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간 파병, 명분도 실리도 없다
        2009년 12월 10일 11: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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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12월 9일 국무회의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100여명의 민간인과 40여명의 경찰로 구성된 지방재건팀(PRT)을 보호하기 위한 320명의 병력을 2010년 7월부터 2년 6개월 동안 파견하기로 하는 ‘국군부대의 아프가니스탄 파견 동의안’을 의결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정부는 파병의 목적이 보건의료, 농업 및 농촌개발, 교육과 직업훈련, 경찰훈련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지방재건팀의 보호에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정황 등을 고려해보면 파병 부대의 역할과 임무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도로매설폭탄(IED)으로부터의 방호를 위해 미군으로부터 빌리기로 한 장갑차(MRAP)와 블랙호크 헬리콥터, K-11복합소총과 박격포, 무인정찰기 등의 무장은 우리나라 전투부대의 일반적인 무장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한 역할의 수행을 위해 우리 장병들을 보내야만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국민이 납득할 만한 충분한 명분과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파병의 명분과 실리 무엇인가

    그렇다면 첫째, 파병의 명분은 무엇인가? 우리는 파병의 명분이 매우 빈약하다고 생각한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내년에는 철수할 것을 공언하고 있고, 일본의 하토야마 신임 총리조차도 철군을 논하는 상황에서 유독 우리만 새로이 파병을 추진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심지어는 파병 주체인 미국조차도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부터 미군 철수를 공언하고 있는 마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우리나라가 2012년까지 파병을 추진하려는 이유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중동의 석유자원을 확보하고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속셈을 우리가 보호해 주려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둘째, 파병의 실리는 무엇인가? 파병의 대의명분이 취약하다면, 백번 양보해서, 파병에 따른 어떤 명백한 실질적 이익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불분명하다. 국민을 설득할만한 뚜렷한 경제적 실익이 없는 것이다. 지난 이라크 파병의 경우 매년 1조 원 이상의 자이툰 부대 주둔 비용을 부담하였지만, 김선일씨의 죽음과 국민의 희생을 낳은 것 외에 어떠한 국가적 이익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잘못된 결정을 또 다시 되풀이 하는 것이다.

    이번 아프간 파병 결정은 군대의 해외파병이라는 중대한 사안에 어울릴만한 커다란 명분도 없고, 어떤 실리가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번 파병이 가져올 우울한 미래에 대해 우리는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파병된 병사 중에서 인명의 피해라도 발생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그 책임을 면할 수 있을 것인지 묻고 싶다.

    지원병은 죽어도 좋은가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이번에 파병되는 병사들은 ‘징집병’이 아니고, ‘지원병’이므로 당신의 아들은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된다며 군인의 아버지를 설득했다. 그러나 지원병이건 징집을 통해 차출된 병사건 모두 우리의 아들들이다. 자원하여 갔다고 해서 죽어도 좋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지원병이라서 죽어도 좋다면, 그것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국군이 아니라 용병부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전쟁이란 모름지기 복지국가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인류는 전쟁을 통해 주기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폭발적으로 내재된 경제모순을 극복해 왔다. 인류는 그간 운용해 온 경제체제가 그 내부의 모순을 축적할 때마다, 이를 일시에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쟁을 일으키곤 했던 것인데,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제 문명화된 삶을 살고 있고, 고도의 생산력 발전 속에서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충분한 풍요로움을 생산하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전쟁이라는 야만적인 수단에 의존해서 문제를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기실, 최근까지 벌어지고 있는 전 세계의 각종 국지적 전쟁도 모두가 경제모순 또는 경제적 이익과 결부된 것들이었다.

    상생의 호혜적 관계 구축해야

    우리는 이제 전쟁과 폭력적 해법이 아닌 복지국가를 통해 경제모순을 극복하고, 국가 간의 호혜적 관계를 지향해 나가는 새로운 모형을 고민해야 한다. 즉, 일국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축적한 과잉 생산력을 보편적 복지체제를 통해 내부에서 충분히 소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해 나가고, 세계적으로는 이러한 국가들 간에 상생의 호혜적 개방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아들, 딸들을 사지의 전장으로 내몰지 않고, 상대국의 병사와 국민들을 죽이지 않도록 외교정책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대통령이 역사로부터 부여받은 중대한 책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어설픈 보수주의의 깃발을 흔들며 군대의 해외 파병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역사 앞에 매우 중대한 오류를 범하는 것임을 우리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전쟁을 통해 경제모순과 국가 간 갈등을 해결하는 시대는 끝났다. 더군다나 미국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된 전쟁 해법에 우리가 동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매우 이해하기 힘들다. 보편적 복지의 제도화를 추구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해 자본주의 체제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생산과 소비의 모순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대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더라도, 이번 아프간 파병 결정은 이 정부가 갖고 있는 원천적인 철학의 빈곤이 초래한 산물이 아닐 수 없다.

    2009년 12월 10일
    사단법인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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