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시즘 문턱까지 와 있다 "
    By mywank
        2009년 11월 27일 06:33 오후

    Print Friendly

    중앙대 독일연구소는 정부가 추진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2009 HK(인문한국) 지원사업’ 선정 과정에서 1위의 성적을 거두고서도 탈락당했다. 전문가들의 심사로 진행된 1단계와 2단계 심사에서 압도적 1위(85.32점)를 받았음에도, 교과부 산하 이 연구재단은 설득력 없는 이유를 내세우며 탈락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연구소의 김누리 소장(독어독문과 교수)은 “솔직히 테러보다 더 한 짓이라고 본다. 연구비를 강탈해가는 것은 학자들의 ‘생명 줄’을 끊는 것과 같다”며 그 부당성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는 비판적 학자들을 무조건 자르는 등 ‘고강도 전쟁’을 벌였지만, 이제는 블랙리스트 등급을 나눠 연구비를 주지 않는 등 섬세한 ‘저강도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의 분노가 조직화 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며 “정치적 이유 말고는 이번 사태를 설명할 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현재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중앙대 분회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 6월 중앙대 교수 시국선언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정치적 이유 말고 설명방법 없어

    김 소장은 미디어 대중문화에 이어, 학계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 뒤, “학계까지 손댄다는 건 파시즘의 문턱에 와 있다는 신호다. 이번 사태는 한 연구소만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보여주는 징후”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여러 우려들이 있고, 이번 사태에 대해 학계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권에서 그런 걸 노린 것 같다”며 “학계 밖에 있는 분들은 연구비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학자들은 그것을 통해 연구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다”고 밝혔다.

       
      ▲중앙대 독일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김누리 독어독문과 교수 (사진=손기영 기자) 

    독일연구소 측은 연구재단 측의 탈락 처분을 취소하기 위해 행정소송에 나서는 한편, 유네스코에 이 문제의 부당성을 제기하는 등 국제적인 대응활동도 벌인다는 계획이다. 또 교수단체들이 항의성명을 준비하는 등 ‘연대’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연구재단 측은 탈락 사유에 대해 “제3세계를 우대했다”, “단일국가 연구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독일연구소 측은 ‘2009 HK사업 신청요강’에 나와 있는 선정기준을 근거로 들며, “자신들의 만든 기준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김누리 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26일 오전, 중앙대 흑석캠퍼스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되었다.

                                                      * * *

    이렇게 무지막지할 줄은 상상도 못해

    – 그동안 정부의 인문사회분야 학술연구지원 사업에서 1위로 올라온 과제가 최종심사에 탈락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다. 이미 보도가 되긴 했으나,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 달라. 그리고 중앙대 독일연구소가 그 첫 번째 사례가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누리 = 한마디로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사업에서 전문가 심사단의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연구 과제를, 정부기관이 나서 탈락시킨 사태다. 전문가들이 심사를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관리기관이 나서서 이를 뒤집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무지막지한 일이 벌어질지 상상치도 못했다.

    솔직히 심사과정에서 불이익을 줄까봐 걱정했을 뿐이다.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이번 사태에 대해 언론에서 ‘비판적 지식인에 대한 정치 탄압’이라고 하는데, 그런 생각에 동의한다. 며칠 전에 서강대 손호철 교수가 한 인터넷 매체(프레시안)에 기고한 내용처럼, 학계에 대한 정권 차원의 ‘저강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비판적인 학자들을 무조건 자르는 등 ‘고강도 전쟁’을 벌였지만, 이제는 블랙리스트 등급을 나눠서 연구비를 주지 않는 등 섬세한 ‘저강도 전쟁’을  벌이는 것 같다.

    그래서 학자들의 분노가 조직화 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제가 민교협 중대 분회장을 맡고 있어 시국선언을 주도한 모양새가 됐다. 높은 단계에 블랙리스트에서 등록됐을지도 모르겠다(웃음). 정치적 이유 말고는 이번 사태를 설명할 다른 이유가 없다.

    – 교과부 산하 한국연구재단 측에서는 중앙대 독일연구소의 탈락사유에 대해 “제3세계를 우대했다”, “단일국가 연구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 한국연구재단 측이 제시한 탈락사유는 ‘HK사업’ 신청 요강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저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스스로를 부정하는 논리를 내세웠을까….(한숨) 정말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도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부담스러운 일을 저질렀다고 본다. 심사는 신청 요강에 있는 기준에 따라서 하는 것이다.

       
      ▲사진=손기영 기자 

    한국연구재단의 자기 부정…시국선언 작용한 듯

    신청 요강만 보면 우대 대상으로 ‘기선정 연구소가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는 지역’과 ‘제3세계’라고 명시되어 있다. 지난 2년간 ‘HK사업’에서 유럽 및 독일지역은 단 한 곳도 선정되지 않다. 오히려 독일은 우대지역이다. 또 "제3계를 우대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번에 ‘HK사업’ 해외지역연구 분야에 선정된 4개의 연구과제 중 엄격한 의미의 제3세계 국가나 지역을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은 없다.

    설사 ‘제3세계를 우대’한다는 기준이 받아들인다 해도 그것이 곧장 다른 지역을 배제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 또 ‘단일국가 연구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하는데, 이번 ‘HK사업’에 선정된 나머지 연구 과제들도 모두 단일국가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신청요강에는 ‘단일국가는 소형으로 신청’할 것을 권장하고 있는데, 독일연구소는 이 기준에 따라서 해외지역연구 소형분야에 지원을 했다.

    신청요강은 연구사업을 준비하는 데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한국연구재단의 주장은 ‘자기부정’이다. 신청요강에 따르면 독일은 ‘배제지역’이 아니라 ‘우대지역’이 되어야 한다. 독일연구소의 교수 전원이 시국선언 참여 교수이고 지난 6월 시국선언 내용도 중앙대가 가장 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무래도 그런 이유들이 이번 사태에 작용한 것 같다.”

    – 신경민, 손석희, 윤도현, 김제동 씨 등 언론인, 대중 문화인들에 대한 정권 차원의 간접적인 통제가 이제 학계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정권이 의도하는 바가 뭐라고 보나?

    = 그런 지적에 동의한다. 실용주의에 숨겨진 MB정권의 권위주의적 본색을 드러나고 있다. 권위주의적 정권은 비판적 목소리를 제거하기 위해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이어, 마지막으로 학계를 손댄다. 학계까지 손댄다는 것은 파시즘의 문턱에 와 있다는 신호다. 이번 사태는 한 연구소만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보여주는 징후다.

    학계에 대한 정치적 테러

    결국 비판적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정권차원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일종의 ‘겁주기’이며 졸렬한 처사다. 연구비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학계에 대한 정치적 테러다. 솔직히 테러보다 더 한 짓이라고 본다. 연구비를 강탈해가는 것은 학자들의 생명을 끊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조건을 강탈해가는 것이다. 정말 무지막지한 일이다.

    한국의 대학연구소들은 대개 재정적 인프라가 취학한 편이다. 이번 ‘HK사업’은 세계적인 대학연구소를 양성하자, 그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세계적인 대학연구소가 나오려면 교수와 연구원 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정적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번 ‘HK사업’ 탈락으로 그런 기회마저 잃게 되었다.

    – 지난 9월 진중권 중앙대 독문과 겸임교수에 대한 학교 측의 재임용 거부 사태를 지켜보면서, 앞으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예감했는가?

    = “물론 예감을 했다. 진중권 교수 재임용 거부사태를 지켜보며 너무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힘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 바른말 하는 지식인들이 있어야 정상적인 사회라고 볼 수 있는데, 이명박 정권은 그것도 용납하지 못하고 치졸하게 복수를 자행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그것 밖에 안 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와 같은 사태가 재발된다면, 연구 활동을 하는 교수들의 자기검열이 강화되는 등 학문의 자유가 위축되고 정권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힘들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텐데, 실제로 그런 분위기가 있나? 앞으로 어떻게 전망하나?

    = 여러 우려들이 있다. 정권에서 그런 걸 노린 것 같다. 학계 밖에 있는 분들은 연구비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학자들은 그것을 통해 연구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다. 연구비는 학자들에게 ‘생명 줄’과 같은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학계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중앙대 학생들이 교과부 앞에서 독일연구소의 ‘2009 HK사업’ 탈락 사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행정소송 제기 예정…유네스코에도 공식 제기

    – 지난 18일 독일연구소 명의로 항의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번 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계획을 이야기해 달라. 학교 차원의 대책은 있는가? 

    = “우선 이번 사태의 부당성을 알리는 활동에 벌이는 한편, 한구연구재단 측의 탈락처분을 취소하기 위해 민변의 도움을 받아, 행정소송을 제기를 할 예정이다. 하지만 학교 측의 고민은 저희와 다른 것 같다. 지금까지 학교 측의 태도를 봐서는 적극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이 문제가 중앙대의 문제도 독일연구소만의 문제도 아닌 것이라는 점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진보 보수를 떠나 지식인 사회가 함께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움직임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교수단체와 학회 차원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질 것 같다. 우선 민교협은 지난 25일 항의성명을 발표했고, 서울대, 충북대 민교협 교수들과 학술단체협의회에서도 항의성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독어독문학회에서는 ‘공개질의’ 형식으로 입장 표명을 할 예정이다.

    이번 사태는 한 대학연구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에 대한 야만이자, 국제적으로 공분할 일이다. 보편적인 인권과 학문의 자유에 대한 문제다. 지금 유네스코에 ‘학문의 자유’ 문제 다루는 (청원)위원회가 있는데, 이곳에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할 계획이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