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기면 가는데 구리면 안간다"
By 나난
    2009년 12월 09일 08:15 오전

Print Friendly

2008년 100만의 촛불이 서울 광화문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불을 밝혔다. 광우병 쇠고기에서부터 MB탄핵까지, 외쳐지는 구호도 요구도 다양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 광장의 촛불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하지만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 미디어법, 비정규직법 등 국민 실생활과 관련된 부분이 정권의 ‘경제논리’에 의해 재단되는 사이, 촛불은 광장이 아닌 지역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지난해 광장의 촛불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노동운동이 촛불시민과 손을 잡고 ‘새로운 운동’을 모색하고 있다.

공공운수연맹은 MB정부의 정책과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 민영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촛불시민과 ‘공감 2010’을 결성하고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의 문제점을 대국민 선전전을 통해 알려나갈 예정이다.  

   
  ▲ 좌담회 모습(사진=이은영 기자)

<레디앙>은 지난해 전국을 밝힌 광장의 촛불이 꺼지고 난 뒤, 촛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또 어떠한 형태로 살아남아 활동하는지에 대해 점검하고, 지난해 촛불시민운동과 노동운동 간의 차이점을 통한 연대의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좌담회를 가졌다.

‘진실을 알리는 시민'(진알시)의 박은정 씨와 ‘새로고침’의 이상배, 이세희 씨, 공공운수연맹의 나상윤 정책실장이 참여해 "광장이 아닌 지역을 선택한 촛불의 활동"과 "수평적 촛불의 네트워크와 수직적 노동조합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이날 좌담은 지난 2일 저녁 6시3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레디앙> 사무실에서 이광호 편집국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다음은 좌담 전문이며, 두 차례에 걸쳐 나눠서 게재한다. 

                                                                    * * *

이광호 레디앙 편집국장(레) 지난해 촛불이 켜진 이후 지역을 중심으로 촛불의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안다. 지난해 이후 촛불은 어떤 형식으로 지속되고 있으며, 무엇을 요구하고 있나.

박은정 진알시 회원(박) 광장에서 타던 촛불은 꺼졌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광장의 촛불은 지역과 일상으로 파고 든 상태다. 촛불의 현황은 크게 언소주와 같은 시민단체형과 지역에서 네트워킹을 이어가고 있는 지역네트워크형, 실체가 없는 네트워크형, 각 카페 형태로 존재하며 이슈가 발생했을 때 사안에 따라 참여하는 참여형, 이렇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정론신문배포’ 운동

진알시의 경우 지역촛불네트워크다. 진알시의 지역촛불은 ‘정론신문배포’라고 해서 정기적인 활동으로 주1회에서 2회 정도 <한겨레>, <경향신문>, <시사인>, <미디어오늘> 등 판매전을 하고 있다. 시민들이 각 신문사 계좌로 성금을 보내고, 진알시에서 신문을 사서 각 지역에 무료로 배포하는 형태다.

또 비정기적으로는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인원과 물량을 동원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디어법 통과 직전 <미디어 오늘>에서 특별판을 10만부 발행했는데, 진알시에서 그 중 5만부를 할당받아 배포하곤 했다.

이런 식으로 지역촛불의 힘은 아직 충분히 남아있다. 물론 지난해 8월 15일 이후 급격하게 촛불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각 지역에서 (신문) 판매전이나 홍보전을 하며 불매운동의 형식으로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이상배 ‘새로고침’ 회원(이) 지난해 촛불이 크게 번졌을 당시, 수백만 사람이 참여함으로써 사회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의식이 현재까지 반영됐다고 본다. 내가 속해 있는 ‘새로고침’의 경우 10대 중후반에서부터 20대까지가 활동하고 있는데, 의식이 없던 상태에서 참여의 필요성을 가지고 직접 촛불을 들고 나왔다가 이제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영구적인 활동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는 형태다.

즉, 지난해 제 시민사회단체가 만들어 놓은 집회에 단순히 참여만을 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촛불의 영구성을 위해 사회의 왜곡된 모습이나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 등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구체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지역과 일상에 파고든 촛불

광장이 아닌 지역과 일상에 파고든 촛불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부여할 수 있을까. 재점화를 위한 준비활동인지, 2002 월드컵처럼 추억과 기억의 장인지, 촛불의 진화인지, 다른 의미가 있는지? 

   
  ▲ 이세희 ‘새로고침’ 회원.

이세희 ‘새로고침’ 회원(세) 촛불의 의미를 일반화시키기 어렵다. 각 단체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촛불이 ‘재점화’를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다기보다는 ‘기억과 추억의 장’이라는 의미가 가장 큰 것 같다.

지난해 촛불집회를 하며 시민들이 스스로 현실로 한 발 더 나왔지만, 정부와 경찰에 의한 탄압에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사람 대부분이 현실 참여를 접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한 가지, 한 번 촛불에 참여했던 경험은 언젠가 적당한 때에 다시 한 번 외부로 나올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것.

단지 문제는 모두가 ‘때’를 기다릴 게 아니라 일부라도 이후 대규모 저항이 이뤄졌을 때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을 모아내고, 사람들의 저항의 목표점이 갈려져 투쟁력이 줄어들 때를 대비해 사전 준비를 착실히 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새로고침’의 경우가 이후 대규모 저항에 대비해 사전 준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나는 아직 진행형이다. 중요한 것은 촛불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야 할 문제다. 또 지금의 촛불은 기억과 함께 재점화의 준비라고 생각한다.

진보세력, 웃으면서 지역에 들어가야

진알시는 ‘여성삼국’이랑 ‘여성시민광장’과 함께 지난 6일 김장담그기를 했다. 우리가 돈을 모아 소외된 이웃에게 김치를 나눠주며 점점 더 친해질 거다. 그리고 내년 6월 선거 전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선거와 관련돼 한 마디씩 할 거다.

지역네트워크가 자기 지역에 침투돼 표를 하나 얻어오는 것이다. 진보도 이제 머리띠 매고 투쟁하는 게 아니라 웃으며 지역에 들어가는 거다. 진짜 중요한 것은 선거로서 시민들 힘으로 이기는 것이다.

또 지역촛불의 의미 중 하나는 ‘스스로의 자각’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권이 과연 타자화 시킬 수 있을까. 우리 안에 있던 욕심이나 의식 없이 끌려왔던 세상의 가치가 응집된 게 이명박 정권이다. 이명박 정권을 타자화 하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부터 변화하며 더 진보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발전해 나갈 때 나는 물론 사회도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상윤 공공운수연맹 정책실장(나) 작년 촛불 투쟁이 엄청난 것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만 볼 때 실패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예전 지난해 촛불과 같은 대규모 저항이 일어났다 패배하게 되면 이른바 사람들은 패배주의에 시달리거나 탈 정치화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 힘이 묵직하게 하층부에 깔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진화하는 느낌, 때를 기다리는 느낌, 가깝게는 내년 선거 기다리고 있다.

고민 중 하나가 MB 지지율 40%대 왔다갔다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한나라당의 고정표가 있지만, 주변에 MB 지지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높게 나온다. 하지만 재보궐 선거에는 야당이 계속 이긴다. 이게 이해가 안 되는데, 결국 지난해 촛불이 패배주의가 아닌 그 힘이 밑으로 깔리면서 변화가 시도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양한 형태로 변화한 촛불

사례를 들자면, ‘안산-시흥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임’이란 단체가 있다. 이번에 안산에 선거 있지 않았나? 이들이 (김영환-임종인의)단일화를 요구하기 위해 전국 촛불단위로부터 서명을 받아내고 자전거를 빌려 자전거 대회를 열어 안산 시내를 돌아다녔다.

우리가 가만있던 것이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 대응할지, 움직임을 포착해 왔다. 양산에서는 시민주권이 내려가 싹쓸이 하지 않았나? 시민주권이 하나의 정치집단 같지만 그 면면을 보면 촛불에 있던 사람들이다. 이처럼 촛불은 여러 양태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우리가 촛불과의 결합을 고민한 건 작년이었다. 작년과 같은 엄청난 상황에서 노조가 뭘 해야 하는지, 평소에 기대하던 일이 벌어졌는데 정작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고민과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공공이 다른 노조와 달리 갖는 특성이 있다. 노동이 시민사회와 결합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이용자가 서민이고 그들과 부딪히고 소통하는 것을 뭉뚱그려 사회공공성 영역이라 한다.

노조 투쟁 방식도 진화

이는 다른 영역에 비해 촛불과의 결합이 필요하고 절실하다, 때문에 그 어느 노조보다 촛불과 많이 결합한 곳이 우리다. 함께 싸움도 많이 하고 고민도 해왔다. 특히 두 가지가 있었는데 온라인에서는 블로그를 만들어 노조가 참여하고 개입하고자 했다.

   
  ▲ 나상윤 공공운수연맹 정책실장.

그렇게 블로그를 만드니 글 하나 올리면 조회 수가 10만 건이 올라가고, 그렇게 몇 달간 누적되니 150만 클릭이 나왔다. 우리가 대국민 선전전을 할 때 고작 몇 만 단위를 고려하는데 블로그는 클릭 수만 150만이나 됐다.

또 하나, 오프라인으로 ‘꼼꼼’ 무가지를 발행한 것이다. 이건 작년이 아닌 내가 서울지하철 노조에 있을 때부터 개인적으로 고민한 것이다. 그리고 이게 작년에야 (창간이)된 것이다. 이렇게 국민과의 소통에 대해 고민하며 온-오프 활동을 벌여왔다.

그리고 촛불이 사그러 들면서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지난 7~8월, 북부지역촛불시민모임에서 민영화와 관련된 강의를 해달라고 초청해 가서 강의한 적이 있는데, 이 자리에 50여명이 자비를 털어 강사비를 마련하고 강의를 듣더라. 이런 자리에 돈을 어떻게 받겠나? 결국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쨌든 나는 그들의 학습열에 굉장히 놀랐다.

촛불 만난 노조 운동의 고민

이게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강의하고 토론-질문하는 가운데 몇몇이 ‘자기는 노무현 지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에게 실망하며 이후 정치적인 모든 것에 담을 쌓으려 했는데, 촛불을 통해 다시 자각하는 계기를 얻었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이 고민을 많이 하게 했다.

사실 공공영역 노조운동이라는 것이 사회공공성에도 많은 고민을 던져주기 때문에 평소에도 환경운동연합이나 각 시민단체들과 함께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시민사회운동은 보통 전문가들의 의제설정 역할로서 중요한 것이라 2%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랄까?

 ‘공감2010’의 이름으로 촛불이 노조와 함께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논의가 오가고 있는가?

여론이 노조에 대해 선입견을 갖게 되어있다. 그러나 현장을 통해 노조를 만나니, 좋은 분들도 있고 함께 연대해야 겠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노조 조합원들의 입장과 생각을 들으며 이해하고 소통과 공감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해 합류하게 되었다.

시민사회와 노조운동의 ‘공감’

– 사실 촛불과 공공운수연맹은 이념과 방향이 다르다. 그러나 공감2010의 타이틀처럼 공공부문에 대한 사유화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대응책을 함께 기획하는 자리라고 해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궁금해 참여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공공부문에 대한 투쟁이나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번 모임을 통해서라도 배워갈 수 있는 점이 있다면 배우는 자리로서의 의미도 있다. 그리고 현재 논의 부분은 공감과 공공연맹이 함께 하는 집회 계획하고 있다. 이는 아직 구체적으로 협의 되고 있지는 않다.

공공성 강화와 민영화 반대 같은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이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하는 사람들과 안 맞는 부분도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그런 건 없었다.

"선입견은 사라지고 내용은 충만해져"

   
  ▲ 이상배 ‘새로고침’ 회원.

지난달 28일, 공공부문에서 노동자대회를 했는데 우리에게 연합문선대를 구성해 같이 하자고 제안이 들어와 우리가 그것을 함께 했다.

지난달 28일, 공공부문에서 노동자대회를 했는데 우리에게 연합문선대를 구성해 같이 하자고 제안이 들어와 우리가 그것을 함께 했다.

당시 현장에서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만나 투쟁의 내용을 들으며 연습해 왔는데, 그들을 만나서 보니 ‘강성’이 아닌, 실상은 착하고 부드럽고 좋은 분들이라는 것이다. 선입견은 사라지고 내용으론 충만해진다. 함께 하는 것 자체가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느꼈다.

함께 한 감상이나 느낌은?

다른 것보다 함께 하고 나니 직접 도움이 되는 내용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점이 좋았다. 우리가 그 전 까지 ‘객체’의 입장이었다면, 그들의 투쟁이 현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실현 부분과 연계된다면 우리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강한 결의를 가지게 되었다.

계기는, 전화가 왔다.(웃음) 노조에 대해 아시는 분이 ‘회의가 있으니 한 번 가보자’며 전화가 왔다. 진알시는 일반시민 위주로 이루어진 조직으로 언론노조와는 그 특성상 친하게 지냈으나 노조로부터 개인적 연락을 받은 적은 없었다.

다만 당시는 (미디어법)헌재판결 직전이어서 직감할 수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미디어법이 끝났으니 민영화로 기울 것’이란 것이었다. 그럼 공공운수연맹을 노리고 있는 것은 뻔하다. 그렇게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사실 언론노조가 네티즌들과 접점이 많았다. 그런데 공공은 잘 몰랐다.

"땡기면 가는데 구리면 안간다"

사실 언론노조는 그 (투쟁)방식에 우월성을 인정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소비권력이 최고이다. 언소주도 광고주를 건드리니 꼼짝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소비의 최고 권력은 여성이다. 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힘이고, 그래서 언론노조가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소울드레서, 쌍코, 화장발, 이들은 아이템이 없으면 안간다. 땡기면 가는데, 구리면 안간다.

우리가 ‘여성을 잡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공공영역이 가스, 전기, 발전, 의료 등 생활과 직결된 부분이 많고 보장성 강화 등의 주요 운동을 이념으로 삼고 발전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추상적인 부분이고 이를 밖으로 확장해야 한다.

다만 우리의 고민은 그동안은 시민사회단체 단체들과 활동이 중심으로 이루었다면, 지난해 촛불을 보면서 다른 영역과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고민이 있었다. 그 전에도 촛불 자동차 연합과 얘기해 스티커를 붙이는 일도 함께 해 봤지만, 이를 조직적으로 고민해 본 것은 처음이기에 이를 모아서 얘기해보자는 것이다.

노조운동의 변화

지금까지 논의대상은 ‘연대 방법’에 한정되어 있어 사실 깊은 대화까지 오고갈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연대해야 한다는 가정을 하고 모였기에 (노조 측에서)일방적으로 다 받아주었다. 다만 우리들의 요구의 핵심은 방법론적인 변화였다.

빨간 띠를 매면 사람 안 온다. 빨간 띠 매고 찌르는 춤추면 사람 도망갈 거다고 했다. 소프트 하고 친근하게 다가서야 한다. 단지 몇 개의 시민단체를 포섭하는 것은 궁극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시민사회단체 역시 일반대중에게 다시 어필해야 하는 주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너무 과격하거나 고립된 투쟁 이미지는 고쳐야 한다는 전제하에 (연대)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지만 받아주었다. 예를 들자면 이번에 공공부문 민영화에 대해 판넬을 우리가 만들었다. 그래서 약하게 만들었는데, 이미지는 바꿀 수 있다.

   
  ▲ 이광호 레디앙 편집국장

진알시의 경우에는 대중에 대한 지속적 홍보를 하기 때문에 저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운동의 필요성을 갖고 현장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려 하려 한다.

진알시의 경우에는 대중에 대한 지속적 홍보를 하기 때문에 저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운동의 필요성을 갖고 현장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려 하려 한다.

그래서 노조에 ‘벽’이 쌓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게도 벽이 쌓였는데, 이를 걷고 더 깊은 내용성을 갖기를 원하기에 학습하고 활동한다.

노조는 노조다

  우리 입장은 두 가지다. 우선 선입관이어도 노조는 노조다. 엄격히 말하자면 해당 기업의 노동자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만든 조직이다. 그러나 이를 ‘노동운동’이라고 표현 하는 것은 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 사회의 변화를 주기 원하는 것이다.

노조를 신비화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방식이 다를 수도 있다. 노조가 자신들의 방식을 포기하는 것이 잘하는 건 아니지만 고수하는 것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방식과 양태는 다르다.

작년 촛불을 보면서 그들의 자발적 참여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도 그랬는데 노동운동을 20여년 하면서 관성화되고 대상화된 측면이 있다. 가장 ‘대중적 공간은 연단 밑에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우리도 그렇게 접근하자고 고민했는데 20년이 지나며 싸우던 군부독재와 싸우고 우리가 비슷하게 닮아가더라. 그렇다면 우리가 현실을 인정하고 촛불운동이나 네티즌들의 방식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계속>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