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논리적 주장으로 다른 당 대표 비판 안돼
        2009년 12월 21일 12: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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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진보신당 당원입니다. 과거 민주노동당 당원이기도 했습니다. 이정희 의원께서 <오마이뉴스>를 통해 쓰신 ‘노회찬 대표님, 통합은 과거 회귀가 아닙니다’를 보고, 몇 가지 드릴 말씀 있어 글을 씁니다.

    의도적 ‘뭉뚱그리기’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진보정당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이정희 의원님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국민의 요구’라는 말씀도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실제 진보신당 당원들의 경우, 민주노동당 분당 직후에는 “참 잘 분당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총선 이후에는 “다시 합쳐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2008년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전패의 결과와 관계가 깊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헌데 이 의원님은 주장하시는 ‘국민의 요구’가 진보진영의 ‘정당통합’인지, ‘선거연대’인지, 아니면 막연한 ‘힘을 합치라’는 것인지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의 차이는 말 한마디가 아니라 매우 다른 뜻을 가집니다. 물론 그 정도를 구별 못하실 분은 아닐 것이니, 결과적으로 뭉뚱그려 쓰는 것이 이 의원님의 주장에 유리한 것으로 판단한 의도적 서술로 보입니다.

    국민은 변했을지 몰라도, 민주당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좌파 신자유주의’를 믿으십니까?

    연합을 하고자 한다면 무엇을 중심으로 할 것인지가 핵심입니다. 이 의원님께서는 그것이 ‘반MB’라고 주장하시지만,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정리해고를 도입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한미FTA를 도입해 농민들을 죽이고 결과적으로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게 만들고, 이라크 파병으로 죄없는 이라크 민중과 자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민주당 정권을 벌써 용서하셨습니까? 아니면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강금실 후보를 지지하셨듯이, 용서할 이유조차 없으신 겁니까?

    그 자체로 형용모순일 수밖에 없는 말, ‘좌파 신자유주의’를 믿으시는지 묻습니다. 역사의 시계를 자꾸만 거꾸로 돌리려 하시기에 진지하게 묻는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용산철거 유족들의 마음을 껴안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민주당이 참사 현장에서 의원총회를 소집하는 등 관심을 가지기는 했으나, 참사의 근본적 원인인 뉴타운 등 재개발 정책을 접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각종 선거 때마다 뉴타운을 공히 외쳤던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이 땅 철거민들에게는 별 다를 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의원님 말씀처럼 국민은 변했을지 몰라도, 민주당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비정규직법은 어떻습니까? 노무현 정부가 만든 그 악법 때문에 ‘해고를 2년 유예하는 악법’이라는 법제정 당시 민주노동당의 제기는 이제 한나라당의 주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비정규노동자들은 법대로(!) 잘려나갑니다. 국민의 삶을 이토록 피폐하게 만든 민주당 정권의 ‘좌파 신자유주의’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용서하기도 힘듭니다.

    본인이 몸담고 계신 민주노동당의 존립근거를 부정하고 계십니다

    다 제쳐두고 이 의원님의 비논리적 분석을, 저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만나시는 국회의원님이니 인정한다 칩시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의원님께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고 확신하신 진보정당의 통합의 문제가 ‘국민의 요구’라는 이름으로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까?

    이러한 무조건적 ‘밀어붙이기’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진보정당이 출마한 선거 때마다 고개를 들었습니다. 굳이 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92년, 97년 대통령선거 그리고 최근까지 진보진영의 선거 때마다 발목을 붙잡은 묻지마 단결론, 또는 비판적 지지론은 스스로 본인이 몸담고 계신 민주노동당의 존립 근거와 창당정신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이 속한 당의 창당정신 정도는 이해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대선 ‘이명박’이 국민의 요구일 수 없듯, ‘민주대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국민의 요구가 과연 ‘민주진보세력의 단결을 통한 한나라당 심판’이냐의 여부입니다. 지난 2007년 대선, 투표인 중 절반에 가까운 국민이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의 요구가 이명박 후보였습니까?

    이명박은 좀 더 나은 경제여건에서 살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이 투사된 대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명박을 압도적 표차의 승리자로 만든 것은 신자유주의 10년, 소위 민주정권 10년의 결과입니다.

    이정희 의원님이 주장하는 ‘민주당을 포함한 전면적 민주진보세력의 단결’은 경제위기와 민주주의 말살에 질식된 국민이 선택한 방법 중 하나, 희망을 투사하는 대상의 하나일 뿐입니다.

    지난 2007년 대선 국민의 요구가 투영된 대상이 ‘이명박’이었다고 해서, 이명박 그자체가 국민의 요구가 아닌 것처럼, ‘묻지마 반MB 연대’ 그자체가 국민의 요구는 아닙니다. 국민의 요구였다고 우기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단결하라면, 의원님도 좀 억울하시지 않겠습니까.

    진보진영의 단결을 가로막는 건 다름 아닌 ‘묻지마 반MB연대’입니다.
    체해서 굶겠다는 사람에게 식사도 하고 피자도 먹으라니요

    진보신당은 통합 문제에 대해 전당적으로 공식 토론을 한 적이 없습니다. 왜 이겠습니까? 진보신당 지도부와 구성원들 다수가 아직 ‘통합’ 문제에 대해서는 굳이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쉽습니다. 진보신당은 나와서 얼어 죽을 각오로 총선 직전에 분당을 결심한 사람들, 그리고 진보신당이 처음으로 가입한 정당인 사람들이 절반씩 구성하고 있는 당입니다. ‘통합’을 공식적으로 논하고자 한다면 전자의 사람들은 뼈아픈 과거를 돌아봐야 하고, 후자의 사람들은 복수 진보정당 시대에 진보신당에 가입한 이유를 부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진보신당 당원인 이유를 부정해야 시작할 수 있는 중차대하고 엄중한 논의라는 겁니다. ‘국민적 요구’라는 오류적 대의를 아무리 무조건적으로 들이대더라도, 이 의원님이 보시는 것처럼 그렇게 뚝딱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확신컨대 이 의원님 같은 분들의 자세가 충분히 가능한 진보진영의 단결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연대’와 ‘단결’과 ‘통합’의 차이도 구분하지 않는 자세, 그리고 ‘자주’라는 신성하고 의미 있는 가치를 다른 조직에게 빼앗으려는 이중잣대가 진보신당의 자주권을 빼앗고 진보진영의 단결을 저해하고 있는 겁니다.

    민주대연합에 반대의사를 표한 진보신당에게 ‘민주대연합’도 하고, ‘당통합’도 하자니요. 상대방의 주장을 부정하면서 당통합을 논하는 것이 말이 될 리 없습니다. 먹은 게 체해 굶겠다는 사람에게 식사도 하고 느끼해서 싫다는 피자도 먹으라는 식입니다.

    단결을 원한다면 진보의 미래에 대한 내용과 방법을 제시하셔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진보정당 국회의원으로서 자격 미달이자 직무유기입니다

    ‘유불리’를 따지지 말자고 하셨습니다. 노회찬 대표가 서울시장에 출마하면서 가장 유리한 그림은 ‘묻지마 반MB연합’ 만들어 그 안에서 단일화를 이루고 그 후보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노회찬 정도의 인지도와 역량을 갖춘 정치인이라면 충분히 도전 가능한 일입니다.

    민주당에 선을 그은 진보세력 연대 제안을 자신의 유불리를 기준으로 한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의 얕은 꼼수라 매도 마십시오. 유리함을 따지는 꼼수라면, 당연히 서울지역에서 범민주 대연합하자고 하는 게 맞습니다.

    이정희 의원께서 진보정당 국회의원으로서 지금 하실 일은 비논리적 주장으로 다른 당 대표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진보의 재구성에 대한 본인의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의원님의 주장에는 ‘통합은 국민의 요구이고 이를 따라야 한다’만이 있을 뿐, 앞으로 진보세력이 지향할 가치와 내용 그리고 전략은 없습니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국민과 당원들에게 제시해야 할 전망의 필요조건입니다.

    단결을 원하는 이들이 ‘할말 없게’ 만들지 마십시오

    어느 조직이나 의견은 다양한 터라, 진보신당에는 현재 민노당과의 선거 연대 또는 논의 자체를 강경하게 반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제가 알기론 민노당에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정희 의원님의 주장은 강경한 반대에 힘을 실어줄 뿐입니다.

    더욱이 이런 식이면 진보신당 내에서 민주노동당과의 단결과 연대를 주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할 말’이 없어집니다. “거봐라. 요만치의 반성이나 변화도 없지 않냐? 저런 사람들과 또 함께하자는 거냐?”는 포화로 돌아오게 됩니다. 높은 자리에 계시는 만큼 자신의 주장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하셨으면 합니다.

    이정희 의원님의 활약에 대해 열심히 지켜보고 박수치고 있습니다. 쌍용차 파업 기무사 사찰과 철도공사의 파업유도 폭로는 노동자민중의 입이 되고 귀가 되었습니다. 이 땅 진보세력의 단결을 바라는 사람으로서, 이정희 의원님의 주장이 오히려 단결을 저해한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썼습니다. 부디 거친 표현 있더라도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추운 겨울 부디 건강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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