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일한국인 영화 걸러내는 다중필터
    By mywank
        2009년 11월 27일 02: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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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고>의 작가 가네시로 카즈키가 참조했다는 <피와 뼈>는 제주도에서 오사카로 건너 간 김준평이라는 재일 조선인 1세대의 폭력적인 일생을 그린 소설이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개달리다>에서 재일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냈던 최양일 감독이 6년을 투자해 같은 제목으로 2004년에 영화화했다.

    재일조선인 1세대의 폭력적 일생

    제주도 무속에서 굿을 할 때, ‘피는 어머니로부터 받고, 뼈는 아버지로부터 받는다’는 대목으로부터 제목이 인용된 <피와 뼈>는 재일동포 1세대가 일본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일대기를 그린다.

    하지만 거대서사인 민족과 국가를 중심으로 역사적 흐름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 김준평은 민족과 사상이 중심이 됐던 시대의 물결과는 상관없이 살아간 인물이다.

    최양일 감독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자신과 가족이 소속된 공동체인 재일조선인 집단에 대해 강간, 폭력, 착취 등 온갖 악행을 통해 지배하고 군림하는 악의 화신인 김준평이라는 인물에 대해 의도적으로 개인의 삶과 역사의 움직임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피와 뼈>는 "아버지는 내 인생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다"고 단언하는 아들 마사오의 시선에서 보는 준평의 일대기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 풍요로운 삶을 바라고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김준평이라는 청년이 그 시대가 겪었던 전쟁과 가난, 민족 차별 속에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은 참혹하다.

    폭력 정당화 명분도 필요없는 인물

    오사카에 정착해서 공장에 취직한 준평은 마음에 둔 여인을 강간해서 강제로 결혼하고, 강인한 체력과 타고난 근성으로 공장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냉혹한 착취와 폭력으로 주변을 장악한다. 그러다가 한 청년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나타나 준평과 폭력적인 가족관계를 맺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떠나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도록 만든다.

    김준평은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 인물이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부인의 속옷을 강제로 벗겨 강간하듯 욕망을 풀고, 자신의 폭력을 피해 애정없는 결혼을 한 딸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게 몰아간다.

       
      ▲ 영화의 한 장면

    악착같이 돈에 집착해서 엄청난 재산을 일구지만, 가족을 위해서 돈을 쓰기는커녕 돈 문제로 아들과 죽자고 싸운다. 그러면서도 자식이 태어나면 만세를 부르고, 자신의 손아귀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다. 사채업을 하면서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몸을 칼로 그어대는 자해도 불사하고, 자신의 핏줄을 낳으라며 여자를 윽박질러대며 아내뿐 아니라 욕망에 따라 첩도 갈아치운다.

    이런 김준평 캐릭터의 모델은 한국적 인물의 특징이라고 보기에는 참 낯설다. 그래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며, 형제는 다투며, 부부는 화합하지 않는’ 일본 신화의 특징에 근접한 설정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피와 뼈>는 최양일 감독이 계속해서 관심을 보인 주변의 이야기, 아웃사이더의 이야기에 일본 속 한국인의 역사를 새긴다.

    일본 속 한국인의 역사

    이렇게 본다면 폭력의 광기에 사로잡힌 남자들과 그런 남자들의 폭력에 시달려 죽어가는 여자들에 대한 설명은 민족 또는 개인의 문제, 즉 역사와 시대의 그림자로서의 재일 조선인 문제를 핵심으로 삼기보다 재일 조선인이라는 가장 주변적인 인물설정을 통해 악과 불행 자체의 극한을 그려낸 것이 된다.

    감독 자신도 모든 인물에는 물론 인간관계의 배경이나 사회적 분위기, 역사, 이데올로기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게 마련이지만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그런 것들을 축소하고 인간 자체를 그려내는 것이 중심이라고 밝힌다.

       
      ▲ 오다기리 조가 연기한 김준평의 아들 아라이 다케시

    그렇다면 첩이 데리고 사라졌던 어린 아들 류이치를 김준평이 유괴하듯 데리고 북조선으로 가서 죽음을 기다리는 영화의 결말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국가로서의 한 장소가 아니라 가장 극한적인 상황까지 스스로를 몰아가는 상상의 유배지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김준평이 신화적 악의 화신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북한이 모든 것을 바쳐도 아무런 보상이 없는 물신의 지옥으로 환유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을지 몰라도, 한국의 현실은 영화 속 세상 못지않게 엄혹하다.

    삭제된 1분 50초

    한국에서 <피와 뼈>는 처음 개봉 당시 일본으로 이주한 재일 한국인 가운데 의식있는 청년으로 김준평의 딸이 짝사랑하기도 했던 찬명이 출소 뒤 북한으로 떠나는 장면이 1분 50초 가량 삭제되어 상영되었다. 찬명은 일본을 떠나면서 김준평의 아들 마사오에게 훗날 자신을 따라올 것을 권하면서 사람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인공기로 뒤덮인 역을 빠져나가는데 이 장면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공식적인 재제를 통한 삭제가 아니다.

    수입추천심의를 신청한 <피와 뼈>에 대해 수입추천소위의 한 위원이 영화사 대표에게 ‘일부 장면이 반국가적인 내용이 있다는 점이 인정된다’면서 북한을 찬양·고무하는 것으로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 있다고 지적하자 수입추천과 등급심의를 거치는 동안 개봉이 늦어질 것을 우려한 수입사가 감독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 장면을 자진삭제하고 2005년 2월에 개봉되어 극장 상영을 한 것이다.

    그러나 개봉 후 감독의 반발에 의해 재심의를 요청하면서 재수입추천 심의에서 한차례 수입추천 불가 결정이 내려졌다가 또 한 차례의 재심의를 거쳐 무삭제 수입추천 결정을 받고 같은 해 5월에 재상영되는 곡절을 겪었다.

       
      ▲ 영화의 한 장면

    이렇게 해서 복원된 장면은 등장인물이 북송선을 타기 위해 기차역에서 친지들과 이별하는 장면에서 배웅 나온 사람들이 북한의 인공기를 흔드는 장면과 북한 국가를 부르던 사람들이 마지막에 김일성 장군 만세를 외치는 장면이다.

    이런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피와 뼈>는 한국에서 여전히 재일 한국인의 문제는 개인 개인이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복합적인 상황이 아니라 민족, 국가, 이데올로기라는 다중필터를 거쳐 고정된 시선으로 보아야하는 분단 상황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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