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저의 亂과 못난 남자들
        2009년 11월 16일 09:0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오랜 세월 여성의 몸은 상품으로 취급되어 왔다. 남성들은 재력을 키워,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을 사왔고, 여성들은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외모를 가꾸어 왔다. 그 연원을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오래된 이야기다.

    그러나, 젊은 여성의 50%가 성형수술을 하고, 얼짱, 몸짱 열풍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불어대며, 생얼, 동안 등 심각하게 과열된 외모지상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 시점은, 한국사회의 새로운 사회모순들을 속속들이 잉태시킨 외환위기 시점이었음을 다시 환기시킨다.

    외환위기와 몸의 등장

    이전까지 우리가 아슬아슬하게 부여안고, 자질구레하게 끼고 살던 자잘한 삶의 제동장치들로서의 가치들은 생과 사가 홍해처럼 눈앞에서 좌우로 갈라지던 환란 속에서, 일제히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본능의 생살들이 서로 맞부딪히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생존의 벌판에 모두가 맨발로 선다.

    그 때, 우리의 욕망은 더욱 단순하며 집요해졌다. 인문학이 저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몸>이 급작스럽게, 새로운 조명을 받으며, 사회 전반에서 부상한다. 예술계는 몸을 새로운 테마로 부각시키고,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몸을 가꾸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전국 방방곳곳에는 휘트니스 클럽이며 요가강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 지난 9일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한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KBS)

    피부과가 피부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피부미용을 위한 각종 시술을 하는 공간이 된 것도, 치과가 충치를 뽑기 보다는, 치열을 교정하는 일에 더 열을 올리게 된 것도 대략 이 시점부터 일어난 변화들이다. 모든 것을 팔고 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몸은 우리가 제값을 주고 팔아야 할 첫 번째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쁘지 않은 여자들을, 취직도, 연애도, 결혼도 할 수 없는 철저한 세상의 낙오자로 만들어 온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다. 화장을 안 하고 돌아다니면 친구들로부터 ‘민폐’라는 얘기를 듣고, 화장을 꼼꼼히 안 하고 면접시험을 보러 가면 ‘사회에 반항하냐’는 말을 듣는다.

    각자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도 아니고, 누구 누구처럼 예뻐야 한다. 여자들이 성형외과에 다녀올 때마다, 김태희, 한가인, 김혜수를 조금씩 닮아간다. 자신이 지니고 태어난 얼굴에 칼질을 하는 여자가 절반인 세상은,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를 떠나, 더 이상 맑은 정신으로, 정체성이니, 자아니 이런 것들을 움켜쥐고 살아가기 힘든 혼란의 시대에 우리 모두 내던져졌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왜 비웃음이 아니라, 분노인가

    누구나가 인정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아닌가. 상위 20%가 아닌 떨거지들, 비정규직들, 일류대학에 못간 인간들. 알아서 먹고 살든지 말든지 알 바가 아닌 세상 아닌가. 세입자들은 생존권을 주장해도 감옥에 가고, 부자들은 세금을 몽땅 도둑질 해도, 언제나 집행유예가 되는 세상 아니던가.

    몸이 화폐가 되는 이 시대에, 예쁘지도 않은 여자, 키 180도 안 되는 남자, 돈 없는 남자, 다 루저로 취급되는 세상, 지금 우리 살고 있지 않나. 왜 여인네들은 죽어라 명품백 하나씩을 장만하려고 하는가. 20%인 척, 이 사회의 낙오자가 아닌 척, 지배계급인 척 하고 싶은 것이다.

    취향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고, 남들이 나를 돈 좀 있는 여자로 봐주기를 바라는, 그 가련한 희망을 우린 명품백에 하나에 간신히 매달고 살고 있지 않나. 꿀벅지니, 찰벅지니 하는 게걸스런 용어들이 버젓이 활자화되어 언론 매체 위를 기어다니는 세상에 우리 살고 있지 않은가.

    나이 스무살 먹은 한 여대생이 방송에 나와, 한국사회가 그녀에게 주입한, 이상적 남성상을 언급했다. 매우 직설적인 어휘를 동원하여. 결혼해서 같이 살 남자가 경제적인 능력이 있기를 희망한다고도 했다. 그녀의 발언이 과연 한국사회에서 놀랍고 비상식적인 것이었나?

    이미 한국사회에선, 애틋한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남녀가 별종으로 취급되기 시작한지 한참 되었다. 각자 자신의 취향은 잘 키우지도, 내세우지도 않으며, 세상이 알아주는 기준에 자기 자신을 맞추고, 거기에 맞는 상대를 골라 거래를 하며 짝을 지어온 지, 그래서 서로 괴롭게 된 지 오래다.

    그 여자의 상식적인 답변

    각자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개발하며, 자신만이 가진 매력으로, 자신이 마음에 드는 상대를 유혹하는 일은 이제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얘기처럼 아득하다.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인 기준에서 자신이 얼마만큼 값나가는 존재가 될지를 계산하며, 턱을 깎고, 코를 세우며, 무리해서라도 비싼 차를 뽑는다. 이게 새삼스런 남의 나라 이야기였던가.

    2009년도를 휩쓰는 한국사회의 최대 유행어 중 하나가 <스펙>이다. 그것은 외모, 학력, 경력 등, 결혼시장이든, 직장에서든 나를 팔고자 할 때 내세울 수 있는 신상명세를 말한다. 인터넷 사이트에선 두 명의 결혼 후보자의 스펙을 나열하며, 어느 쪽을 선택할지 설문조사를 하는 경우도 종종 등장한다. 기꺼이 어떤 거부감도 없이 스펙만으로, 둘 중 한쪽이 훨씬 났다, 라는 평가가 이루어진다. 둘 사이의 애정의 강도와, 서로가 느끼는 호감 따위는 당연히 배제된다.

    문제의 여대생이 마치 자신의 취향인 것처럼 말한, 키 크고 돈 많은 남자는 한국사회가 주입한 값나가는 남자의 평범한 기준치이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현재의 대한민국 여대생들이 갖고 있는 가장 상식적인 답변을 해준 셈이다.

    만약 그녀가 유명 연예인이었거나, 사회적인 권위를 가진 학자였다면, 공인으로써 할 말이 따로 있다는 둥, 사회적인 책무가 뒤따르는 교수, 학자가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둥 하는 목소리가 드셌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스무살 먹은 일반 여대생의 발언이며, 그 발언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고정 출연자들인 외국 여성들의 가차없는 질책이 이어졌다.

    “당신은 결혼 같은 것은 하면 안된다”. “남자가 경제력이 없으면 당신이 벌면 되지 않냐.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 외국 여성들이 해당 여학생을 혐오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장면 또한 여과없이 방영되었다.

    시청자들 입장에서, 이 프로그램이 어린 여대생의 발언을 두둔한다고 느낄만한 여지는 없었다. 오히려, 한국사회가 온통 빠져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지는 그 순간을 우린 함께 보았고, 우리가 아름답고 건강한 가치관이 아닌 줄 알면서도 주구장창 주입시키고 살아왔던 그 스펙만능주의가 외국 여성들의 지당한 지적으로, 통렬하게 깨져나가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예쁘지도 않은 게, 내를 루저로 만들어?”

    여대생의 발언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광적인 반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녀의 발언이 우습다면, 무시하면 될 일이다. 법원에서 키 180cm 이하의 남자는 루저라고 판결한 것도 아니고, 좋아하던 여자친구가 어느 날 이별을 고하면서, “너의 작은 키가 싫었다”고 말한 것도 아니다. 자신과 무관한 한 여학생이 이 같은 발언을 했다고, 그걸 자신의 몸에 박힌 대못으로 여기고, 원통해 할 이유는 진정 무엇인가.

    그 얘기를 듣고 분노를 표출하며 기꺼이 루저의 난에 나선 모든 남자들은, 자신들이 예쁜 외모, 어린 여자를 밝혀왔듯이, 상대적으로 여성들은 키 크고 돈 많은 남자들을 추구해 왔다는 사실, 그러한 연애시장의 룰을 너무도 잘 알고,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에, 눈에서 불꽃이 튀어나오는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여대생의 말이, 진정으로 어처구니 없고, 자신의 볼품없는 인격만을 노출시키는 발언이었다면, 실소하고 말 일이다. 나, 진정한 속물이거든요, 하고 밝히는 그녀의 대담무쌍함에 대해 한마디 해주면서 말이다.

    그러나, 외모 이데올로기에 넋 놓고 빠져있던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정네들이, 적나라 하게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서, 아픈 곳을 제대로 난타당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자 이들은 즉각적인 전투 모드로 돌입했다.

       
      ▲ ‘미녀들의 수다’ (사진=KBS 홈페이지)

    24시간이 되지 않아, 그녀에 대한 사이버 테러가 이루어졌다. 그녀의 과거의 발언이나 사진, 신상에 대한 모든 정보, 심지어는 친구, 선배들의 발언까지 인터넷에 상세히 캡쳐되어 만인에게 노출되어 있다. 인터넷 상에서는 학교에 해당 여학생을 제적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까지 등장했고, 미녀들의 수다 프로그램 폐지운동까지 전개된 상황이다.

    루저의 난(亂) 일으킨 그들, 진정한 루저

    그 어떤 각별한 사회적 권력을 가진 자도 아닌, 평범한 여대생의 발언에, 루저의 난이라 불릴 정도의 비분강개가 인터넷을 넘쳐흐르게 하고, 사이버테러에 나서는 이 남자들이야 말로 루저라는 표현에 딱 어울리는 인간들이다. 그들의 광분하는 모습은, 얼마나 그들이 진정한 루저들이었는지,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스스로가 가세해서 열심히 만들어온 이 외모지상주의 세상이다. 그녀의 발언이 온당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여기서 당신이 할 일은 그럼 ‘C컵 아닌 여자는 루저다’라고 받아 치는 것이 아니라, 당신만의 여성에 대한 가치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80:20의 세상,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슬쩍 이탈하여 독자의 가치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함께 만들어 온 세상에서, 고스란히 그 세상의 이데올로기를 주입 받아, 이 시대의 정답을 순진하게 발설해 버린 한 여학생이 아니란 말이다.

    사태를 바라보노라니, 연초 프랑스를 공중파 방송사에서 언급된, 한 속물의 발언이 떠오른다. 자크 세겔라(Jacques Séguéla)라는 유명한 광고인이 있다.

    미테랑 대선 때, 선거 광고를 진두 지휘했고, 그의 고객과 마찬가지로 이후 쭉 우향우의 삶을 살아온 그가, “나이 50에 로렉스 안 차고 다니면, 그 인생 망한 거 아니냐”는 발언을 방송에서 했다. 연초에 벌어졌던, 사르코지에 대한 세간의 속물 논쟁에서, 나름 사르코지를 옹호 하는 발언을 한답시고, 그 따위 말을 지껄인 것이다.

    프랑스의 속물과 사회의 반응

    세겔라의 발언은 즉각 여러 매체에서 회자되었고, 세겔라는 이 나라 대표 속물로 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샀다. 그는 사르코지한테 아부 한 번 하려다가, 망신이나 당한 멍청이로 회자되었다. 나이 50에 로렉스 시계 안 차고 다니는 게 정말로 망한 인생이라는 인식이 프랑스 사회에 있었고, 50넘은 남자들이 그의 발언에 자격지심을 느꼈더라면, 이 발언에 대한 반응은 비웃음이 아니라 분개였을 것이다.

    홍대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이 부끄러운 사회의 단면을 제대로 드러내준 천기누설죄다. 그녀가 드러낸 천기가 차마 인정할 수 없는 악몽이라면, 모두 힘을 합쳐서 그 악몽을 우리의 삶에서 제거해 내자.

    당신만의 그녀, 그를 찾기 위한 취향의 목록을 지금 당장 작성하시라. 키 작은 남자를 좋아하는 키 큰 여자가 그 남자의 콤플렉스를 감내하지 못해 떠나야만 하는 사연도, 이 외모지상주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슬픈 에피소드의 하나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