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 대신 '개념직장인' 어때요?"
        2009년 12월 10일 09: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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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

    이광호 레디앙 편집국장(레) 서로의 문화와 관행의 차이로 보인다. 서로가 이 차이에서 뭔가를 배울 태세가 돼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조와 촛불은 생산자 운동과 소비자 운동이라는 차원에서도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부문이 함께 만나서 논의해나갈 경우 이 같은 차이로 인한 마찰 같은 것이 있나?

    진보-개량-신자유주의 사이에서

    나상윤 공공운수연맹 정책실장(나) 논의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 충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론적 측면이나 철학적 고민이 있다. 나는 생산과 소비 문제뿐 아니라 현재의 산업구조가 바뀌고 있는 과정이라고 본다. 예전에는 생산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확장된 생산, 유통, 판매가 다 중요하다.

    예전에는 이것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서비스 산업의 경우에는 구조가 다르고, 특히 현재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의 영역이 커지는 문제도 있다. 노동자들도 생산자 동시에 소비자가 되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도 문제다.

    노조는 공장만 장악하면 된다고 하지만, 밖에 나오면 그들도 소비자로서 고민들이 있다. 자본가는 이 영역에 개입하는데 우리는 이를 외면했다. 농담처럼 ‘정치조직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노동에 가면 개량주의자가 되고, 집에 가면 신자유주의자 된다’라는 얘기가 있다. 진보주의자들도 소비는 진보적이지 않고 소비를 지향하며 자본주의적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 좌담 모습(사진=이은영 기자)

    그러한 고민 속에서 생산-소비 운동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 소비운동은 제품 불만에 대한 고발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굉장히 계급적-정치적인 접근이 이루어진다. 언소주가 불매운동을 했는데 이는 제품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 생산회사의 정치적 행동에 대한 불만인 것이다. 그동안 흐름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생산영역에서 노조운동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여기에 참여하고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이 있다. 그런 지점에서 방식이나 관행, 세대차이 문화차이도 있기에 충돌의 여지는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충돌 지점이 없을 것이다.

    소비자운동의 정치적 성격

    박은정 ‘진알시’ 회원(박) ‘생산 대 소비’만으로 차이를 설명하기 힘들다. 오히려 가장 큰 차이는 ‘과거 대 현재’다. 구세대와 새로운 세대의 대립은 수 없이 많은 요인이 있기에 모든 걸 찾아낼 수 는 없다.

    예를 들자면, 논의과정에서 우리가 충돌 비슷하게 한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노동자라는 말을 포기하면 안 되냐?"는 점이었다. 언어 프레임으로 고착화된 이미지를 타개하는 것도 있고 방법론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더라. 몇십 년 지켜온 말이라며.  언어부터 변하는 것이 근본인데, 언어가 사회를 지배하고 이미지 결정할 텐데 바꾸지 않겠다 하더라.

    그럼 어떤 말이 어울리는가?

    나는, 개념 직장인? 아니면 개념 회사원? 이런 말이 어떨까 한다. ‘배운여자’, ‘개념녀’, 이런 게 뜨지 않나? 이런 식으로 바꾸면, 조중동이 가둬 놓은 이미지를 뚫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상배 ‘새로고침’ 회원(이) 현실적으로 봤을 때 가장 크게 조직된 투쟁 단체는 노동자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잘못된 길을 갔던 것이 아니라, 가장 옳은 길을 선택해 지금에까지 이르렀다고 본다. 무조건 옛날처럼 결과적으로 혁명에 이르지 못해 실패로 규정할 수는 없다. 지나온 역사의 맥락 속에 노동운동은 촛불에 녹아있었으며, 촛불 이후의 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는 과거의 투쟁을 공부하기 위해 노력한다. 단지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이란 도구가 추가된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창조되면서 우리 민중들도 이를 이용해 저들과 대결하는 공간을 연 것이다.

    실상 그렇게 모여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취한 방식은 조직체를 계속 만들어 내려 했던 것이지만, 판넬 홍보, 전단지 등은 이미 존재했던 홍보방식을 재현한 것이다. 저항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모였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굳이 인터넷이 더 혁신적이고, 앞으로 운동을 무조건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과거 활동의 장점과 융합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인터넷은 하나의 도구일뿐

    이세희 ‘새로고침’ 회원(세) 질문 내용이 걸린다. ‘노동자-소비자’를 분류할 수 있는 것인가? 노동자가 소비자이고 소비자가 노동자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충돌이 될 수 있는, 편견을 걷을 수 있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노동자’보다 ‘개념직장인’이란 신조어들이 오가며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걷게 하지 않을까?

    분명 나도 일하는 노동자이고 지금은 학생이지만 자기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일하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 노동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편견을 갖고 분리하기보다 ‘자기가 언제든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입장에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구진보’와 ‘신진보’로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나누어 분열하자는 건 아니고 서로 차이가 뭔지 인식을 해야 합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방법론적으로 노조에 직접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기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자기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한가?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지만, 지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 번 이기는 것이 숫자로 따지면 비효율적이나 이를 비효율로 판단할 수만은 없다. 그 과정이 중요하고 새로운 투쟁의 동력을 얻을 수도 있다. 철도도 결과적으로 패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야 한다.

    ‘신진보’, 지금 젊은 사람들의 생각은 ‘주장만 하면 뭐해? 조금이라도 얻어와야지’란 것이다. 효율성에 대한 합리적 의식이 있다.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것 아닌가. 진보적 가치도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하자. 우리 주장이 털끝만큼도 안 먹힌다면 그것이 내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불과할 뿐, 무슨 소용이 있을까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앞서 말한 전제라면 사실 할 말은 없으나 그 자체가 이질적인 부분일 수도 있다. ‘왜 이기는 것이 안 중요하나? 조금이라도 결과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라는 것이 우리들의 기본적 자세다. 이명박스럽기도 한 부분인데(웃음) 그 부분은 지켜나가면서 진보적 가치를 투여시키고 접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곳

       
      ▲ 나상윤 공공운수연맹 정책실장

    서로의 차이점이다. 이것을 숨길 필요는 없다. 이기는 것이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결과로서의 승리만이 최고의 목표는 아니다. 이를 정치나 선거로 예를 들면 이런 문제다. ‘이명박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와도 연관이 있다. 우린 적어도 이명박만 아니면 무조건 된다는 시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촛불이 다양한 네트워크의 수평형 구조인 반면 노동조합은 선출된 리더가 책임을 지는 수직적 구조다. 이런 조직 문화 또는 관행이 일을 같이 해나가는데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수평적 네트워크가 조직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착각일 수도 있다. 우리가 어제 9시에 회의를 열고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논의하다 현장을 지원하고, 네티즌들이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자는 결정을 한 직후 10시에 현수막을 걸고 오후 2시에 밥차를 동원해서 파업현장으로 갔다. 이런 것을 보면 굉장히 빠르다. 자발적 폭발력이 있기 때문이다.

    수평적 네트워크에서의 관건은 아이템을 어떻게 제시하느냐다. 그런데 사실 수직적 네트워크에 대한 환상은 깨졌다. 우리가 빨리 움직이니 수직적 네트워크는 더 빨리 움직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 ‘관료제의 모순’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좋은 아이템으로 수직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운동에서 노조가 수직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이 단결해 상대해야 하는 것이 국가라는, 이 체제 내 가장 큰 조직을 상대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모든 것이 수평적으로 조직되면 작년 촛불에서 아쉬운 부분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수평적 조직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맞을 수 있으나 현재 맥락에서 노조는 그럴 수밖에 없다. 수평적 구조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토대는 인터넷이다. 인터넷에서는 서로를 인정하면서 각자 방식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노조는 수직적, 인터넷은 수평적이라 볼 수만은 없다. 이런 단면적인 상황인식은 오류가 있다. 노조는 수직적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 수정해라든지, 촛불은 수평적이니 이런 문제 수정하라든지 하는 것은 위험한 구분 아닌가?

    촛불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다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양자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주면서도 연대를 위해 만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역사성이 있는 논의다. 노조 조직은 거의 전투조직으로 만들어졌다. 군사정권 때는 집회결사의 자유도 없었고 조금만 파업해도 구사대와 백골단 들어왔다. 이 상황에서 자기방어를 위해 (수직적 조직구조 형성은)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세월이 바뀌면서 변화가 필요했는데 사실 이것이 관성화 된 부분이 있다. 또 조직이 커질수록 관료제적 특성이 나온다. 의사결정이 복잡해진다. 현수막 얘기를 했는데 노조에서는 현수막을 걸 때 조직에서 ‘이 문구가 맞냐’는 얘기를 해야 한다. 그러니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기동성이 없다.

    그러나 이를 생략하면 조직이 힘이 없어진다.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 밟아야 폭발적 힘이 나타나는데 그걸 생략하면 거꾸로 조직력 응집이 안 된다. 다만 고착화된 측면에 대해 바꿔볼 시도를 안 한 건 아니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촛불 때도 그랬다. 우린 방어선이 처지면 무조건 넘어야 하는데 촛불은 돌아간다. 우리에겐 문화적 충격이었다. 사실 돌아갈 수 있는 건데 우리는 넘어야 한다는 생각에 전술을 짰다. 이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의 관성을 버려야 하는 지점이 있지만 관성화된 부분이라고 해서 반드시 옛것이 틀린 것이라 보긴 어렵다.

    지금 ‘공감2010’과 관련해 공동사업으로 합의된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합의된 것은 민영화에 대해 압축된 판넬을 제작하고 이를 시작으로 인터넷 홍보 등 여러 기획을 같이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진알시와 접점이 있는 부분인데 ‘조중동을 끊기’를 한 번 시도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하더라, 방금 말한 조직적 의사결정의 측면도 있고.

       
      ▲ 이상배 ‘새로고침’ 회원.

    사실 <한겨레>, <경향>은 사업장에서 거의 다 본다. 그런데 조중동을 끊는 문제의 경우 사업장은 끊을 수 있지만 조합원들의 집에서 끊는 것이 어렵다. 경품하고 연결도 되고 여러 가지 복잡한 것이 있다. 사업장 내에서는 예전부터도 조중동 보는 데는 거의 없다. 다만 노조에서 이들의 동향을 알자는 측면에서 보는 경우는 있다.

    노동자들이 사업장 밖에서 할 일

    김장도 같이 하기로 했다.

    보니 공공운수연맹에서 차로 싦어준다고 했는데?

    2.5톤으로 싦어주기로 했다. 그것을 노조가 해주니 그림이 제일 좋다. 연대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면서 본격적 사업들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속적으로 2010년까지는 이 사업을 같이 하는 것이냐?

    공공연맹과 네티즌이 함께 한다고 웹자보를 노출해보니 반응이 좋았다. 내부에도 거의 100% 합의가 되었다. 이제 중요한 포인트는 방법이다. 네티즌에게 거부감 없는 것이, 새 시대의 언어로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몫일 것 같다.

    원래는 ‘공감2009’를 달고 12월 31일 평가하기로 했는데, 공공연맹에서 ‘공감2010’으로 타이틀 바꾸자고 제안했다.

    2010이 아니라 할 수 있으면 계속해야 한다. 내부에서 사회공공성 운동은 시민사회와 같이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는데, 이것이 거꾸로 노조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다만 기존의 관행, 관성이라 변화되지 않는 지점도 있지만 이를 다 버릴 수는 없다.

    노동자들도 사업장에서 벗어나 뭔가를 해야 하는데, 소위 간부들은 그런 시도를 해도 조합원들은 무엇을 할지가 명확하지 않다. 조합원들이 밖에 나와 사회참여 운동을 하고, 이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짱돌을 들 수도 있는 것이고, 일상적으로 짱돌이 아니라면 또 다른 무언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사실 노조 지도부나 집행부에 컨텐츠가 없다. ‘공감2010’이 얘기 되면 그러한 컨텐츠를 제공할 수도 있고, 우리 내부의 문화적 관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계기나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공노조의 투쟁을 도와주는 수준이 아니라 같이 하면서도 상호간 영향을 주며 내부 조직문화까지 서로 흡수하는 것까지 전망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궁금하고 기대도 된다. 촛불 내에서는 어떠한 정치적 흐름이 있는가?

    진알시는 문함대(문국현과 함께 하는 대한사람들) 분들도 들어와 있다. 진보신당 분들도 많고 민주노동당도 있고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세종시만 잘 건드리면 친박연대도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웃음) 그런데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친노가 가장 퍼센트가 많아졌다. 말은 안 해도 보면 알 수 있는데 다수가 그쪽으로 흡수된 것 같다.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이 안타까운 것이, 이럴 때 이들을 전혀 흡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냥 원래 그대로, 원래의 스펙트럼대로 가려한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본질은 깊게, 방법은 세련되게’라는 것이다. 기존 방식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에 대한 고민을 세련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얼마나 잘하나? 747은 말도 안 되는 것인데 결국 포장을 잘하지 않았나? 미디어법 끝나자마자 민생을 얘기하고, 진보도 더 세련된 방법으로 갔으면 좋겠다. 정치적인 부분도 그런 두 가지 부분을 같이 가져간다면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촛불과 노조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나.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뭔가?

       
      ▲ 이세희 ‘새로고침’ 회원.

    촛불과 노조가 서로 접촉해 오면서 서로의 필요성을 많이 느꼈다. 지금 좌담에서도 같이 논의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가치관이 다르지만 서로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깨는 시초가 될 수 있는 자리로 보인다.

    노조는 대한민국 사회의 변혁과 진보를 이끈 역사 그 자체이다. 상대적 후발 주자인 촛불이 지금까지의 투쟁의 맥락을 변화발전시키고 더 전진시키고 싶다면 기존의 운동을 공부하고 그에 대한 평가부터 시작해야한다.

    지금 노조와 촛불이 공존하는데 서로의 방식이 틀렸다고 무조건 단정짓고 가기보다는 함께 하면서 배우고, 그 속에서 노조가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을 외부적 시선으로 냉정히 평가하는 상호작용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가 진전되어 온 것이 있는데, 촛불은 똑같은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한다. 노조운동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히려 지나온 세월 간 발생했던 오류만 반복할 수 있다. 반대로 노조도 나름대로 관성적 부분이 분명히 있고 이를 깨기 위해 새로운 운동을 만들 수도 있다. 그것이 서로를 연대시키는 이유다. 함께여서 발전할 여지가 있다.

    노조가 짱돌을 던지면 우리는 뒤에서 오뎅을 나를 것이다.(웃음) 중요한 것은 짱돌을 던질 때는 승산이 있을 때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철도파업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여론 형성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인터넷의 유명한 필진들과 또 다른 네트워크를 갖기로 했다.

    김장 행사에 참여하는 여러 단체들도 나중에 철도파업 네트워크로 돌려볼 수 있지 않을까? 이미 형성된 네트워크를 더 큰 네트워크로 발전시켜야 한다. ‘본질을 깊게 방법은 세련되게’하기 위해서는 NL, PD, IS니 모든 계열을 다 깨고 새로운 대안을 더 연구해 주시길 바란다.

    또한 연대에 있어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촛불단체 무너질 때도, 진알시는 네트워크가 뻗어나가고 있다. 이렇게 된 것에는 ‘호구정책’이 있었다. 우리가 ‘호구’니 시키면 시키는대로 다 하겠다는 것이다. 2010연대에서 토론회 기획을 맡겼는데, 우린 생전 토론회 한 적이 없지만 3일 밤 새서 만들어봤다. 우린 호구니까 하란대로 한 것이다.

    네트워크에 목숨을 건 것이다. 네트워크가 확 모여야 시너지 효과가 난다. 부부관계-가족관계-남녀관계를 생각해 보라 서로 양보하면 서로 더 행복하다. 낮은 곳에서 겸손한 자세로 임하면 가장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네트워크가 되지 않을까?

    꼭 촛불이 아니더라도 운동에서 연대가 중요하다. 내부에서는 소통이, 밖으로는 연대다. 촛불이 아니어도 가치가 비슷하다면 그런 측면에서 중요하다. 당면의 조건 속에서 보면 노조운동이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해 왔지만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한계를 돌파하는데 촛불운동이 어떤 계기를 만드는 지점이 있었다.

    노동운동을 일반으로 확산시키기 어려우나 공공영역에서 노동운동은 사회운동 강화의 핵심포인트다. 그런 점에서 방법론은 공감한다. 노조는 시민사회운동영역에서 가장 많은 자원이 있다. 80만 조합원과 돈, 인프라가 있다.

    우린 공간이 있으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 필요하면 공간을 제공해 줄 수 있다. 강사도 제공해 줄 수 있다. 각종 행사에 스피커는 네티즌들이 갖거나 보관하기 어렵지 않나? 우리가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런 인프라들을 노조는 내놨으면 좋겠다.

    그리고 콘텐츠나 인터넷 사이버에서의 장점이 있는데 우린 그런 지점에서는 좀 무식하다.(웃음) 조합원 중에서도 잘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를 조직 내부로 못 끌어들인다. 노조 홈페이지를 보면 쌍방향이 거의 없다. 일방적이다. 클릭 수 100개가 안 되는 것이 많다. 왜 그럴지 고민이 필요한데 여기서 촛불 네티즌의 경험과 방법을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촛불과 노조의 연대라는 새로운 시도, 새로운 진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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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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