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의 하늘, 우리 모두의 화상
        2009년 11월 19일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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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이 사람을 잡아먹는 곳, 용산에서 우리 이웃들이 스러져간 지 300일이 넘었다. 죽은 이들을 장례지내지 못한 지도 300일이 넘었다.

    용산 300일과 함께 해 온 문학예술인들이 못된 정부의 ‘기다리는 능력’에 맞서 ‘기억하는 힘’, ‘연대하는 힘’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용산 참사 헌정문집을 준비하고 있다. 11월 말경 실천문학사(작가선언 6.9 엮음)에서 출간될 예정인 그 글들 중 일부를 네 차례로 나누어 전한다. – 편집자 주

                                                     * * *

    ① 공선옥, 권여선, 권현형, 김경인, 김미월, 김종도, 김해자, 나희덕, 노순택, 도종환
    ② 문동만, 박수정, 박시하, 박후기, 백무산, 서영식, 손세실리아, 손택수, 송경동, 신용목, 신형철
    ③ 안현미, 양윤의, 염무웅, 오창은, 윤예영, 윤이형, 은승완, 이동수, 이만교, 이민하, 이상실, 이선우, 이시영, 이영광, 이윤엽, 이종수, 이진희
    ④ 정희성, 조약골, 지요하, 진은영, 차미령, 최창근, 한우진, 한지혜, 함돈균, 황규관

     

       
      ▲ 용산참사 현장에 고 이상림 씨(왼쪽)와 고 양회성 씨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단 한 곳의 성한 숨구멍도 없이 쓰러진 이들은 다섯 명이었으나, 그 화상은 곳곳에 번져갔다고 쓰여질 것이다. 대개 심장 가까운 곳이었으리라고. 각각의 화상 자국으로 이 화염의 시간을 건너면 그들은 환히 되살아올까. 생맥주잔을 설거지하는 며느리 잔등을 살짝 토닥이는 촉촉했던 시아버지로, 감히 계몽컨대 이 화상은 모두의 화상이다. 모두의 화상이어야 한다.
    – 문동만(시인) <죽여서 죽었다> 중에서

    ‘땅·집·돈’이 없는 자를 금 밖으로 몰고,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며, 철거용역이 주민들을 일상으로 모멸하는 개발‘사업’ 과정이 학살이다. 그 ‘사업’은 대화 노력 없이 경찰력을 동원해 망루 아래위를 포위해 사람을 죽였다. … 6명이 죽은 사건의 공식 이름은, ‘용산 학살’이다.
    – 박수정(르뽀작가) <학살, 엘도라도 카라자스와 용산> 중에서

    노을이 지는 시간이면 늘 변함없이 누군가는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누군가는 색색의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누군가는 음악을 틀어 상처로 얼룩진 골목에 흐르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씩 어디선가 모여들어 죽은 이의 안식을 기도했고, 손에 손에 조그만 촛불을 나누어 들었습니다.

    … 골목 사이로 거센 바람이 불어와 가끔 그 촛불은 꺼지고 말지만, 그러나 떨리는 손 안에서 미세한 따스함은 곧 다시 전해져 환하게 불타오릅니다. 가장 검은 밤에 가장 환하게. 죽은 사람들이 어찌하여 산 사람들의 입 속에 검은 밤처럼 모이는 것인지, 용산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역설의 낙원에서 우리가 그려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별의 근육입니다
    – 박시하(시인) <어찌하여 죽은 사람들이?> 중에서

    지상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난간 위에 망루를 세웠다. 망루가 서 있던 난간은 무너진 하늘의 일부였다. 그곳은 철거민들의 소도(蘇塗)였지만, 관리들은 용산 4지구라고 불렀다. 누군가 망루에 불을 질렀고, 시커멓게 타버린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 급하게 이승을 빠져나갔다.

    모두 난간 위에 살고 있으면서도 발아래 세상을 보지 못했다.
    – 박후기(시인) <난간에 대하여> 중에서

    그렇다, 저들이 철거하려던 것은 낡은 집들이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였다
    저들이 강제로 부수고 내쫒으려던 것은 가난과 낡은 도시가 아니라
    가진 것 없는 자들의 권리와 주권과 생존권이었다!

    그렇다, 그날 새벽에 아무런 우연도 없었다
    모든 건 계획되고 예정된 수순이었다
    돌발사건도 없었다 실수도 착오도 없었다
    그리하여 저들은 스스로 위장 가면도 벗어 던졌다
    그날 아침 투입된 경찰 특공대는 경찰이 아니라
    재벌의 용역임을 선언하였다
    정부와 청와대가 재벌의 특공대임을 감추지 않았다
    – 백무산(시인) <민주 공화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자행한 학살만행을 보라!> 중에서

    지상에서 쫓겨난 자들이 망루로 갔다. 망루에서 내몰린 영혼들이 산 채로 화장 되었으나 바뀐 건 없었다. 그 망루에 눈이 내렸다 녹았으나 다시 겨울이었다. 그 망루에 꽃이 피고 졌으나 봄은 오지 않았고, 그 망루에 폭우가 내렸으나 씻겨 내려간 건 아무것도 없었다.
    – 서영식(시인) <목구멍이 포도청> 중에서

    당신이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을 외쳐댈수록
    불행히도 나는 자꾸만 사기당한 기분이 든다
    하여, 이는 진정한 존경이 아닌 것이다
    생존의 터전을 지키려다 불타 죽은 이웃도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이며
    아비를 아들을 남편을 형제를 이웃을
    동료를 친구를 지켜주지 못해 통곡하는 이들도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이다
    – 손세실리아(시인) <거리에 두고 온 시> 중에서

    국방부 선정 금서를 발행한 출판사에 다니고
    피디 수첩에 출연해 그에 항의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감시를 받고 있다는 환각에 시달리게 한다
    풍수학상 화마를 잡는 남대문이 불타버렸으므로 촛불을 끄기 위해
    대운하를 추진해야 한다는 설이 조금씩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나라
    오오 두려운 괴력난신의 염력기공사가 틀림없이
    권력 핵심부에 영혼을 팔아버렸나 보다
    용산참사 현장 불에 그슬린 건물에
    염력기공세계총본부 간판이 아직 붙어 있다는 후문이다
    – 손택수(시인) <염력기공의 나라> 중에서

    용산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쉽지 않을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믿어야 한다. 이것은 명백한 공권력 타살이고, 타살에 대한 책임을 이명박 현 대통령과 정부가 져야 한다고. 우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우리 스스로가 가진 힘을 믿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양심을, 연대의 마음을, 저항의 힘을 믿어야 한다. 저들의 탄압과 폭력과 야만이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식이 현실이 된다고 믿어야 한다.

    … 난 3류 시인이다. 좋은 시는 쓸 줄 모르지만 꿈꿀 줄은 안다. 늘 사람들이 안 된다는 한계와 경계 너머에도 수많은 가능성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들을 본다. 벽이 있으면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물은 어디로든 흘러간다. 막히면 돌아가고, 도저히 안되면 땅 속으로 스며서라도, 증발해서라도 어디론가 흘러간다. … 움직이는 것들을 막으려는 노력은 부질없거나 부패한 것들이다. 용산의 진실은 그렇게 묻을 수 없는 진실이다.
    – 송경동(시인) <이 냉동고를 열어라> 중에서

    아버지, 이제 장마가 오면 뜨겁던 몸도 그늘을 치듯 조금은 식을 수 있을는지요 우리는 여기 향을 피우고 당신이 뿜었을 마지막 숨이 연기처럼 흩날리는 것을 국화꽃 그늘 앞에 상을 차리고 바라봅니다 당신 등골을 타흐르던 땀처럼, 한나절 비가 천막을 치고 갑니다 그리하면 점점이 흩어진 살들도 송글송글 소금기 같은 여름꽃 몇 송이 키울 수 있을는지요
    – 신용목(시인) <용산의 당신에게> 중에서

    시를 읽는 일이 한가롭다는 생각 때문에 용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좋은 시는 절박하고 또 정치적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랑시에르는 정치와 예술이 ‘근본적으로’ 연동돼 있다고 주장한다.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을 보이고 들리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라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이 나타나서 그간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로 무언가를 주장할 때 시작되는 것이 정치다.

    그러니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둘러싼 완강한 질서를 재조직한다는 측면에서 예술과 정치는 하나다. 그렇다 해도 새해 벽두에 가장 참혹하고 치명적인 시는 시집이 아니라 용산에 있었다.
    – 신형철(문학평론가) <용산, 참혹하고 치명적인 시(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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