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닭, 알 낳는 기계들을 생각하며
        2009년 12월 04일 03: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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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구구……….”
    무슨 소리? 잠결에 뒷켵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아! 닭소리!
    “살았다!”
    부리나케 뒤꼍으로 가서 닭들의 숫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전부 살았다!”
    여섯 마리 전부 살았던 것이다. 밤 사이 꿈길에서 종일 내 귓가를 따라다녔던 그 소리, 닭소리 구구구……….그것은 꿈 속에 들렸던 환청이 아니라, 실제로 닭들이 울었던 소리였다. 

       
      ▲ 사진=필자

    지난 밤, 금진항 항구마차에서 물가가자미 말린 것으로 소주를 한 병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손전등을 들고 뒤꼍으로 갔다. 여섯 마리는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구석에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잠자리가 바뀐 탓에 몹시도 초라하고 불쌍하게 죽은 듯이 있었다. 닭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알에게 영양분을 전부 빼앗기고 거죽만 남아 있었다.

    거죽만 남은 닭들

    “아마, 죽을지도 몰라요. 따스하게 해줘야 할 거 같아요. 워낙 따뜻하게 있던 놈들이라 …….”

    후배의 그 소리에 몹시도 걱정이었다. 뒤꼍 곳간에 짚으로 자리를 만들어 주었건만 그곳 역시 밖이나 다름없었다. 놈들이 같이 체온을 나누기 위해 붙어서 잘 줄 알았는데,  각자가 감옥 같은 30센티 공간에 생활한 탓인지 서로를 의지할 줄 몰랐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었다. 그런데, 전부 살았다니!

    축산학과 출신 후배가 산란계를 도태시킨다는 소리를 듣고 그 중 여섯 마리를 얻어왔다. 1년 6개월 전 마리 당 5천원에 사와서 알을 빼먹다가 경제성이 떨어지자 전부 처분하는 것이다.

    오로지 알을 낳기 위해 좁은 공간에서 그들이 평생 배출하는 마지막 난자 한 알까지 뱉어내고는, 사료 대비 알값이 손해가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효용가치는 알의 단백질에서 고기의 단백질로 변할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저질 단백질인 햄공장으로 마리당 5백원에 팔려가는 것이다.

    그 동안 차라리 생명이라기 보다는 알 낳는 기계였다는 말이 정답이었다. 기계로써 효용가치를 상실하자 무자비하게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축산인 것이다. 차라리 농업의 범주에 집어넣지나 말지. 왜 소박한 농업이라는 이름으로 농과대학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축산업은 산업의 분류상 제조업의 한 말석을 차지해야지만 옳은 일이다.

    축산업은 제조업이 됐다

    그래서, 축산학과를 나와서 한 번도 축산업 언저리에 얼씬 거리지 않은 일이 다행이었다. 그 동안 축산을 하는 선후배들의 어려움을 옆에서 봐온 탓이 아니었다. 내가 알기로도 세 명이나 자살한 우리 동문들의 일이 겁이 나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이 생명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에서였다.

    드디어 여섯 마리의 생명을 건질 수 있는 것이다. 후배의 눈에는 나의 행동이 도무지 웃기는 일로 비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마치 덜떨어진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과 같은 내 마음이 전혀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질 좋고 맛있는 단백질에 미쳐 있는 인간의 입장에서 무엇인가 작은 것이라도 하고 싶었다. 안전한 소고기 단백질을 위해 촛불을 들었던 진보 좌파들에게도 작은 투정이라도 하고 싶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안전한 식탁에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생명에 있지 않은가.

    인간들만의 평등이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 아니던가. 만물과의 평등, 우주와의 평등만이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민주적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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