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사회에 간절한 말걸기
        2009년 12월 07일 09: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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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박치기> 포스터

    조총련계 민족학교는 일본에 귀화하지 않은 재일 한국인들이 사상적 정체성 이전에 한국인이라는 민족정체성을 유지하며 다닐 수 있는 유일한 학교다. ‘박치기’라는 한글 낱말을 그대로 가타카나로 옮겨 제목으로 하는 2004년 작품 <박치기>는 1968년을 배경으로 교토의 조선인학교에 다니는 재일 조선인과 일본인의 관계를 그린 영화다.

    1968년은 전세계적으로 변혁의 물결이 일던 해였다. 유럽의 68혁명, 미국의 우드스탁 록페스티벌, 그리고 일본에서는 전공투 등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에 대한 억압과 통제에 저항하는 청년문화가 기성세대에 맞서 싸우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1968년 일본에서도 한편에서는 록 밴드가 자유분방한 퍼포먼스로 여고생들을 실신시키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좌파 학생들은 헬멧을 쓰고 격렬한 시위에 나섰고, 히피의 영향으로 프리섹스에 대한 관심이 퍼져나가던 시기였고 저항적인 가사의 포크 음악이 인기를 얻던 시기였다.

    2005년 일본영화계의 화제작

    이 시기에 박세영 작사, 고종한 작곡의 북조선 노래 ‘임진강’을 더 포크 크루세이더가 다시 불렀는데 조선 민요가 공식 발매되는 것이 금지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바로 금지곡이 되면서 노래 ‘임진강’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검열의 상징이 되었다. 일본에서 일본 가수가 불렀다가 금지곡이 된 북조선 노래 임진강은 영화 <박치기>에서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경계를 의미한다.

    영화 <박치기>는 소설 <소년 M의 임진강>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소설과 노래 ‘임진강’의 일본어 가사를 쓴 원작자 마쓰야마 다케시는 중학생 때 ‘임진강’을 듣고 그 감동을 잊을 수 없어 2002년 <소년M의 임진강>을 집필했다.

    <소년M의 임진강>을 읽은 재일 한국인 이봉우 프로듀서가 영화화를 추진해서 제작된 <박치기>는 버스 전복 사건, 강의 결투, 항쟁 에피소드, 그룹사운드, 프리섹스 등 68년도에 실제 있었던 일본 사회의 사건 사고를 배경으로 키네마준보 ‘2005년 베스트 영화’ 1위, 아사히신문 ‘2005년 베스트 영화’ 1위를 비롯해 마이니찌 영화콩쿨 대상, 마이니찌 영화콩쿨 음악상(가토 카즈히코), 일본아카데미 영화상 신인상(사와지리 에리카, 시오야 슈운), 일본아카데미 영화상 우수작품상, 우수감독상, 우수각본상 등 2005년 일본의 13개 영화상 가운데 30여 개 부문을 석권하는 화제작이 되었다.

       
      ▲ 영화의 한 장면

    교토의 히가시고교 학생들에게 조선고등학교 여학생들이 희롱을 당하게 되자, 조선고등학교 남학생들이 몰려와 히가시고교의 스쿨버스를 뒤집어버리는 데서 영화가 시작된다. 이렇게 벌어진 패싸움은 마오쩌둥 사상에 빠져있는 일본 학교 선생의 중재로 양쪽 학교의 친선축구시합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히가시 고등학교에 다니는 일본 남학생 코스케는 조선인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경자에게 반한다. 경자와 가까워지고 싶은 코스케는 동네 술집 청년 사카자키로부터 노래 ‘임진강’을 배우고, 노래에 얽힌 사연과 더불어 재일 한인의 역사적 내력도 배우고, 한글도 공부한다. 그러면서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 한국전쟁, 남북분단의 현실까지 알게 된다.

    코스케에게 일본 사회의 모순을 가르치는 사카자키를 비롯해, 마오쩌둥에 심취한 담임선생, 혁명사상에 관심을 갖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코스케의 친구 노리오 등 코스케를 둘러싼 주변 일본인들은 1960년대 후반의 청년 히피 문화, 진보적 사상, 급진적 학생운동 등 다양한 일본 내 변혁 운동의 세력이 영화를 통해 형상화된 캐릭터들이다.

    상상의 조국 북한

    즉,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는 강한 민족적 자의식에 휩싸여 재일 한인을 차별하는 일본 사회에 대해 반항하고 맞서 싸우는 조선학교 학생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위치에서 일본 주류 사회의 가치관에 저항하는 인물들이 존재했으며, 이들이 서로 연대해 기성 사회와 맞서 싸우는 전선으로 재일 한인 문제가 설정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속한 일본 사회의 상황과 재일 한인의 존재가 맺는 관계를 깨달아가는 코스케는 조선인들의 잔치에서 ‘임진강’을 부르며 경자와 가까워지지만 교토 최고의 싸움꾼인 경자의 오빠 안성과 그의 친구들은 히가시 고등학교의 가라테 부원들과 걸핏하면 싸움을 벌인다. 이들의 싸움에서 조선학교 학생들의 박치기는 그들의 결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이다.

       
      ▲ 영화의 한 장면

    경자의 집을 드나드는 코스케는 안성 패거리 가운데 하나인 재덕과 친해지게 된다. 재덕은 코스케에게 자신들이 싸우는 이유가 두려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조선인 학생들에게 늘 쫓기는 꿈을 꾸는 이방인으로서의 두려움이 한편에 있다면, 귀국선을 타고 북한으로 가겠다는 귀향에 대한 소망도 한편에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에게, 북한 또한 실체로서의 조국이 아니라 상상의 조국일 뿐이다.

    경숙은 코스케에게 자신을 사랑한다면 조선으로 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안성은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될 수 없는 일본을 떠나 북한으로 가는 배를 타려 한다. 조선고교와 히가시고교의 싸움은 끊이지 않고 이 과정에서 조선고교의 재덕이 죽게 된다.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흐르는 ‘임진강’

    재덕의 장례식에서, 코스케는 일본에 강제 징용되어 왔던 재덕의 친척들로부터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코스케는 재덕의 장례식장에서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기타를 부수고 강에 집어 던지며 울부짖는다.

    비로소 재일조선인의 한을 깨달은 쿄우스케는 라디오 방송국을 찾아 눈물을 삼키며 생방송으로 ‘임진강’을 부르고, 라디오를 통해 경자와 조선인들은 그 노래를 듣는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강 중간에서 재일조선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은 여전히 주먹을 주고받으며 피를 흘리고, 안성의 여자친구는 혼자 아이를 낳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영화에서 ‘임진강’은 한반도 북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있다. 재일조선인 경자는 ‘임진강’을 부르고, 일본은 그 노래를 금지하지만, 경자에게 반한 일본인 코스케는 그 노래를 배운다.

    코스케는 재일조선인의 역사적 상황을 보편적인 사랑과 휴머니즘의 노래 하나로 이해하려고 한다. 이에 대해 ‘임진강’이 북조선의 노래가 아니라 무국적의 노래, 사랑과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확장되는 순간, 일본 전역에 울려퍼지는 그 순간부터 더이상 ‘임진강’이 아니라 그것은 <임진강>의 죽음, <임진강>의 상실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일본이 잃어버리고 외면하려는 것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은 “최근 한류가 유행하고 있으나 그와는 반대로 북조선은 일본에서 불신되는 있는 풍조가 있다”며 <박치기>는 “남도 북도 아닌 정중앙에서 생각할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68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박치기>는 재일 조선인에 대한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일본이 무엇을 잃어버렸고, 외면하려 하는지를 말하는 데 집중한다.

       
      ▲ 영화의 한 장면

    이에 대해 분단의 고통을 내재한 ‘임진강’에서 그 고통의 맥락, 그 고통의 과거와 현재를 제거하고, 오직 통합의 미래만을 상상하며 ‘어떻게’에 대한 고민이 없을 때, 경계의 지움은 경계 지음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지적은 결국 <박치기>가 한국의 민족적 영화가 아니라 일본의 입장에서 재일 한국인을 다루는 영화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안성은 북한으로 가는 대신 일본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아버지로 사는 길을 선택하고, 코스케의 급진사상가 친구 노리오는 학생운동에 투신하며, 경자는 남한도 북한도 아닌 오스트리아로 유학 가기를 꿈꾸고, 코스케는 이런 경자와 서로 더 많이 알아가고자 노력하며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타난다.

    청춘불패

    코스케가 민족학교 여학생들의 교복인 치마저고리를 입는 장면은 단지 경자를 웃게 만들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바깥으로는 일본 안에서 재일 한인으로서 민족적 차별에 의해 억압받는 일본내 피식민 집단의 일원으로서, 안으로는 가부장적 민족문화에서 자아실현을 희생하도록 강요받는 여성으로서 이중의 억압을 받은 경자와 연대하고자 하는 자세를 표현하는 것이다. 일본 민족학교 학생들의 생활을 담은 김명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학교>에는 여학생들만 치마저고리를 입어야하는 상황에 대해 불만을 내비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박치기>에서는 청춘의 군상이 1968년 학생운동이 패배했던 실제 일본의 현실과 반대로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는 것으로 재현된다. 이에 대해 그 시기 미국과 일본정부에 대항할 수 있었고 패배하지 않은 탈식민적 주체로서 ‘청춘’을 그림으로써 그것을 현재의 미국 제국주의 주도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하에 있는 동북아시아를 치유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로 치환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면서 코스케가 ‘임진강’을 부르고,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기에 실제로 일본의 인기 그룹인 크루세더스에 의해 ‘임진강’이 불리고, 일본인들이 그것을 들을 때, 비로소 일본에서 소비되는 한류가 한국이든 일본이든 자문화 중심적인 현상이 아니라 혼종화되고 협상 가능한 것으로 재전유 되리라고 기대한다.

    재일 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 

    그러나 재일 한인의 문제는 민족이라는 경계를 선명히 해야 옳은 것도, 한일 두 민족 국가 사이의 문화교류 차원에서 혼종화를 지향하며 재전유되어야 옳은 것도 아니다. 재일 한인 자체가 일본 안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집단 가운데 하나로서 ‘국가’와 일치하지 않는 ‘민족’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도록 촉구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봉합되었던 문제들을 표면에 드러내는 것, 갈등의 지점들을 전면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단일 민족국가 담론에 맞서 근대 민족국가가 구축해 놓은 억압의 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재일 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일관계가 아니라 일본 안에서 정체성을 유지하며 생존과 실존 둘 다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런 재일 한인의 목소리에 일본 사회가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한국에 대한 민족적 호오 감정의 수준이 변화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근대적 민족국가의 신화가 힘을 잃기 시작하는 세계화의 파도가 이미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서 세대를 이어온 재일 한인을 일본 자체가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일 한인의 목소리는 아직 주류 사회의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고>, <피와 뼈>, <박치기>같은 대중영화에서 재일 한인은 비주류적인 존재로서 재현되는 것이고, 이런 특징은 일본 영화 안에서 주류 사회와 비주류 사회의 경계에서 틈새를 벌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영화의 한 장면

    재일동포 3세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10년을 조선학교에 다녔던 이상일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평소엔 별로 재일동포라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 일단 생김새부터 별 차이가 없으니…. 아마 느낀다면, 지금처럼 이런 인터뷰를 하는 때가 아닐까.”, “정체성이란 점점 사라져가는 단어 아닌가. 정체성은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구별되는 게 아니다. 자기가 무얼 하고 싶은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에 따라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라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밝힌바 있다.

    보편적 마이너리티가 그린 일본사회

    영화감독으로서 이상일 감독에게 일본은 ‘모자란 게 많은 게 희망’인 나라이며, 그래서 ‘영화로 그릴 가치가 있는 세상’이고, ‘희망이란 건 자기가 찾지 않으면 안 되는’ 보편적 가치다.

    재일 한인 문제를 주요 영화 소재로 다뤄온 재일 한인 2세 최양일 감독이 일본영화감독협회 이사장직을 연임하는가 하면, 재일 한인 3세인 이상일 감독은 <식스티나인>(2004년)이나 <훌라걸스>(2006년)와 같이 재일 한인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비주류 인물을 다루는 작품들로 일본 메이저 영화계의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일본 영화계는 재일 한인을 타자가 아니라 일본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어내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일원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재일 한인은 여전히 차별받는 존재지만 자신을 재일 한인이라고 ‘커밍아웃’하는 단계를 넘어서, 재일 한인 감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보편적인 ‘마이너리티’가 보는 일본사회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재일’이라는 창을 통해, 그리고 더 나아가 ‘마이너리티’라는 창을 통해 일본사회에 간절히 말 걸고 싶어하는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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