이름으로 치러야한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 지방선거의 선거연합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통합을 위한 신뢰를 쌓아가고 논의구조도 만들어가는 것이 현 단계 필요한 수순이라는 입장이다. 물론 진보신당 내부에서는 어떤 종류의 선거연합과 통합에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양당 모두 내부 이견 만만치 않아

    이 같은 현상은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도 진보신당과의 통합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대표적인 통합론자인 이수호 최고위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려하자, 이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이상규 서울시당 위원장이 출사표를 던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위원장은 선거연합, 진보연합 등의 연합 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용대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도 당 기관지 <진보정치> 기고를 통해 “당을 모욕하고 파괴한 분열주의자들에게 아무런 절차 과정의 매개 없이 당선 가능성과도 무관한 ‘진보대연합’ 명분 때문에 면죄부를 주고 지지까지 해야 하는가”라며 “대공장 소재지나 공단 밀집지역을 제외하고, 허구적 ‘진보대연합’에 매달리는 것에 우려한다”고 강하게 통합론을 비판했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은 현재 민노당 당권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양당이 ‘통합’과 관련된 공식 당론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공방은 진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양당 모두 내부 이견을 충실하게 수렴해 나가야 되는 시점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공방이 나오고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진보신당이 당장 통합이 아니라, 통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에 대해서도 소극적으로 나오는 것은 실제로 통합의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진정성을 가지고 봐줘야

    진보신당의 경우 민주노동당 일부와 민주노총 등에서 나오는 ‘통합’론에 대해서는 진정성을 이해하지만, 통합에 소극적인 쪽에서 이를 정치적 이슈화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그 배경에 의구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들은 "광역 단체장의 경우 대중적 후보에서 불리한 민주노동당이 통합 이슈를 들고나옴으로써 선거연합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 현 집행부의 강력한 통합 촉구와 현장의 요구에 맞춰, ‘통합 찬성 민노당, 통합 반대 진보신당’의 허구적 구도를 대중들에게 인식시킴으로써, 투표는 물론 세액 공제 등으로 이어지는 현장 노동자들의 지지를 획득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 정종권 진보신당 부대표는 “‘선 통합선언 – 후 선거연합’의 논리는 현실을 부정하는 억지 논리이거나 선거연합을 회피하기 위한 알리바이일뿐”이라고 지적했다. 신언직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은 ‘통합선언이 안 된다면 선거연합도 안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해 민노당의 ‘의도’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일각에서는 진보신당의 이 같은 태도가 오히려 진보진영의 선거연합을 가로막는 행위라는 비판이 있다. 정성희 소통과 혁신연구소장은 “당장 통합이 어렵다면, 통합에 합의하고 논의기구를 통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어떻게 추진해 나갈지 논의하면 된다”며 “새롭고 더 큰 하나가 되어 노동자-민중의 신망을 얻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길 수 있는’ 선거연합이 아니라면, 새로운 진보정치의 길을 제시하는 연합이 되어야 하지 않나”라며 “통합을 목적으로 선거연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여론이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이를 정치공세로 보기보다 진정성을 봐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도 “일시적인 선거공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지난 두 차례 재보궐선거에서 드러나, 통합을 전제로 선거공조를 이루어야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며 “진보신당은 이를 자꾸 정치공세로 취급하면서 진보진영의 통합이 ‘과거로의 회귀’라며 또 다시 분당 당시의 감정을 건드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기갑 ‘큰집’론 제안 가능성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발표한 내년 선거방침을 둘러싼 반응 과정에서 나타난 ‘통합 논쟁’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다만 강기갑 대표가 2010년 새해 연설 때 이와 관련된 당론을 발표하면서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는 “지역을 순회하며 당원들의 의견을 물은 뒤, 강 대표의 신년연설 때 통합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진보정치진영의 ‘큰 집’을 지어야 한다는 제안으로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양당의 지도부가 2010년 선거연합과 2012년 진보대연합이라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당내 다양한 이견을 성공적으로 수렴해서 당론을 도출해낼지 여부와, 당면의 선거연합이라는 과제에 진보진영의 통합이라는 ‘전략적 과제’를 어떻게 지혜롭게 결합시켜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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