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께 ‘대한민국’은 무엇입니까
        2009년 12월 16일 09: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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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편지를 쓰는 12월16일, 1만 명의 노동자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혹한의 날씨에다 풍진 노숙을 마다하고 1만 명의 노동자가 서울로 입성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뒤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 편지는 노동자이자 국민인 그들의 마음을 대신한 전령입니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모든 세인의 말을 다 들어줄 만큼 한갓진 자리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이 혹한기에 무슨 까닭으로 만 명의 인파가 노숙을 자청하며 서울로 올라왔는지 만큼은 들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입니다. 민주공화국이란, 달리 논란과 설명이 필요 없도록 우리의 헌법 제1조로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못이 박혀 있습니다. 나아가 대통령은 이 헌법에 존립 근거를 둔 기관이며, 그 어떤 기관이나 국민보다 철저히 헌법을 준수할 의무가 주어진 자리입니다.

       
      ▲ 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2008년 2월, 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오른손을 들어 ‘헌법을 준수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뒤 2년 가까이 흐른 지금, 과연 그 엄숙한 선서를 올곧게 지키며 국정수행을 하고 있는지!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이 나라

    많은 법학자들은 이명박 정부를 ‘위헌 정부’라며 한숨짓고 있습니다. 더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넘어 깊은 시름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쯤 대통령께서는 주위에 포진된 외눈박이 혹은 모들뜨기 관료들과 지지율의 착시현상에 갇혀 고장 난 불도저처럼 헌법을 이탈한 국정운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점검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릇된 정책과 법 제도를 비판하고 바로 잡자고 주장하는 시민들이 순식간에 체포되어 하루아침에 죄인이 돼버리는 나라가 오늘 날의 대한민국입니다. 일국의 국무총리가 사고로 숨진 외국 관광객 앞에서는 무릎을 꿇지만, 경찰의 손에 숨져 1년이 다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용산참사 유가족 앞에선 양반다리를 틀고 앉아 ‘책임 없다’고 하는 것이 이 나라입니다.

    불과 2년 전 개정된 ‘필수유지 조항’을 불만스럽지만 철저히 지키고 평화적 교섭을 통한 해결을 외치며 쟁의에 돌입했는데, ‘너무나’ 합법적인 그 행동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불법이 돼버린 대한민국입니다. 경제가 가장 어려웠던 최근 1년, 약 90조 원 수익이 외국 투자자들 손으로 넘어가고 개미들만 멍든 주식시장을 가진 나라가 이 나라입니다.

    이 나라의 가장 확실하고 투명한 납세자이지만, 해고돼 길거리로 내쫓기고 최저임금조차 삭감 협박을 받으며 ‘경제를 망친다’는 멍에를 강요당하는, 차마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이 나라 노동자입니다. 심지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상식마저 노래로 만들어 불리는 나라입니다.

    혹시 총통이나 황제이십니까

    도대체 대통령께 ‘대한민국’은 무엇이며, ‘대통령’은 어떤 존재입니까. 지금의 ‘대한민국’이 과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는 ‘민주공화국’ 맞습니까? 대통령께서는 입법 사법 행정 3권 분립이 엄연한 가운데 행정부의 수반이자 법집행의 책임자로서 소명을 다하고 계십니까?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따른 대한민국의 대통령 맞습니까? 아니면 혹시 총통이십니까? 아니 입법 사법 행정부를 시녀로 거느린 황제이십니까?

    이 엄동설한에 노숙을 마다하고 1만 명의 노동자가 서울에 모인 이유는, 대통령에게 ‘할 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대운하의 바뀐 이름이 4대강 사업 이란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습니다. 4대강 사업을 위해 저소득층 자녀 무료급식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기금이 잘려나갔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민영화(사유화)’를 감추려고 포장한 ‘공공기관 선진화’의 실체가 결과적으로 ‘도로민영화’ 수순이라는 것도 철도노동자들의 정당방위적 합법파업을 통해 다 드러났습니다. ‘의료서비스 선진화’의 속내가 ‘공공병원 축소와 영리병원 확대’임을 아파본 사람들은 압니다. 사교육 확대를 통한 ‘교육기회의 세습’으로도 모자라, 목숨 줄마저 ‘가진 자’와 ‘가난한 자’가 차별받아야 합니까. ‘선진화’라는 좋은 단어를 제발 더럽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복수노조 유예 법안 역시 헌법이 정한 노동기본권을 부정하는 위험천만한 발상입니다. 복수노조 허용은 헌법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노조전임자(상근자) 임금 지급 금지 역시 본질적으로 노동기본권과 맞닿아 있습니다. ILO(국제노동기구)를 비롯한 수많은 국제단체가 한국정부에 권고하고 있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국민 길들일 수 있다는 망상 거두십시오

    그런데도 ‘국제 기준’을 밥 먹듯 들먹이던 정부가 경총 및 한국노총과의 야합을 통해 이를 개악하려는 의도는 무엇 때문입니까. 진짜 경제논리로 전임자 임금 때문에 기업이 망하고 흥할 정도입니까? 전임자 숫자 줄이고 노조활동의 범위를 노사협의회 수준 이하로 축소하여 사실상 노조를 아예 말살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이 안 됩니다. 이것이 모든 상식과 법리를 모르쇠하고, 심지어 자기가 내뱉은 말조차 되돌리는 노동부장관 등 정부의 태도에 대한 유일한 해석입니다.

    국민들 사이에는 ‘처세와 공작에는 능해도, 원칙과 정도에 밝지 못한 것이 지금 대통령의 모습’이라는 말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정부, 법을 지켰더니 불법이라고 하는 대통령, 우리 국민들은 법을 따라야 합니까? 대통령의 말을 따라야 합니까?

    95년 민주노총 창립 뒤 오늘까지 ‘대한민국 대통령’과 ‘민주노총 위원장’은 정부의 성격에 상관없이 언제나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정부’까지 민주노총을 탄압하지 않은 정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민주노조운동은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극심한 탄압을 자행한 정부 치하에서도 꾸준히 성장해왔습니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를 뚫고 총칼을 맨 몸으로 이겨내며 민주화를 이뤄낸 사람들이 바로 우리 노동자이고 국민입니다.

    정부의 탄압과 이에 대한 저항이 진행되면서도 대통령 또는 정부와 민주노총 사이에 대화와 소통은 때때로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꽉 막힌 정부, 일방 통행하는 대통령을 역사는 ‘독재정권’ ‘독재자’라 불렀습니다. 잘못된 법과 탄압으로 노조를 없애고 국민을 길들일 수 있다는 망상을 거둬야 합니다.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습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8월 11일 YH노조가 농성 중이던 신민당사에 무장 경찰을 난입시키며 영원할 것 같았던 독재 권력에 스스로 균열을 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12월 26일 노동법 날치기의 대가로 불행하게 임기를 마쳐야 했습니다.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습니까? ‘사상 최악의 위헌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싶습니까? 공무원노조 전교조에 대한 탄압은 아마도 탄압당하는 노동자들보다 탄압하는 자들이 결국 큰 코 다칠 것입니다.

    실패한 대통령은 개인에게도 불명예지만, 국민에겐 크나 큰 불행입니다. 불을 보듯 뻔 한 나라의 불행을 막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노동자가,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멈추십시오. 국민의 목소리가 듣기 싫다면, 헌법 제1조에 따라 그 자리를 국민에게 돌려주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국민과의 대화를 즐겨하시는 대통령께 이명박정부에 비판적인 노동, 시민사회 여러 단체와의 대화 또는 토론을 청하는 바입니다. 민주노총과의 토론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청와대도 좋고 민주노총 사무실도좋습니다. TV토론과 주고받는 편지, 그 어떤 형식도 좋습니다.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취임 선서가 거짓이 아니었다면, 반드시 응해야 합니다. 성의 있는 답변을 기대합니다.

    2009년 12월 16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임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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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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