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수노조 제대로 알고 투쟁하자
        2009년 11월 17일 09: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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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3일 전임자임금과 복수노조와 관한 노사정 6자회의가 아무런 진전 없이 끝났다. 18일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열리지만 별다른 진전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한국노총은 총파업 찬반투표를 벌이고 있고, 민주노총은 전국단위노조대표자 수련회와 1만 노동자 상경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 강공책의 배경

    그러나 정부와 자본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11월 10일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는 법 개정 없이도 가능하다, 내년부터 반드시 시행할 것”이라며 “복수노조 허용 뒤에 창구 단일화가 안 될 경우, 사용자가 교섭을 거부해도 불법으로 간주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30일에는 복수노조에 대해 "노조설립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와 똑같다, 언론사가 추가로 생긴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고, 노조 전임자 임금에 대해서도 “노동운동은 전임자가 필요하지만 사람을 줄이든지, 조합비를 올리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11월 11일 정운찬 국무총리는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고 봉급을 받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명백하다.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 세계 모든 나라에서 ‘노사 자율’로 결정하며,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단체협약을 통해 전임자 임금을 보장받는다. 국제노동기구(ILO) 제135호에도 ‘사업장 단위의 노동자 대표에 대하여 사용자가 필수적인 편의를 제공할 것과 부당한 차별 취급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제노총과 OECD노조자문위윈회도 한국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복수노조는 어떨까? 복수노조 금지조항은 미조직 노동자의 단결권 금지로 작동해 왔다. 우리나라 조직률이 전 세계 최저 수준인 10%에 머물고 있는 것은 정권과 자본의 적대적 노조정책이 주요 원인이지만 ‘먼저 설립된 하나의 노조만을 인정’하는 복수노조 금지조항도 혁혁한 공을 세워왔다.

    복수노조 문제 제대로 알기

    복수노조 금지시대의 고전적인 노조봉쇄 작전은 현장에 노조결성 움직임이 감지될 때 소수 관리직으로 노조를 설립해 먼저 신고하는 것이었다. 사측보다 5~30분 늦게 행정관청에 도착해 노조 설립에 실패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하부단위에 대한 노조설립 신고의무가 없는 산별노조, 초기업단위 노조들이 확산되면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졌다. 보다 세련된 노무컨설팅이 필요할 것 같이 보였지만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현장의 움직임과 관계없이 미리 노조를 만들어 놓으면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본가들의 꿈의 공장’으로 유명한 기아차 모닝을 만드는 동희오토다. 2004년 1월 공장가동과 동시에 11개 전 업체에 친인척, 인사담당을 위원장으로 하고, 2~3명의 관리직 이름을 올려 유령노조를 설립해 놓았다.

    2005년 9월 4일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를 결성하여 각 업체에 교섭을 요청하였으나 이미 노조가 신고되어 있어서 복수노조에 해당한다며 교섭을 거부했다. 물론, ‘산별노조와 기업별노조의 중복은 복수노조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소송 과정을 거쳐 대법원에서 승소하였으나 이미 2년 이상이 지난 뒤였다.

    2005년 10월에는 이젠텍 분회를 결성하고 교섭을 요청하였으나 사측은 2000년에 이미 설립된 노조가 있으므로 복수노조에 해당되어 교섭에 응할 수 없다고 했다. 그 2000년에 설립된 노동조합은 조합비를 징수한 사실이 없고, 노조가 있었는지 현장노동자들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서류상으로 위원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선 설립된 노조로 기득권을 보장 받았다. 이젠텍 역시 소송과정을 거쳐 대법원에서 승소하였으나 2년 6개월이 지난 뒤였다.

    2006년 7월에 인천 한국단자에서 외주화된 휴먼엔테크는 노무컨설팅에 따라 새로운 법인을 만들면서 소수 관리자들로 노조설립 신고도 함께 해 놓으며 노조에 대한 대비책을 만들어 놓았다.

    끊이지 않는 악용 사례들

    지난 11월 3일 설립한 인지컨트롤스안산공장(본사)에는 150명의 현장노동자 중에 압도적 다수인 136명이 금속노조에 가입해 교섭을 요청하였으나 사측은 복수노조라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이유는 작년 10월 경주공장에서 인지컨트롤스지회가 만들어지자 노조의 확산을 막기 위해 2명으로 노조설립 신고를 해 뒀기 때문이다.

    회사가 만들어 놓은 2명의 소수노조는 이제 가입원서를 배포하며 가입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젠텍, 동희오토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령노조를 살려내어 교섭대상으로 삼아 교섭도 하고 협약도 체결하는 쇼를 보여 줄 것이다. 그러면서 금속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의 탈퇴와 어용노조로의 가입을 종용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유린해 갈 것이다. 복수노조가 허용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동희오토, 이젠텍 등 ‘산별노조 하부단위와 기업별노조의 중복은 복수노조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 기조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노동부는 기업단위에서 산별노조의 하부단위라도 무조건 2개의 교섭창구는 인정할 수 없다는 행정지침을 변경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가 “대법 판결의 기조를 따르지 않고, 법치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초법적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활을 걸고 복수노조 관련 행정지침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 노동부의 행정지침을 대법 판결기조에 따라 유령노조나 기업별 노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산별노조의 하부단위에 교섭권을 인정하게 된다면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와 초기업단위 노조의 급속한 확산이 불 보듯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 "산별노조 확산을 막아라"

    그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 ‘교섭창구 강제단일화’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현재는 ‘기업별 노조 간의 중복만을 금지한 법안의 불분명성’으로 복수노조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판례가 계속 나오고 있어 굉장히 난감한 상황일 수 있다.

    대법원 판결기조와 대립되는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2개 이상의 교섭은 안 된다’며 위태롭게 붙들고 있는 복수노조 관련 행정지침의 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교섭창구 강제 단일화’를 법에 명시해야할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섭창구 강제 단일화’는 먼저 설립된 한 개의 노조만 인정한 기존 복수노조 금지시대의 되풀이 일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사적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현재의 대법원 판결 기조마저 무력화시키는 것이며, 노동자 일부의 교섭권을 빼앗는 위헌일 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자본의 노조탄압 도구로 아주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분명하다. 첫 번째로, 노동부는 교섭창구 강제 단일화 운운하기 이전에 지금 당장 대법판결 기조를 무시하고 법치주의를 유린하는 복수노조 관련 행정지침을 변경하여 기업별 노조와 산별노조의 중복에 대한 교섭권을 인정해야 한다.

    두 번째는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자유로운 단결권 보장을 위해 복수노조는 반드시 허용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섭창구 강제 단일화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노동 기본권을 제약하고 자본에게 합법적인 노조탄압의 무기를 주는 교섭창구 강제단일화 저지를 위해 전력을 다해 투쟁해 나가야 한다.

    정부는 현행법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한국노총은 정부와 복수노조 유예 및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단계적 시행 등 대타협을 거래하고 있다. 전임자는 노동운동 저항의 무기고, 복수노조는 노동조합이 없는 90%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의 무기다. 민주노조가 어떻게 싸우느냐에 따라 한국 노동자의 운명은 크게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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