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녹색성장의 진정성과 한계
    2009년 11월 25일 09: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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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는 21세기 국가의 역할과 상대적 자율성에서 핵심 이슈이다. 주요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이명박 정권 역시 녹색성장과 저탄소사회를 국정과제의 화두로 여기고 있다. 2008년 8.15부터 시작해서 2009년 12월 코펜하겐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외피는 각종 정책과 연설에서 쉽게 확인된다.

지난 10년에 비해 칭찬할 만

녹색당이나 개혁진보정당이 아닌 현정권의 보수적 속성을 고려하면, 우선 칭찬 받을 만하다. 지난 10년간의 민주정부의 소극적인 행태를 돌이켜보면 말이다. 물론 국제협상이라는 구조적인 호조건과 선견지명을 겸비한 참모진들이 있어서 가능했겠지만.

아무튼 일부 국제사회와 몇몇 국제환경단체들이 인정하고 있을 정도로 녹색 프레임 전쟁에서 헤게모니를 선점한 그들의 국가 브랜드 전략은 먹혀들고 있다. 물론 핵발전과 4대강사업과 같은 사이비 녹색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말이다. 필시 역사교과서는 훗날 박정희 정권의 조국근대화론 만큼이나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론을 높이 평가할 것이다.

   
  ▲ 사진=청와대

그런데 주류의 역사와 달리 비주류의 역사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단순히 ‘사이비 녹색’이라고 평가절하하면 속이 후련할까? 이명박 정권의 진정성과 그것의 진정한 한계를 평가해줄 필요는 없는 걸까?

국가정책은 국가의 본질과 성격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 마련이다. 현정권의 온실가스 감축방안 설정방안 발표(8월 4일~11월 17일) 과정과 결과를 보면, 녹색자본주의 국가의 진정성과 천민자본주의의 한계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즉 작금의 한국 정치경제적 상황을 여과없이 반영한 결과이다.

기후변화 대응에 낯설어 한 노동

한국의 헤게모니 블록(및 중소기업)은 에너지 다소비와 화석에너지에 의존하는 경제시스템을 유지해왔다. 처음부터 자신들의 단기적 경제이익을 지키고자 애초 녹색성장위원회의 최소안마저 반대했다. 이로 인해 체제를 재생산하고 이들의 보다 높은 이익을 보증하기 위한 국가의 구조적 자율성(자본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자율성)은 실험대로 올랐다. 정권은 ‘반자본적’ 정책이 아니라 ‘총자본적’ 정책임을 기능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문제는 선택지인 3개 시나리오로 발표된 최소안(2005년 대비 8% 증가), 중간안(2005년 대비 동결), 최대안(2005년 대비 4% 감축) 중 택일이었다. 그러나 사실 애초 세 가지 안은 하나의 프레임에 결박되어 있어 내용상으로는 모두 수구적이었다.

왜냐하면 그간 사회단체들이 나름의 국제기준을 적용하여 제기해 왔던 것처럼, 한국의 역사적 배출책임과 미래 배출책임을 동시에 고려하면 최대안마저 자신의 책임과 역할 방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사회를 향하여 경제대국이자 OECD 회원국가인 한국의 위상에 걸맞는 선진국 또는 그에 준하는 감축의무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주요 국가에서 온실가스 감축이 크게 이슈화된 것과 비교하면, 한국에서는 무주공산에서 자본과 정권의 오십보 백보식 감축논쟁에 대해서 간간히 보도될 정도로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녹색성장위원회를 견제해야 할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은 이미 보다 상향된 목표를 포함한 다른 의제를 제시하거나 설정할 힘도 없었고 시기도 놓쳐버렸다. 특히 일자리 소멸, 대체, 창출 등으로 중대한 영향을 받을 노동진영은 온실가스감축을 포함한 기후변화 대응을 낯설어했다.

녹색성장위원회는 지난 3개월 동안, 국민여론조사 결과 변화(최대안 지지로 선호변동)와 주요국 온실가스 감축목표 강화 등에 영향을 받았다. 결국 내부 검토 보고서를 통해 스스로 잘못을 실토할 지경에 이르렀다.

녹색성장위원회 잘못 실토

온실가스 감축목표 시나리오 검토 과정에서 계속 지적되던 배출전망을 잘못 계산했다는 점을 인정하여 추가적인 감축여력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또한 감축량을 산업계와 그 대리기관인 지식경제부 의견을 반영하여 보수적으로 판단하였다는 점 역시 시인했다.

녹색성장위원회는 이러한 점을 이유로 최대안 플러스 알파에 대해서도 논의했지만 그뿐이었다. 환경단체들이 주장한 25% 감축안은 녹색성장위원회에서 애초 최대안으로 검토되던 11% 감축안과 격차가 컸고, 운동세력의 실력 미비로 의미있는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의 반발을 무마하고 4% 감축안이 통과됐다. 이명박 정권은 일단 국제사회가 한국에 요구하는 선진국 대열에 편입하거나 OECD 회원국으로서 중국․인도 등과 차별화된 감축행동에 대해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새로운 기후변화협상이 체결될 경우를 대비하면서, 국내 총자본의 입장에서 임계점인 개도국에 권고하는 최대치를 사전에 제시하여 선진국의 ‘과도한’ 목표부여를 방지하는 ‘최적의 협상전략’을 선택했다. 더욱 중요하게는 국내 회색자본에 녹색자본화하는 시그널을 줘서 장기적 경제이익의 (비록 대단히 미흡하지만) 기준을 제시했다. 또한 경제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기후친화적 개혁 환경을 조성하여 사회단체 등의 저항적 시민사회의 잠재력을 예방하는 장기적 정치이익을 제공했다.

비록 최종결과 발표 직후, 몇몇 경제단체들의 우려 섞인 투정이 재확인되었지만, 이명박 정권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프레임 속에서 총자본은 보수정권과의 이해관계 일치를 재확인하게 되었다. 결국 전경련, 경총, 대한상공회의소 중심의 헤게모니 블록 및 중소기업(최소안 이하 주장)과 ‘기후변화 비즈니스 포럼’으로 뭉친 개별 자본 중심의 자본 분파 또는 일부 녹색산업(최대안 주장)의 의견대립은 사실 모순적이지 않고 상호보완적인 관계였다.

전세계의 녹색자본주의화

   
  ▲ 필자

그러나 이러한 녹색자본주의 진정성에는 천민자본주의의 한계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전세계는 경향적으로 ‘녹색 경주’를 통해 녹색자본주의로 변신하고 있다. 21세기 기후위기와 경제위기에서 녹색성장을 돌파구로 삼아 보다 적극적인 국가자율성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북유럽 등 진정한 얼리 무버(early mover)는 경제성장 중심의 지속가능성을 포기하는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이윤의 극대화와 체제 재생산을 위한 중장기적 정치경제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총자본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합리화와 정상화 노력에 화답하여 자본과 노동 역시 중단기적으로 이해를 일치시키고 있다.

반면 녹색자본(의 토대)이 취약한 한국의 경제환경과 천민자본주의의 토건국가 지향은 ‘산업경쟁력 약화 우려’를 주장하며 녹색국가 추진을 위한 자율성에 제동을 걸었다. 한국 국가는 에너지기후시대 초입에서 제역할을 하지 않았고 그리고 못했다. 이렇듯 한국 녹색자본주의의 진정성은 천민자본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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