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의사항, 단 한 건도 실현 안돼"
        2009년 11월 13일 10: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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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6일 쌍용차 노사 양측은 ‘쌍용자동차의 회생을 위한 노사 합의서’에 서명했다. ‘회사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사 모두가 힘을 모은다’는 원칙하에 노사는 “대타협의 정신을 발휘함으로써… 쌍용차 회생을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임금동결, 상여금삭감, 복지후생 중지 등 노동자가 고통분담을 받아들이되, 파업에 참가한 정리해고 대상자 중 48%를 구제하며, 조합원에 대한 형사상 고소고발 취하, 회생인가 후 민사상 손해배상 취하, 쌍용자동차사내하청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회사 내 취업알선, 직영정비사업소 등에 대한 분사계획 철회 등이 ‘사회적 약속’으로 체결됐다.

    하지만 100일이 지난 현재, 대타협의 정신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쌍용차 농성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과 노조 간부에 대한 민․형사상 고소․고발은 아직 취하되지 않았고, ‘자발적 선택에 따라’ 배분하기로 했던 무급휴직과 영업직 전직, 분사와 희망퇴직의 48% : 52% 비율은 회사의 일방적 결정으로 처리됐다.

    무엇보다 77일간의 공장 점거농성 후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생계문제에 부닥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쌍용차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재취업은 꿈꿀 수 없고, 정리해고자와 무급휴직자의 약 20% 정도가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대부분 일용직 아르바이트 수준에 머물고 있다.

       
      ▲ 지난 7월 30일 쌍용차 노사가 42일만에 마라톤협상을 진행하며 정리해고 대상자 문제 등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해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사진=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선동 쌍용차 정리해고특별대책위 의장은 “77일간의 농성파업으로 대부분의 조합원이 평균 1,5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으며, 아이들 교육비도 없어 학교만 겨우 보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해고자 신분으로는 신용대출도 안 돼 마이너스 통장 재발급조차 어렵다”고 덧붙였다.

    특히 평택공장 점거농성에 참가했던 정리해고자들은 사실상 재취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기업에서는 ‘강성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채용을 기피하고 있고, 평택지역 아웃소싱 업체들은 ‘쌍용차 출신은 받지 않을 것’을 담합했다.

    때문에 경제위기와 경영악화의 책임을 지고 공장 밖으로 쫓겨난 노동자들이 기댈 곳은 ‘쌍용자동차’와 ‘노사 합의서’밖에 없다. 하지만 회사는 노사 합의 하에 약속했고, 협의 하에 이행하기로 했던 노사 대타협의 정신을 외면했다. 김 의장은 “노사 대타협 협의 사항 중 이뤄진 건 단 하나도 없다”고 토로했다.

    평택 업체들, 쌍용차 출신 고용 않기로 담합

    노사는 합의서 중 하나인 ‘확약서’를 통해 “회사는 사내하도급업체의 인력에 대해서는 현재의 공정을 유지하고 기고용계약이 해지된 일부인원에 대해 회사 내 업체에 취업을 알선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서맹섭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지회장은 노사 합의 당시 박영태 쌍용차 공동관리인과 한상균 쌍용차 지부장은 ‘알선’이 아닌 ‘복직’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비정규직 모두 복직시키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다만 회사 측의 요구에 의해 ‘취업을 알선한다’는 표현을 썼다”고 주장했다.

    당시 합의 당사자인 한 지부장 역시 비정규직 19명에 대해 고용을 보장한다는 약속과 파업에 참가한 비해고자에 대해서도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박영태 관리인이 분명히 약속했음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사측은 “취업을 알선한다고 했지, 고용보장을 약속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회사가 지난 10월 14일 주선한 면접 알선을 내세우며 본인들이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할 가능성도 높아,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은 다소 힘겨운 싸움이 될 전망이다.

    그나마 쌍용차 측이 약속한 ‘취업 알선’도 ‘고용을 하기 위한 면접’이 아닌 ‘고용을 할 수 없다’는 입장 통보를 위한 형식에 불과했다. ‘알선’ 과정 역시 지난 9월 22일 노사합의 당사자인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가 비정규직 고용문제를 제기하며 ‘9월 말 내 면접완료와 10월 1일 이후 출근’할 수 있도록 업무를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해 뒤늦게 성사된 자리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비정규직 해고자들은 ‘근로조건은 더럽고 힘들고 위험하다. 쌍용차 최악의 근무조건이다’, ‘회사에 들어와도 버티기 힘들어서 나갈 것이다’, ‘면접 후 언제부터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원청에서 지시가 내려와 할 수 없이 면접하는 거다. 일자리 없다’, ‘다른 직장 알아봐라’ 등, 사실상 ‘고용불가’ 통보를 받았다.

    서 지회장은 “노조가 확약서 이행을 촉구하자 어쩔 수 없이 형식에 불과한 면접을 주선한 것”이라며 “비정규직 고용보장 합의가 뒤집히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노사 대타협이 짓밟히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측은 무급휴직과 희망퇴직 분류 시 노사 협의가 아닌 일방적 결정으로 결과를 통보했다. 당시 분류과정에서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은 무급휴직자 우선순위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지회가 지난 10월 30일 ‘비정규직 고용보장 노사 대타협 이행’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자료=쌍용차 비정규직지회)

    48%의 무급휴직자에 포함됐다 하더라도 반성문과 경위서 작성을 요구하는가 하면, 개인면담을 통해 반성의 기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자에 대해 무급휴직자로 선정했다. 이에 노조가 노사 협의 하에 이뤄지지 않은 무급휴직자 선정을 반려할 것을 몇 차례 공문을 통해 요구했지만 사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사측은 대타협 이틀 만에 농성에 참여했던 비해고 조합원 등 94명에 대해 휴업 명령을 내렸으며, 현재 이들을 포함해 144명의 ‘산 자’에 대한 징계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이들에 대한 징계 역시 노사 합의사항에 어긋난다.

    또한 회사 측의 무자비한 형사상 고소고발 남발로 158명이 경찰조사를 받고 있으며, 34명이 구속된 상태다. (11월 10일 현재) 회사, 협력업체, 보험사, 경찰이 청구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금액만도 125억 원에 달하며, 회사가 화재보험사를 통한 구상권을 예고하고 있어 손해가압류금액은 200억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손해가압류 200억 넘을듯

    하지만 사측 직원과 용역업체 직원에 대한 수사는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8월 당시 경찰은 임직원 36명을 조사했으나 모두 귀가시켰다. 앞에서는 “선처”를 운운하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던 사측이 뒤에서는 징계와 구속, 노사합의 불이행을 자행하며 철저히 농성 조합원을 쌍용자동차와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는 것.

    여전히 평택공장은 용역업체 직원이 공장에 상주하며 노조 출입을 통제하고 있고, 사전 협의 없는 전환배치, 휴식시간 축소 등 단체협약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게다가 자본은 정리해고자와 무급휴직자, 희망퇴직자와 영업직 전직, 농성 조합원과 비농성 조합원으로 노동자를 갈라 세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노조를 두 동강 내며 쌍용차 지부를 고립시키고 있다.

    노사 대타협을 이룬 지 채 보름도 되지 않은 지난 8월 19일 박영태 쌍용차 공동관리인은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민주노총 탈퇴를 추진할 것”이라며 “노조가 회사 경영권을 간섭할 수 있는 조항을 삭제하는 등 불합리한 노사규약도 바꿔보겠다”고 말했다. 공개적으로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쌍용차 사태 내내 정부 개입을 거부하며 “재계와 노동계, 정부는 이번 사태를 일회성 사건으로 넘기지 말고 노사문화 선진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노조 탄압의 뜻을 시종일관 강조했다.

    이후 사측은 노조 사무실을 폐쇄했고, 지난 7월까지 공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한 김규환 씨가 민주노총 탈퇴를 위한 총회를 소집해 일명 ‘산 자’만의 투표를 진행했다. 그리고 쌍용자동차에는 새로운 독립노조가 탄생했다.

       
      ▲ 쌍용차 평택공장에은 지난 여름 보이지 않던 카드단말기가 설치돼 출입증 없이는 공장 출입이 제한된다.(자료=쌍용차 비정규직지회)

    한편, 지난 11일 쌍용차 상무급 종합기술연구소장 이모씨 등 연구원 7명이 하이브리드 자동차 기술을 중국 상하이차로 넘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이들에 의해 상하이차가 디젤 하이브리드 자동차 중앙통제장치(HCU. 모터, 변속, 엔진, 배터리 제어를 개선해 연비나 성능을 최적화하는 핵심기술)의 소스코드를 불법적으로 유출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유출된 것으로 밝혀진 HCU 기술은 국가로부터 56억 원을 지원받아 개발된 것으로, 2007년 8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바 있다. 상하이차가 핵심기술을 정부와 쌍용차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적으로 빼돌린 것.

    그간 노조는 쌍용차의 경영악화의 책임이 기술을 빼돌린 상하이차에 있음을 수 차례 지적하며, 정부에 처벌과 해결방안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정부와 검찰은 침묵만을 내세우며 상하이차의 기술 유출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뒤늦은 검찰의 상하이차 기술유출 발표에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금속노조는 “이명박 정부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부실사태의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고, 이제야 부실사태의 주범을 밝힌 데 대해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상하이차의 책임뿐만 아니라 정부의 책임을 덮기 위한 술수”라고 비판했다.

    사측 "기술유출 없다" 발뺌

    이날 검찰의 발표에 쌍용차 측은 “국익에 반하는 탈법적 기술유출 행위를 조장하거다 시도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이 ‘유출 기술’로 판단한 디젤 하이브리드와 관련해 쌍용차는 “상하이차와 우리 회사가 각자 독립된 형태로 개발했던 것”이라며 “서로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학습 차원에서 자료를 제공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쌍용차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 상하이차의 기술 유출이 쌍용차의 도움 아래 자행된 전모는 법정 다툼을 통해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노동자가 그 책임을 대신 지고 공장을 떠난 것에 대한 책임공방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이렇듯 8월 6일 이후, 노사대타협 정신과 합의 내용은 전면 부정됐고, 노조는 2개로 갈라지며 만신창이가 됐다. 회사의 약속이행을 바라보던 농성 조합원들은 본인의 선택이 아닌, 회사의 선택에 의해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어졌고, ‘쌍용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앞으로의 삶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쌍용차 지부와 비정규직 지회는 원․하청 공동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비정규직 지회가 먼저 행동에 들어갔다. 면접 알선과 향후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현장 복귀를 요구하며 오는 20일까지 평택공장 앞 1인 시위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쌍용차 지부는 오는 14일 지부 정식 총회를 열어 향후 투쟁계획을 세운다는 방침이다. 김 의장은 “1편은 지는 싸움이었지만 복직투쟁을 위한 2편은 아직 진행 중”이라며 “77일간의 농성파업이 그랬듯 앞으로도 원․하청 공동파업으로 복직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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