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운하? 태안을 좀 보시라"
        2009년 12월 17일 11: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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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태안 기름유출 사건 2주년을 맞아, 9개월에 걸쳐 태안군과 보령시 주민 9,284명과 태안군 초등학생 548명에 대한 “기름유출 피해로 인한 중장기 주민건강 영향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는 태안 기름유출 사건의 피해보상금으로 만들어진 태안 환경보건센터가 주관하여 피해 주민들의 건강을 진단했다는 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대 규모인 1만 명의 주민들에 대한 건강진단이라는 점, 그리고 단국대, 충북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순천향대학교 등의 연구진이 각자 전공분야에 따라 참여한 대규모 연구라는 점 등의 맥락에서 상당한 신뢰성과 학술적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이 연구결과를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들이다.

    천식 유병율 3배 이상

    첫째, 언론에 이미 보도된 대로 피해지역(해안가, 고노출군) 초등학교 아동들의 천식 유병율이 16.8%로 대조군(저노출군, 내륙지역)의 6.4%에 비하여 3배 이상이나 높았고, 공업단지인 울산지역(8.2%, 2008년 전국 어린이 환경노출 건강영향조사) 등에 비하여도 두 배 이상이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결과는 고노출지역의 어린이들이 저노출지역에 비하여 천식 유발물질에 노출될 기회가 많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즉, 일시적인 기름유출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아름다운 마을을 수십 년 동안 굴뚝에서 매연을 뿜어온 공단지역과 비슷한 수준의 오염지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둘째, 태안군 소원면, 이원면, 근흥면, 원북면 등 4개 지역 성인 대상의 연구에서 방제작업을 실시한 바닷가 지역의 어른들에게 나타나는 피해의 하나로서 각종 알레르기 증상과 신경계 기능 저하가 타 지역에 비하여 높게 나타난 것이 확인되었다. 특히, 방제작업 일수와 증상의 발현율이 정비례하는 ‘양-반응 관계’를 보인 것으로 발표되었다.

    방제작업, 후유질환 유발 가능성

    즉, 기름 방제작업이 어른들에게도 천식 등의 알레르기 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최근 학계에서 밝혀지고 있는 MCS(multiple chemical sensitivity)로서 특정 화학물질에 노출된 피해자가 그 화학물질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화학물질들에 대해서도 오심, 구토, 피로, 두통 등의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방제작업에 참여한 횟수와 시간 등에서 유출된 기름에 노출된 기회가 많을수록 증상의 발생이 많았다는 것은 두 현상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중요한 근거로 평가되고 있다. 연 인원 170만 명 이상의 많은 국민들이 참가한 방제작업에서, 당시 참가자들에게 지급된 것은 마스크와 고무장갑, 그리고 방호효과가 거의 없는 1회용 종이 방제복 뿐이었다.

    만약, 선량한 의도로 자연환경 복원과 지역주민 지원을 위해 시간을 쪼개 자녀와 가족들이 함께 먼 길을 달려와 자원봉사에 참가한 국민들에게, 국가가 최소한의 보호 의무조차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최종 확인된다면, 이는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개연성이 크다.

    우선,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투입된 군 병력들, 잠수복을 입고 최고 오염지역의 개펄과 바다 속으로 투입된 UDT 요원들의 피해 정도가 얼마나 될 것인지부터 적극적으로 규명해야 할 것이다.

    영양실조 심각

    셋째, 사고 이후 피해 주민들의 영양실조가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적인 건강진단과 함께 실시된 주민들에 대한 일대일 면접조사 등에서 1일 영양 섭취량을 조사한 결과, 방제지역 주민들은 내륙지역 주민 등의 비교집단에 비해 하루 열량 섭취량은 물론, 비타민, 무기질 등의 섭취량도 현격하게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부는 증빙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피해 보상금액을 600억 원이나 삭감한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한 끼 식사의 상당 부분을 지역에서 나는 어패류와 해산물로 채워오던 주민들이, 이들 수산물을 채취하거나 섭취하지 못하여 발생한 영양실조에 대해서는 기름유출로 인한 피해가 아니라는 증명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삼성의 책임한도를 56억 원으로 상정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 또한, 이러한 명백한 피해들에 대해서 어떻게 답을 할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호르몬 변화와 DNA 변성

    넷째, 기름유출 사고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와 DNA의 변성 등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월남전 당시 우리 정부는 파병 장병들에게 미군이 비행기로 뿌리는 고엽제를 모기약이라고 이야기하며 병사들의 고엽제 노출을 방치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고엽제를 손으로 찍어 바르는 장병들까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월남전 당시 살포된 고엽제의 55-60%가 다이옥신을 주성분으로 하는 Agent Orange였고, 이는 장기적으로 유전자의 변형을 가져와서 자손에게까지 치명적인 피해를 유전시키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우리 정부의 이러한 잘못된 과거를 지금 이 시점에서 기억해 내는 이유는 이번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역시 유기용재의 일종인 ‘기름’에 의한 피해이기 때문이다. 즉, 과거 고엽제 후유증과 같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세계 보건학계가 한국의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건의 향후 진행과정을 주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횡횡하고 있다.

    4대강 개발, 항구적 환경 재앙될 것

    이상의 조사 및 연구 결과는 태안지역의 공공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한 열정적인 보건소장의 헌신적인 노력과 이에 감동한 과학자들의 열정적인 연구조사가 만들어낸 것이다.

    향후 몇 년 동안 추가적인 추적관찰과 세밀한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나, 이러한 연구결과는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의 규모와 보상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아직도 원유 탱크가 2중벽의 안전구조를 갖추지 않고 운영되고 있는 유조선들이 전체의 60-70%나 되는 국제 해운 및 조선업계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치는 연구결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명백한 증거들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와 국제기구의 전문가들이 앞으로 어떠한 대응을 하고, 판단을 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한 번의 기름유출 사고로 생길 수 있는 피해가 이렇게 심각하기에, 우리 국민들은 대운하 사업과 같은 항구적인 환경위해 위험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며 그렇게 단호하게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이번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기름유출 사건에 대한 건강피해 조사결과에서 명백한 건강위해가 드러난 상황에도 불구하고, 로봇 물고기가 수질오염을 막아줄 것이라며 4대강 개발을 강행하려는 청와대와 정부는 환경파괴를 우려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더 이상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09년 12월 17일
    사단법인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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