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은 비정규직 상처 어루만져줄까?
        2009년 11월 27일 10: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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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6일 11시30분 일산지원 501호 중강당. 
    ‘투쟁 조끼’를 입은 노동자 20여명이 앉아 있다. ‘비정규직도 살고 싶다’, ‘비정규직 다짜르고 GM회생 기만이다’… 갖가지 비정규직의 요구가 쓰인 헝겊이 덕지덕지 붙은 조끼다. 현대, 기아, GM대우, 기륭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명 ‘선지시위’의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는 자리다.

    7개월 전 일이지만 기억이 선명하다. 2009년 4월 3일 서울모터쇼가 열리고 있던 일산 킨텍스 건물 밖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50여명이 “비정규직 다 짜르고 웬 쇼냐?”는 현수막을 걸고 기자회견을 했다. 회견문을 낭독한 후 ‘모닝’ 자동차에 비정규직의 희생과 해고를 상징하는 ‘선지’를 뿌리는 상징의식을 벌인 후 해산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들이 달려들어 40명을 연행했다. 재벌신문들은 ‘엽기적인 선지시위’라며 온갖 호들갑을 떨었고, 그들의 친구 검찰은 4명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었다. 다행히 모두 풀려났지만, 검찰은 7명을 정식 기소하고, 21명에 대해 2~300만원씩 총 5,100만원의 벌금을 때렸다.

    서울모터쇼 연행 사건 재판 현장

    서울모터쇼 행사장에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와 있어서 경찰서장이 벌인 과잉충성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모터쇼 첫 재판이 열리던 10월 15일 법원 풍경은 정말 기이했다. 단일 사건의 재판에 ‘피고인’ 27명에 참관인까지 35명이 법정을 가득 채웠다. 이날 판사는 검찰과 경찰의 불법행위 두 가지를 지적했다. 판사는 “미 신고 불법 옥외집회는 주최자만 처벌이 가능하고 단순가담자는 처벌할 수 없는데 주최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 기소를 했다”며 검찰에게 이를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 영장실질심사에서 풀려나온 연행자들 (사진=금속비정규투쟁본부)

    이 뿐만이 아니었다. 판사는 “미신고집회의 처벌기준은 벌금 2백만원을 넘을 수 없고, 해산 명령 불이행 건도 양형기준이 벌금 50만원을 넘을 수 없어서, 두 가지를 다 합산하여도 2백 50만원을 넘을 수 없는데, 검찰은 3백만원을 약식기소했다”고 지적했다. 최고형이 2백 50만원인데 검찰은 10여명에게 3백만원을 구형한 것이었다.

    또 판사는 재판에 출석을 하려면 이틀이나 월차를 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불출석이유서’를 제출하면 인정하겠다고 해 권력에 과잉충성하려는 검찰에 의해 인권마저 유린되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했었다.

    그래서 11월 26일 재판에는 멀리 순천, 전주, 서산, 화성 등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재판을 보고 싶어 참석한 조합원들에게도 판사는 “다음 재판에는 안 오셔도 된다”며 친절히 알려줬다.

    재판장에서 드러난 검찰의 과잉충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자회견을 집시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문제 등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고, 판사는 이를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시간을 갖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다음 재판이 열리는 12월 13일에는 경찰이 찍은 비디오가 상영되고, 검찰이 요구한 일산경찰서 경비교통과장 등 경찰들이 증인으로 나온다. 재판이 점점 더 뜨거워질 것 같다.

    재판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GM대우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둘러 공장으로 간다. 조합원 총회도 있고, 공장 앞에서 집회도 해야 하기 때문에 점심 먹을 시간이 없단다.

    재벌신문들이 “혐오스런 선지시위”라고 난리법석을 떨었을 때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선지피 말고 우리 비정규직이 할복이라도 해서 사람 피를 뿌리라는 거냐?”

    아무 잘못도 없이 잡혀가고, 벌금 폭탄을 맞고, 법원에 불려 다니고, 밥도 못 챙겨먹고 집회를 하러 가야 하는 노동자들…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해고자들, 비정규직의 설움을 알리고 싶은 노동자들의 마음을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

    2009년 11월 26일 일산 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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