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진보정당 모두 패배하는 길"
        2009년 12월 26일 07: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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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권을 반민주세력, 독재 정권이라고 공격할 수는 있다. 사실 이명박 정권이 얼마나 나쁜가를 쉽고 빠르고 선명하게 혹은 깊이 각인시키려는 목적으로 그런 적대적 언어를 동원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 것은 수사학의 문제이다. 상대를 깎아 정치적 불이익을 주기 위한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이명박 독재정권"은 정치적 수사

       
      ▲필자(사진=기자협회보)

    이명박 정권을 반민주세력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꽤 유행하는 것을 보면, 그 정치적 수사가 잘 먹혀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정치적 수사는 반드시 사실을 적시해야 할 필요도 없고 분석적일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 이명박 정권의 지지할 수 없는 노선, 정책, 행태를 놓고 독재적이라고 비판했다고 해서 그를 비논리적이라거나 비과학적이라고 시비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것은 “나는 그의 정책, 그의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의 정책은 서민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악화시킨다”, “민생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비유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의 성격을 엄밀하게 규정하려고 한다면, 불가피하게 과장법을 필요로 하는 수사학으로는 안 된다.

    독재 정권, 권위주의 체제는 정당한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정통성이 없는 권력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합리적 규칙과 절차가 아니라 자의로 권력을 행사하는 절대 권력자 혹은 독재자의 존재를 전제로 해야 하고, 그를 뒷받침하는 독재기관들이 있어야 하며, 야당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할 가능성이 차단되어야 하며, 의회는 형식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정당한 민주적 절차를 거쳐 권력을 획득했다. 이명박 정권은 정통성 있는 권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 권력이 곱든 밉든 상관이 없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주의적 질서 안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미이자 선거를 통하지 않고는 그의 권력을 양도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바로 이명박 정권을 독재 정권이라고 정치적 비판은 할 수 있어도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독재 정권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명박 정권 ‘악마화’와 이전 정권들

    반민주적 독재 정권인지를 특정 정책에 대한 선호를 기준으로 정의해서도 안 된다. 일반적으로 이명박 정권을 비판할 때 용산 참사, 4대강 사업, 미디어법, 세종시 수정, 노조탄압, 공안 기관 동원, 파병, 무한 교육 경쟁, 민영화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등 신자유주의 정책, 성장 지상주의, 파병 등을 거론한다.

    이중 4대강 사업, 미디어법, 세종시 수정과 같은 논쟁적 정책은 이명박 정권이 국민적 합의 없이 강행하느라 시민적 저항에 직면해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민주주의적 가치를 온전히 반영한 정책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책들이 반민주 독재정권으로서의 성격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할 수도 없다.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른 정책 결정 과정을 통과한 개별 정책을 두고 독재 운운은 무리이다. 만일 그것들이 민주와 반민주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면, 시민의 지지가 없는 정책을 추진하는 이 세상의 모든 정권은 반민주 독재정권이라는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노조탄압, 공안기관 동원은 이전 정권보다 후퇴한 것이 명백하고, 독재의 사고 방식이 반영된 권위주의적 행태이지만, 역시 권력 행사의 정통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재 정권의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여전히 부적절하다.

    이명박 정권을 이같이 악마화하다 보면 이전 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 가운데 어떤 것들은 매우 중요한 본질적인 것들이 있다. 가령 신자유주의, 성장 지상주의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이전 정권과 잘 분리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로 이명박 정권을 반민주 독재라고 한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도 같은 딱지를 붙여야 한다.

    민주당이 집권 성공하면 ‘민주회복’인가?

    그러나 일반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반민주 독재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같은 기준으로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도 그런 딱지를 붙여서는 안 된다. 물론 이명박 정권이 단순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역시 그 차이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설정할 수 없는 것은 너무 자명하다.

    사회적 시민권의 확산 정도, 사회 경제적 정책을 기준 삼아 이명박 정권을 반민주로 규정하고 싶다면 지난 10년 정권도 역시 반민주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만일 민주당이 차기 집권에 성공하면 ‘민주회복’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 순간 한국 민주주의 과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그런가.

    이명박 정권을 반민주 독재로 규정하는 것은 진보 개혁 인사들의 지난 정권에 대한 관대함, 이명박 정권에 대한 엄격함과도 관계가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이명박 정권을 비판했던 정도로 이전 정권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정권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명박 정권에서 와서야 이전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본질이 명료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통할지는 모르겠다.

    신자유주의와 반신자유주의로 단순 양분하면 안 된다는 말은 맞다. 신자유주의를 단일 전선으로 해서 시민들을 조직하기에 역량이 부족한 것도 맞다. 신자유주의 반대만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최소치와 최대치가 있을 것이므로, 그걸 유연하게 적용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진보정치 세력의 역량이 안 된다고 포기하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 많다. 민주당 중심의 민주대연합이 반드시 잃는 게임이라는 뜻이 아니다. 민주대연합의 축인 민주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민주당의 혁신이 이루어진다면 민주대연합은 성공할 수 있다.

    민주대연합 성공 조건은 민주당  혁신

    그런데 민주당 사정은 그렇지 않다. 우선 민주당은 홀로 지방 선거를 치를 능력도, 자기를 구출할 능력도 없다. 혁신을 통해 대안적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절박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현 시점에 민주당의 혁신은 비관적이다.

    그렇다면, 민주대연합을 바라는 세력들은 민주당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우선적인 과제로 삼아야 한다. 진보정당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민주당에게 요구해야 한다. 민주당이 선거 연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제시하고 그에 맞추도록 강제할 힘을 조직해야 한다. 그게 우선이다.

    그런 전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민주대연합은 이명박 정권에 맞설 능력도 없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 민주당에 힘을 보태기 위해 진보정당 전체를 희생시키는 마이너스 연합으로 끝난다. 그렇게 해서라도 진보 정당의 죽음을 자양분 삼아 민주당이 새로운 대안 정당으로 거듭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면 민주당을 위해서는 정말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걸 바랄 상황도 아니다.

    지난 10년 실패의 덫에서 헤매는 민주당을 구출하기는 커녕 그런 민주당의 한계를 민주대연합의 이름으로 승인함으로써 민주당의 정치적 성장을 차단하고, 민주당의 미래를 닫아버리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더 크다.

    현재의 민주대연합 논의는 민주당을 대안정당으로 키우지도 못하고, 진보정당의 싹도 자르는 집단 자살의 위험을 안고 있다. 만의 하나 민주대연합으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이기고 차기 대선도 승리했다고 치자. 그래서 지난 10년 정권만도 못한 정권, 아니 지난 10년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정권이 등장했다고 치자. 이것이 민주대연합이 기대하는 최종 목표인가. 이것이 이 사회의 진보를 향한 수십 년에 걸친 행진의 종착점인가.

    ‘절망 탈출’은 이명박 반대로 충분치 않다

    보수 정치로는 이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삶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유주의적 보수 정당 10년 집권기를 통해서도, 이명박 정권을 통해서도 충분히 깨달았다.

    어느 순간, 어느 계기에도 진보정치를 바로 세우고 키우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작은 차이만을 지닌 보수 정당들의 정권교체에 만족하면 우리의 삶은 그 차이만큼 밖에 바꿀 수 없다는 절망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이 절망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권을 반대한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어떻게 반대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진보정당은 그 ‘어떻게’를 고민해온 정치세력이다. 진보정당은 그런 고민을 생산적으로 발전시키는데 필수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당장 이명박 정권 반대에 단기적으로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민주당도 아닌 노쇠한 민주당을 중심으로 민주대연합을 구축하기 위해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진보정치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꿔야 한다. 늘 그렇듯이 진보정당을, 무너져가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디딤돌로 쓰고 버리면 그만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선거는 진보정당에게도 중요한 순간이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평소에는 진보정당의 중요성을 역설하던 이들도 결정적인 계기에 진보정당을 자유주의 정당에 새 피를 공급하는 수혈 정당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는 오늘의 현실이 말해준다. 이명박 정권이 저런 정도의 실정을 거듭하는데도 자유주의 정당은 대안이 되지 못하고 진보정당은 자유주의 야당의 대안이 되지 못하는 악순환 혹은 이중의 모순 말이다.

    대안 부재의 이중 모순

    가장 치열하게 민생과 민주주의를 위해 고민해온 진보정당이 가장 중요한 때 가장 가벼이 쓸 수 있는 일회용으로 전락해도 괜찮은가. 민주당이라는 고목을 받쳐주는 버팀목이 진보정당의 역사적 사명인가. 자유주의 보수 야당이 진보정당을 선거 때 써먹을 외곽정당으로 인식하면 할수록 자유주의 보수 야당의 각성 수준도 낮아지고 그 결과 정말 쓸모없는 정치집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진보정당이 홀로 설 수 없는 민주당을 부축해주는 역할만 해야 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영원히 반쪽짜리에 머물 수밖에 없고, 서민들의 무거운 어깨도 결코 가벼워 질 수 없다. 민주당을 바로 세우지 못하는 민주대연합은 민주당과 진보정당 모두에게 패배의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정녕 민주대연합이 절실하다면, 이제 진보정당이 아니라, 민주당을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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