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없는 사람들은 감옥으로 가리라
        2009년 11월 23일 09: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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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이 사람을 잡아먹는 곳, 용산에서 우리 이웃들이 스러져간 지 300일이 넘었다. 죽은 이들을 장례지내지 못한 지도 300일이 넘었다.

    용산 300일과 함께 해 온 문학예술인들이 못된 정부의 ‘기다리는 능력’에 맞서 ‘기억하는 힘’, ‘연대하는 힘’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용산 참사 헌정문집을 준비하고 있다. 11월 말경 실천문학사(작가선언 6.9 엮음)에서 출간될 예정인 그 글들 중 일부를 네 차례로 나누어 전한다. – 편집자 주

    ① 공선옥, 권여선, 권현형, 김경인, 김미월, 김종도, 김해자, 나희덕, 노순택, 도종환
    ② 문동만, 박수정, 박시하, 박후기, 백무산, 서영식, 손세실리아, 손택수, 송경동, 신용목, 신형철
    ③ 안현미, 양윤의, 염무웅, 오창은, 윤예영, 윤이형, 은승완, 이동수, 이만교, 이민하, 이상실, 이선우, 이시영, 이영광, 이윤엽, 이종수, 이진희
    ④ 정희성, 조약골, 지요하, 진은영, 차미령, 최창근, 한우진, 한지혜, 함돈균, 황규관

       
      ▲ 지난 2월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 했던 유가족이 울분을 참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것은 정말 거꾸로 된 세상, 이상한 나라의
    황혼이 짙어지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날기 시작하고
    지금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죄를 지어
    겨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촛불을 들고 어두운 감옥으로 가리라
    감옥 밖이 차라리 감옥인 세상이기에
    – 정희성(시인) <물구나무서서 보다> 중에서

    저희 <행동하는 라디오> 활동가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용산참사 현장에 머물며 인간다운 삶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소외되고 짓밟혀온 목소리를 내보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이 버틴다면 우리도 더 질기게 버틸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이 UCC 시대라는 것은 다들 아실 테지요? 라디오 방송과 동영상 제작이 가능한 촛불미디어센터가 남일당 건물 바로 뒤편에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앞으로 몇 백편이든 몇 천편이든 철거민들 편에 서서 진실을 알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조약골(가수. 독립미디어 활동가) <그들이 무섭고 싫다는 친구야, 이 방송을 들어보렴> 중에서

    나는 지하철 안의 주위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의 큰소리로 아들 녀석에게 호통을 쳤다.
    “대학생 놈들이 사회문제에도 좀 관심을 갖고 뜻 있는 일에 참여할 줄도 알아야지, 그렇게 만날 놀기만 하면 되냐? 네 친구들에게 용산참사 문제에 대해서, 또 용산미사에 대해서 설명 좀 하고 모두 일곱 시까지 용산으로 데리고 와. 알았어?”
    – 지요하(소설가) <역사를 만드는, 역사에 남을 용산미사> 중에서

    햄릿은 마음속에 간직한 아버지의 시신을 치우지 않고 남들이 헛것이라고 말하는 유령이 전하는 진실을 고통스럽지만 밝혀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이 세상에 공표될 때까지 슬퍼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용산의 햄릿들도 200일이 넘게 아버지들의 시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만 슬픔을 멈추라고 강요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일당 앞을 떠나지 못하는 햄릿들은 그 강요의 목소리가 추악하고 거짓된 것임을 잘 압니다. 그들이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떠난다면 또다시 어디선가 더 많은 아버지의 유령들이 분노로 일그러진 모습을 하고 나타나 더 많은 아들들에게 비열한 범죄를 밝혀달라고 호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산의 햄릿들은 계속 슬퍼하면서 미래의 또다른 아버지와 햄릿이 겪을 슬픔까지 모두 등에 짊어지고 싸웁니다.
    – 진은영(시인) <용산 멜랑콜리아> 중에서

    망루에서 돌아가신 이상림 할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레아호프’ 안팎은 각종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가 되었고, 4구역 안쪽의 무교동 낙지 건물은 ‘낙지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할 수 있는 어린이책 한마당도 열렸고, 에니메이션 상영회도 열렸습니다. 시민 여러분들, 문학인들, 음악인들, 미술인들, 학생들이 다녀갔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그곳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작은 공동체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산은 여전히 더 많은 분들의 발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르마다 강에서 로이는 외쳤습니다. “여러분, 어서 오십시오.”
    – 차미령(문학평론가) <아룬다티 로이와 용산참사 200일> 중에서

    불행한 일이지만 ‘(문학 혹은)연극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거나 ‘(문학 혹은)연극은 그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자화상’이라는 말이 쑥스러워질 만큼 한 편의 희곡을 써서 무대 위에 공연으로 올리는 작업이 점점 더 무력하고 부질없는 일로 느껴지는 요즈음입니다.
    – 최창근(극작가) <아주 조용한 나날들> 중에서

    우리가 그들을 부르지 않으면 그들은 마침내 죽는다. 호명해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들이 산다. 비참한 악습을 몰아낼 새로운 눈물은 우리에게 그득하고, 그득하다 못해 넘쳐난다. 찔레나무여, 찔레나무여 바야흐로 살인자를 얼음 속에 산채로 집어넣을 시간이 됐도다!
    – 한우진(시인) <찔레나무> 중에서

    그들이 망루에 올라갈 때까지 나도 그들을 보지 못했다. 내 삶에 직접 영향이 없다면,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불합리하게 흘러가더라도 침묵하는 태도 또한 그들을 망루에 올리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그것이 소시민의 삶이겠지만, 실은 그 또한 변명에 불과하다. 무너진 집에서 쓴 소설과 시대가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 20년 전. 그런데 그 고루하고 낡았던 이야기가 바로 지금 눈앞에서 다시 벌어졌다. 누가 망루에 불을 질렀는가. 책임을 면할 자 아무도 없다.
    – 한지혜(소설가) <누가 망루에 불을 질렀는가> 중에서

    도무지 자기성찰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일사불란하고 맹목적이며 야비하고 무자비한 19개월의 정권의 시간이 흘렀다. 문학의 자리에서 볼 때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예의가 사라진 이 시간은 거대한 재앙의 시간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 재앙 같은 시간 속에 용역이라는 이름의 그럴싸한 깡패조직과 재개발조합이라는 이름의 허울 좋은 투기세력과 오로지 자본의 무한증식만을 욕망하는 건설재벌, 거대한 이권세력의 수호에만 기민한 법의 하수인들의 ‘협업’으로나 가능할 수 있었던 용산참사가 250일을 지나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를 지상에 임하게 할 것을 간구하는 장로 대통령의 나라에서, 250일이 지나도록 살인을 저지른 법의 하수인들은 자신들의 ‘주인’을 믿고서 아직도 장례를 치루지 못한 냉동된 주검, 얼어붙은 귀신들 앞에서 기세가 등등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희생시킨 사람들이 정작 제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진짜 주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이것이 법원의 미공개수사기록 공개 결정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더 뻔뻔하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이유이다.
    – 함돈균(문학평론가) <정녕 당신이 보시기에 참 좋습니까> 중에서

    힘이 없는 내 시는 고작 ‘죽음에 대한 예의’를 운운하고 말았지만, 그것은 정말 적을 벨 수 있는 날카로움이 아직 없어서 그런 것이다. 이 무력한 시를 언제까지 쓸 것인가. 이 무용한 문학을 언제 버릴 수 있을 것인가!

    시커멓게 타 버린 삶 앞에서, 다 태워죽이고도 사실적(?) 논리를 을러대는 현실 속에서 시의 새로움이 있다면 자기 파괴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산 자의 가슴에 폐허가 들앉지 않도록 뭔가를 보태야 하는 시간을 살고 있을 뿐이다. 저들은 삶의 공간만 폐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가슴에도 폐허가 번지게 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폐허 위에서만 자본의 증식은 극에 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 황규관(시인) <죽음에게는 먼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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