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기후정의를 위한 홍수'
    2009년 12월 15일 10: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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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80여개국 정상과 수 만명의 NGO 활동가들이 집결한 코펜하겐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15차 당사국총회(UNFCCC COP15)의 다양한 장면들을 3회에 걸쳐 실을 예정이다. 기사 말미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몇 가지 지식을 덧붙일 생각인데, 이는 필자가 처음 기후변화 문제를 접할 때 수많은 약어와 생소한 개념들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약어들의 압박을 이겨내고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12일 코펜하겐 시내에 운집한 사람들. 이 날 모인 사람은 집회 측 추산 10만명, 경찰 추산 4만명이다. 

12월 12일 아침, 가장 먼저 마주친 건 파란 옷을 입은 무리였다. ‘지구의 벗(Friends Of Earth)’은 기후변화 국제행동의 날을 맞아 ‘기후정의를 위한 홍수(Flood for Climate Justice)’라는 제하의 행진을 주최했다. 그 모습은 ‘홍수’라 할 만했다. 그들은 조용한 코펜하겐의 거리에 넘쳐흘러 도시 구석구석을 기후정의를 위한 공간으로 수놓았고,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침습하여 기후정의를 위한 염원에 사로잡히게 했다.

세계를 빠짐없이 모아놓은 것 같은 다양한 생김새의 사람들, 형형색색과 리듬, 춤추고 두드리며 그들은 국회 광장으로 향했고 그곳에서는 더 많은 인파가 집결했다. 이번 회의를 향한 NGO들의 목소리는, ‘기후정의(Climate Justice)’와 ‘당장!(Now!)’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행진하는 대열의 현수막과 피켓에는 온통 그 두 가지 화두가 담겨 있었다.

   
  ▲ 12일 코펜하겐에서는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외침이 도시를 가득 메웠다.

우리가 원하는 건? 기후정의!

‘행동의 날’ 행진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이미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군소도서국가에서 온 사람들과 원주민들도 많이 보였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지구적이지만 그 피해정도는 다 같지 않다.

투발루와 같이 국가 전체가 바다에 잠길 위기에 있는 작은 섬나라들, 자연에 의존해 사는 원주민들, 변화된 기후변화 적응에 취약한 가난한 나라와 사회적 약자(예를 들어, 기후변화로 인한 산업개편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 경작에 직접적 타격을 받는 농민, 비용증가를 감당 못 할 저소득층 등)에게 기후변화는 당장의 생존에 직결된 문제다. 이들은 실제로 기후변화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음에도 그로 인한 최초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는 ‘기후정의’를 외치기 시작했다. 산업화의 이익을 누리며 현 상황을 초래한 북쪽의 선진국들이 그 기후부채(Climate Debt)에 대한 책임을 지고, 채무 없이 책임만 지게 되는 남쪽 국가와 사회적 약자에게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재정지원과 기술이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향후 온실가스 감축의 문제 역시 선진국과 개도국에는 다른 잣대가 주어져야 하고, 이는 기후변화협약 상의 "공동의, 차별화 된 감축"의 원칙과도 같은 맥락에 있다.

   
  ▲ 째깍째깍… 정치인들의 늑장을 기다릴 여유가 지구에겐 없다.

언제? "당장!"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이미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0%이상 줄이지 않으면 파국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대기 중 CO2 농도를 400~450ppm으로 안정화시키고 지구의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에 비해 2℃ 이하로 붙잡아 두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전문가들은 IPCC의 권고안으로도 재앙을 막기에는 부족하며, CO2 농도를 350ppm 수준으로 안정화 시켜야 한다는 더욱 강한 목표치를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 바로 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돌입한다 해도 이미 시작한 기후변화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에 속한다. 어쩌면 2009년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이번 회의는 전 지구적인 공멸상황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암초가 코 앞에 닥친 후에는 타이타닉이 항로를 바꾼다 해도 소용이 없으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당장(Now)!"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외치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15차 회의는 13차 회의에서 합의된 ‘발리행동계획’에 따라, 교토의정서의 효력기간이 끝나는 2012년 이후를 최종 결정하는 마지노선으로 국제사회가 약속한 시한이기도 하다.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서 의미있는 결과가 도출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목청이 찢어질 듯 한 외침 "Now!"에는 더 이상은 조금도 늦출 수 없다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기상천외한 퍼포먼스의 축제

   
  ▲’탄소거래만이 마지막 해결책’이라고 적혀 있지만, 탄소거래를 비꼬는 유인물이다. 이 날 행진에는 장난기 넘치는 아이디어들이 넘쳐났다.

전 세계의 아이디어가 총 집결한 듯, 행진에는 갖가지 퍼포먼스들이 넘쳐났다. 시야에 북극곰이 얼쩡거리는 건 예삿일, 불타는 팬더, 지구를 지키는 수호천사들, 사방에서 굴러다니는 지구, 지구를 매단 십자가를 지고 걷는 예수 등.

마치 가장무도회라도 연 듯한 행진대열에는 끊이지 않는 리듬이 있었고 그것은 ‘기후 축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온 몸과 온 마음을 들썩거리게 했다.

한국에서 온 참가자들의 퍼포먼스도 눈길을 끌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만들어 나눠 준 바람개비는 불티나게 팔렸고, 녹색연합은 너무 더워서 털옷을 벗어던진 반달곰과 이명박식 녹색성장을 비꼬는 ‘녹색성장 카페’ 퍼포먼스로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덴마크 정부가 자국의 집시법을 개정하면서까지 호들갑을 떨었던 것에 비해 전체적으로 행진은 평화적이었고 축제 분위기였는데, 검정 옷을 입고 다녀 ‘블랙 블록스’라고 불리우는 유럽 아나키즘 성향의 그룹에서 일부 유리창을 깨는 등의 돌발이 있었지만 준비된 덴마크 경찰에 의해서 즉각 ‘정리’ 되었다고.

우리의 지구 그리고 우리의 미래

협상을 하고 있는 각 국의 대표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기후변화는 막아야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부담스런 짐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지기를, 바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지구는 협상의 대상도 이해타산을 따질 대상도 아니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다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타이타닉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타이타닉 위에서 정신 차리는 것, 미국계 재일학자인 더글라스 러미스는 그것을 "타이타닉 현실주의"라고 했다.

또 한 가지 코펜하겐에 와서 놀라운 것은, 한국에서 기후변화 문제가 환경문제로 치부되는 데에 비해 유럽은 이를 환경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행동의 날’ 행진에도 유럽 좌파 정당과 노동자 조직이 놀랄 만큼 많았다. 또 NGO가 주관하는 클리마 포럼(Klima Forum)에서 열린 유럽 좌파 정당의 세미나에는 더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인파가 모여들었고, 그들은 매우 익숙하게 이번 회의에 대한 좌파의 비전을 토론했다.

이번 COP15에서는 "COP15 한국 공동대응단"에 민주노총, 한국노총, 전농 등 한국의 민중진영이 적극 결합했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기후변화 문제를 환경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인식한 것은 최근의 일이며, 그에 대한 관심과 준비도 초보적인 단계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도, 동시에 막을 수 없는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우리 모두는 이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고민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코펜하겐 이후에 민중운동과 환경운동이 어떻게 교차하고 상호이입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모쪼록 2009년 12월은 더워지는 지구보다도 더 뜨거운 시간, 바로 ‘지구를 위한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 길들이기]

* COP이란? 유엔기후변화협약을 영어로는 UNFCCC(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라 하는데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체결된 이 협약은 1년에 한번씩 협약 당사국 간에 총회를 연다. 이 당사국 총회를 COP(Conference Of Parties)라 하며, 올해는 15차 회의여서 COP15.

*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란?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100여개국의 2천여명의 기상학자, 경제학자 등 전문가들이 모인 유엔 산하 협의체다.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공로로 2007년 앨 고어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 교토의정서? 1997년 COP 3차 회의에서 채택된 의정서를 말하는데, 선진국과 개도국을 나누어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부과하였다. 미국의 탈퇴로 좌초위기에 처했다가 2005년 러시아의 참여로 공식발효되었다. 효력기간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이다.
교토의정서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에 관해 ‘공동의’ ‘차별화된’ 원칙이 규정되었고, 각 국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1990년 대비 평균 5.2% 감축하여야 한다.

* ANEXⅠ국가? 교토의정서 부속서1에 의해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지는 국가를 말한다. 총 38개 국가로서 일찍 산업화를 이룬 선진국을 중심으로 명단이 작성되었다.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EU 회원국 등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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