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술은 폭넓게, 전략은 줏대있게
        2009년 12월 18일 08: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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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진보신당이 ‘연합정치’ 논란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오늘까지 나온 보도를 요약해보면 당 지도부의 입장은 대충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1, 지방선거 전에 통합은 없다.
    2, 지방선거 전까지는 합당이 아니라 선거연합일 뿐이다.
    3, 지방선거 후라 해도 통합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창당이다.

    일부 수긍이 가는 대목도 있지만 나의 상식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부분도 있다. 내가 갖고 있던 개념은 선거연합과 정치연합(=정당통합)의 차이는 선거연합은 전술적인 것이고 정치연합(=정당통합)은 전략적이라는 것이다.

    1. 선거연합을 하려면 민주당과 해야 한다

    선거연합이란 ‘당선을 목표로 한 후보조정’이다. ‘당선’이라는 당면 목표를 위해 매우 폭넓은 전술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선거공간에서는 이런 것이 용서가 된다. 심지어 모택동이랑 장개석도 손을 잡은 전례가 있다.(=국공합작)

    이런 파격이 용서가 되는 이유는 이것이 전술이기 때문이다. 나는 선거를 치를 때마다 당선을 위해서 ‘영혼’을 팔지는 않겠지만, ‘간이나 쓸개’ 정도는 팔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당선을 위해서는 ‘전술적인 폭’은 넓게 구상할 필요가 있다.

       
      

    오늘 언론에 나온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말에 따르면,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은 배제하면서 민노당과의 선거연합을 추구하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두는 것 같다. 그러나 선거연합 전술을 시도하려면 민노당이 아니라 민주당과 해야 한다.

    민노당과 선거연합을 할 경우 어떻게 당선이 되겠는가? 또 당선을 목표로 하지도 않는데 굳이 선거연합은 왜 하는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민노당이 아닌 민주당과 연합후보가 되어야 서울시장 당선권에 들어갈 수 있다.

    민노당과 연합하면 오히려 ‘마이너리그’에 갇히게 된다. ‘당선’에서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즉 마이너후보와의 선거연합은 본말이 전도 된 것으로 전술상의 목표를 오히려 방해하는 것이다.

    대중들은 큰 선거 일수록 ‘당’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투표하는 성향이 있다. 인물에 대한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대통령선거 다음으로 큰 선거다. 현재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은 마땅한 서울시장 후보가 없다는 점이다. 대중에게 어필할 ‘인물’이 없는 상태이다.

    이 상황이라면 노회찬 후보가 충분히 민주당과 경쟁적 거래를 해서 당선권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후보를 정리하면 다른 후보들은 자동 정리되기 때문에 어차피 고려할 변수가 못된다. 마이너 후보들을 상대해주면 자꾸 그 쪽이 커지게 될 뿐이다. 무시전략으로 가야한다.

    따라서 진보신당의 서울시장 선거연합은 ‘당선’을 목표로 ‘민주당’과 진행시켜야 한다. 서울, 경기에서는 광역단체장 선거의 경우 민노당과 선거연합을 할 이유가 내가 보기엔 없다.

    2. 선거연합에 대한 판단을 지역조직에 일임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 경기가 아니면 일부에서는 전술적으로 민노당과의 선거연합을 고려할 이유가 있는 지역이 있는 듯하다. 또 한편에서는 애당초 당선과는 무관한 선거를 치르는 지역도 있다. 이런 지역에서는 선거연합을 구상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당선이 목표가 아닌 경우라면 선거연합이라는 것이 통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 판단을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해당 지역의 당원들이다. 이 선거가 당선을 위한 선거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당선을 위해선 누구랑 연합해야 하는지? 그것은 해당지역의 당원들이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중앙당 차원에서 하나의 파트너를 정해놓고 그 쪽과 일방적인 선거연합을 선언해 버리면 지역 지부가 처한 각자의 조건이 모두 다른 상황에서 전혀 엉뚱한 손을 잡게 될 수 도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합전술의 작성, 교섭, 인준 등의 권한을 서울시당에 일임해버리면 논란으로부터 후보를 보호하는 효과도 있고, 왜 중요한 얘기를 당원들에게 물어보지도 않느냐? 는 논란도 피해갈 수 있다.

    3. 전술은 폭넓게, 전략은 줏대 있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선거연합은 전술적인 것이고 정치연합은 전략적인 것이다. 선거 시기 후보조정 전술은 당원 대중들에게 지도부가 폭넓은 재량권을 위임받아 다양한 형태로 시도할 수 있다.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이런 정치 행태를 ‘골방정치’라며 거부해 왔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경험도 적고 서투르기는 하겠지만 이제 이런 것도 해볼 시기가 되었다.

    다만 전략적인 단위에서 정당 간 연합, 통합은 어디까지나 줏대를 가지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창당이란 어디까지나 나의 입장에서 당을 확대, 강화하는 것이지 모택동이 장개석 손잡듯이 아무 손이나 막 잡는 폭넓은 개념은 아니다. 그것은 진보신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치노선을 대중적으로 더 확대하고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간주될 때 당원대중의 동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삼성그룹회장 이건희씨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라고 말해서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변화의 폭을 넓게 가져라! 라는 말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 말의 진짜 가치는 ‘마누라와 자식’은 끝까지 안 바꾼다는데 있다.

    되도록 사고의 폭을 넓게 유지하며 신속하게 바꿔야 할 것들이 있고 그 속에서도 끝까지 붙들고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호치민은 이를 두고 이불변응만변(以不變 應萬變, 변하지 않는 원칙으로 1만 가지 변화에 대응한다-편집자)이라고 했다. 선거연합의 폭은 되도록 넓게 생각하되 정당 간 연합과 통합의 조건은 극히 제한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통합이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당의 확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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