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가 민족을 만났을 때
By mywank
    2009년 11월 20일 05: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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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신인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권위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의 2000년 수상작, 한국계 일본인 가네시로 카즈키/이효진의 소설을 <러브 레터> 조감독 출신인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연출한 2001년 작 <고>는 한국의 비디오 제작사인 스타맥스와 일본의 도에이 영화사가 공동 제작한 한일합작영화다.

   
  ▲ 영화 <고> 포스터

일본에서 개봉 한 주 만에 관객 51만 명을 동원했으며, 재일 한국인 청년 스기하라 역을 맡은 주연 배우 쿠보즈카 요스케는 이 영화로 그해 키네마준보 남우주연상과 신인상을 비롯해 일본의 여러 영화제에서도 신인상을 휩쓸 만큼 화제작이었다.

코리안 재패니즈

<고>는 일본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조총련계 학교를 다녔던 작가 가네시로 카즈키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는 소설이다. 가네시로 카즈키는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전제로 하는 ‘재일 한국인’이라는 용어보다 ‘코리안 재패니즈’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코리안 재패니즈는 일본에서 이방인으로서가 아니라 나고 자란 지역에서 주체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주장이 반영된 말이다. 그런 작가의 생각은 작품 첫머리에 ‘이름이란 뭐지? 장미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향기는 그대로인걸.’이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분명히 드러난다.

작가는 책머리에 “내 또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국적도 민족도 아닌 연애”라고 선언하며, 영화에서는 스기하라/이정호의 목소리로 "이 영화는 나의 사랑이야기다." 라는 나레이션이 계속 작가의 이런 선언을 환기시킨다. 그런데 주인공 정호/스기하라 또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연애에 가장 큰 걸림돌이 국적 또는 민족이 되기 때문에 스기하라는 자신의 민족 정체성 문제를 돌파해 나가야 한다.

주인공 스기하라는 평생 공산주의자로 살며 조선 국적을 유지하다가 오십이 넘은 나이에 하와이 여행 비자를 받기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아버지 때문에 조총련계 중학교인 민족학교에서 일본학교로 옮긴다. 그래서 민족학교에서는 ‘민족반역자’라는 비난을, 일본학교에서는 ‘자이니치’라는 차별과 멸시를 받는다. 권투선수 출신인 아버지로부터 얻어터져가며 배운 권투 실력 덕분에 스기하라는 자신에게 겨누어지는 차별에 싸움으로 맞선다.

주먹과 인생

이정호/스기하라가 싸움을 통해 자신을 지키는 방식은 아버지와 민족학교로부터 배운 것이고, 그 싸움의 대상은 자신을 차별하는 세상, 그러면서도 현재 자신이 속한 세상인 일본 자체다. 이정호에게 조총련계 학교를 다니게 하고, 일본 안에서 이방인으로 살도록 했던 아버지는 권투를 가르치며 이렇게 말한다.

"왼팔을 쭉 뻗어봐라. 한 바퀴 돌아봐. 네 주먹으로 그린 원이 너라는 인간의 크기다. 원 안에서 손이 닿은 만큼만 손을 뻗어야 다치지 않고 살 수 있지. 그런 인생을 어떻게 생각해? 원 밖엔 강적들이 우글우글해. 적들이 원 안으로 치고 들어올 거다. 맞으면 아프고 때려도 괴롭다. 그래도 할래? 원 안에 있으면 안전한데."

   
  ▲ 영화의 한 장면

안전을 보장할 원이 필요한 까닭은 배타적 존재로서 살기 위해서다.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주먹을 뻗어 내치는 것을 가르친다. 그런데 주인공이 이정호로서 그려내는 원은 보호 장치가 아니라 억압 장치다.

이정호로서 민족학교를 다니는 시기에 적대의 대상은 일본 사회였기 때문에 이정호는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나 민족학교 교사에게는 주먹을 뻗을 수 없다.

그러므로 상의없이 국적을 바꾼 아버지나 민족학교를 떠나겠다는 이정호의 행위를 ‘배신’이라 규정하고 체벌로 대응하는 담임교사에게는 대응할 수 없다. 억압 장치로서의 ‘민족’은 이정호에 대한 가혹한 담임교사의 체벌에 맞서 학교 친구인 정일이 "우리에게는 원래 국가가 없었습니다."라고 대들면서 배제 장치로 바뀐다.

"우리에게 원래 국가는 없었다"

<고>는 재일이라는 상황에서 민족은 하나의 정체성이 아니라 국적에 따라 서로 배타적인 재일 조선인, 재일 한국인, 한국계 일본인이라는 여러 정체성 가운데 하나의 원만을 허용하는 가혹한 선택과 배제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정호가 스기하라로서 일본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원은 억압 대신 개인에게 가해지는 전면적인 차별에 대한 것으로 바뀐다. 스기하라는 그동안 배워온 방식인 싸움으로 개인적인 원을 지키려 하지만 그런 대응방식은 스스로를 원 안에 가둘 뿐이다. 싸움에서 이길수록 고립은 강화된다.

일본 학교에서 일본 교육을 받으며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성장기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적대하는 것으로 자신을 지키는 스기하라의 청춘은 공허하다. 민족이 국가와 일치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스기하라와 스기하라를 둘러싼 일본 사회 양쪽에서 동시에 만들어낸 원이다.

이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에 대해 원작자 가네시로 카즈키는 ‘국적을 바꾸면 뭔가 극적으로 바뀌거나 기분이라도 바뀌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더라.’라고 자조한다. 스기하라의 아버지가 함께 간 바닷가에서 "국적은 네가 정해라."라고 말했다고 해서 민족이라는 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차별을 거둘 수 없다. 그러므로 스기하라는 스스로 차별이 무서워졌다고 인정하게 된다.

스기하라가 차별을 무서워하게 된 것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도전과 폭력 때문이 아니라 좌절된 연애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맺어지는 남녀 사이에 민족이라는 요소가 개입되는 순간 더 이상 그 관계가 개인의 원이 아니라 집단의 원에 포획되는 현실은 스기하라에게 국적 선택이 문제가 아니라 민족정체성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 영화의 한 장면

모처럼 사랑을 느낀 여자친구 사쿠라이에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순간, 그 전까지 같은 또래로서 같은 언어를 쓰며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던 둘 사이에 벽이 생긴다. 한국인은 피가 더럽다는 가르침을 받은 일본 여학생 사쿠라이는 스기하라가 싸움꾼으로 주먹을 쓰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것 자체가 무섭다며 그를 거부한다.

나와 세계 사이의 국경선

지금까지는 차별을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던 스기하라는 그런 자신의 무심함이 사실은 지금껏 어떤 일본인도 좋아한 적이 없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진심으로 일본인을 좋아하게 되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고, 그 때문에 거부당한다.

스기하라를 이해하고 민족정체성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유일한 벗이었던 정일이 일본 불량배들과의 시비 끝에 어이없이 죽고 그 장례를 치른 날이 바로 사쿠라이와 정서적으로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관계를 가지려던 날이다. 전면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자신의 민족정체성을 밝히는 순간, 사쿠라이는 관계 자체를 거부한다.

스기하라는 이런 사쿠라이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이 결별을 통해 스기하라는 자신이 만든 원이 아니라 자기 둘레에 쳐진 원을 직시하게 된다.

‘난 누구지? 왜 날 "재일"이라고 부르는거야? "재일"이란 말은 언젠가 이 나라를 떠날 사람이란 뜻이야. 우리가 두렵지? 이름을 안 붙이면 불안해 죽겠지? 그럼 내가 사자라면, 사자는 자신을 사자라고 생각 안해! 니네가 맘대로 정한 이름이잖아! 이름 따위 뭐라도 좋아! 하지만 난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생각 안하니까! 난 외계인도 재일인도 아니야! 난 나야!’라며 민족으로서의 ‘우리’와 ‘너희’라는 원으로부터 개인으로서의 ‘나’를 선언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극복을 다짐하는 것이다.

스기하라는 사쿠라이와 헤어져 돌아오다가 북에 있는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에 술에 취한 아버지와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 공원에 내려 아버지에게 도전하고 권투시합을 벌인다. 스기하라는 아버지를 제대로 한 대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오히려 이가 부러질 정도로 맞지만 이 도전을 통해 스기하라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스기하라는 국경선을 없애겠노라고 말한다. 이제 스기하라에게 국경선은 국적이나 민족의 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세계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귀향이 아니라 정착의 문제

스기하라가 성장하는 동안 사쿠라이도 성장한다. 그래서 그로부터 반 년 후 사쿠라이와 스기하라는 다시 만난다. 스기하라는 원 밖에는 강적들이 우글우글하지만 그까짓 것 깨부수겠다고 말하지만 그 깨부수는 방식은 폭력을 통한 방어, 배제가 아니라 사쿠라이를 끌어당겨 품에 안는 포용이다.  

   
  ▲ 영화의 한 장면

<고>에서 민족은 철저히 스기하라 개인의 문제가 된다. 민족학교로 상징되는 북한도, 하와이로의 여행을 보증할 한국도, 교육과 언어와 생활의 터전인 일본도 스기하라에게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국가일 뿐이다. 재일의 문제가 이렇게 개인화되는 것은 스기하라가 재일 한국인의 문제가 2세대, 3세대로 넘어가면서 더 이상 조국으로의 귀향이 무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재일의 문제는 귀향이 아니라 정착에 있는 것이다.

이후 원작자 가네시로 카즈키는 <플라이, 대디, 플라이>(2003)의 시나리오로 영화에 직접 관여한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일본인 중년 샐러리맨 스즈키가 딸을 폭행한 고교 권투 챔피언과 맞서기 위해 한국계 일본인 고등학생 박순신에게 싸우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을 그린다.

<고>에서는 재일 한국인 주인공이 정호/스기하라로 이름과 정체성의 경계에서 갈등하지만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주인공은 그냥 ‘순신’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먼저 시나리오 초고를 쓰고 이를 바탕으로 소설이 쓰여졌으며 이후 2006년 한국에서 <플라이 대디>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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