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홍보, 정보시대의 '대량살상무기'
        2009년 12월 07일 12: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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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요즘 제 석사과정 제자 중의 몇 분이 동아시아에서의 ‘국가홍보’, 즉 각국의 해외 국가 이미지 메이킹/브랜딩을 연구하게 되어서 저도 관련 연구 결과물들을 자꾸 보게 됐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이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하도 상품으로 시장이 포화상태 되다보니(과잉 생산의 문제) 물건의 성능, 품질보다도 어쩌면 그 이미지, 즉 광고에 의해서 조작되는 물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더 중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건의 품질과 이미지

    그 인식의 배경에는 – 우리가 아무리 세계화가 많이 진척돼도 늘 국민국가 위주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에 – 그 제조국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기에 이제 개별적인 자본가들의 ‘기둥서방’인 각 국가마다 앞을 다투어서 ‘국가 브랜딩’에 투자한답시고 난리를 치고, ‘연성권력’을 키운다고 법석입니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기에 이명박씨의 치하에서 관련 위원회가 신설되고, "모든 해외 한국어 교육 기관을 세종학원의 통일 브랜드로, 모든 국위선양의 기반으로 태권도를!" 같은 구호들이 막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외국 구매자들 보고 철도노조 간부들을 연행하는 경찰이나 검찰은 보지 말고 태권도 품새를 취하면서 삼성 휴대폰으로 쿨하게 수다를 부리는 멋진 젊은이들을 보란 이야기인 셈. 하이 서울, 스파클링 코리아, 다이내믹 대한민국, 태극기 모양의 팬티를 걸쳐입고 월드컵 응원하는 젊은이나 보고 만족하라, 이것입니다.
    이명박씨도 뒤늦게 동참하기에 이르렀지만, 노르웨이처럼 돈이 아주 많고 정보에 ‘빠삭’한 나라는 이명박씨보다 다소 빠르게, 이미 2000년대 초반에 ‘국가브랭딩’에 재미를 붙여, 기름장사로 번 돈의 일부를 떼어내 관련 보고서를 저명한 영국 전문가인 Mark Leonard씨에게 위탁했습니다.

    기름장사만 가지고 장기적으로 버틸 수 없으니 나라 이미지 장사도 하자는 주의였습니다. 그 보고서 (Norway’s Public Diplomacy: A Strategy)는 2003년에 나왔는데, 그 요지는 나라 이미지도 물건처럼 ‘컨셉’으로 팔라는 것이었지요.

    노르웨이의 국가 이미지 ‘장사’

    즉, 노르웨이와 잘 어울리는 고정관념 몇 개를 골라서 자꾸 지구촌 주민들에게 매체를 통해서든 대중문화를 통해서든 어떻게든 그 관계를 홍보하란 것입니다. 예컨대 ‘친환경 국가 노르웨이, 평화 국가 노르웨이, 인도주의적인 평화주선자 노르웨이, 쿨한 대중문화 국가 노르웨이’ 등등입니다.

    신자유주의가 아주 판치는 시절이었기에 노르웨이식 복지시스템이나 중앙적 노사교섭시스템 등 사민주의적 유산을 홍보하란 말은 당연히 없었습니다. 그런 홍보를 하다가는 그 때만 해도 외국 ‘정책결정자’들에게 혼나기가 쉬웠죠.

    대체로 노르웨이 실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Leonard 등이 제기한 ‘노르웨이의 국제 홍보방법론’은 그냥 우스운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점을 당장에 알아차릴 것입니다. 노르웨이가 평화협정을 주선할 때에 대체로 ‘강자 편'(예컨대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는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에 서서 사업하기 때문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오슬로협정 등 노르웨이가 주선한 절대 다수의 평화협정들은 결국 물거품이 됐습니다.

    ‘평화국가 노르웨이’는 세계무기 수출국 7위이며, 아프간에 500명의 군인을 보내고 있는가 하면, ‘친환경 국가 노르웨이’의 국가석유기금(차세대 연금기금)은 엑손모바일, 브리티쉬페트롤레움 등 대규모 석유업체에 큰 투자를 하는 동시에 국영 석유회사 스타트오일은 앙골라부터 아제르바이잔, 이제는 트루크메니스탄까지 제3세계자원의 ‘이용'(‘약탈’이란 말은 더 정확할 수도 있습니다)에 큰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단, 미국 등 주요 ‘국제 강도국’에 비해 대외 살생을 덜 하고 국내적으로 꽤 잘 돌아가는 재분배 체제를 갖추니 좋게 평가되지만, ‘친환경’이니 ‘평화국’이니 하는 수사는 ‘위대한 경제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만큼이나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 ‘국제홍보’의 위험도

    그러면, 그 다음 문제는, 과연 노르웨이의 국제 홍보는 어느 정도 위험하느냐라는 것인데, 저는 국제적으로 일부 취약층에게 위험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위험도는 비교적으로 낮다고 봅니다. 예컨대 국내에서 살인교육을 받기도 싫고 병역거부로 감옥에도 가기 싫은 젊은이가 노르웨이에 와서 ‘대체복무제가 없는 징병제국가에서 왔는데 난민신분 부여해달라’라고 ‘평화국 노르웨이’를 믿고 망명 신청하면 큰 낭패를 볼 확률은 큽니다. ‘평화상’으로 이미지 장사를 하는 나라라고 해서 망명자에게는 꼭 후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면 노르웨이의 국가적 거짓말은 타자의 인생을 망칠 위험성이 그래도 그리 안 큰 것 같아요. 제조업 국가가 아니기에 해외제조업 투자도 적고, 또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로서 여기에 와서 벌이하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에 국가 홍보를 어떻게 해도 지구촌 주민의 절대 다수에게는 크게 상관없을 걸요.

    대한민국의 ‘쿨한’ 국제홍보는 이러한 측면에서는 약간 더 위험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멋진 한국 드라마에 반해서 한국 업체에다 취직한 중국인이나 월남인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특별대우를 받을 최고급 인력이 아닌 이상, 폭력, 폭언, 임금체불, 그리고 업주의 ‘야반도주’ 등의 문제에 직면할 위험은 상당히 크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도 약 9년쯤 전에 한국 어선 <페스카마>호에서 폭력을 일삼은 선장 등을 상대로 결국 반란을 일으켰다가 나중에 사형언도를 받은 조선족 지식인 출신의 사연을 기억합니다. 일부 고급 업종을 제외하면, 해외에서 사업하는 한국 기업에 취직하려면 일단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통상적 인식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합니다.

    아주 슬픈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직장이 병영화돼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죠. 예컨대 러시아나 중국 같은 곳에서 한국학 수업을 할 때에 냉전 과정에서 반공전선의 병참기지가 되어 철저하게 병영화된 대한민국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학생들에게 이와 같은 부분에 대해 일찌감치 주의를 주어 불의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데, ‘나라 홍보’에서는 이와 같은 부분에 대한 언급은 원칙상 불가능합니다.

    병영화된 직장

    멋진 태권도 동작, 춤사위, 사물놀이의 흥겨움…. 그 뒤에 어떤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지 ‘홍보 대상자’들에게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죠. 저는 그러한 측면에서는 국가홍보란 일종의 정보적 ‘대량살상무기’라고 봅니다. 수많은 이들의 팔자를 잘못하면 망칠 수도 있는…

    해외에서 한국학하는 이들은 한국 정권의 입장에서는 ‘국가홍보의 장’에 맨먼저 동원돼야 할 대상들일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한국학 하는 이에게는 일종의 직업윤리강령 같은 게 필요합니다. 어디까지 주요 지원자인 국가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고, 어디부터 들어줄 수 없는지에 대한 나름의 분명한 공동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야 ‘인간 병기’, 삼성왕국의 홍보꾼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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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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