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사회주의
    2009년 11월 23일 08: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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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사진=레디앙)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무사히 돌아와 지금 오슬로에서 차차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노보시비르스크를 포함한 러시아로의 5일간의 여행에서 여러 가지 인상들을 받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다름이 아닌 서점가였습니다.

모스크바 공항 등을 포함하여 약 대여섯 군데의 서점을 둘러봤는데, ‘정치-사회’ 섹션에서 어딜 가나 맨먼저 눈에 띄는 책들은 대체로 그런 종류입니다.

<우리는 러시아인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한다!>, <‘러시아’라는 프로젝트>, <푸틴 전기>,  <미국놈들은 달에 착륙했다고?>』, <스탈린, 민중의 제국> 등등입니다. 

푸비어천가의 대량생산, 유통

물론 그런 종류의 책자들이 곳곳에서 널려져 있다고 해서, 모든 러시아인들은 이 제국주의/민족주의/배외주의의 혼합 칵테일을 즐겨 마신다고는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은 책을 아예 읽지 않거나 추리소설류 정도만 읽으니 ‘정치-사회’ 섹션의 내용이 꼭 민의를 대변하지는 않죠. 차라리 이런 류의 책자들을 쓰고 찍는 이들을 지원, 후원하는 기관들의 재정 사정이 얼마나 좋은지를 보여준다고 봐야겠어요.

요즘 유가가 다시 오르니까 이 ‘푸(틴)비어천가’의 대량 생산, 유포에 뭔 문제가 있겠어요? 그런데, 다수가 지금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cleptocracy (도둑들의 정치)의 정체를 알면서도, 설령 옛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돌아갈 마음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스위스제 몇 천만원 짜리 이상의 시계를 차지 않으면, 그리고 겨울에 프랑스의 쿠르세벨에 가서 초호화 휴가를 즐기지 않으면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오늘날의 러시아 ‘대도형 지배자’들이 예뻐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불가피한 악’으로 보고, 대개들 구 소련 시절의 폐단들을 문제 삼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 나눌 수 있는 저쪽 동료 분들은 구 소련 시절의 ‘가장 기억하기 아픈 문제’로 두 가지 이야기합니다:

1. 정치적인 ‘공공영역’의 부족

사석에서야 못할 이야기는 사실 없었지만 공석에서 기탄없는 합리적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치는 없었습니다. 신문에서는 검열이 태심하고, 집회 자유나 결사 자유는 이름뿐이고, 합리적 토론을 전개하기 위한 외국 서적도 마음대로 다 주문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버마스가 이야기했던 ‘공공영역’이 사실상 동료끼리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정치 험담 ("저 간부놈들이 이제 또 뭔 짓을…") 수준으로 좁혀지니 내면의 자유는 있어도 그 자유의 사회화는 불가능했대요. 그러면 인문학은 정치화된 ‘어용학문’과 정치를 아에 배제하고 ‘순수학술’만 따르는 인문주의적 아카데미즘으로 양분되고 점차 힘을 잃어간답니다.

2. 민간소비 부문의 위축

일부는 정치적 성격이었지만 (해외 여행과 해외로부터의 수입에 대한 매우 엄격한 제한 등)민간소비 부문의 위축은 대체로는 군수복합체에 투자하느라 정신없는 국가는 단순히 경공업 등에 투자를 너무나 덜한 것이었습니다.

시장이 아닌, 국가의 행정적 결정에 의해서 움직이는 경제다보니 국가로서는 우주공학 등에 투자를 더 하고, 화장실 휴지 생산에 투자를 거의 안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우주에 비행할 일은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휴지 하나 구입할 수 없는 ‘인민의 낙원’은 좀 지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어요.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은 윗세대는 ‘무기’의 중요성을 잘 인지했기 때문에 그냥 참을 수도 있었지만, 신세대로서는 욕구불만 해소의 길은 없었습니다. 그 불만을 말로 표현하는 것까지 불허되니 쌓이고 쌓인 체제에 대한 혐오는 결국 한꺼번에 나중에 터지고 말았습니다.

민주주의의 부족

위에서 이야기한 현실 사회주의의 두 가지 폐단을 합쳐서 이야기하자면 한 마디로 ‘민주주의의 부족’이었습니다. 직장 생산자들의 민주적 결정에 의해서 사회화된 경제가 움직였다면 화장실 휴지를 간절히 원하는 뭇 인간들의 바람이 당장 주효돼 사회적 투자의 방향은 휴지 공장 쪽으로 움직였겠지만, 실제로는 수백만 명의 민심보다 한 명의 고급장교의 의견이 더 중요시됐기에 사회주의 국가가 ‘총동원형 고등국방국가’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만의 하나에 시장보다 훨씬 더 합리적일 수도 있는 ‘계획’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제 체제가 정말로 ‘공공영역’에서 토론돼 결정되는 바대로 운영되고, 개개인 한 명 한 명의 욕구를 들어줄 만한 능력을 갖추었다면 이 체제는 망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소련이 이렇게 쉽게 망해버린 것은 바로 그 체제의 비민주성을 노골적으로 보여줄 뿐입니다. 주지하듯이 소련연방 해체에 대한 결정을 그 구성 공화국 중 세 개(러시아, 우크라이나, 백러시아)의 대통령들이 함께 술을 마시면서 내린 것이었습니다.

국민투표 따위는 없었죠.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방식인데, 고르바쵸바가 그렇게도 많이 이야기했던 ‘사회주의의 민주화’는 결국 이루어진 적은 없었어요. 뭐, 표현의 자유가 주어지자마자 여태까지 억압당했던 온갖 욕구들이 폭발적으로 표명돼 ‘사회주의’ 자체가 거의 욕처럼 됐는데, 무슨 말씀을 하겠습니까?

사회주의를 매장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사회주의를 매장시킬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사회주의 실천할 때에 민주주의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단기적 집권은 가능해도 장기적으로는 필패죠. 소련의 흥망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적 결론인 듯합니다.

거시적으로 본다면 소련의 ‘비민주적, 국가주의적’인, 소위 현실 사회주의는 초기의 내전과 그 뒤의 각종 외전(냉전을 포함함), 그리고 러시아 사회의 후진성과 압축형 공업화 필요성의 산물이었습니다. 내전 때에 만들어진 체카 등 안보기관의 출신들은 지금도 사실상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죠.

또한, 소농들이 다수를 점하는 사회에서는 도시 인테리/고숙련 노동자 중심의 사회주의자 집단은 기본적 통치 행위도, 농업부문에서 공업부문으로의 자원 이동도 ‘민주적으로는’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전쟁, 기아, 후진성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배태되는 사회주의는, 그 창립자들은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지고 아무리 진실되게 진정한 사회주의의 건설을 원한다 해도, 결국 ‘동원 체제’의 한계를 넘기가 힘들어요.

그러면, 미래 사회주의는 어떤 모델에 따라서 발전되는 게 바람직할까요? 저는 아무래도 지금으로서 차베스 이상의 ‘벤츠마킹’ 대상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수많은 빈민굴 주민들을 위해 사회적 잉여를 나누어주고 각종 노동자의 공장 관리 등을 지원하면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적어도 장기간 ‘과도기’ 내내 그대로 간직하면서 부르주아계층과 대립하면서도 극단적인 무장 충돌을 일단 최대한 피하는, 그런 형태는 지금으로서는 황금의 중도일 듯합니다.

일단 내전, 내지 대미전으로 접어들기만 하면 그 다음 베네수엘라판 체카를 만들고 안보정치, 국방정치를 펴야 할 터이니 최대한의 정치술, 인내심을 발휘해서 ‘극단적 충돌’을 피하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문제는, 세계 전체가 여전히 1990년대식 반동 정치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남미의 사회주의 지향적 정권들이 고립화와 극단적 충돌 등을 얼마간 피할 수 있을까요? 차베스 등의 위대한 실험이 완벽하게 성공하자면 유럽부터 하루빨리 좌향좌를 시작해야 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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