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과 소녀시대 공통점은?"
    2009년 12월 05일 04: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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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레디앙 취재라니 그럴 것 같진 않습니다만, ‘소녀시대 어디가 좋아요’, ‘멤버 중 누가 제일 좋아요’, ‘소녀시대 아홉 명 이름은 다 아세요’ 식의 수준 낮은 질문은 하지 마세요. 질문하셔도 대답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그럼요. 아 물론입니다. 그, 그럴리가 있나요.”

왜 만화책 보면 가끔 등장하는 얼굴만한 땀방울(‘땀 삐질’을 상징하는)이 이마 옆에 매달려있는 것처럼 당혹스러웠다. 내가 준비해간 질문의 순서는 이랬다.

1. 소녀시대가 어떤 점이 좋으세요?
2. 가장 좋아하는 멤버를 꼽으라면?
3. ‘소원을 말해봐’ 춤 되세요?

혹시나 이쪽에 놓인 ‘뻔한’ 질문지가 노출될까봐 한 손은 인터뷰 메모를 하고, 한 손으론 수시로 테이블을 어지럽히며 시선을 교란했다. 바빴다. 지난 일요일 그렇게 진보신당 당원이자 소녀시대 삼촌팬인 이장원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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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진, 이혁재에게 공개사과 요구하다

   
  ▲이장원씨.(사진=고세진 기자) 

– 꽤 유명한 삼촌팬이고 <박중훈 쇼>에도 출연했다고 들었다.

= 전혀 유명하지 않다. <박중훈 쇼>에 출연하게 된 건 순전히 운이었다. 내가 활동하는 ‘화수은화’라는 소녀시대 팬카페에 삼촌팬 출연 모집 글이 올랐는데 난 신청하지도 않았다.

출연자가 결정된 후에 그저 팬으로서 프로그램 재미있게 만들어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는데, 작가에게 답 메일이 왔다. 예상 질문에 답변을 해줄 수 있냐고, 그게 채택이 되어 출연하게 되었다.

– 지난 2월에는 방송국 게시판을 통해 지석진, 이혁재씨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한 일도 있다고 하던데.

= 모 프로그램 녹화장에서 ‘꽃사슴 윤아’라는 플래카드를 들었는데 그걸 본 지석진씨와 이혁재씨가 “변태같다”, “왜 그렇게 사니?”라고 말했다. 프로그램 성격도 있고, 남을 웃기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라 본의 아닌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최소한의 어필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프로그램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담당 PD의 사과도 있었고, 그 정도에서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기사화되면서 결과적으로 파장이 컸다. 그때 일은 지금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훈련병 때 화장실에서 울어본 이후로 처음 기사에 달린 악플들을 읽다가 눈물까지 흘렸다.

악플 읽다가 눈물 흘리다

– 어떤 댓글들이길래.

= 뻔한 악플들이었다. 나이 쳐먹고 그렇게 할 짓이 없냐, 창피하지 않냐, 제 정신이냐, 백수냐, 왜 그렇게 사냐, 변태냐, 오바이트 쏠린다, 더럽다, 소아 성범죄 전과 조회해봐야 한다 등등 가지각색이었다.

모여있는 효과라고 해야 하나? 엄청난 숫자의 댓글들 그것도 악플들이 모여 있고, 그걸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났다. 연예인들이 안티팬들의 악플 때문에 괴로워하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절실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삼촌팬들에 대해 어린 여자 연예인들 속살이나 훔쳐보면서 대놓고 좋아한다고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많은 것 같다.

=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음란성은 보는 사람들 눈에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여고생들의 짧은 교복 치마를 음란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게 보고 안 보고는 보는 사람의 시선의 문제지 치마의 문제는 아니다.

소녀시대를 포함한 걸그룹의 소비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본다. 첫 번째는 마초적인 방식이다. 섹시하다면서 침 질질 흘리며 그들을 안주거리 정도로 삼는 것. 사실 많은 남성들이 그렇게 걸그룹을 소비한다.

걸그룹들을 소비하는 방식

두 번째는 팬으로서 진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가족이 됐든 친구가 됐든 애인이 됐든 우리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아껴주고 보호해주고 싶어한다. 공연장에서도 사람이 몰려 혼잡해지면 진짜 팬들은 멀찌감치 뒤로 물러선다.

나라고 왜 좀 더 앞쪽에 있는 좋은 자리에서 공연을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팬심'(팬의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거다. 회사의 컨셉대로 짧은 치마를 입고 나왔어도 그걸 음란한 시선으로 본다면 그건 그 사람이 그렇게 본 것일 뿐, 모든 팬의 시선이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물론 난 이성애자 남자다. 누군가 “티파니나 윤아를 이성애적 상대로 눈꼽만큼도 생각 안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이 여성인 이상 “눈꼽만큼은 당연히 있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눈꼽만큼은 내가 이성애자인 이상 어떤 이성에게든 가질 수밖에 없는 수준일 뿐이다. 심지어 프로이트는 엄마와 아들간의 관계도 성적인 관계로 설명했는데, 가능성은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 어떤 계기로 삼촌팬이 되었나

= 중국에 있을 때 한국에 있는 후배가 추천을 해줘서 노래를 듣기 시작했고, 그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삼촌팬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 소녀시대 팬 평균 연령을 조금 높인 거 말고는.

방송국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다

– 음악프로그램 공개방송도 자주 가나?

= 흔히들 ‘공방 뛴다’고 표현하는데, SBS <인기가요>나 MBC <쇼! 음악중심> 같은 음악프로 공개방송을 보러 간다. 시간만 허락하면 거의 빠지지 않고 가는 편인데, 나처럼 공방 뛰는 삼촌팬이 많지는 않다.

왜냐하면 기다린 순서대로 입장하는 방식이라 새벽부터 혹은 전날 밤부터 방송국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다려야 한다. 그게 나이 먹은 아저씨들한테는 쉬운 일일 리 없다. 아이들과 한데 뒤섞여 신문지를 깔고 앉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 체면이랄지 그런 것들을 많이 버려야 한다. 그런데 난 그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아이들과 똑같이 앉아 있는 그 느낌이 좋았다.

처음 공방 갈 때는 호기심으로 참여, 관찰한다는 생각이었다. 어렸을 때는 집안 사정이 제법 넉넉해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에 가서 좋은 자리에 앉아 공연도 보고 그랬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좋은 자리란 비싼 자리를 뜻하고, 좋은 자리에 앉는 것으로 누가 돈이 많은지 알 수 있다. 계급이 구분된다. 그러나 ‘공방’에서 앞자리는 다르다. 돈이 아니라 간절함, 정성, 열정이 있어야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게 맘에 들었다.

– 요즘처럼 날씨 추워지면 보통일이 아닐텐데

=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계속 그렇게 줄을 서고 꼼짝도 안하는 줄 안다. 볼 일도 봐야하고 요기도 해야 하는데 주구장창 그 자리에 진을 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번호표가 부여된다. 이 번호표를 부여하는 걸 통하는 말로 “명단 잡았다”고 한다. 대개 제일 먼저 온 사람이 명단을 잡는다. 명단을 잡은 사람이 늘어선 줄에 번호를 부여한다. 이름과 연락처 정도를 적는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출석 체크를 한다.

출석 체크 전까지 어른들은 차에 가서 눈을 붙일 수도 있고, 사우나를 갈 수도 있고, 피씨방에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스를 깔고 담요를 덮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이돌’ 팬 되는 이유들

– 그런 아이들 보며 눈살 찌푸리는 어른들이 대부분인데…

= 노숙농성 같은 거 하면 한심한 표정으로 훑고 지나가는 사람들 많이 보지 않나. 그러나 당사자들은 그 얼마나 절박하고 절실한가. 그 학생들도 그렇다.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눈으로 보자면 한심해 보이겠지만, 당사자들은 그게 절실하기 때문에 그 추운 날 박스깔고 밤을 세우는 거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게 힘들고 사는 게 힘들어서 위안을 얻으려고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팬이 된다. 내가 학원에서 중학생들 영어를 가르친다. 일터에서 그리고 팬카페에서 아이들을 많이 만나봐서 아이들에 대해서 좀 아는 편이다. 아이들은 사는 걸 우울해한다. 살기 싫어한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살게 하는 건 빅뱅이다. 빅뱅 보는 맛에 산다.

물론 스타의 숙소 앞에 진을 친다든지, 택시를 타고 추적한다든지 하는 사생팬(스타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팬)도 있다. 그런 것까지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 도를 넘어선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어른들은 “으이구 저 한심한 것들”에서 논의가 끝난다.

천길 낭떨어지 끝에 매달려 나뭇가지 하나 붙잡고 간신히 매달려 있는 애들한테 “으이구 저 한심한 것들”이라고 하고는 그냥 휙 돌아서거나 가던 길을 가버린다. 난 차라리 그들이 그걸 붙잡고 있는 게 고맙다. 그들과 함께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 있다가 그런 걸 느끼게 되었다.

막말로 외국처럼 마약 안 하고, 흉악한 범죄 안 저지르는 게 어딘가. 그저 연예인 좋아하는 것 뿐이지 않나. 소박하다. 혀를 차며 외면하는 것으로 아이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12시까지 공부 강요는 명백한 폭력

– 어떻게 해야 하나?

= 우선 교육문제와 관련해 진보진영이 대안을 제시 못하는 게 아쉽다. 래디컬한 변화를 이야기 하는 건 맞다. 그러나 ‘학원수업 10시 제한’ 같은 법안이 오히려 한나라당에서 나오는 건 뼈아프다.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건 뭐든 했으면 좋겠다.

가령 아이들에게 12시까지 공부를 강요하는 건 명백한 폭력이고, 인권의 문제다. 아이들 인권보호 차원에서도 충분히 법안을 만들 수 있지 않나. 반대로 학원강사들 입장에서도 그들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접근해 사교육 광풍에 일정 정도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 혹은 사교육 시장이 탈세의 온상이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사교육 시장의 탈세만 제대로 공론화시켜도 학원 절반은 나가 떨어진다.

또 외고-특목고 홍보를 누가 가장 열심히 하는지 아는가? 진보진영에서 가장 열심히 한다. 예를 들어 외고-특목고를 두고 우리는 명품 귀족 고등학교라고 비판한다. 명품이나 귀족 같은 말은 슬프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망하는 것들인데 그런 말을 써가며 비판을 하니 역효과가 발생한다.

외고-특목고와 명문대 진학률 간의 상관 관계가 높다는 비판도 하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다. 광활한 사교육 시장 자체가 명문대 때문에 생겨난 건데, 명문대와 외고-특목고 상관 관계를 비판하는 건 비판이 아니라 되려 홍보다.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전술의 문제인데, 이런 부분들에 대한 세심함이 부족하다.

외고-특목고 열심히 홍보해주는 진보진영

사교육이 지금처럼 덩어리가 커진 이유 중 하나가 “사교육이 점수를 올려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인정하면 안 된다. “아니다”라고 얘기해야 한다. 등골 빠지게 사교육비 들여봐야 소용없다는 걸 밝혀내야 한다. 사교육을 하면 점수가 올라간다는 데이터는 어디에도 없다.

가령 공부 지지리도 못하던 옆집 사는 개똥이가 서울대생한테 과외받고 점수가 올랐다? 맞다. 오를 수 있다. 점수가 오르면 개똥이 엄마 흐뭇해하면서 동네방네 자랑한다. 그런데 점수 안 오르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점수 안 올라도 개똥이 엄마 소문 내고 다니나?

사람들이 비싼 과외 받고도 점수 못 올리는 머리 나쁜 자식 뒀다고 할 테니, 엄마는 입도 뻥긋 안한다. 사교육의 효과는 그런 방식으로 정보가 유통되고 과장된다. 이 과장되고 왜곡된 부분들을 공략해 바로 잡아야 한다.

– 진보와 소녀시대의 공통점 같은 게 있나

= 둘 다 나에게 있어선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타지다. 나는 진보신당을 현실적인 이익 때문에 지지하지 않는다. 진보신당이 집권해서 사교육 없어지면 난 밥줄 끊어진다. 내 밥줄 끊겠다는 사람들 지지하는 건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이 가진 꿈을 함께 공유하는 거다. 그게 설령 나 살아 생전에 이뤄지지 않더라도, 그런 세상에 살아보지 못하더라도 그 느낌, 가상의 그 느낌을 난 소중히 여긴다.

솔직한 나의 욕망

소녀시대도 나에겐 환타지다. 내가 진보적 가치를 사랑하고, 그런 가치들이 구현된 세상을 동경하는 것과 같다. 간혹 소녀시대 멤버랑 사귀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나같은 팬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차라리 욕망을 얘기하라면 소녀시대랑 사귀는 게 아니라 소녀시대가 되고 싶은 게 오히려 솔직한 내 욕망이다. 그들처럼 화려한 무대에 서고 싶고, 수많은 사람들의 갈채와 사랑을 받고 싶다.

소녀시대 팬들은 공연만 쫓아다니지는 않는다. 나도 그런 활동을 함께 하는데, 주말에는 영유아원이나 요양원에 봉사활동을 다닌다. 소녀시대 때문에 모였지만, 그 안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고, 활동이 이뤄진다.

진보신당은 대중정당을 표방했다. 대중정당은 모든 층위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야 한다. ‘진정성’과 ‘진지한 고민’으로 대표되는 운동권 집단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 감수성에도 어필할 수 있는 트렌디한 맛이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겉으로 보기에 진보신당이 좀 있어보여서 그래서 입당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어린이날. 이장원씨가 어린이 대공원에서 무릎꿇고 석고대죄 중이다

피켓시위보다 덜 힘들 줄 알고

– 어린이들에게 석고대죄를 했다는 얘기는 뭔가

= 지난 어린이날에 어린이대공원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하얀 개량한복을 입고 7시간 반 동안 무릎꿇고 석고대죄했다. “저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죽을 죄를 지었기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죄를 청합니다”라며 어른들이 잘못 만든 사회와 제도로 아이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사죄했다.

그 전에도 일제고사 1인 시위를 몇 차례 했는데, 사실 피켓들고 서있는 것보다 덜 힘들 줄 알았다. 완벽한 오판이었다. 원래 10시간이 목표였는데 7시간 반만에 나가떨어졌다.

정말 웃기는 건 이런 거다. 내가 살면서 특이한 일을 많이 했다. 팬활동은 그 중에서 지극히 평범한 축에 속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관심을 갖더라. 석고대죄까지 하며 정작 사람들의 관심을 바랬을 때는 아무도 내 얘기에 귀기울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가끔 헛웃음이 나오곤 한다.

– 사교육을 비판하면서 정작 사교육을 통해 생계비를 벌고 있다.

= 내 삶의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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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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