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기후변화 아닌, 시스템 변화
        2009년 12월 14일 09: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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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교토체제의 방향과 내용을 최종 결정하기로 되어 있는 코펜하겐 15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마감이 이제 1주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비해 현실의 국제정치의 역학관계 속에서 후속 기후변화 대응체계에 관한 전망은 절망에 가깝다(Never Hopenhagen). 이미 ‘정치적 합의’ 즉 협상 실패를 기정사실화 해놓고 진행되는 회의여서 큰 기대는 없었다.

    스캔들의 연속, 막장 드라마

    다만 일각에서 우려하던 기후 과학자들에 대한 이메일 해킹 사건 여파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회의론자의 입장은 사실상 생명을 다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국제환경정치의 온실 레짐은 주요 국가들과 자본들의 일방주의와 예외주의 때문에 ‘바닥을 향한 환경적 경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7년 발리와 2008년 포즈난 역시 실속 없는 말잔치에 가까웠는데, 올해도 성과가 없이 끝나면, 지난 3년 동안 지구와 인류를 담보로 허송세월한 셈이 된다.

       
      

    특히 이번 회의는 초반부터 족보가 꼬이는 막장 드라마에 견줄만한 기후 스캔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덴마크 등 일부 선진국의 ‘덴마크 문서’ 유출 사건과 중국와 인도 등의 주요 개도국들의 ‘코펜하겐 협정안’ 유출 사건 등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히든 카드들은 예상보다 빨리 그 모습을 드러내 진부하지만 시청률이 높은 장면들을 연출했다.

    군소도서국가들과 여타 빈국들의 1.5도 기준 온도 제시와 주요 개도국 의무감축 제안으로 그들의 처절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현실에서 정의는 힘이 없기 마련이다. 선진국-주요 개도국-빈국간의 삼자 구도에 더하여 한국 등 몇몇 보신주의 국가들까지 가세하여 네 그룹들이 막장 드라마의 주연으로 맹활약 하고 있다. 이제 공식적인 총회 1부는 끝났다. 마지막 조율 과정을 거치겠지만 실패는 예견되어 있다.

    기후변화가 인기 종목이 된 이유

    1970년대 후반부터 과학자들은 온실가스 배출이 가까운 미래에 상당한 기후 영향을 낳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1980년대에는 기후 이슈의 정치화가 시작되었다. 1990년대 기후변화는 미디어와 정치 주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충격적인 과학적 사실들이 제출되고 이상 기후가 빈발하면서 그리고 실제로 새로운 탄소시장이 창출되면서, 대중적 관심이 증폭되었고 국제정치의 핵심 이슈가 되었다.

    특히 1992년 리우정상회의, 1997년 교토 기후회의 등 기후협상 역사를 돌아보면, 지금의 코펜하겐 상황은 그리 새롭지 않다. 그간의 성과를 무시할 필요는 없겠지만, 기후문제를 기후문제로만 해결하려는 그간의 헛된 시도는 순진한 망상에 가까웠다.

    특히 최근 들어 정부와 주류 미디어는 기후변화를 핫 이슈로 대접하고 있다. 이제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동의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체제 내의 변화 정도는 언제든지 인기가 많기 마련이다. 비록 구체 이행방안에 대해서 몇몇 비판과 이견이 존재하더라도, 주로 헤게모니 정치의 틀 내에서 다뤄진다.

    현재까지 기후 이슈에 대한 헤게모니 담론과 해결방식은 사회-생태적 위기의 원인을 발생시킨 (자본)시장의 힘을 토대로 한다. 유연성 메커니즘은 녹색을 자본화하는 첨병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러한 공식적인 기후정치의 접근으로는 다시 한 번 우리와 지구를 위기로 몰아갈 것이다. 기후 충격이라도 막자는 착한 마음은 실제로 온실가스 배출감축의 허수에 눈을 감는다.

    결론은 간단하다. 공식 석상에서 힘있는 감축량과 감축방식안 모두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서 체제모순을 심화시킨다.

    바보야, 문제는 기후가 아니고 권력이야

    중요한 것은 공식적인 기후협상의 전통을 계승하는 코펜하겐 논의의 (성공이든 실패든 상관없이) 결과가 아니다. 현 기후-사회체제에 대한 비판과 차별화된 방식의 접근을 통해 기후위기를 대하는 것이다. 바로 기후정치의 헤게모니에 대안적인 접근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자연을 전유하는 폭력적 방식은 지배와 권력의 사회적 관계와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는 제도권 의제에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으면서 체제의 파괴적인 형태와 연결시켜 기후변화를 읽는 것이어야 한다.

       
      

    국제기후정치와 지배적인 기후담론이 얼마나 이러한 위기를 규제할 수 있을까? 기후정책은 대개 현재의 사회생태적 문제라고 인식하여 대응하지만, 현 시스템의 경계 내의 시장과 기술기반의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해외 NGO들이 지지하는 이러한 녹색 근대화나 녹색 자본주의의 전략은 정답이 아니다. 그러한 전략은 현재의 제도와 기구를 활용하면서, 동시에 기후위기의 근본원인인 권력에 대한 문제 제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또 다른 코펜하겐, 클리마포럼!

    대안적이고 해방적인 관점이 절실히 요청된다. 위기를 발생시킨 생산과 소비의 헤게모니적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클리마포럼(Klimaforum09)의 정신이다. 클리마포럼은 UN 기후회의가 NGO에 형식적으로 개방적인 거버넌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자체의 퇴행성에 반기를 들고 ‘전세계 민중의 기후정상회의’를 표방하고 올해 처음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후정의 그룹, 토착민, 농민, 노동자, 여성, 청년그룹 등 민중진영이 참여하고 있는 ‘클리마포럼09’은 제도권 논의가 사회적으로 정의롭지도 못하고 온실가스 감축효과도 적은 방법들만 고려하고 있고, 협상 결과도 기대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다. 이들 참석자들은 회의장 밖에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기후체계를 만들기 위한 집단 토론, 문화 행사,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 필자

    공식회의가 5일 동안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안회의는 진지한 민중선언문을 채택했다. “기후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의 시스템을 변화시키자!”라는 제목으로. 같은 코펜하겐 하늘 아래서 권력자들의 숫자놀음에 똥침을 논 것이다. 즉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착취의 사이클을 거부하고 ‘기후정의’를 선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NGO에서 유행하는 기후정의 주장들을 다 똑같지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단지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이라고 뭉뚱그린 제한적 기후정의는 언제까지 북극곰과 해수면 상승만을 가지고 기후변화를 이야기 할 것인가? ‘진정한 해결책’의 기후정의는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목표가 야심차고, 구속력있는 기후협상을 주장한다.

    이제 코펜하겐 협상장안에서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NGO라고 불리는 일부 세력에게는 깨달음이 우선이다. 기후변화가 현 체제 내에서 관리될 수 있다는 관념을 파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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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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