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뉴스도 ‘MB’ 입맛대로
        2009년 12월 11일 09: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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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과 정치권력은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바람직한 관계이다. 어느 한 쪽의 힘이 다른 쪽을 찍어 누르는 상황이 되면 견제와 균형은 깨지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는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사회시스템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언론계가 바람 잘 날이 없다. KBS와 YTN에서 불어 닥친 ‘방송 장악’ 논란은 지금까지 가라앉지 않았다.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은 하나 둘 밀려나고, ‘대통령 이명박’ 만들기에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방송사 최고위직으로 부임했다. 

    이번에는 MBC가 논란의 중심이다. 방송문화진흥회는 MBC 보도 제작 편성 등 핵심부서 본부장들을 해임했다. 방문진의 이번 결정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다음은 11일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4대강 공정 내년 60% 끝낸다">
    국민일보 <"6자회담 재개 북미, 필요성 공감">
    동아일보 <외고 학생수 줄여 존속 내신은 영어성적만 반영>
    서울신문 <내년 일자리 20만개 늘린다>
    세계일보 <내년 경제성장률 5% 전망>
    조선일보 <외고 입학사정관제 선발>
    중앙일보 <현 초5 외고 정원 25% 감소/현 중2 내신은 영어만 반영>
    한겨레 <철도 준법파업 ‘불법 모는 정부’>
    한국일보 <"6자 재개 공통이해 도달 북 복귀시점 더 두고 봐야">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뉴라이트’ 쪽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MBC를 손봐야 한다”는 얘기를 전했다. MBC <PD수첩>이 사회적 공론화를 이끌었던 미국 광우병 쇠고기 논란은 이명박 정권을 뿌리째 흔드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MBC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은 집권세력에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언론이 숨을 죽이며 권력의 눈치를 볼 때 MBC는 비판의 칼날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이 MBC 손을 볼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고된 사안이다.

    엄기영 MBC 사장 유임 그러나… 

       
      ▲ 한겨레 12월11일자 5면.  
     

    뉴라이트 인사들이 참여한 방송문화진흥회를 통해 엄기영 MBC 사장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면서 MBC 뉴스는 연성화 논란에 휩싸였다. MBC도 집권세력 입맛에 맞는 인물로 채워질 것이란 전망이 이어졌다.

    이때 엄기영 MBC 사장을 비롯한 핵심 간부들의 사표 소식이 언론에 전해졌다. 관전 포인트의 핵심은 엄기영 사장의 유임 또는 해임 문제가 아니었다. 방문진이 이번에 엄기영 사장을 교체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엄기영 사장을 일단 유임시키되 보도와 제작을 책임지는 핵심 간부들을 교체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있었고, 이는 현실이 됐다.

       
      ▲ 경향신문 12월11일자 2면.  
     

    한겨레는 11일자 1면 <엄기영 MBC 사장 유임…보도본부장 등 4명 해임>이라는 기사에서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10일 이사회를 열어 엄기영 사장을 유임했다. 그러나 보도본부장과 티브이(TV) 제작본부장 등 보도 및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임원들은 모두 해임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5면 기사에서 “방문진의 ‘숨겨진 의중’은 송재종 보도본부장과 이재갑 티브이(TV) 제작본부장을 해임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방송사 성격을 규정짓는 보도·제작 편성권을 틀어쥐면서 내용적으로 문화방송 색깔을 바꾸기 위한 토대를 놓으려는 의도란 비판이 거세다”라고 설명했다. 

    경향신문 "MBC 뉴스 논조 길들이기 본격화"

    방문진의 이러한 선택은 MBC에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변화의 방향은 집권세력에 부응하는 방송이다. 경향신문은 2면 <MBC ‘MB 친정체제’ 가속>이라는 기사에서 “엄 사장이 유임되는 대신 뉴스와 시사교양을 책임지는 보도본부장과 제작본부장이 ‘희생양’이 됐다는 점에서 이미 징후를 드러내고 있는 MBC ‘시사프로그램의 연성화’와 ‘뉴스 논조 길들이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MBC 핵심 보직인사에서 어떤 인물이 새로 들어갈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향신문은 “후임 인사에서도 친여성향이 강한 인사들이 MBC의 핵심보직을 채울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경우 새롭게 임명될 친여인사들을 중심으로 MBC의 ‘MB(이명박) 친정체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고 전망했다. 

    한겨레도 5면 <보도·편성권 장악 노려…MBC ‘코드 방송’ 압박>이라는 기사에서 “방문진이 ‘문제 방송’을 손보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는 점에서, 앞으로 문화방송 보도 내용의 급격한 보수화가 우려된다”면서 “방문진은 핵심 경영진을 자기 뜻에 맞는 사람들로 구성해 엄 사장을 포위하면서 권력의 입김이 관철되는 시스템을 갖추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 "엄기영 사장 상당 부분 동력 상실"

       
      ▲ 중앙일보 12월11일자 10면.  
     

    방문진의 이번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언론 보도의 시각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한국일보는 27면 <최악은 피했지만 ‘MBC 혁신‘ 가시밭길 예고>라는 기사에서 “시사보도 프로그램 본부장들의 해임으로 방문진의 MBC 옥죄기, 길들이기가 노골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엄기영 사장이 이번에는 유임됐지만, 이는 한시적 유임이라는 게 언론의 시각이다. 서울신문은 4면 <‘뉴MBC플랜’ 일단 탄력…안팎갈등 부담>이라는 기사에서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재신임’이라는 표현을 애써 기피하는 점이 엄 사장으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라며 “두 달가량 시간을 좀 더 주되, 미흡하면 교체할 수도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도 10면 <MBC ‘빅3’ 본부장 모두 교체 /방문진 "보도 공정성 개선 기대">라는 기사에서 “사표 제출에 따른 이번 유임 결정으로 엄 사장은 상당 부분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됐다. 게다가 편성·보도·제작 등 핵심 본부장들이 모두 교체돼 MBC의 방송 방향에 대한 ‘새 판’도 짜야 한다”고 전망했다.

    조선일보 2면에 단신기사 처리

       
      ▲ 조선일보 12월11일자 2면.  
     

    방문진의 이번 결정은 MBC 뉴스도 MB 입맛대로 바꾸기 위한 결정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겨레와 경향이 우려를 담은 기사를 내보낸 것과 달리 조선일보는 11일자 2면에 <엄기영 MBC 사장 유임>이라는 단신 기사를 내보내는데 그쳤다. 조선일보는 방문진 결정을 간략하게 스트레이트 기사로 전했고, 별도의 해설은 달지 않았다. 조선일보 지면을 꼼꼼하게 살피지 않으면 찾아보기도 힘든 작은 기사로 처리됐다.

    동아일보도 <방문진, 엄기영 MBC 사장 사표 반려>라는 기사를 8면 오른쪽 하단에 실었다. 동아일보도 작은 기사로 처리했지만, <“내년 2월 이후 다시 책임 물을 것”>이라는 중간 제목을 통해 방문진의 이번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전달했다.

    집권세력 입맛에 맞게 공영방송을 개편하려는 시도는 여론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 조선 동아가 이번 사건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 했는지 의도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대놓고 ‘방문진 엄호’에 나선 신문은 한국일보였다.

    한국일보, 대놓고 방문진 변론?

       
      ▲ 한국일보 12월11일자 사설.  
     

    한국일보는 <사장 유임된 MBC, 혁신의 진로 모색을>이라는 사설에서 “정부가 MBC를 통제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사장을 앉히려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빗나갔다”면서 “노조가 걸핏하면 들고 나오는 ‘정부의 방송 장악설’의 본질이 만약 방송의 사유화, 기득권 지키기를 위한 것이라면 엄 사장부터 앞장서 이를 과감히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창현 국민대 교수는 한겨레 35면 <엄기영 사장은 살아났지만>이라는 칼럼에서 “공영방송에서 정치적 독립성이 없다면 국영방송이 되는 것이다. 정치적 독립성의 핵심적 장치는 경영진의 임기 보장과 편성 자율성 부여이다. 경영진에게 사표를 압박하면서 정부를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폐지하라고 요구한다면 공영방송은 더는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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