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DNA 안에는 없다"
        2009년 11월 16일 08: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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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충격을 받은 관중들은 헐떡임과 신음소리가 들려왔고, 드문드문 박수 갈채도 나왔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1970년 4월,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 미생물학회 연례석상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35세 미만의 젋은 과학자 중에서 탁월한 과학업적을 보인 이에게 1천 달러의 상금과 함께 상을 막 수여한 상황이었다. 상을 받아든 젊은 과학자는 쭈삣거리며 사회자에게 한 마디 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마이크를 어색하게 쥔 그는 자신이 받은 상금을 미국의 흑인운동 단체인 흑표범당(블랙팬더)를 위해서 쓰겠다고 밝혔다.

       
      ▲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그린비 출판사. 15,900원)

    당시 미국의 보수층에게는 흑표범당은 흑인 테러리스트 집단쯤으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전도유망한 과학자의 발언은 너무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얼마 후 주어진 별도의 수상 연설기회를 통해서 자신이 왜 흑표범당을 위해서 상금을 쓰려고 하는지를 설명하였고, 베트남전에 동원된 군사적 연구를 지적하면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주장했다.

    그 상을 제정하고 상금을 준 제약회사인 일라이릴리사(社)가 향해서도 일격을 날렸다. 특허권을 이용하여 터무니없이 비싼 약품가격을 매기고 있으며, 약품의 남용과 심지어 오용을 부치기기 위해서 의사들과 의대생에게 선물공세를 퍼붓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주최 측이나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고 대단히 무례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상 준 제약회사에 일격

    미국의 한 ‘과학자-활동가’의 자서전이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존 벡위드. 하버드대 의대 미생물학과 교수로서 존경받을 만한 과학적 성취를 거둔 과학자인 동시에, 정치적 좌파로서 국내외의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맞서 맹렬히 싸운 <민중을 위한 과학>의 열성 활동가였다. 식민지, 분단과 한국 전쟁, 오랜 독재의 시기를 살아낸 한국 과학기술자의 역사에서는 그와 유사한 사례를 거의 찾기 힘들다.

    그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끊고, 자신 스스로를 연구실에 가둬야 한다는 과학자 공동체 내의 통념과 무언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과학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1960년대 초반부터, 쿠바 미사일 사태에 대한 항의, 국제 핵무기 반대 시위,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정치적 좌파로서의 그의 입장을 표출했다.

    그러나 그가 과학자-활동가로서 진정한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직업 세계의 문제점에 정직하게 대면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세계로부터 격리되어 있었던 과학의 세계 안으로 좌파의 감수성을 끌어들였다. 자신의 연구 성과가 가지고 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 고민했으며, 과학적 연구 성과들에 내재된 가진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와 싸웠다.

    ‘기자회견 과학자’. 자신의 과학적 성과를 동료심사를 통해서 검증 받기 전에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를 위해서 대중 앞에(정확히는 언론기자들 앞에) 먼저 공표하기를 즐기는 과학자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기자회견 과학자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황우석 박사일 것이다. 그는 조작된 것으로 의심되는 복제소 영롱이의 탄생을 직접 촬영하여 그 테잎을 직접 언론사들에게 보내 선전하였다.

    논문 발간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점에서 벡위드도 ‘기자회견 과학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최초의. 그러나 1969년도 기자회견의 목적은 공익과 관련된 것이었다. 벡위드는 동료들과 함께 최초로 유전자를 생물체로부터 분리해내는 ‘기적’ 같은 일에 성공했으며, 전자현미경을 통해서 그것을 처음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 연구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조작으로 나갈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깨달았다.

    ‘기자회견 과학’, 서로 반대되는…

    벡위드는 기자회견을 통해서 자신의 연구를 자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가 야기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과학자 공동체와 사회 전체에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언론은 그의 경고를 연구 성과와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일부 과학자들은 불만스러워 했다. 50년 뒤에나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쓸데없이 거론해서 대중들의 공포를 야기했으며, 그 결과가 연구지원이 중단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벡위드는 자신들이 원자폭탄을 만든 물리학자들의 처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경계심이 높았다. 문제를 인식했을 때 행동하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오펜하이머 그룹과 같은 신세가 될 것”(89쪽)이라고 생각했다. 벡위드의 경고는 5년 뒤 보다 구체적인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이번에는 생물학계의 여러 지도자를 비롯하여 많은 과학자들이 동참해서 유전자 조작이 가능한 유전자재조합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그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벡위드에게 가장 큰 고난을 야기한 것은 1973년에 동료 과학자들의 연구가 가진 정치사회적 문제점에 대해서 비판한 일들이었다. 그는 두 개의 Y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XYY 남성이 폭력성을 가진다는 근거가 빈약한 과학적 가설에 근거하여, XYY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을 추적조사하려는 같은 대학의 다른 연구자들의 계획을 비판했다. 연구에 참여하는 아이의 부모에게 받은 동의서가 부적절하며, 연구의 편익이 그 아이들이 겪을 위험에 비해서 크지 않아서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

    벡위드는 여러 동료들과 함께 대학 내부의 조사위원회에 이를 제소하였지만, 벡위드의 손을 들어준 최초의 투표 결과는 은폐되었고 재투표를 요구한 조사위원장의 부당한 압력에 의해 패소하였다. ‘연구의 자유’가 위협받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뒤섞인 탓이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하면서 전체 교수회의를 통해서 논의되고 투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부 교수들은 벡위드의 종신재직권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 회합을 가지기도 했다. “하버드 내부의 일을 대중들 앞에 까발린 것”(182쪽) 탓이다.

    이 일은 KKK단과 같은 극우 백인우월주의 집단이 그를 “빨갱이”, “공산주의 집단”의 일원으로 지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이 만드는 <십자군>이라는 신문은 “<민중을 위한 과학>과 같은 목소리 큰 공산주의자 집단이 인간의 유전자를 인간 행동과 연계시켰던 보스턴의 한 유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중지시켰다(185쪽)”고 주장했다.

    KKK단이 보기에는 사회에 문제를 야기하는 나쁜 유전자 집단(아마도,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을 의미할 것이다)을 규명하고 제거해야 하기 위해서 필요한 연구를 벡위드가 방해했고, 따라서 “빨갱이”이라는 논리일 것이다.

    KKK, 나쁜 유전자집단을 제거하자

    KKK단이 선호한 ‘인간의 유전자를 인간 행동과 연계’시키는 연구의 흐름(그 대중적인 버전은 <플레이보이>지가 보여주고 있는데, 강간을 시도하다가 잡혔을 때 자신의 DNA 안에 있는 악마가 시켰다며 발뺌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199쪽)은, 역사적으로 독일에서 유태인 대학살로 대표되는 위생학과 연결되어 있다.

    인종주의적 편견을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하였던 20세기 초반의 우생학은 당대의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었으며, 그 과학적 명성에 기반을 두어 정부 정책을 입안하고 합리화하였다. 벡위드는 우생학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생물학 분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서는 경악하였다.

    그로 하여금 다시 행동에 나서게 한 계기는 같은 대학의 교수인 에드위드 윌슨의 책,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1975년)의 발간이었다. 인간의 행동과 특질을 특정한 유전자로 귀결시키는 생물학적(혹은 유전자) 결정론을 주장하는 윌슨의 책은 위험한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를 과학의 이름으로 유포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사회생물학 연구그룹>을 조직한 후,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강제불임시술이나 독일의 유태인 가스 학살의 이론적 토대가 된 우생학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의 사회생물학 유행

    좌파 생물학자 벡위드가 공개적으로 비판을 하고 나섰던 사회생물학은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윌슨의 제자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생물학자인 이대 최재천 교수가 스승의 책을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해내면서, ‘통섭’이라는 단어가 대유행하고 있다. 대단히 두꺼우며 난해한 책으로 알려진 이 책을 통독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아는체 하는 지식인들은 ‘통섭’에 대해서 한 마디씩 거들고 있다. 심지어 통섭에 대한 수업이 개설되고 ‘통섭원’이라는 연구소까지 설립되고 잇는 실정이다.

    올해 다윈 탄생 150주년을 맞아서 진화론에 대한 많은 학술행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얼마 전에는 이대에서 사회생물학에 대한 학술토론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인간의 행동과 특질을 유전자로 설명하려는 환원주의적 방법론 등에 대해서 깊은 토론이 있었지만, 그것이 가지는 정치사회적 함의에 대한 토론은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그러나 벡위드의 사회생물학에 내재된 인종주의적․성차별적인 이데올르기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벡위드가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월슨의 <사회생물학>이 출판되자 성차별주의자와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자신을 주장하는 ‘과학적’ 논거가 제시된 것으로 받아들여 환영했다. 월슨 자신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행동 성취의 차이를 진화론에 따라 설명했으며”, 데이브드 배러시와 같은 사회생물학에 기울어진 연구자는 “역설적으로 어머니 자연은 성차별주의자인 것 같다”고 고백하였다(198쪽). 이를 <플레이보지>지와 같은 잡지들이 대중적 차원으로 소개하면서, ‘강간’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또한 대서양 건너의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인종주의자들을 고무시켰다. 외국인 혐오적인 반유태인 단체인 영국의 <국민전선>이라는 단체가 사회생물학이 자신들의 인종주의적 관점을 지지하고 있다고 선언하였으며, 프랑스의 <뉴라이트>는 “사회생물학은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 그것이 단지 나치 주장의 어떤 부분과 가깝다고 해서 무시될 수는 없다(202쪽)”고 주장했다.

    사회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를 공동대표로 삼았던 한국의 환경단체나 호주제의 부당성을 과학적 근거를 들어 비판하였다는 이유로 상을 수여한 여성단체들이 알면 기겁할만한 이야기일게다. 물론 그의 학문적 경향과 정치적 입장은 별개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인종주의나 성차별을 선동한 적도 없고 오히려 환경운동과 여성운동을 지원하고 앞장섰다. 비난받을 일은 없고 칭찬해야 할 일이 많을지 모른다.

    서점 과학 코너의 맑스주의

    그러나 그의 사회생물학에 내재된 혹은 불러일으키는 보수적 정치사회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사회운동이 가져야 할 긴장과 경계가 제대로 작동되기는 했을까. 벡위드의 비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공상에서 과학으로>. 예전에 모 대학 앞의 사회과학점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한 이 책을 자연과학 코너에서 발견했다는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웃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연과학이 표방했던 객관적이고 유일한 지식의 모델을 따르고자 했던 ‘과학적 사회주의자’의 태도를 생각해보면, 그 책이 자연과학 책으로 분류했다고 해도 크게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논쟁의 상대편을 비난하고자 할 때, 그들은 ‘비과학적’이며 자신들은 ‘과학적’이라고 선언하곤 한다. 아마도 있는 사실 그대로 왜곡하지 않고 바라본다는 뜻에서 ‘과학적’이라고 하는 듯 했다.

    벡위드의 책은 내가 경험하였던 예전의 ‘과학적 사회주의자’에게도 (지금도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간의 생각거리를 던져 줄 지 모르겠다. 과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와 뒤섞여 있는지를, 그의 과학자-활동가의 생애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책의 마지막에 과학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서 결론을 맺은 말은, 과학기술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예전의 ‘과학적 사회주의자’에게도 의미있지 않을까?

    “우리는 과학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좀더 겸손해야 하며, 과학의 객관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과학을 사회문제들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선언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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