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소 전문 변호사’의 고백
        2009년 12월 19일 08: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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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보면, 나는 이 세상에서 ‘주전 멤버’는 아니었다. ‘어시스트’를 주로 한 셈이었다. 축구로 말하면 득점과 그에 따른 함성은 내 몫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실점의 위기를 막아내야 할 수비수이기도 했다. 화려한 주역은 아닐지라도, 누군가가 맡고 나서야 할 소중한 배역이라고 생각했다”(머리말에서)

       
      ▲ 책 표지

    시국사건 변호인 1호, ‘패소 전문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의 자서전이 나왔다. 서슬퍼런 군부독재시절 시국사건의 변호를 맡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거는 일’, 그렇지만 그는 변호사라는 화려한 삶대신 온갖 필화사건과 반공법사건을 맡으며 고난의 길을 걸었다.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한승헌, 한겨레출판, 16,000원)은 자서전임에도 저자의 이야기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증언자로서의 역할을 전면에 내세웠다. 아직도 한 변호사의 변론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 그는 “의를 위해 저항하고, 무도하게 탄압받으면서도 ‘바른 세상을 향한 열정을 접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변호사 된 자의 소임”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저자는 고난과 역동의 세월을 돌이켜보면서, ‘양지’에서 보다 ‘음지’에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인간적으로 성숙했으며 보람을 찾을 수 있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음지 체험은 당신 삶의 양지였다고 회고한다.

    그는 이 책에서 1965년 남정현 작가의 소설 『분지』필화사건부터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2004년 노무현대통령 탄핵사건까지, 현대사의 거의 모든 굵직한 사법사건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법정에서의 그의 술회를 들어보면 때로는 심한 분노가, 때로는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는 그런 시대를 살며 ‘불의’를 ‘불의’라 말해왔고 법조인으로서 소박한 소신을 지키는 일조차 목숨을 걸고 싸웠다. 결국 군부독재의 눈 밖에 난 한승헌 변호사는 반공법 위반으로 두 차례에 걸친 옥살이와 고문까지 받아야 했다.

    저자가 치욕스럽기 까지 한 한국 사법부 역사를 전면에 드러내고 증언하는 이유는 절대로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책임의식 때문이다. 이른바 먹물들과 법조인들이 한 티끌이나마 양심에 어긋난 일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순간, 구시대의 유물로 분류된 군사법정의 희대의 코미디는 언제든 현실 속에서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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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한승헌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고향이 용담댐으로 수몰되어 지금은 완벽한 실향민이다. 전주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법정대학 정치학과)를 나왔으며, 고등고시 제8회 사법과에 합격, 졸업 후 군법무관, 검사로 복무하다가 1965년에 변호사로 전신했다.

    군사독재 치하에서 박해받는 양심수 또는 시국사범을 변호하면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던 중 반공법 위반 필화사건(1975)과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1980)으로 두 차례에 걸쳐 21개월간 투옥됐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이사, 국제앰네스티 한국위원회 전무이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 민주회복국민회의 중앙위원,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등을 맡아 민주화·인권운동에 나섰다.

    방송위원회 위원,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위원,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외국어대학교 재단이사장,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법무법인 ‘광장’ 고문변호사,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SBS시청자위원회 위원장, 경원대학교와 전북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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