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면 깜짝 놀라는 사과
    2009년 12월 01일 09: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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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이야기가 여러 가지 있다.

이브와 아담의 사과는 ‘태초(太初)의 사과’
만유인력 뉴턴의 사과는 ‘과학(科學)의 사과’다.

화가 세잔느의 정물화 속 사과는 ‘우정(友情)의 사과’이고
트로이의 황금사과는 ‘미(美)의 사과’다.

활의 명사수 윌리암텔의 사과는 ‘자유(自由)의 사과’이며
철학자 스피노자의 사과는 ‘종말(終末)의 사과’이고
나폴레옹의 사과는 ‘희망(希望)의 사과’다.

백설공주의 사과는 ‘미혹(迷惑)의 사과’다

   
  

그리고 하나 더 아홉 번째로 우리나라에는 ‘맛보면 깜짝 놀라는 사과’가 있다. 전북 무주 양한오 ‘나만의 사과’. 그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무풍사과축제

   
  ▲ 감홍, 기꾸, 료마, 미시마, 시나노, 야다까, 양광, 조나골드, 추영, 홍로….

지난 10월말. 무주군 ‘무풍사과축제’에 무주농업기술센터 김영수 소장의 초청을 받았다. 한해 농사를 수확하고 마무리하는 시점이라 대동제 성격도 가미된 잔치였다. 하늘에 감사하고 이웃끼리 정도 나누고…

시골 어르신들이 오순도순 삼삼오오 고단했던 한해 농사의 회포를 푸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막걸리 한잔에 정이 듬뿍 듬뿍 날라 다닌다.

입구에 들어서니 사과가 종류별로 진열 전시된 시식코너가 눈에 띈다. 사과 각자의 이름도 다르지만 색택도 다르고 맛도 차이가 난다. 저마다 유전자적 특성을 지니고 있을테니 사람들 제 각각인 것이나 사과 다른 것이나 매한가지이겠다. 열 가지 사과 맛이 궁금해서 시식을 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과 맛이 다 사과면 사과지 뭐 별반 다를라구?”
“야! 이거 확연히 다르네…”

그랬다. 시중에서 한가지 골라 먹을 때는 입맛이 간사해서 잘 구분이 안되다가 이렇게 동시에 맛보는 입은 간사함을 넘어선다. 아주 정밀해지는 것이다. 혀의 민감한 미각이 사과 맛의 개체별 차이를 구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난 추영, 시나노, 야다까를 시식했다 양광과 홍로는 이전에 먹어본 경험치가 있어 다섯 가지를 맛본 셈이다. 껍질두께, 색깔의 차이, 즙액의 차이, 단맛의 구분, 과육이 씹히는 정도 그리고 고유한 향기… 기본적인 상식에 근거하고 말초적이고 단순한 감각으로 나누어 봐도 다 다르다.

음~ 이렇게 골고루 사과를 운영하는 양반은 누구일까? 궁금했다. 저렇게 적지 않은 양의 사과를 종류별로 무료 시식하도록 하여 무풍사과의 우수함을 널리 알리려는 판단은 개인 농장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지 싶어서다.

김영수 소장에게 무주에서 안병권 보부상단의 컨셉에 맞는 이야기가 풍부한 사과농장 한곳을 소개해줄 것을 요청했다. 직원들과 요모조모 숙의를 하더니 농장 한곳을 추천한다. 바로 축제 행사장 입구에 마련된 10여가지 사과 시식코너를 운영하는 주인공 양한오씨였다.

그렇게 조금은 거만한(?) ‘나만의 사과’ 주인공 양한오씨를 만났다. 사과에 관한 한 거침없는 포스가 뿜어져 나온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사과’란다.

무주사과의 개척자

   
  ▲ 전북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 대덕산자락에 상은농장이 있다.

대덕산자락의 곁은 대단하다. 노란색테두리 안이 상은농장(14,000평)인데 저 정도만 해도 해발 560여m 고랭지다. 사진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 덩어리(대덕산)가 웅장함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아주 큰 것을 마주 대할 때 덮어놓고 느끼게 되는 경외감 비슷한 것 포함해서…

사과농장으로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구나 단박에 알아차리겠다. 일교차가 크고 오염원이 적고 일조량이 풍부하고… 오고 가는 바람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볓도 사과농사에 안성맞춤일듯했다.

1990년대 초 이전에는 무풍은 주로 담배, 고랭지 배추, 무 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큰 특색이 없는 지역이었다. 이곳에 양한오씨는 사과품종 10여 가지를 들고와 사과시대를 열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친놈이라며 손가락질 해대기 일쑤였다. 여기서는 사과가 안된다는 게 이유였다.

심지어 지역출신으로 고관대작을 지낸 한 분은 공연한 생각으로 무주사람들을 혹세무민한다며 대놓고 면박을 주었다. 하지만 10년 후 무주 무풍의 주 수입원으로 사과산업이 자리잡고 나서는 그 면박을 주던 분이 ‘무풍을 살린 개척정신의 소유자’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누구나 개척자는 외롭다. 손가락질 받고 때로는 어이없는 이야기로 상처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양한오씨는 사과의 최고품질을 경신해내며 무주에 반딧불사과의 지평을 새롭게 열고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일이 되어가고 돈을 버는 모습을 보이니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양한오 ‘나만의 사과’

   
  ▲ 과수원에서 양한오(62세)

양한오씨의 나만의 사과가 나오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나무전정, 접지, 적과
땅심 키우기
12가지 미량원소 관리하기
색상을 자연적으로 만들어 내기
사과나무 부위별로 관리하기
선호도가 높은 사과 만들기
단풍이 제때 들도록 하기
기타 여러 가지…

하나하나 이야기가 아닌 게 없다. 사람들은 당도만 높으면 선호도도 높아진다고 이야기하나 양한오씨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신미(신맛), 아삭거림, 고유의 향 등이 정확하게 발현이 되야 하고 나무의 본성에 얼마만큼 충실하게 다가서느냐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고객들의 ‘선호도’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사과재배 전 과정을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본다

1. 12가지 미량원소 관리

   
  

붕소, 아연, 마그네슘, 철, 망간, 황 등 12가지 미량원소중 하나라도 결핍하게 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연중 이 미량원소관리에 신경을 바짝 쓴다.

2. 사과는 제때 단풍이 잘 들어야 한다.

   
  

사과수확 무렵 사과 잎 단풍이 제때 잘 들도록 관리한다. 영양이 너무 과하거나 생장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면 잎이 단풍 들기를 주저한다. 그러다 보면 과육의 당도와 품질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또 단풍이 잘 들어야 그 겨울에 꽃눈(다음해 사과가 달리는 곳)이 얼지 않는다. 사과나무 스스로 살아내려는 몸짓을 최대한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3. 멍텅구리와 뺀질이

   
  

살아가는 것들은 다 제각각이다. 제 성질대로 산다. 한 나무에 달린 사과도 마찬가지다. 수확할 시기에 나뭇가지의 가운데 부분에 달리는 사과들이 달고 맛있고 색깔도 좋게 나타난다.

나무 줄기에 가까운 가지 근방에 달리는 녀석들은 알은 크게 달리는데 색깔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일명 ‘멍텅구리’라고 부른다. 가지 끝 부근에 달리는 녀석들은 알이 작고 왠지 맛이 없어 보이는 느낌을 준다. 하여 양한오씨는 이들을 ‘뺀질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시하거나 천대하지는 말라! 다 나름대로 맛이 있고 수확 후 관리되어 겨울 내내 맛나게 사람들에게 나뉘어져서 제 몫을 다하는 친구들이니까.

수확을 할 때 우선 중앙부위에 달린 녀석들을 먼저 작업한다. 5일 후 멍텅구리 친구들을 작업하고 그 5일 후 뺀질이 친구들을 수확한다. 수확한 순서대로 한곳에 보관하고 순서대로 시장으로 출하한다. 다만 뺀질이는 다른 냉장창고에서 별도 온도, 별도 조건으로 겨우내내 대접을 받는다.이른바 숙성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뺀질이와 멍텅구리 친구들은 한겨울 내내 냉장창고에서 온도습도 관리 받고 숨을 고르게 잘 쉬면서 숙성이 된다. 숙성이 되면서 맛은 한층 깊어간다. 하여 겨울부터 봄이 한창일 때까지 도시민들의 식탁에 올라가기에 손색이 없게 된다.

인생은 범생이 보다 뺀질이와 멍텅구리가 더 잘사는 경우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는 것 지천명(知天命)을 집고 선 나이에 사과나무에서도 깨우친다.

4. 사과 이력서

   
  

사과나 사람이나 근본이 확실해야 좋고 살아온 내력이 정돈되면 앞으로 살아갈 일이 간명해져서 좋은 법이다. 작업장안에 흰색 칠판이 눈에 띈다. 뭐를 저리 정리해놓았나 싶었는데 2006년부터 2009년 금년까지 작물 관리내역을 촘촘히 적어놓았다.

친환경재배(저농약인증)과정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농사력이다. 7번 정도의 농약투여 시기와 의미, 소주, 칼슘 등 사람이 먹어도 괜찮은 원부자재로 병충해를 방제하고 미량원소를 관리하여 사과의 품격을 높이는 노하우를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농사짓는 사람의 판단과 어떤 농사를 짓는지가 한눈에 보였다.

양한오씨는 친환경인증을 받기 위하여 이력관리를 한 게 아니라 훨씬 그 이전부터 과수원의 전체를 온전하게 기록하고 관리했던 것이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역사는 양한오만의 사과를 만들어 내는 밑거름이었다.

5. 100% 리콜

작년에 보관상의 작은 실수를 출고 후에 확인하고는 300여 상자에 전면 리콜을 시행하여 100% 신상품으로 다시 보내준 사례는 ‘나만의 사과’를 지향하는 양한오씨의 배포를 보여준다. 보통 한 상자에 한두개 이상이 있는 정도이겠지만 과감하게 한 상자씩 다시 재배송 함으로써 고객과의 신뢰를 지켜냈고 자신만의 자존심을 세웠던 것이다. 그는 사과에 관한 한 달인이었다.

어떤 사과가 나왔을까?

1.사과의 본성, 사과의 색택이 충만하다

   
  

상은농장의 사과 색택은 사과본성의 맛을 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빨간색과 고유의 단맛이 가을 햇살에 최고점을 이루고 있다. 사진 오른쪽 흰 부분이 사과꽃눈이다. 내년에는 저 눈에 탐스러운 사과가 달린다. 달려있는 그 자체로 보기에도 침이 넘어간다. 나는 사과 구매와 산지관리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농장전체의 분위기와 수세(樹勢)를 보면 어느 정도 농부의 내공을 짐작하는 정도는 된다.

저 위에 잘 익지 않은 작은 사과(화살표)는 왜 솎아내지 않는가 물었더니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사과가 달린 가지 끝 꽃눈에 내년에 대과가 달리기 때문이란다. 과(果)가 열린 가지의 새 꽃눈이 다음해에 갖는 의미다.

2.꿀(밀)의 분포도가 넓게 나오도록 재배한다.

   
  ▲ 보통 달다고 이야기하는 사과들은 대부분 씨방 주면에만 밀(꿀이라 부르는 것)이 몰려있다. 하지만 양한오씨는 고유의 맛과 향을 내기 위하여 사과 과육에 가급적 골고루 퍼지도록 실력을 발휘한다.

   
  ▲ 양한오 사과 그림 같다. 누군가 물었다. 사진 손 본거지? 천만의 말씀이다. 그만큼 꿀의 분포가 넓고 맛과 향이 양한오 사과의 고유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3.사과의 신기한 생명력(저장성)

   
  

11월 중순 두 번째 현장을 방문한 날, 양한오씨가 농장작업장에서 자기 사과는 잘라 놓아도 갈변이 그리 심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마냥 놔둬도 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긴가 민가 싶어 집에 와서 실험해 보았다 이 사진은 사과조각을 낸지 상온에서 만 20시간이 경과한 상태다.

이전에 내가 경험한 사과의 갈변은 자르자마자 곧 나타나기 시작하여 심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 사과는 하루가 다되어도 큰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겉에 사과가 점액질로 된 자기 보호막을 얇게 친 느낌이 든다. 겉이 꾸들거리기는 해도 맛도 생과와 별 차이가 없다. 이는 사과가 스스로를 지켜내는 생명활동이 강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시중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사과들이 있다. 길거리에서 트럭째 부어놓고 파는 것에서부터 백화점에 앉아 있는 것까지… 다 저마다 이야기가 있겠지만 나는 무풍 양한오 사과를 현장에서 지켜보고 이야기 하고 맛을 보고 나서는 ‘격이 높은 사과(깜놀사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과를 재배하는 사람의 마음부터 시작하여 농장의 지리적조건, 풍광, 색다르게 도전하는 재배방식 등등 그리고 단순한 단맛보다는 아삭거림과 약간의 신맛이 가미된 고유한 풍미….. 단단하고 야무져 보이는 색택과 장기저장성… 그런 요소들이 모여 격(格)이 되는 것이다.

   
  ▲ 지난 30여 년 결혼생활을 함께 한 양한오, 이시순 내외. 사과에 관한 확고한 원칙은 두 사람의 역할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었다.

10여 가지 품종을 골고루 길러내며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12월 초순에서 중순으로 넘어갈 무렵은 계절이 소비자들의 입맛을 가르는 시점이고 안방으로 사과를 가지고 들어 가는 시기이다. 한해 농산물이 수확 후 제대로 맛이 익어가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그 무렵에 만나게 될 무주 무풍 양한오씨 ‘나만의 사과’가 반갑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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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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