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트콤 보고 사람들이 엉엉 울었다
        2009년 11월 19일 08: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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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일일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보통 시트콤은 과장된 캐릭터와 어처구니없는 설정으로 웃긴다. 등장인물들도 대체로 밝다. 비록 일시적으로 좌절하거나 상처 입을 순 있어도, 그것이 그리 대단히 아픈 것은 아니다. 그런 인물들이 좌충우돌하며 가벼운 웃음을 안겨주는 것이 시트콤인 것이다.

    이에 반해 정극 드라마는 보다 진지하며, 다양한 인간의 정서와 사회상을 탐구한다. 때론 절절하게 슬프기도 하며, 때론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반영하기도 한다.

    시트콤은 이런 정극 드라마에 비해 훨씬 가볍기 때문에 드라마가 아닌 쇼오락 예능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작품으로서 진지한 평가를 받는 경우도 드물다.

    이런 일반적인 분류를 뛰어넘는 괴물 시트콤이 등장했다. 바로 <지붕 뚫고 하이킥>이다. 이 작품은 <거침없이 하이킥>의 후속작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었는데, 뚜껑을 연 지금 기대 이상의 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웃다가 엉엉 울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초반에 시트콤다운 과장된 웃음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때 돌풍의 핵으로 떠오른 건 황정음이다. 황정음은 그리 잘못한 것 없이 비호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연기자로선 ‘듣보잡’에 가까웠다. 그랬던 황정음이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홈런을 날렸다. 바로 시트콤다운 과장된 캐릭터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툭하면 사고를 치고, 허둥대며 망가지는 떡실신 코믹퀸이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붕 뚫고 하이킥>은 잘 만든 시트콤의 길을 가는 듯했다. 그러다 요즘 이 작품은 놀라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시트콤을 뛰어넘어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부터 <지붕 뚫고 하이킥>은 본격적으로 아프다. 지난 주 부녀상봉 에피소드에서 이 작품은 사람들을 울렸다. 시트콤을 보며 눈물을 흘리다니! 나를 포함해, 엉엉 울었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어떻게 시트콤이 사람을 울릴 수 있다는 말인가.

    정극 드라마도 사람을 쉽게 울리지 못한다. 작년 이미숙의 폭발적인 열연 이후 드라마를 보다 눈물을 흘린 기억이 없다. 그러던 차에 시트콤에게 일격을 맞은 것이다. 시트콤을 보다 울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현실의 아픔 보여주는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 나오는 인물들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회의 현실에 기반한 아픔이다. 예컨대 작품 초반에 웃음을 책임지며 과장된 떡실신녀로 혁혁한 공을 세운 황정음이 사실은 지방대라는 학벌콤플렉스에 시달린다는 식이다. 황정음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에선 88만원세대들이 궁상-찌질의 정서를 보여준다.

    이 작품을 결정적으로 아프게 하는 것은 신세경 자매다. 그녀는 시골에서 무일푼으로 상경해 부잣집인 이순재의 집에 얹혀살며 식모살이를 한다. 밥과 청소, 빨래를 다 하고 집안 식구들의 심부름까지 도맡아 해주면서도 한 달에 50만 원을 받는다. 지난 주에야 겨우 월급이 60만 원으로 올랐다.

    기사까지 딸린 자가용을 몰고, 소갈비를 입에 달고 사는 집에서 신세경은 이방인이다. 이 작품은 정말 냉혹하게도 신세경과 그 동생이 이순재의 호의에 의해 행복하게 지낸다는 따위의 따뜻한 설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신세경의 동생이 책가방을 살 돈이 없어 정보석이 버린 서류가방을 들고 학교에 갈 정도다.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신세경은 또래 여학생들을 처연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녀의 아버지는 사채빚에 쫓겨 다니는 도망자 신세다. 헤어졌던 세 부녀가 마침내 지난 주에 만났다. 신세경은 자기가 번 돈을 쪼개 아버지에게 드렸고, 아버지도 신세경에게 돈을 넣어줬다. 그 장면을 보며 눈물이 줄줄줄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주에 <지붕 뚫고 하이킥>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깼다.

    현실에 기반한, 아픔을 담은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 사건이었다. 이번 주에 그 시청률 기록은 다시 깨졌는데, 그건 신세경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이야기의 기본은 결국 ‘사람’

    황정음과 신세경의 러브라인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마침내 신세경의 러브라인이 처음 시작됐는데, 그것이 시트콤답게 달달한 것이 아니라 아팠다. 시트콤의 러브라인이 아프게 시작되다니,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신세경은 주인집 아들을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 이야기가 과장 없이 너무나 담담하게 그려져 보는 이를 아프게 했다. 그 아픔과 함께 시청률이 또 자체 최고 기록을 깬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너무나 서글프고 아름다워서 시트콤이 아니라 베스트극장 같았다.

    그렇다고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트콤답게 웃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웃기는 속에서 사회상을 담고, 인간의 아픔을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시트콤 같지 않은 괴물 시트콤이다. 올 최고의 드라마는 단연 <선덕여왕>이었는데, <지붕 뚫고 하이킥>이 <선덕여왕>을 위협하고 있다. 스타들의 화려한 미니시리즈들이 판판이 나가떨어졌던 올해,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성공은 이야기의 기본이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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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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