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의 기운을 담은 유기농 호박고구마
        2009년 11월 17일 09: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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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서천군 마서면 남전리 합전마을에 세계의 중심 아리랜드가 있다. 조개마을(蛤田) 이름 그대로 서해안의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이다.

    아리랜드에 들어서면 동백동산 입구 시비(詩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이 땅의 역사(歷史)와 소망(所望)앞에서 마음을 한 번 여미곤 한다.

    이 땅이 세계의 중심되게 하소서!

    나 이 땅에 한 씨알을 심었네
    우리의 생명과 농업을 보전할….

    난 기도했네 이 땅이
    세계의 중심이 되길…

    그리고
    난 바라보네
    언젠가 이루어질 아름다운 세계를 ….

    정순보(1904~1992)

       
      

    지난 1997년 아리랑농장을 처음 방문했다.

    동백동산에서 ‘이 땅이 세계의 중심되게 하소서’라는 자기고백적 선언을 읽고 30대 후반의 나는 한참동안 내면 깊숙이 뜨거운 것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그랬다. 간결하지만 영혼이 담긴 농업적 비전을 처음 만난 것이다.

    그날 정의국씨와 첫 대면 인사를 나누자마자 ‘세계의 중심’은 어떤 의미인가요? 물었고…. 집으로 올라와 여러 생각 끝에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세상의 중심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이후 나의 온라인 아이디는 ‘ecenter’이고 닉네임은 ’세상의 중심‘이다.
    내가 바르게 서야 세상도 바르게 서는 의미도 덧붙여서 좌우명으로 삼았다.

    아리랜드는 1948년에 정의국씨의 아버님 정순보 선생이 일군 아리랑농장이 모태다. 1992년 작고한 고(故) 정순보 선생은 육종가로서 십자화과 채소인 배추와 무의 품종을 개발, 채종하여 업적을 남긴 전문가다.

    또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튜울립과 히야신스를 노지재배로 서해안에 피게 해 1960년대 초 경제여건이 어렵고 교통이 불편한 시절에도 튜울립을 보러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전국 종묘상들을 통해 퍼져나갔다.

    그때 튜울립과 함께 황무지를 개간하여 가꾼 7~80년된 동백나무 100여 그루와 수선화 10여만송이, 각종 나무와 새들의 노래소리는 아리랜드의 주요한 볼거리이자 ‘찾아오는 농촌(농촌 어메니티)’의 밑거름이 되었다.

    정순보 선생은 아리랑농장을 세우면서 ‘세계의 중심’이 되는 꿈을 심었다. 힘이나 돈으로 치면 뉴욕의 맨하탄이나 워싱턴같은 미국의 어느 도시나 공간이 중심이겠지만 생태계가 살아있고 올바른 먹거리로 사람을 살리는 곳, 사람들과 소통(疏通)이 이루어지는 곳이야 말로 진정한 ‘세계의 중심’임을 선언하며 서천에 한 알의 씨앗을 뿌렸다.

    정순보 선생의 일생은 교회적인 형식 없이 인생을 헌신했다.
    故 함석헌 선생과의 교류로 삶은 충만했고 풀벌레 노래소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다.

    유기농 호박고구마를 길러내는 바이오다이나믹 농법(Biodynamic Agriculture)

    1924년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 1861~1925) 박사에 의하여 독일에서 시작된 농법으로 하늘(우주)의 힘이 땅을 살리고, 작물하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있는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므로 이 땅에서 자란 농산물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하는 농사법이다.

    인지학, 정신과학, 교육학, 철학, 예술 등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루돌프 슈타이너’는 1923년 농민들의 요구에 의한 농업강좌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사람이 어떤 일을 실천에 옮기는 중요한 요소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먹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날 사람이 먹는 것은 생각하는 것을 실제행동으로 옮기는 마음을 내기가 어렵게 만든다. 요즈음 사람들이 먹는 곡식이나 채소(관행 화학농법)에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기운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이 사람을 통해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느냐, 마음먹은 바를 끝까지 지켜내어 이를 수 있느냐 없느냐는 사람이 어떠한 것을 먹느냐에 달려있다.”

    아리랜드는 매년 행성들의 주기를 파악하여 반영한 바이오다이나믹 농사력(정농회 발간)을 기준으로 농사를 짓는다.

    즉 우주의 기운의 변화에 따라 열매의 날, 꽃의 날, 잎의 날 , 뿌리의 날들이 있고 해당 작목별로 날을 가리고 작목을 구분하여 농사짓는 것이다. 농작업에 적합하지 않은 시간 ‘휴경하는 날’도 있다.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농작업을 결정하는 예를 들어본다.

    ● 밭갈기, 이랑만들기, 묘상준비, 씨뿌리기, 괭이질, 북주기 등의 작업이나 손질 수확 등은 해당작물의 종류에 맞는 시간대를 선택하여 실시한다.

    ● 날씨나 흙상태등의 형편에 따라 파종 등에 좋은날을 선택하지 못한 경우에도 이후의 손질을 그 작물에 적합한 시간대에 실시해주면 많이 개선된다.

    ● 묘의 정식, 이식, 삽목, 수목의 전정작업 등은 정식 적기중에서 해당작물의 종류에 맞는 시간대를 선택한다.

    ● 유제품의 가공, 빵 만들기, 저장식품의 가공 등은 ‘휴경시간’과 ‘잎의 날’ 시간대에는 행하지 않고 ‘열매의 날’, ‘꽃의 날’시간대가 적합하다.

       
      ▲ 2009년 5월 농사력(바이오다이나믹 농법)

    아리랜드는 정농회(正農會) 초창기 멤버로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다.
    정농회원들은 1994년부터 바이오다이나믹농법(생명역동농법)을 도입하여 유기농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사단법인 정농회(正農會)는 바른농사, 바른살림, 바른먹거리를 지향하는 크리스찬 농업인조직으로 1976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유기농업’의 깃발을 세운 사람들이다. 나는 1996년~97년 정농회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 관리하는 정농생활협동조합 사무국장으로 일을 한 계기로 아리랜드와 인연을 맺었다. 그 무렵 회원농가들을 현장조사차 만나면서 바이오다이나믹 농법과 정농회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몰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작물이나 사람이나 동물이나 저 혼자 살아 가는게 아니구나 싶었고 자연의 순환(循環)고리가 얼마나 분명한 자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체득할 수 있었다.

    물량중심의 이익에 눈멀어 땅으로부터 모든 것을 수탈하는 농업생산방식이 아니라 사람과 땅과 하늘이 조화롭게 운행되어야 한다는 정신은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정농회의 정신과 궤를 같이한다.

    아리아랑 유기농 호박고구마

       
      

    독일, 이태리 등 선진유럽에서 최고로 치는 유기농산물 브랜드는 “데메터(Demeter)”다. 이 데메터는 생명역동농법( 바이오다이나믹)을 적용하여 생산된 농산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아리아랑 유기농 호박고구마는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생명역동농법)에 따라 우주의 기운을 온전하게 받은 것이다. 비닐 멀칭도 하지 않고 햇빛, 달빛, 별빛, 그리고 바람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고 오염되지 않은 황토밭에서 잘 자라난 것이다.

    맛은 또 어떤가?
    경쾌한 단맛이 난다. 뭔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조정이 된 맛과는 다르다. 깊다. 내 몸 하고 맞아 떨어지는 느낌으로 물리지 않는다. 황토 땅이 천지운행의 기(氣)를 받아서 그런 것일까?

       
      

    호박고구마 날것을 단면으로 보면 주황빛이 완연하고 하얀 녹말이 흘러나온다. 단맛이 강하고 부드럽다. 각종 비타민과 영양소가 풍부해 아침식사 대용 샐러드나 쥬스 재료로 이용된다. 고구마 밥을 만들어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호박고구마는 잎과 꽃이 예쁜 보라색을 띈다. 호박고구마 꽃은 여간해서 잘 보기 힘들어서 보게 되면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아리랜드 유기농 호박고구마 밭으로 황토밭의 특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거기에다 일체의 농약을 치지 않는 농부의 땀방울이 스며있다. 이 밭에서 5월 ‘뿌리의 날’ 파종을 하고 10월 ‘뿌리의 날’을 골라 수확을 한 것이다.

    버릴게 하나 없는 유기농 호박고구마

       
      ▲ 아리아랑 유기농 호박고구마를 가공하여 만든 유기농 호박고구마 전분

    호박고구마는 버릴게 하나 없다.
    상품으로 내서 쪄먹고 구워먹고, 튀기고… 생식으로 응용하기도 하고…..

    남거나 부러진 녀석들은 전분(녹말가루)으로 가공한다. 가공과정중 중간중간 나오는 액상(液狀)은 액비로 쓰고 나오는 슬러지(찌꺼기)는 제 땅으로 돌아가 거름이 된다.

    전 과정을 거치고 나온 가루(전분)는 호박고구마 묵을 쑤어 아이들 이유식으로도 좋고 간식으로 활용하기에 좋다. 각종 밀가루 반죽에 넣어 잃어버린 요리 몇 가지를 살릴 수도 있다. 그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야기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아이들에게 우리식품의 신기한 진기명기(?)를 보여주니 교육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찾아오는 농촌을 넘어 살고 싶은 농촌을 꿈꾼다.

    아버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아리랜드는 농촌의 희망은 ‘찾아오는 농촌’에 있다고 보고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다. 정의국씨 내외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또 다른 꿈을 꾼다.

       
      ▲ 정의국, 최애순 부부

    10년, 20년 뒤에는 ‘찾아오는 농촌’을 넘어서 ‘살고 싶은 농촌’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하려면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고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마을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리랜드는 그 중심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06년 정의국씨는 호주 ‘크리스탈워터즈’에 연수를 다녀왔다. 크리스탈워터즈는 UN이 정한 세계생태마을중 한 곳으로, 자연적으로 뛰어나고 열대우림 같은 숲을 자랑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주민들의 마인드가 다양하고 경력 또한 다채롭다. 구성원들은 엔지니어부터 시작해 없는 직종들이 없을 정도다. 그때 본 생태마을 시스템을 도입해 응용할 생각이다.

    풀꽃에서부터 각종 수목, 꽃, 새, 작물, 곤충, 동물, 지렁이, 두더지…..
    생태계의 모든 것이 도시의 소비자와 어린이에게 향수가 되고 교육의 장이 되는 것이지요.

    정의국씨 이야기는 이어진다.

    앞으로 남아있는 일은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조상이 되는 일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이 농촌을 지켜간 조상들에 대해 위대한 정신으로 고요히 인내하며 이곳을 지켜내었다고 고백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오늘을 걸어간다.

    아리랜드는 이렇게 아들의 아들로 이어지며 ‘살고 싶은 농촌’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세계의 중심이 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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