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은 왜 덕만을 지지하지 않을까
        2009년 12월 03일 08: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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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가야 유민들을 완전히 포섭하는 에피소드가 방영됐다. 드라마상에서 가야 유민들은 신라의 최하층 인민이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차별 받으며 미래의 불안에 허덕인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폭동을 일으킬 기회만 엿보는데, 덕만은 오랫동안의 구애 끝에 마침내 그들을 끌어안는 데에 성공한다.

       
      ▲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한 장면

    원래 가야 유민들은 신라사회에서 불안의 근원이었으나, 덕만에게 포섭된 그들은 덕만의 충성스런 병력이 되어 신라의 방파제가 된다.

    이런 식의 설정은 드라마 <주몽>에도 나왔었다. 거기서는 고조선 유민들이 부여에서 차별 받았다. 그것에 분노한 주몽은 고조선 유민들을 계속 차별하려는 대소와 대립한 끝에 별도로 나라를 세운다. 주몽이 세운 나라는 고조선 유민을 비롯해 인근의 군소부족들을 모두 차별하지 않고 포용하는 나라였다.

    <선덕여왕> 통해 바라본 민심

    얼마 전 방영된 <천추태후>에서도 발해 유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중요한 대립지점으로 등장했었다. 귀족들은 발해 유민을 차별하고, 박해한다. 그에 반해 주인공인 천추태후는 발해 유민들을 포용하고 먹고 살 길을 열어준다.

    사회의 최약자이면서 동시에 ‘우리’와 ‘타자’ 사이의 경계선에 있는 집단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위의 드라마들은 중요한 갈등요소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외 없이 모든 경우에 주인공은 그들을 포용하고, 악당은 그들을 차별한다.

    시청자들은 주인공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만약 주인공이 시청자가 보기에 옳지 않은 쪽으로 움직였다면 시청자들은 비난하거나, 혹은 감정이입이 깨져 드라마로부터 등을 돌렸을 것이다.

    주몽이나 덕만이 그렇게 많은 시청자로부터 지지 받았다는 것은 그들의 포용적 리더십을 국민들이 원했다는 의미다. <선덕여왕>에서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캐릭터의 인기는 미실이 훨씬 더 높았다. 그러나 덕만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반대편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리면서도 덕만의 리더십이 옳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드라마 속에서 포용적인 리더십은 너무나 당연히 주인공의 것이다. 포용적 리더십을 제시하는 주인공은 승승장구하고 시청자들은 그런 주인공의 승리를 기뻐한다. 현실과 정반대인 것이다.

    가야 유민과 용산 철거민

    덕만이 가야 유민이나 신라의 하층민에게 제시한 것은 차별 철폐 정도만이 아니었다. 미실이 귀족의 쌀투기를 방조할 때, 덕만은 귀족에게 철퇴를 가해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다. 쌀투기로 인해 자영농이 노비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미실이 부자 감세를 주장할 때 덕만은 가난한 백성을 위해 고민한다. 마침내 덕만이 찾아낸 방법은 백성들에게 땅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땅과 함께 서민금융과 강력한 생산수단(철제 농기구)를 제공해 백성들을 모두 자영농 중산층으로 만들려 한다.

    이런 덕만의 정책에 의해 가야 유민들이 모두 미래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어 기꺼이 신라의 충성스런 신민으로 귀순한 것이다. 이런 희망이 없었다면, 신라 체제 속에서 자기 자식들이 거지꼴을 못 면할 것이 뻔하다면 그들이 신라에 귀순했을 리가 없다.

    우리 사회엔 요즘 가야 유민과 같은 경계선에 선 집단이 형성되고 있다. 바로 혼혈 집단들이다. 우리나라가 덕만처럼 그들을 포용하는 리더십을 보이지 못한다면 그들은 결국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

    덕만이 포용하려는 가야 유민을 미실은 하루아침에 삶터에서 내쫓는다. 그것은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했다. 용산참사는 자산가, 즉 부자들의 개발·땅투기 이익을 위해, 그나마 그곳에서 먹고 살던 자영농이 쫓겨나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덕만은 그런 참사를 막을 뿐만 아니라, 세입자(소작농)들에게 아예 자신들의 땅을 영구적으로 갖도록 해 다시는 귀족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기반을 조성해준다. 이런 덕만을 지지하는 국민이 왜 현실에선 부자 정치세력을 지지할까?

    현실정치의 답답함, 드라마에서 해법을

    <천추태후>에선 국가재정이 부족해지자 주인공인 천추태후가 부자증세를 결단한다. 귀족들은 거기에 결사 반대하고 국가는 내란의 위기에까지 처한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을 핍박하는 훈구대신들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국방비용을 백성들에게 전가하려 한다. 이순신은 거꾸로 전라좌수영 내부의 차별을 철폐해 양반들에게 더 많은 의무를 부과한다.

    언제나 주인공들은 서민백성의 편이고, 악당들은 부자귀족의 편이다. 우리 국민은 적어도 드라마를 볼 때만은 이런 구도를 사랑한다. 아무도 왜 승리하는 덕만이 부자귀족편을 들지 않느냐며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왜 현실정치에선 반대로 간단 말인가?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사랑하는 드라마의 구도를 차분히 현실에 대입해보도록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하면 국민들은 왜 드라마를 볼 때는 주인공의 승승장구가 통쾌했는데, 현실정치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을 볼 때는 마음이 답답했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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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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