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 소란…"꼴값들 하세요"
    2009년 11월 13일 08: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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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곧 돈과 명예가 되는 세계, 프로스포츠의 세계다. 인간의 몸이 최고의 상태에서, 최고의 기술을 익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아름답고, 멋지다.

그러나 그 ‘몸’이 돈값으로 환산되는 자산이 될 때, 프로스포츠 선수의 도전과 승부는 몸을 가진 선수 개인과 가족에게만이 아니라 소속 팀, 에이전시, 광고주, 연관 산업까지 두루두루 제값이 얼마고, 그 효용기간이 언제까지인지 철저히 따져 묻고 거래되는 상품이 될 뿐이다.

선수는 자신이 얼마짜리로 가늠되는 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운동에 임하고, 몸값에 맞춘 결과를 내보여야 광고며 협찬 따위 더 큰 돈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 잘 나가면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큰돈을 만지게 되지만, 몸 관리에 실패하면 한순간 끝이다.

그런데 몸이라는 것이 아무리 공들여 관리한다 해도 딱 좋은 시기는 긴긴 사람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다. 그러니 어떤 선수가 앞으로 어느 정도로 성장할지, 한창 물오를 시기가 언제쯤이 될 지, 딱 그 시기에 맞춤한 몸값이 얼마인지 따위를 대신해서 하는 직업이 스포츠 에이전시다.

몸값 계산기

그러니까 선수 몸값 흥정 잘 해서 높은 구전 따먹는 것이 프로스포츠 에이전시인 것이다. 그 프로스포츠 에이전시의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에이전트가 어느 날 문득 회의하고 반성한다. 선수도 사람인데 그저 경기 성적과 계약금 거래 여러 건 성사시켜 회사는 돈 많이 벌고, 자신은 연봉 많이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이 문제를 고민고민하던 에이전트가 선수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기울이며 신뢰를 쌓고, 선수가 단지 몸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도록 하는 새로운 관계를 가져야한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제리 맥과이어’ 영화 포스터 

동료들은 앞에서는 박수를 치지만 막상 그 제안 때문에 엘리트 자리에서 졸지에 해고자가 된 그 에이전트가 쫓겨나게 되는 처지가 되자 모두 등을 돌린다.

오직 한 사람, 에이전트를 보조하던 미혼모 여사무원 하나만이 그를 따라 나선다. 그리고 회사에서 쫓겨나 이상적인 선수와 에이전트의 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그에게 자신을 맡기는 사람도 딱 하나, 딸린 식구는 많은데 아직 스타 반열에 들지 못해 툴툴거리는 미식축구 선수 하나 뿐이다.

‘루저’들이 뭉쳐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는 영화 <제리 맥과이어> 이야기다. 외모며 능력, 직업관까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다가 하루아침에 찌질이로 평가되는 에이전트는 제리 맥과이어(탐 크루즈), 그를 따라 나선 외모도 형편도 내세울 것 없는 직원은 도로시(르네 젤위거), 가족들 부양에 허리가 휜다며 입만 열면 돈타령인 선수는 로드 티드웰(쿠바 구딩 주니어)이다.

영화 속에서 이 세 사람은 온갖 역경을 헤치며 이상도 실현하고, 사랑도 이루고, 일에서 성공도 하고, 돈까지 많이 버니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승리자, ‘위너’가 된다.

탐 크루저가 ‘루저’가 된 진짜 이유

영화 속에서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배우로서 최고의 대우와 평가를 받는 탐 크루저는 요즘 한국에서 졸지에 탐크 ‘루저’가 되었다. 연기력이나 재산, 사생활 때문이 아니라 오직 키가 작다는 이유에서. 그는 이미 영화 속에서 애인 에버리(켈리 프레스톤)에게 ‘루저’라고 조롱을 받았다.

키 때문이 아니라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키 크고, 늘씬하고, 얼굴도 예쁜데다 돈도 잘 버는 애인은 제리가 신념을 밝히자 그를 ‘루저’라고 비난한다. 편하게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길, 자본의 부속품이 되는 삶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헤어진 후, 제리와 마주치면 예쁘장한 얼굴에 심술궂은 비웃음을 띠우고, 엄지와 검지로 ‘L’자를 만들어 보이며 ‘루저(Loser)’라고 입술을 달싹거린다. 미인이 얼마나 흉하게 보일 수 있는지를 잡아내는 장면이다.

제리 맥과이어의 세계를 넓혀보면 딱 <미녀들의 수다>를 둘러싼 루저 논란으로 시끄러운 지금 한국 사회가 된다. 제리를 루저라고 밀어내는 회사나 에버리와 싸운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런 체제와 사고방식에 맞서서 신념을 갖고 스스로 새로운 길을 뚫고 나가는 수밖에.

애당초 ‘미녀’들이라고 평가받을만한 젊은 여성들만 모아놓고 토론이 아니라 ‘수다’를 떨게 하려는 프로그램에서 풀어내던 수다 중에 참 듣기 거북한 이야기가 나왔다.

제작진에 당한 ‘루저녀’, 하지만 옹호할 생각은 없어

이미 여성을 미모라는 기준으로 공공연히 가르는 프로그램이다보니 외국 여성과 말 섞을 한국 여대생들도 전공에 대한 지식이나 성취와는 상관없이 ‘캠퍼스 퀸’이라는 딱지를 붙여 골라 앉혔다.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대생들에게 전공 공부에 전념하는 대학생으로서의 지성이나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대한 대표성을 요구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미녀들의 수다>는 키가 작은 남성을 비하하기 전에 이미 외모를 기준으로 수많은 여성들을 비하하면서 출발한 것이다. 신체를 자산으로 생각하는 일부 출연 여대생들의 물신화된 가치관은 이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까지 적용된다. 그러다보니 키 작은 남성, 키 작은 남성을 만나는 여성까지 싸잡아 비하하는 태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굴욕감을 느낄 수도 있다.

   
  ▲미녀들의 수다.(사진=KBS 홈페이지)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방송에서 던진 질문들 자체는 자기 스스로를 인격체가 아니라 상품으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출연 여대생들을 더 조롱하고 비하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자신들이 예쁘기 때문에 충분히 대접받을만하다고 생각한 출연 여대생들은 올바른 이성관과 가치관을 가진 이들로 상정된 외국 여성 출연자들과 비교당해서 바보로 만들려는 제작진의 기획에 놀아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프로그램에서 소신이랍시고 키가 180cm가 안되면 루저라느니, 키 작은 남자가 폭력을 쓰는 남자보다 더 싫다느니, 키가 작으면 오만정이 다 떨어진다느니, 여자는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투자하느라 부대비용이 많이 드니만큼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야 한다느니 따위의 수다를 거침없이 뱉어내는 천박함을 옹호할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이미 대학생이면 성인이니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나이고, 다니고 있는 학교 이름을 떡하니 달고 나온 만큼 지성을 추구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비열한 태도

노력에 의해 바꿀 수 없는 타고난 조건만큼은, 그중에서도 특히 신체 상태는 절대로 평가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지켜야할 최소한의 예의다.

살 빼고, 뜯어고친 몸뚱이며 낯짝을 자산 삼아 그런 데 혹하는 남자 하나 잘 후려 신세 편하게 살자는 건 그네들 사정이지만, 타인에 대해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리석은 정도를 넘어 비열한 태도다. 그렇다고 출연자들의 신상정보를 파헤치고, 과거행적까지 탈탈 털어 공개비난하는 것도 옳은 대응은 아니다.

몰지성에 비이성으로 대응한다고 나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성과 여성에 관련된 사안에 대해 무슨 말만 하면 ‘오크녀는 닥치고 버로우하삼’ 이라든가 ‘꼴페미 군대나 가라’ 같은 막말에 ‘나 그 정도로 괴물은 아니거든’ 이라든가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알기나 하셔?’라고 대응하는 것이 약만 오르고 기운만 빼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소통불능을 확인할 뿐이다.

키 작은 것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 어디 탐 크루즈 뿐인가. 데니 드 비토는 <트윈즈>에서 어마무지한 덩치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쌍둥이 형제로 매력과 개성을 겨루고, 인간족 키로는 아이처럼 보이는 호빗족들은 <반지의 제왕>에서 악의 세력에 맞서 세상을 구원한다.

키 작은 이들은 루저라는 말에 흥분해서 열폭하기보다 스스로의 신체조차 상품화하는 것을 낯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에게 그저 그들 꼴에 맞게 살라고 한마디만 하면 된다.

"꼴값하세요~" (‘꼴값’ : 1. ‘얼굴값’을 속되게 이르는 말. 2 격에 맞지 아니하는 아니꼬운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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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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