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오지 않는다
        2009년 11월 18일 11: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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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이 사람을 잡아먹는 곳, 용산에서 우리 이웃들이 스러져간 지 300일이 넘었다. 죽은 이들을 장례지내지 못한 지도 300일이 넘었다.

    용산 300일과 함께 해 온 문학예술인들이 못된 정부의 ‘기다리는 능력’에 맞서 ‘기억하는 힘’, ‘연대하는 힘’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용산 참사 헌정문집을 준비하고 있다. 11월 말경 실천문학사(작가선언 6.9 엮음)에서 출간될 예정인 그 글들 중 일부를 네 차례로 나누어 전한다. – 편집자 주

                                              *     *     *

    ① 공선옥, 권여선, 권현형, 김경인, 김미월, 김종도, 김해자, 나희덕, 노순택, 도종환
    ② 문동만, 박수정, 박시하, 박후기, 백무산, 서영식, 손세실리아, 손택수, 송경동, 신용목, 신형철
    ③ 안현미, 양윤의, 염무웅, 오창은, 윤예영, 윤이형, 은승완, 이동수, 이만교, 이민하, 이상실, 이선우, 이시영, 이영광, 이윤엽, 이종수, 이진희
    ④ 정희성, 조약골, 지요하, 진은영, 차미령, 최창근, 한우진, 한지혜, 함돈균, 황규관

    인도에서 나르마다 강 유역의 대규모 댐 건설 프로젝트에 반대해 온 아룬다티 로이가 말했다고 한다. 부당한 정부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다리는 능력’이라고. 국민이 망각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그 오만.

    정말 그러한가. 용역깡패, 경찰, 구청과 시청공무원, 검찰, 법원을 휘하에 거느린 정부와 보수 언론들과 이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투기 건설자본들의 굳건한 동맹 속에 짓이겨져 온 용산 참사 300일. 탄압과 무시와 왜곡에 맞서 참사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아직도 냉동고에 갇힌 차가운 시신의 냉기를 기억하고 보듬는 일은 누구에게나 무척이나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 1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는 500여명이 참석한 ‘용산참사 300일 범국민추모대회’가 열렸다. 대회에 참석한 유족들 (사진=손기영 기자)

    하지만 돌이켜보면 용산의 진실은 조금씩 넓어져 왔다. 구청 이외엔 만날 수 없다던 정부도 서울시청을 내세워보고, 급기야는 국무총리로 하여금 현장을 방문토록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가 망각의 문턱을 넘어 진실의 화살촉을 겨눠야 할 과녁은 한 군데밖에 안 남았다. 그곳은 시대의 외침에 귀막고 벌거벗은 임금이 숨어 사는 청와대다. 봉건영주의 시대도 아니고, 단지 우리로부터 허드렛일을 위임받은 일꾼일 뿐인 한 사람의 오만과 아집과 독선과 편파와 폭력이 이 시대를 망치고 있다.

    유가족들과 철거민,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요구는 소박했다. 사과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투기 건설자본들의 천문학적 이윤만을 지키지 말고 죽은 자와 철거민들에게 최소한의 정당한 보상을 하라. 이것은 사람의 말이었다. 주인들의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현대판 벌거벗은 임금은 제 나라의 가장 평범한 국민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더 잔인한 무시와 탄압만을 일삼았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소수 특권층의 과도한 특혜를 위해 국가공권력을 사제 폭력 다루듯 하지 않는, 평범한 민주주의자를 대통령으로 가져 볼 수 있을까.

    그들의 힘은 기다리는 힘, 우리의 힘은 기억하는 힘

    그렇게 지나 온 통탄의 300일. 이제 우리 모두의 ‘기다리는 능력’ 역시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못된 정부는 제 나라 국민들이 쉽게 진실을 잊는 바보들이나, 사회적 연대를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인식의 힘과 양심의 너비를 믿는다.

    용산을 덮친 부조리한 투기 개발동맹의 화마는 ‘집․땅․돈’이 없거나 적던 철거민들만 쓰레기처럼 불태운 것이 아니었다. 그 화마는 우리 모두의 상식을 불태웠고, 지난 세월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을 잉크 삼아 어렵게 한 장 한 장 써 온 이 땅 민주주의의 역사를 불태웠다. 이 화마에 양심을 데인 무수한 사람들이 용산으로 달려 왔고 거기 문화예술인들도 있었다.

    그렇게 용산 300일과 함께 해 온 문학․예술인들이 못된 정부의 ‘기다리는 능력’에 맞서 ‘기억하는 힘’, ‘연대하는 힘’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용산 참사 헌정문집을 준비하고 있다. 11월 말경 <실천문학사>(작가선언 6.9 엮음)에서 출간될 예정인 그 글들 중 일부를 전한다.

    용산4가 골목 안 레아 호프에 우리가 걸어놓았듯 “우리는 힘들지 않다”. 우리 모두의 기억하는 힘은 이후로도 계속될 것이며, 더 넓고 깊어져 인문학적 소양과 인간됨이 부족한 한 벌거벗은 임금의 처참한 몰골과 그 뒤에 숨은 투기자본들의 그릇된 욕망과 신화를 만천하에 즐거이 알리게 될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독이 될 수도 있다, 라고 우리가 쓰고, 읽고,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게 될 것이다. 현장엔 나와 보지도 못하고 죽은 법전의 문구나 매만지며 되뇌이고 있는 법정이 판단할 것이라고?

    역사 이래로 문학․예술 역시 늘 당대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더 깊숙이, 더 풍부하게, 더 올바르게 선고하고, 판단해내며, 부패를 응징하며, 이를 범사회적으로 공인케 하는 영예로운 시대의 시퍼렇게 날 서 살아 있는 법정이었다는 것을 독재자여! 잊지 말라. 펜 끝이 때론 어떤 칼 끝보다 예리하게 썩어버린 환부를 드러낼 수 있음을. 

                                                      *     *     *

    나는 다시 단언한다. 오늘, 대한민국 사람들이 용산의 죽음을 이토록 무심하게 대한다면, 용산의 죽음에 대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정의를, 민주주의를 입에 올릴 수 없다. 용산에 침묵해놓고 정의를 말하고 민주주의를 말하고 선함에 대해서 말하는 자, 모두 위선자들이다.

    ‘저 나쁜 바보들의 악행’은 그리하여, 이제 대한민국의 모든 ‘좋은 기운들’을 제압하고 말 것이다. 약한 것들도 웃음 웃고 살 수 있는 평화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돈으로 이루어진 사막’이 되고 말 것이다. 정녕 당신은, 우리는 그런 나라를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용산으로 가야한다.
    – 공선옥(소설가) <지금 당장 용산으로 달려가야 한다> 중에서

    저를 이곳까지 불러와 용산 앞에 두 손을 모으게 만든 것은, 용서도 구하지 않고 잊기만을 기다리는 저 철면피한 세력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들이 구원처럼 기다리는 것은 망각입니다. 저 사나운 세력들과 싸우려면 우리는 하루하루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의 목록을 가슴에 끌로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 권여선(소설가) <우리는 달려간다 용산으로> 중에서

    이십 오 년 간 한 자리에서 갈비집을 하던, 업종을 바꿔 호프집을 하던, 치킨집을 하던, 국밥집을 하던,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은 누구든 하루 아침에 다섯이 검은 한 덩어리로 취급당하는 일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말, 투쟁이라는 말, 인권이라는 말을 꿈속에서라도 써 본 적 없이 살아왔던 삶들이 느닷없이 열사가 되었다.

    어쩌다 트로트 대신 운동가요 한 소절을 배우게 되더라도 부끄러워서 낯설어서 입시울을 달싹이지도 못할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도심의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리는 기막힌 일이 재개발 지역이라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 권현형(시인) <푸른 책 검은 책> 중에서

    경찰들에게 세입자들은 ‘Hi-SEOUL’을 완성하기 위해 한시바삐 사라져야 할 대상일 뿐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삶 앞에서 필사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날 그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서 망루에 올랐을 것이다. 망루에 오르면서 그들은 마치 낭떠러지 앞에 다다른 것처럼 두렵고 슬펐을 것이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올라간 그들은 죽어서 그곳을 내려왔다.
    – 김경인(시인) <09년 1월 20일, 하느님은 떠나셨다> 중에서

    저녁 늦게 불법 추모제가 끝나면 유가족들은 여태 냉동고에 갇힌 채 눈도 감지 못한 망자들 곁으로, 아직까지 빈소가 마련돼 있는 순천향병원의 장례식장으로 귀가한다. 귀가? 그렇다. 집으로 가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빈소의 조문객용 탁자 사이에 누워 새우잠을 잔다. 그곳에서 밥을 먹는다. 철거민 고(故) 윤용현 씨의 고교생 아들과 고(故) 이성수 씨의 고교생 아들, 고(故) 이상림 씨의 중학생 손자는 아예 그곳에서 학교를 다닌다.

    먹고 자고 학교에 다니는 곳, 장례식장이 곧 집인 것이다. 하기야 그들에게는 어차피 이 세상 전체가 장례식장이다. 용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언제 어디서든 검은색 상복을 벗지 못할 것이므로.
    – 김미월(소설가) <다음은, 나중은, 조금의 여유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중에서

    이들은 강력하게 파시즘으로의 회귀를 꿈꾼다. 이 추악함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추악함의 본질을 까발리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그림으로 그들의 꿈을 분해하는 일이다.

    그런 마음으로 용산 참사 현장 고 이상림 열사(72세)가 운영하던 까페 레아에서 열리는 ‘끝나지 않는 미술전’에 참여했다. 그렇게 주저하던 생애 첫 개인전을 철거 지역에서 열었다. 일주일 동안 신들린 듯 그림을 그렸다. 그리곤 언젠간 철거될 버려진 건물에 나는 꿈을 심었다. 그들은 그들이 진정 철거시킬 수 없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양심이여 연대의 문화이다.
    – 김종도(미술가) <불꽃과 함께 사라지다> 중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짓을 용납한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고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이런 세상을 발전이고 진보라고 생각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일하고 사람이 사람과 함께 먹고 함께 서로 사랑하는 대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죽이는 뼈아픈 세상을 용납하고 있는 저희들을 용서하세요.
    – 김해자(시인)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 중에서

    제2, 제3의 용산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적 질서와 폭력적인 국가권력을 향해 그 죽음의 행렬을 돌이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신정 6-1지구에서 용산 4지구까지」에서 호명했던 수많은 지역들에서 개발이라는 전쟁은 계속되어 왔고, 계속되고 있고,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의 주체는 자본과 국가만이 아니다. 더 크고 새로운 아파트를 소유하려는 마음이 있는 한, 유리창의 안과 밖에서 우리는 더 견고한 침묵을 키워갈 수밖에 없다.
    – 나희덕(시인) <신정 6-1지구에서 용산 4지구까지> 중에서

    이 나라는, "사람 여섯이 불에 타 죽었다"고 울부짖어도 모른 채 외면하는 민주시민의 나라, 덕수궁 분향소에서 5시간을 기다려 조문하고 흐느낄 줄은 알아도, 겨우 15분 거리, 1분을 기다릴 필요도 없는 용산 분향소로는 발길 돌릴 줄 모르는 이중감정의 나라. 그렇게 불에 탄 시신이 다섯 달째 냉동고에 처박혀 있어도, 눈만 꿈뻑꿈뻑대는 메마른 양심의 나라.

    쥐를 욕하면서도 그 자신 ‘반인반쥐’가 되어가는 줄 모르는 착각의 나라.
    – 노순택(사진작가) <히틀러만이 사람을 태워 죽인 것은 아니다> 중에서

    망루를 오르다 불에 타 죽고
    죽은 몸은 다시 냉동되어 여름까지도
    망각의 상자 속에 갇혀 이승에 방치되어 있었고
    경찰과 깡패가 한 개의 방패 뒤에 저희
    그림자를 가리고 발맞추어 지나가고 나면
    신문은 무기가 된 활자의 볼트와 너트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마구 던졌다
    – 도종환(시인) <그해 여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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