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가오는 북미대화, 한국 또 실기하나?
        2009년 12월 01일 09: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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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12월 8일부터 1박 2일, 혹은 2박 3일간 평양을 방문한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간의 첫 공식대화이다. 이에 따라 관련국들의 기싸움도 치열해지고 있다.

    북한, 평화협정 필요성 강조

    북미 대화를 2주 앞둔 11월 23일,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신문은 “조선반도에서 대결과 충돌을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조미 사이의 정전 상태를 끝장내고 평화보장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은 11월 10일 발생한 3차 서해교전을 거론하면서 “이번 무장충돌 사건이 그 절박성을 입증해 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조속히 대체해야 한다며, 미국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일단 싸늘하다. 국무부의 이언 켈리 대변인은 11월 24일,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시에 (평화협정과 같은) 그런 문제를 논의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보즈워스의 방북을 통해) 6자회담 재개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모든 에너지와 관심을 여기에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평화협정 문제는 6자회담에서 이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그룹이 이미 구성돼 있다”고 말해, 6자회담이 재개되면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북미대화를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의 전망도 냉담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부 고위당국자는 11월 29일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이라는 시그널이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북미대화의) 전망이 어둡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당국자는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려면 10년이 걸리지만 핵심적 비핵화만 따지면 수년 안에도 가능하다”며, 핵심적이고 비가역적인 비핵화 조치와 관련해, 핵무기와 핵물질의 해외 반출, 원자로 노심과 재처리 시설의 핫셀(Hot Cell)에 대한 화학물질 부과나 콘크리트 타설 등의 방법을 통한 완전한 불능화를 제시했다. 이는 6자회담이 재개시, 바로 ‘본게임’으로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거듭 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본게임 치를 준비되어 있나?

    문제는 한미 양국이 ‘본게임’으로 들어갈 준비를 갖추고 있느냐에 있다. 핵무기와 핵물질의 폐기 및 영변 핵시설에 대한 영구 불능화 조치는 사실상 북한의 핵능력이 완전히 제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도 ‘근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여야 한다.

    여기서 근본 문제란 앞서 언급한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북미 관계 정상화와 경수로를 비롯한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 한미동맹의 대북 위협 감소 조치 및 한반도 군축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러한 필요성을 일부 인정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11월 19일 “북한이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비핵화를 추진하면 북미 관계 정상화와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 경제지원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지난 2월 동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밝힌 대북정책 구상과 일치하는 것으로, 북한과의 포괄적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 내에서 평화체제 구상은 이명박 정부 들어 자취를 감췄다. 오히려 내년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앞두고 미국과의 ‘2+2 전략회의’(양국의 외교·국방장관이 참석하는 회담)를 미국에 제안하는 등 ‘전략적 한미동맹 구축’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쟁 유산을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이 평화체제 구축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자 6.25’ 담론을 다시 꺼내들면서 냉전 시대의 유산을 재건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년 6월, 6.15 공동선언 10주년과 남북한이 사상 최초로 동반 진출한 남아공 월드컵 개막을 발판삼아 남북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추구하기보다는 ‘6.25’를 앞세운 퇴행적인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동시다발적인 회담 추구해야

    기실 오늘날의 정세는 동시다발적인 회담을 통해 한반도 문제의 뿌리를 캐내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우리의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의 평화협정 논의 제안은 역으로 북핵 문제의 본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는 기회를 잉태하고 있다. 그러나 ‘선 핵폐기’를 고집하는 한, 그 기회는 유산되고 말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6자회담 재개를 통해 북핵 문제의 본질을 논의하는 것과 동시에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한반도 평화포럼’을 시작하는 것이다. 남-북-미-중 4자회담이 유력한 평화포럼은 합의된 지 4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 상견례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북미대화를 통한 북미관계 정상화, 남북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 북일대화 재개를 통한 북일관계 정상화를 시도할 수 있는 조건도 무르익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6자회담과 북미대화 병행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고, 북미대화의 핵심 의제는 관계정상화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북한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것도 자존심을 접고 남북대화에 대단히 적극적이다. 일본의 하토야마 정부 역시 총리의 방북을 포함한 북일대화 타진에 나선 상황이다. 일본의 변화는 과거 6자회담 훼방꾼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프로세스의 협력자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역사상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한 국제적 환경이 지금과 같이 한국에게 유리하게 조성된 사례는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한국 정부는 이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전략적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 최근에 쓴 책으로 ‘오바마의 미국과 한반도, 그리고 2012년 체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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