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운동 40년 박인상 회고록
    By 나난
        2009년 12월 20일 05: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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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11월29일 오후 대한조선공사는 임시공(비정규직) 1천175명 전원에게 해고예고통보를 했다. 조합원 2천여명, 본공(정규직)과 임시공이 하나가 돼 아우성을 쳤다. 당시 사진을 보면 다들 새까맣고 광대뼈가 툭툭 불거질 정도로 깡마른 데다 남루하기 짝이 없는 작업복을 입고 있다.

    모기소리조차 낼 힘도 없어 보이는데 무슨 기운으로 하루 종일 소리를 질러대고 쉴 새 없이 연설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 내 눈에 비친 대한조선공사 노동자들은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똑똑하고 용감한 노동자들이었다." (『외줄타기』중 43~44p)

       
      ▲ 책표지

    <매일노동뉴스>가 40년간 노동운동을 해온 박인상 한국노총 전 위원장의 회고록『외줄타기』을 출간했다. 노동계에서 ‘영원한 위원장’이라 불리는 저자는 우리나라 첫 비정규직 복직투쟁의 1959년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해 1964년 노동운동에 뛰어든 후 비정규직 전원해고에 맞선 1년간 파업을 주도했다.

    『외줄타기』는 국내 최초 노동운동가 회고록으로, 저자는 이 속에서 한국 노동운동과 노사관계 진화 과정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1960년대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온 몸을 받쳤던 저자는 지난 1968년~69년 1천여 명 전원해고에 맞서 부산 영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파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대한조선공사 파업은 사상 처음으로 긴급조정권을 발동시킨 계기였다.

    "파업 15일째 되던 날 마지막 승부수를 꺼내 들었다. 우리는 조합원들과 함께 굶어 죽기로 했다. 단식농성이다. 추위 속에 단식 이틀째가 되자 쓰러지는 조합원들이 생겼다.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가 탈진한 조합원을 병원으로 실어 날랐다. 이불을 전해 주러 공장에 들어왔다가 이 광경을 보게 된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내 남편, 내 자식 살려 내라’며 도로를 점거했다." (『외줄타기』중 46~48p)

    금속노련 위원장 시절 한국노총 최초의 옥외집회를 개최하기도 했으며, 한국노총 위원장 시절에는 50년만의 총파업을 단행하기도 했다. 또 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국제노동협력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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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박인상

    노동조합 활동을 그만둔 지 꽤 됐음에도 언제나 ‘영원한 위원장’으로 불린다. 1939년 12월 경상남도 사천에서 태어났으며, 비정규직(임시공) 신분으로 대한조선공사 노동조합 청년부장을 맡으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60년대 후반, 임시공 집단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국내 최초의 국영기업 파업을 이끌었다.

    1996년 한국노총 위원장에 당선된 뒤에는 민주노총과 연대투쟁을 성사시켜 96~97년 노동계 총파업을 이끌었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제16대 국회의원(환경노동위원회)에 당선됐다. 해마다 의정활동 베스트 국회의원에 뽑히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현재 국제노동협력원에서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편자 – 박미경

    마산 MBC에서 시사 문제를 다루는 구성작가로 일했다. 서울에 올라와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세상을 꿈꾸다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 보려는 마음에 <매일노동뉴스>로 옮겼고, 노동자의 삶의 애환과 꿈을 들려주는 인터뷰 기사를 연재했다. 현재 <매일노동뉴스>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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