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야권 공조 국회 입법투쟁
    By 나난
        2009년 12월 05일 01: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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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가 4일, 한국노총(위원장 장석춘)과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이수영), 노동부(장관 임태희) 등 노사정 3자 협상으로 타결됐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사업장 실태조사를 거쳐 내년 7월1일부터 시행하되 ‘타임오프제(Time-off)’를 적용한다. 복수노조는 2년 6개월 유예 후 2012년 7월부터 허용된다. 

    하지만 이번 노사정 3자 합의안은 민주노총이 배제된 상태에서 결정된 것으로, ‘노사정 합의’라는 이름을 붙여주기엔 부족하다. 또 그간 노동계가 반대해온 ‘교섭창구 단일화’가 원안대로 들어감에 따라 합의안에 대한 노동계 내홍은 물론 2년 6개월 뒤 또 다시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또 한나라당이 노사정 3자 합의안을 토대로 당론을 채택해 입법 발의할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노총이 민주당과의 별도의 입법안을 준비하고 있어, 복수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는 이제 국회에서 제2라운드가 시작된다.  

    이들은 합의문에서 전임자 급여금지 제도와 관련해 “중소기업의 합리적인 노조활동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사 교섭, 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등 관련 활동에 대해 사업장 규모별로 적정한 수준의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제)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결국 노조법 제 24조(단체협약으로 규정하거나 사용자의 동의가 있으면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않고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하는 것을 허용한다)와 제81조(노조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한다)는 그대로 두되 예외조항으로 근로시간면제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것.

    이는 노사 자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노동조합의 중요 의결기구인 대의원대회 등 자율적 노동조합 활동이 제약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노동계의 시각이다. 또 노사업무에 대해 근태를 인정해 유급처리하는 것으로, 전임자의 활동이 사측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될 위험이 높아졌다. 

       
      ▲사진=노사정위원회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기 위한 편법일 뿐”이라며 “‘기타 노사관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다는 모호한 내용으로 노조활동가의 유급활동 시간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여 행정부의 개입을 가능케 한 것은 법적 정당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수봉 민주노총 대변인은 “타임오프제는 상급단체의 활동을 협소화시키는 것은 물론 유급활동 시간을 대통령령으로 정함에 따라 고충처리, 교섭 등의 기준을 둘러싸고 현장의 갈등이 고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의 문구 중 ‘중소기업의 합리적인 노조활동’이라 명시한 부분 역시 명확하지 않다. 노사정 3자는 근로시간 면제제도와 관련해 “실태조사 등을 토대로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 시행령에 반영하고 준비기간을 거치겠다”고 했지만 이는 결국 ‘중소기업만’을 보호하겠다는 뜻으로, 규모별 비례로 근로시간 면제가 적용되지 않을 경우 형평성의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 있다.

    여기에 복수노조 금지는 국제노동기구(ILO)가 ‘결사의 자유 위배 소지’ 및 ‘단결권 제한’을 이유로 그간 폐지를 권고해 왔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복수노조 설립을 금지하는 국가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또 다시 복수노조 시행이 유예된 것.

    또 복수노조 금지는 노동자의 ‘단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한국노총은 ‘시행 유예’를 선택하며 스스로 노동자의 권리를 외면한 꼴이 됐다. 민주노총은 “정부와 사용자가 노리는 것은 전체 노동자의 90%에 달하는 중소영세 노동자,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의 단결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한국노총 지도부는 수천만 노동자의 권리를 팔아먹은 한심한 모리배로 전락했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노사정 3자가 "복수노조 교섭단위를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설정"함에 따라 산별교섭에도 제동이 걸렸다. 상급단체인 산별노조와 개별사업주의 교섭(대각선 교섭)으로 이뤄지는 산별노조체계 역시 흔들릴 수 있는 상황. 이는 산별노조운동으로 교섭권과 쟁의권 등을 가진 민주노총 산하 각 연맹의 힘을 빼겠다는 것으로 결국 민주노총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정부와 경총의 의도로 해석된다.

    또 복수노조 관련 노동계가 반대해 온 교섭창구 단일화가 그대로 시행됨에 따라 교섭권 없는 노조라는 상황까지 초래될 위험에 처했다. 노동계는 그간 교섭창구 단일화가 “소수 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왔다. 노사정 3자는 합의안에서 “소수 노조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교섭대표 노조에게 공정대표 의무를 부여한다”고 명시했지만,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게 노동계 입장이다.

    이상훈 민주노총 정책부장은 “의견을 듣는다는 것일 뿐 권한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라며 “또한 이를 위반했을 때 이이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될 것인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노사정 3자 합의안이 도출됨에 따라 한나라당은 이를 토대로 오는 7일 의원총회를 열고 관련 법 개정안을 확정짓고 개정 절차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민주당 등 야권이 일제히 반발하는데다 민주당이 민주노총과 단일 입법안을 마련하고 있어 복수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는 국회에서 제2라운드를 시작할 전망이다.

    여기에 이번 합의는 노동계 양대 축인 민주노총이 배제된 상태에서 나온 결과로, 진정한 ‘노사정 합의’라 인정하기 곤란하다. 양대 노총과 경총, 대한상의, 노동부, 노사정위원회는 복수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를 놓고 6자회의를 10차례에 걸쳐 진행했지만 지난 25일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파행으로 치달았다.

    당시 양대 노총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2010년 즉시 시행’을 주장하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은 정부를 향해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선언했다. 양대 노총의 공조 역시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복수노조 반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유예’ 입장으로 선회하며 양대 노총은 갈라서기 시작했다. 한국노총 내부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지도부 사퇴요구까지 흘러나오며 “노동자의 권리를 스스로 내팽겨 쳤다”는 비난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이날 노사정 3자 합의안이 발표되자 “협상 타결이 아닌 ‘밀실 야합’에 지나지 않는다”며 “복수노조 허용과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노사 자율결정 원칙을 국회 입법과정에서 반드시 반영해 관철시키겠다”고 밝혔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역시 “복수노조는 당장 허용하고, 전임자임금 지급문제는 국제기준에 맞게 노사자율로 해야 한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호하게 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과 민주노총은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노사자율 교섭’을 요구하며 ‘전임자 임금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한 조항’과 ‘전임자 임금을 지급한 사용자를 처벌하는 조항’을 삭제하는 하는 내용의 대체 법안을 입법 발의할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오는 8일 긴급 중앙집행위를 열고 노사정 3자 합의안과 7일 발표 예정인 한나라당 개정안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복수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회 일정에 맞춰 법안 싸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9일에는 복수노조-전임자 문제, 단체협약 해지, 공무원노조 탄압 등 현 정부 아래 자행되고 있는 노동기본권 탄압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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