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동-중계동 학부모는 힘이 세다?
        2009년 12월 06일 01: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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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교육청이 올해 첫 시행을 앞두고 있는 고교선택제를 바꾸었습니다. 아니, 200개 후기 일반계 고등학교 90,243명을 대상으로 한 원서접수가 오는 15일부터이니, 정확하게는 원서접수를 코앞에 두고 제도를 변경하였습니다.

    제도는 ‘2단계부터 강제배정’의 형태로 바뀝니다. 애초 고교선택제는 3단계입니다. 1단계(20%)와 2단계(40%)는 희망학교 추첨배정이고, 3단계(40%)는 강제배정입니다. 그런데 2단계 희망학교 추첨배정이 강제배정으로 바뀝니다. 덕분에 희망학교 추첨배정의 비율이 60%에서 20%로 줄어듭니다.

    써내는 학교수가 4개에서 2개로 줄겠군요

    원서를 내는 학생 입장에서 보면, 원래는 4개 학교를 써냅니다. 이 중 ①2개는 서울시 전체에서 가고 싶은 고교이고, ②다른 2개는 자기 학군에서 가고 싶은 학교입니다. 그러면 컴퓨터가 알아서 해줍니다.

    컴퓨터가 작동하는 과정은 먼저 ①서울시 전체에서 2개 고교 지원한 내역을 가지고 정원의 20%를 추첨 배정합니다. 그리고 ②자기 학군의 희망학교 2개를 가지고 40% 추첨 배정합니다. ③나머지 40%는 통학편의, 종교, 지원 내역 등을 고려하여 강제배정 합니다.

    그런데 서울시 교육이 ②번째 단계인 자기 학군 희망학교 추첨배정을 강제배정으로 바꾸었습니다. 따라서 자기 학군에서 가고 싶은 학교 2개를 써낼 필요가 없습니다. 지원해봐야 거주지에서 가까운 학교로 배정됩니다. 희망하는 학교로 갈 수 있는 방법은 ①번째 단계로 국한됩니다. 비율로 따지면, 20%입니다.

    쏠리면 밀리기 때문에 제도를 바꿉니다

    왜 바꿀까요? 쏠리면 밀리기 때문입니다. 희망하는 고교를 선택하게 되면, 자녀와 부모의 교육관에 따라 고릅니다. 어떤 부모는 인성교육이 잘 되는 학교, 집에서 가까운 학교, 학생을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학교를 우선 순위에 둡니다. 반면 어떤 부모는 일제고사 성적이 좋은 학교, 명문대 진학실적이 좋은 학교를 ‘훌륭한 고교’로 생각합니다.

    물론 아무래도 SKY 잘 보내는 학교로 마음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일례로, 지난 7월 모 신문이 중 1~3학년 1288명에게 ‘고교 선택의 기준이 뭐냐’고 물었을 때, 649명(50.3%)이 ‘명문대 진학 실적이 좋은 학교’라고 답한 바 있습니다. ‘왜 그러냐’는 추가 질문에는 “명문대학을 가야 좋은 직장을 갖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응답합니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도 보고 고교별 수능 점수도 알려줍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학생을 인간적으로 존중해주는 학교를 선택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대신 강남구, 양천구, 노원구를 먼저 떠올립니다. 여긴 대치동, 목동, 중계동의 학원가 등 소위 ‘우수한 교육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고교선택제에서 이들 동네로 쏠림현상이 발생하면, 그 지역 거주학생은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동네 아이들이 추첨 배정되어 들어오면 원주민은 자연스럽게 나가야 합니다. 자기 학군 내 먼 학교로 ‘원거리 배정’되거나 아예 다른 학군으로 ‘이동 배정’될 수도 있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이 제도를 바꾸는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자기 동네에서 밀리는 학생들 때문입니다.

    강남에서 밀리는 학생들이 없지만…

    서울시 교육청은 고교선택제 시뮬레이션을 두 번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는 2008년 10월과 2009년 11월에 발표합니다. 두 차례 시뮬레이션에서 강남(강남구와 서초구)에서 밀려난 학생은 없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강남 거주 학생들이 정원보다 적고, △자기 학군 학교를 선택한 강남학생들이 대부분이고, △2단계 40% 등 자기 학군 배정 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2차 시뮬레이션에서 강남 거주 학생은 10,867명입니다. 이 중 다른 학군으로 간 학생은 73명(0.7%)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밀려서 간 게 아니라 지원해서 다른 학교로 간 아이들입니다. 따라서 강남에 거주하면서 강남 소재 고교를 지원하면 100% 성공합니다.

    2차 시뮬레이션의 학군간 이동배정 현황(단위: 명)

    학군
    배정대상자
    (거주자)
    타 학군으로 전출
    1단계
    3단계
    비율
    동부
    6,488
    566
     
    566
    8.7%
    서부
    10,204
    1,325
     
    1,325
    13.0%
    남부
    8,774
    816
     
    816
    9.3%
    북부
    10,826
    372
     
    372
    3.4%
    중부
    3,935
    245
     
    245
    6.2%
    강동
    12,520
    431
    480
    911
    7.3%
    강서
    11,901
    263
     
    263
    2.2%
    강남
    10,867
    73
     
    73
    0.7%
    동작
    6,998
    698
    38
    736
    10.5%
    성동
    6,094
    723
    70
    793
    13.0%
    성북
    6,787
    1,087
    50
    1,137
    16.8%
    95,394
    6,599
    638
    7,237
    7.6%

    이에 비해 강남으로 진입한 학생은 1단계 1093명, 3단계 518명 등 총 1611명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서울시 교육청이 다른 학군 거주자 중 강남을 지원한 학생이 11%라고 밝힌 점에 기초하면, 약 9232명이 강남을 지원했습니다. 이 중 1611명이 강남으로 입성한 겁니다. 지원자 중에서는 17.5% 정도이고, 강남의 정원 12,838명 중에서는 12.5%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에서 밀린 학생은 없습니다. 고교선택제 시스템에서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정원이 남아도는 가운데, 강남 학생들이 자기 동네 학교로만 써내면 가능합니다. 여기에는 자기 학군 내에서 추첨 배정하는 2단계가 40%인 점도 한 몫 합니다.

    다만, 자기 학군이긴 하나, 집에서 먼 학교로 ‘원거리 배정’되는 일은 벌어질 수 있습니다. 2차 시뮬레이션에서는 여학생 80여명이 원거리 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는 강남 거주 학생 10,867명 중에서 많은 비중이 아닙니다.

    물론 ‘고교선택제’라고 하길래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는 것처럼 믿었던 이들은 성에 차지 않을 겁니다. 강남 아이들이 나가야 강북 학생들이 들어갈 수 있는데, 강남 아이들은 복지부동이기 때문입니다.

    목동과 중계동은 밀리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목동과 중계동은 다릅니다. 여기에서는 밀리는 학생들이 발생합니다. 2차 시뮬레이션에서 타지역 거주 학생이 목동과 중계동으로 들어온 비율은 40%로 나왔습니다. 다른 학군이나 같은 학군 내 다른 지역 학생들이 이 정도로 입성하면, 목동과 중계동에 살던 학생들은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즉, “목동, 중계동 소재 학교에 대한 타지역 학생의 1~2단계 지원집중 현상은 전입 인원의 증가로 해당지역 거주학생 중 일부가 종래 배정지역을 다소 벗어나는 학교로 배정이 발생”합니다. 다만,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이 발표한 2차 시뮬레이션 결과 보고서에 나와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추정은 할 수 있습니다. 중계동은 북부학군(노원구, 도봉구)이고, 목동은 강서학군(강서구, 양천구)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부 학군 내에서 ‘원거리 배정’된 학생은 남학생 110여명과 여학생 290여명 등 400명 정도입니다. 강서 학군은 남학생 310여명과 여학생 380여명 등 도합 690명 정도 됩니다. 이들이 모두 목동과 중계동에서 밀려난 학생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고교 균형발전하지 않는 한, 고교선택제는 애초부터 무리수

    그러니까 목동과 중계동 때문에 서울시 교육청이 고교선택제를 수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싫다’는 목동과 중계동 거주자들의 열망에 부응하는 셈입니다. 꽤 힘있는 원주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수정하려면 좀 더 일찍 했어야 합니다. 고교간 격차나 교육환경의 차이가 있는 가운데에서는 ‘쏠림 현상’과 ‘밀려나기’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차 시뮬레이션이 나온 작년 10월에 고치든가, 아니면 2차 시뮬레이션을 앞당겨 시간을 벌었어야 했습니다.

    2차 시뮬레이션의 모의원서는 올 4월에 받아놓고, 결과는 11월 3일에 나왔습니다. 결과 분석을 3분기에 한다고 했는데, 결과 발표는 3분기 말이 아니라 4분기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왕 수정하려면, “선택해서 고등학교를 가는데, 집 근처 학교로 진학한다”는 환경 조성이 먼저입니다. 뒤처지는 학교, 일명 ‘비선호학교’에 대한 역차별로 고등학교 균형발전을 꾀한 다음, 이 제도를 시행해야 합니다. 일제고사 성적, 수능 점수, 대입 실적, 사교육 환경 등을 고려하게 만들어놓고, 그 격차가 상당한 가운데 고르라고 한 것 자체가 어찌보면 무리수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서울시 교육청은 제도 시행 10일을 앞두고 갑자기 배정방식의 일부를 손 보는 선에서 제도의 틀을 바꿉니다. 고교선택제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공공기관이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잘만 하면 대치동, 목동, 중계동 부근으로 갈 수 있겠구나’라고 불 질러놓고, 이제 와서 “곤란하겠는데요”라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불장난의 책임을 어딘가 물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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