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유아 임산부에게까지 돈받아
        2009년 11월 16일 02: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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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에서 계속

    백신 접종 대상자 선정의 문제

    지난 10월 21일 정부는 1,716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신종플루 예방을 위한 국가 예방접종 사업 계획을 발표하였다. 대상자는 의료인등 전염병 대응요원과 영유아, 임신부, 노인, 만성질환 등의 취약계층, 그리고 초중고 학생, 군인이다.

    그런데 정부의 예방접종 대상자를 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마치 우리나라가 어느 나라보다 예방접종 대상자를 넓게 하고 있다는 착각이다. 대표적으로 아래 표를 보자. 한국은 예방접종 대상자 범위를 어느 나라보다 넓게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표 1. 각국의 에방접종대상자 비교. 질병관리본부

    그런데 위 표는 잘못된 비교를 보여주고 있다. 표에 나타난 한국의 예방접종 대상자는 그대로 예방접종 대상자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다른 나라의 예방접종 대상자는 우선순위 대상자를 나타낸 것이다.

    즉, 외국의 경우에는 전체 접종 대상자 중 가장 먼저 접종해야 할 대상자를 선정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 예방접종의 표적(target) 국민과 우선순위(priority) 국민은 엄연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엔 그 둘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예방접종 대상자는 우선순위 대상자가 곧 예방접종 대상자이다. 그것이 국민의 35%이다.

    반면 영국을 보자, 영국은 전체 인구에 2회 접종을 할 수 있는 1억 3천2백만 도즈를 주문해 놓은 상태이다. 즉 전체 국민을 예방접종 대상자(target)로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신은 일시에 공급되지 않는다. 전체 국민에게 접종할 수 있는 양이 동시에 공급되지 않고 순차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누구를 먼저 접종할지(우선순위, priority)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것이다.

    영국은 우선순위 대상자로 전체 인구의 30% 선인 고위험군 1천 4백만 명을 선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가예방접종 대상자를 영국과 우선순위 대상자와 비교하여 그들보다 더 많이 국가예방접종 사업을 하는 것처럼 눈속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뿐 아니라 독일, 네델란드 등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도 예방접종의 대상은 전체 국민이며 전체 국민에게 투여할 백신을 국가가 이미 확보한 상태이다. 35% 우선순위 국민만을 대상으로 국가예방접종사업을 시행할 계획인 한국 정부와 여러모로 비교된다.

    우선순위의 문제

    우선순위에서도 다른 나라와는 차이가 난다. WHO에서는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를 결정함에 있어 3가지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전염병 대응 인력과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관련 인력을 우선순위로 할 것, 둘째, 신종플루 감염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증, 사망의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에게 우선 접종할 것, 셋째, 지역사회로 감염을 확산시키는 매개역할을 하는 대상자를 우선순위로 할 것 등이다. 물론 우선순위는 각국의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고 그 결정 권한은 각국의 정책당국이 가진다.

       
      ▲ 표2.

    다시 주요 단체 혹은 국가가 제시하고 있는 백신 우선순위를 살펴보자. 먼저 WHO는 전체 인구를 순서대로 우선순위로 매기고 있다. WHO 전문가 자문위원회가 제안한대로 의료진과 임신부, 만성질환자를 최우선으로 접종하고 이후 점차 건강한 사람에게 접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로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영아, 만성질환자, 노인 등을 최우선순위로 설정하고 있다. 미국은 6세미만의 소아와 동거하는 가족이나 케어 제공자에 매우 큰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이 발표한 우선순위는 전체 국민의 1억 5천9백만 명이다. 미국 전체 인구의 절반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WHO는 전체 인구를 세분하여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있고, 유럽과 미국은 전체 인구의 50% 정도에 대해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35%만을 우선순위로 놓고 있다. 더구나 65% 국민에게는 아예 국가예방접종 대상으로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국가와는 다른 독특한 점이 있다. 만성 폐질환, 당뇨병, 간질환 등은 고위험군에 속한다. 이들은 신종플루에 감염시 폐렴 등의 중증 합병증 발생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이다. 그래서 모든 국가들이 만성질환자의 경우 공동으로 고위험군으로 선정하고 높게 우선순위를 배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만성질환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당뇨병 환자의 극히 일부만을 우선순위로 놓고 있다. 즉, 인슐린을 투여하고 있는 당뇨병 환자만을 고위험군으로 선정하고 경구용 약을 복용하고 있는 당뇨병 환자는 우선 예방접종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현재 당뇨병 환자 중 인슐린을 투여받고 있는 경우는 10%에 불과하다. 이는 다른 국가들이 당뇨병 자체를 고위험군으로 선정한 것과는 다르다. 다른 나라의 당뇨병환자는 인슐린 투여와 상관없이 고위험군에 해당되어 높은 우선순위를 선정된 반면에 우리의 당뇨병 환자들은 대다수가 우선순위에서 배제 되어 있다. 정부는 그 근거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다.

    백신 공급과정과 본인부담금의 문제

    백신의 공급과정에서도 문제가 있다.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노인, 초중고 학생, 군인은 보건소에서 집단 예방접종을 시행하고 나머지 영유아, 임신부, 만성질환자는 민간 의료기관에서 접종받아야 한다. 단, 민간 의료기관에서 접종받을 경우에는 백신은 무상으로 공급되나 1,5000원의 접종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왜 영유아들은 보건소 접종에서 제외되었을까? 현재 보건소에서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MMR, 디피티, B형 간염예방접종 등 필수예방접종을 시행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마도 영유아의 경우 예방접종 전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고 보호자 동반이 필요하며, 또 보건소로 일시에 접종자가 몰릴 경우 혼란은 불가피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만일 보건소의 혼란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민간의료기관에서 접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 비용 또한 국가에서 지불하는 것이 맞다. 아니면 원할 경우 영유아도 보건소에서 무상으로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면 될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어느 장소가 더 적절하냐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의 예를 보면 백신공급은 전적으로 주치의 의사(GP)를 통해 공급된다. 영국의 모든 국민은 담당 주치의에 등록되어 있다. 한 명의 주치의에게는 대략 1,600여 명의 국민이 등록되어 있다. 주치의는 자기에게 등록된 국민의 병력, 가족력 등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

    주치의는 자신에게 등록된 국민을 우선순위에 따라 순서대로 우편이나, 전화를 통해 접종 시간을 예약해 준다. 국민들은 예약 날짜에 맞춰 아무런 혼란없이 백신을 접종받는다. 백신에 대한 비용부담도 없다. 공적 의료시스템이 취약한 우리나라나 미국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백신의 시기 적절성과 효과의 문제

    마지막으로 신종플루 백신 공급 시기에 대한 적절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미국 Purdue 대학의 S. towner 등은 미국 CDC 백신접종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한 연구를 시행한 바 있다. 연구는 신종플루 백신접종으로 신종플루 감염자를 겨우 6%정도만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 이유는 신종플루 백신이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종플루 유행보다 늦게 백신투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신종플루 유행은 10월 중순~11월 초에 정점을 찍고 점차 줄어드는 데 반해 백신은 유행의 정점이 지난 이후에야 순차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우리나라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 이미 10월말 경에 초중고등 학생에게서 대유행이 나타났는데, 백신은 11월 중순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구종 신종플루에 대한 논란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9세~17세를 대상으로 한 신종플루 백신효과 임상실험 결과가 <한겨레 신문>에 의해 공개된 바 있다. 이 기사에 의하면 학교에 본격적으로 유행이 되기 이전인 9월 21일부터 백신 임상실험이 진행되었는데 놀랍게도 실험 대상자의 18%에서 신종플루에 대해 면역력을 이미 획득하고 있었다.

    이미 신종플루에 감염되었거나, 혹은 다른 불명확한 이유로 인해 자연면역을 획득하고 있었던 셈이다. 임상 실험의 경우 보통 병력을 확인하여 신종플루 의심증상이 있었던 경우에는 철저히 배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것을 감안하면 5명 중 1명이 신종플루 항체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어찌되었든 우리나라에서 신종플루는 현재 초중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유행되면서 점차 영유아, 노인, 만성질환자로 확산되는 양상으로 보인다. 이들은 중증질환 발생의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이다. 최근 들어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다. 지금은 영유아와 만성질환자와 같은 고위험군에 대한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고위험군으로 확산되어 피해가 급증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는 고위험군에 대한 예방접종 대책을 좀 더 세밀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국가예방접종 대상을 35%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35%에서 배제된 만성질환자와 고위험군 관련 집단에 대한 접종 계획을 더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보육시설과 학교의 교사, 병원의 간병인, 요양시설 종사자, 장애인, 대학생, 의료급여 수급권자, 차상위계층 등등이 그들이다.

    더불어 영유아, 만성질환자와 같은 고위험군에 대한 전염을 대비한 입원 병상 및 중환자실 병상을 점검하고 필요시 즉각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의 대책을 보면 말은 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민간의료기관에게 강제할 수단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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