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심이'를 아시나요?
    2009년 12월 08일 11: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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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이하 줄임

-정지용-

하루에 수십 번을 마주해도 허기지지 않는 우리들의 로망 고향(故鄕), 그 고향 내음을 한껏 풍겨주는 정지용의 대표적인 시 ‘향수(鄕愁)’다.

그 향수의 고향 옥천에서 나는 나락 하나를 만났다.

   
  

벼(나락)…
반만년 밥심으로 버틴
우리에게 쌀은 ‘전부(全部’)다.
나락은 ‘혼(魂)’이고
논은 우리의 ‘몸’이기 때문이다

나락 하나가 땅에 떨어져
분얼(分蘖)이 일어나 17개 정도의 줄기가 생겨나고 줄기 하나마다 100~150개정도의 낱알이 달리니 대략 2,000여 개의 새로운 나락들로 이어지는 셈이다.
참으로 경이롭지 않은가?

충북 옥천 산계뜰

역사적으로 옥천은 나제 접경지역이기도 했고 전봉준의 동학운동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옥천군민들의 열정은 각자가 분명한 판단을 하며 살아내야 했던 역사에 기인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옥천군민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시대정신(時代精神)이 온전하게 반영된 DNA가 면면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또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성장한 내게 낯설지 않은 인연들도 녹녹치 않다. 그런 저런 이유로 난 옥천이 좋다.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산계리에 ‘산계뜰 영농조합법인’이 있다. 청원상주간 고속도로에서 보은IC로 빠져 나와 영동방면으로 내달리다 산계3거리에서 내수면연구소 이정표를 따른다. 눈앞에 펼쳐지는 친근한 경관은 4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느꼈을 고향의 정취 그대로를 보여준다.

잘생긴 냇가, 풍요로운 벌판, 정겨운 산, 작은 정자 하나…

 

   
  

 

상춘정(常春亭)이 보청천 위에도 떠있고 아래에도 떠있다. 가을에는 갈대숲으로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로 상춘정은 옷을 갈아입는다. 가던 길을 멈추고 훅~ ! 그리움을 빨아들이며 이내 계하리에 도착한다.

상춘정(常春亭)은 ‘항상 봄 같은 정취를 품은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산계뜰로 들어가는 입구 보청천 한가운데에 서있다. 좁고 가파른 바위섬에 호롯이 서있는 상춘정의 풍광은 가던 길을 막무가내로 막아 선다. 보청천 큰 내는 보은에서 청성으로 흘러 드는 물길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 대홍수가 나던 해에 보은 속리산에 있던 상춘정이 이곳 청성으로 떠내려 왔다. 이후 속리산 법주사의 한 스님이 해마다 꼬박꼬박 세금을 받아갔다. 당시에 이곳은 상주 목청산현에 소속했는데 어느 해 지혜로운 현감이 부임하였다. 세금 내는 것이 부당하다 파악한 현감은 우리 고장에는 필요가 없으니 이 상춘정을 그냥 가져가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유야무야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

마음을 비워야 순환이 되고 ‘순환’이 되어야 ‘채움’이 이루어진다

청성 산계리 계하마을에 한 알의 나락처럼 불모지에서 친환경농업지구를 조성해내고 고집스럽게 친환경농업을 일구어가는 대표농부 이선우가 있다.

 

   
  

 

산계뜰 대표농부 이선우씨의 어머님 신낙순 여사님이다. 올해 97살이시니 내후년이면 100세다. 한 세기를 사신 어른들을 뵈면 존재 그 자체로 경외감에 빠져들고 만다.

이선우 대표 내외가 서울서 손님 오셨다고 청산의 명물 ‘생선국수’를 점심으로 대접하겠다 하여 늘 가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맛깔스럽고 푸짐한 생선국수가 나오자 어머님이 양이 너무 많다는 몸짓을 하시며 아들 그릇에 국수를 덜어 놓으려 한다.

며느리가 “아유! 그냥 다 드셔요 다 드실 거면서…” 하며 왜 내숭떠시냐는 말투다. ‘밉지 않은 툴툴거림’이다. 평소에도 식성이 워낙 좋으신 것 같았다. 국수 한 그릇을 거의 다 드신다. 국수전에 나오는 애피타이저 ‘민물고기 양념조림’을 며느리가 어른 수저에 하나하나 올려드리니 다 잡수신다. 고부간 주거니 받거니 그냥 다 받아들이고 그냥 다 내주는 모양새다.

이 어른이 낳은 아들 넷 중 막내가 이선우 대표다.
어머님 사진 한 장 찍으시죠~ 애교 섞인 내 제안에 도정공장 앞에서 포즈를 잡아주신다.

“뭔 늙은이를 어따 쓴다고 사진 찍어요?”
“무슨 말씀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어머님.”

대표농부 이선우씨는 농기계만능박사다. 살아온 내력으로 정비, 전기, 토목, 경영, 관리 등의 업무에 능해 현재 영농조합법인을 이끌어 가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덕분에 이앙기, 효소살포, 콤바인 등 일체의 농기계를 손수 운전하여 친환경단지 생산과정을 진두지휘한다.

1990년대 중반 3년 정도 토목회사에서 일하면서 잠시 농업을 벗어나 외도를 했었다. 창문너머로 농촌의 자연환경이 밀려오는데 그 자연의 유혹이 제일 견디기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크게 배운 것 없는 몸으로 도시에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농촌에서 생각을 잘 헤아리면 살길이 있겠다 싶어서 다시 농촌으로 돌아왔고 1998년 하반기에 ‘무경운, 무비료, 무투입 무농약’을 기본으로 하는 ‘태평농법’을 접하게 되어 본격적인 농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 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계하리 느티나무다. 나무 뒤로 보이는 황금벌판이 산계뜰이다. 3년 전 ‘푸른울타리 어울림한마당’에 참여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오래도록 남은 정경이다. 정말 실개천이 휘돌아 나간다.

 

 

   
  ▲ 사진 상단부에 가공장 및 도정공장이 있는 영농조합법인이 있고 마을 계하리가 있다. 하단부 뚝방 길을 따라 보청천이 흐르고 있다. 이 너른 벌에서 옥천의 친환경농업이 발원한 것이다.

 

2003년도 5농가가 단체명의로 우렁이 농법으로 무농약인증을 받은 것을 계기로 오늘날 101농가 옥천친환경농업지구가 조성된 것이다.

‘푸른울타리 2010’프로젝트

 

   
  

‘순환’은 이선우씨가 꿈꾸고 만들어가는 출발이자 결과물이다.

공동재배, 공동출하, 공동교육, 지역농업활성화…
자연순환농업을 통하여 지속 가능하게 도시와 농촌이 교류하며 소통하는 시스템이다.

그 동안의 노력으로 산계뜰이 꿈꾸던 일들을 진행 할 수 있는 제반 여건들이 마련된 것이다.

옥천 친환경쌀 생산단지는 5개 단지로 되어있고 옥천관내 101농가가 모여 50ha 경작한다. 경종농업(논농사,밭농사)과 축산을 연계한 자연순환농업을 실천하는 전형적인 지역모델이다.

좌우명이 뭐냐고 물었을 때도 ‘순환’이란 개념을 좋아한다며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쌀 재배과정

 

 

   
  ▲ 공동 육묘장에서 전 회원 논에 심어질 추청(아끼바레)벼를 엄선하여 육묘한다.품종의 통일은 품질의 균일성으로 나타난다. 이후 재배에서 판매까지 전 과정을 법인에서 일괄 관리한다.

 

 

   
  ▲ 아이들의 모내기 체험하는 손맛이 아주 야무지다. 앙다문 입은 청년일꾼 저리 가라다.

 

 

   
  ▲ 친환경농사꾼 왕우렁이 방사

 

 

   
  ▲ 수확 후 가공.  단지 내에 자체 도정 가공장이 있어 외부 일반쌀과 혼입될 가능성이 없다.

 

‘공심이’를 아시나요?

 

   
  

 

쌀 이름을 ‘공심이’라 붙인 이유를 물었더니 빙그레 웃는다.

“마음을 비워야 순환이 되고 채워지더이다” 그래서 빌‘공’자 마음‘심’이고,  
지역학교 아이들에게 먹이는 쌀이므로 공부하는데 보탬이 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하여 포장지 앞뒤면은 김홍도의 농사짓는 모습과 공부하는 서당의 풍경으로 채웠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니 그다운 발상이 엿보인다.

다른 이야기들…

 

   
  ▲ 너른벌 파릇파릇한 논은 청보리를 심은 것이다. 산계뜰 청보리는 첫째 보리를 생산하고 두 번째 소 사료용으로 쓰고 세 번째 작황이 안 좋은 논은 그 자리에서 갈아엎어 녹비료로 쓴다. 버릴게 하나 없는 작물이다.

 

 

   
  ▲ 농촌 체험단이 산계벌판에서 잡은 메기와 메뚜기 잡는 아이들. 민속놀이체험, 떡메치기, 감따기 및 곶감 만들기, 천연염색체험, 농작물수확체험, 물고기잡기체험, 고구마 감자 굽기, 우렁이 잡기 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가능하다.

 

 

   
  ▲ 유기축산 한우, 두부생산 급식학교납품, 유기재배고추, 육묘장 운영

 

 

   
  

 

이선우씨와 이별인사를 하고 나오다가 들판으로 나가 베어낸 벼 밑둥을 바라보았다. 고향의 흙 냄새와 볏짚 내가 났다. 한두 개의 나락이 뿌려져서 저리 많은 줄기로 자라나 수천 개 이삭을 맺어 온전히 인간에게 알곡을 내어준 희생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참을 쪼그리고 오랜만에 논의 존재를 아주 가까이서 느껴본다.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흔적이다.

이선우씨가 도시민들에게 던지는 대표농사꾼의 각오가 귓전에 들린다.

“60 ~70년대에 식량자급을 위한 증산정책과 급속한 산업의 발달, 「녹색혁명」이라는 대대적인 농업의 전환기를 맞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발전을 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분별한 농약의 살포, 과다한 비료사용, 생활 오폐수 등으로 인하여 토양과 물이 오염되고, 환경이 파괴되어 개구리, 메뚜기, 거미, 무당벌레는 물론 땅 속의 지렁이까지 살 수 없는 땅에서 자란 먹거리를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안전성 문제에 논란이 되고 있는 유전자변형 농산물 등이 무분별하게 수입되어 우리식탁에 자리 잡고 우리의 건강은 물론 나아가 나라경제를 멍들게 하고, 우리농촌과 농업을 황폐화시키고 있습니다. 농촌에 살면서도 어릴 적 그때가 「차마, 꿈엔들 잊히리오」 그 잊지 못할 날들이 다시 올 수는 없겠지만, 그때를 그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농사꾼은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답니다.

우리의 터전에 유기농업의 꽃이 피고 결실이 이루어지는 날을 위하여,「환경 속의 인간」의 평범한 순리로 살아가는 농사꾼이 되겠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락 한 알의 의미와 이선우 대표농부의 삶의 의미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와의 인연으로 공심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공심이’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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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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