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도 신종플루 휴가 달라구요"
    2009년 11월 18일 01: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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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한파는 서울만이 아니었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울산의 날씨도 매서웠다.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 계신 경비아저씨도, 공장을 지나다니는 노동자들도 모두 모두 마스크를 썼다. 추위 날씨 탓도 있겠지만 학교 담장을 넘어 공장으로 침입한 신종플루 때문이었다.

공장은 학교와 똑같다.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해 같이 일을 하고, 떼거지로 밥을 먹고 통근버스를 타고 퇴근한다. 노동자 한 명이 걸리면 그 라인의 노동자들 모두가 위험하다. 공장은 학교만큼 심각한 신종플루 확산지다.

“제가 알고 있는 비정규직들만 열 다섯 명 정도가 신종플루에 걸렸어요. 근데 어떤 업체 사장들이 아직 협의된 게 없다며 유급휴가를 안 주고 있어요.”

학교와 똑같은 공장

금속노조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이상수 지회장이 크게 한숨을 짓는다. 비정규직지회 사무실로 계속 전화가 걸려오고 있는데 신종플루에 걸린 노동자들이 모두 노조 조합원이 아니어서 손 쓸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에는 정규직이 2만5천 명, 비정규직이 대략 1만 명 정도 일한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지난 11월 4일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협의를 통해 신종플루 확진환자에 대한 근태인정 건에 대해 확산방지 및 회복을 위해 7일간 특별휴가를 주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유급휴가를 주는 대상은 ‘감염 종업원’이다. 1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은 현대차 종업원이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가 오른쪽 바퀴를 끼울 때 맞은 편에서 왼쪽 바퀴를 끼우지만 신분은 현대차가 아닌 ‘도급업체 종업원’이다.

“1공장과 2공장에 우리 조합원이 많잖아요. 그래서 거기서 신종플루 걸린 비정규직들은 모두 유급휴가를 줬어요. 개인휴가를 쓰라고 했다간 우리 조합원들이 난리치고 시끄럽게 할까봐 그런 거죠.”

비정규직지회 최정민 사무장의 말처럼 조합원이 별로 없는 공장, 만만한 비정규직한테는 신종플루 휴가도 안주는 ‘못된’ 사장들이 있는 것이다.

언제 짤릴지 모르는데… 플루 정도야

16일 저녁 현대차 3공장의 ‘일성’이라는 업체에서 일하는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조 사무실로 전화를 했단다. 신종플루에 걸려 집에 있는데 회사에서 개인 휴가를 쓰라고 한다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했다. 그는 억울하지만 언제 짤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처지에서 항의도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었던 것이다.

비정규직지회가 항의를 하자 업체 사장들은 “협의가 아직 안 끝나서”라고 말한단다. 누구랑 무슨 협의를 한다는 말일까? 당연히 현대차와 협의를 하는 것이다. 현대차가 돈을 주면 유급으로 처리해주고, 안 주면 개인휴가를 내게 한다는 의미다.

사실 방법은 간단하다. 신종플루에 걸린 비정규직 동지에게 유급휴가를 안 주면 그냥 출근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업체 사장이 있는 사무실과 높으신 현대차 ‘사장님’이 계신 본관에 가는 것이다.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떠들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 된다. 그럼 ‘지들’이 걸릴까봐 유급휴가를 줄 것이다.

만도 문막공장에서도 그랬다. 처음에 신종플루 환자가 나오자 회사는 연월차를 쓰라고 했다. 그러나 노조 간부들이 회사에게 “신종플루 걸린 조합원 데리고 본부장실에 가겠다”고 했더니 회사가 유급휴가를 줬다.

이후 금속노조 만도지부는 신종플루 유행단계가 ‘심각’ 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11월 9일 ‘산안실무협의’를 벌여 특별휴가를 주는 대상을 “신종플루 확진 판정자 및 간이검사 양성 판정자”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즉, 의심환자도 휴가를 준다는 것이다.

노동자야 죽든 병에 걸리든 돈만 벌면 되는 못된 사장님들! 신종플루 걸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유급 휴가 좀 주쇼. 당찬 노동자 만나서 같이 신종플루 걸리는 꼴 당하기 전에 말이요.

2009년 11월 17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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