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능 개탄이 아닌 대학평준화로
        2009년 11월 12일 11: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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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수능일이 돌아왔다. 대한민국 국민이 평생 동안 간직하고 살아야 할 학벌 꼬리표를 배분하는 날이다. 얼마 전 이영자가 진행하는 토크쇼 <택시>에 지방 젊은이들이 출연했었다. 오락프로그램이니만큼 자연스럽게 웃고 떠들면서 진행이 됐는데, 그러던 중에 취업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 젊은이들은 몇몇 좋은 대학 출신자가 아니면 아예 서류통과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학벌이라는 꼬리표는 이렇게 취업단계에서뿐만이 아니라, 결혼, 승진 등 평생에 걸쳐 그 사람의 삶을 제약한다. 안 좋은 대학 학생이 행여 얼짱으로 포털 사이트에 소개라도 되면 네티즌의 비웃음을 살 각오를 해야 한다. 얼마 전에 한 지방대 학생이 얼짱으로 소개됐다가 ‘지잡대 주제에’라는 악플 세례를 받았었다. 반면에 서울대생으로 얼굴이 예쁘면 엄친딸로 경배받는다. 물론 이런 정도는 평생에 걸쳐 받을 차별과 특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학벌을 현대판 신분이라고 한다. 신분은 세습되고, 한 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학벌도 점점 세습되는 경향이 커지고 있으며, 한 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조선 신분제 사회에서는 족보 위조가 성행했고, 현대 학벌 신분제 사회에선 학력 위조가 성행하는 것이다.

    이 현대판 신분사회의 토대가 되는 것이 수능이라는 절차다. 그래서 과거 한때는 수능폐지를 요구하는 행사가 해마다 이맘때 치러지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원래 시험이 신분제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랬던 시험이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을까?

    시험은 원래 좋은 것이었다

    전통적인 신분제 사회에 태어난 하층민들은 때때로 민란을 일으켰다. 그들이 민란을 일으키며 내뱉은 말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으랴’였다. 이 말엔 수많은 민초들의 피눈물이 배어있다.

    신분제 사회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사회였고, 그런 씨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팔푼이라도 존귀한 신분으로 군림하는 체제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귀한 족속들이라는 귀족집단이 성장한 것이다.

    시험은 바로 그들을 누르기 위해 등장한 제도였다. 중국에선 당나라 때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과거제가 강화되며, 이 땅에선 고려 때 같은 이유로 과거제가 강화된다. 귀족사회에서 귀족의 자식은 저절로 장상이 되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배제당했었지만 과거제는 모두를 평등하게 만든다. 권문세족들이 일소되면서 마침내 과거제는 송나라와 조선시대 때 완전히 자리 잡게 된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과거제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매우 경탄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때까지 신분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제도를 가능케 한 유학의 비조 공자를 경배하는 흐름까지 나타났었다고 한다.

    요즘 한국의 기득권세력은 대입시험을 없애려 한다. 각 대학이 알아서 학생을 뽑는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면 시험이 없던 귀족사회로 돌아간다. 일류대가 일류 집안 자제를 뽑고, 삼류대는 삼류 집안 아이들을 데려가면서 왕후장상의 씨가 분명히 구분되는 사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시험잔혹사

    좋은 취지였던 과거제는 조선을 벌열이 군림하는 또 다른 귀족사회로 만들었다. 과거를 치르면 치를수록 귀족이 부활하는 징후가 뚜렷해졌다. 뿐만 아니라 지식의 역동성도 억압됐다. 조선후기 박제가는 과거제의 폐해를 논하면서 이렇게 한탄했다.

    “모든 길을 다 막아 놓고 오직 문 하나만을 열어 놓으면 비록 공자라 해도 그 문으로 나와야만 할 것이다.”

    선비들이 과거가 요구하는 것만을 공부하느라 학문적 역동성이 사라진다는 얘기였다. 이익은 이런 말도 했다.

    “알지 못하겠다. 맑은 조정의 벼슬자리는 벌열의 자제만을 위해 만들어 두었던 것인가?”

    과거제는 벌열의 자제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댈 수 있는 사람들이 그들뿐이기 때문이었다. 귀족의 특권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시험은, 이렇게 해서 다시 귀족을 위한 제도가 된 것이다.

    대학평준화만이 해결책

    대학입학시험은 마치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는 것 같다. 하지만 과거제처럼 비용의 문제 때문에 결국 부자들만을 위한 잔치가 됐다. 없는 집 자식들은 여기에 들러리를 설 뿐이다. 한국을 서울대 벌열이 지배하는 나라로 만들고, 시험이 서울대 벌열이 되는 비용을 키우니, 저절로 부자들은 귀족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시험을 없애면 되나? 개혁세력과 노무현 대통령 등은 획일적인 시험을 없애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력고사를 수능으로 바꿨다가, 이마저도 문제가 되자 입학사정관제를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시험을 없애면 더 노골적인 귀족사회로 되돌아갈 뿐이다. 조선시대에서 고려·신라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점을 깨달았기 때문에 수능폐지운동은 이제 사라졌다. 시험 자체는 봐도 아무 상관이 없다. 대신에 서울대가 절대적 일류대가 되는 승자독식구조를 깨야 한다. 수능을 대학입학자격시험으로 바꾸고 대학합격자가 아무 대학이나 가도록 하면 승자독식구조가 깨진다. 이러면 학벌귀족사회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고려시대 때부터 시작된 귀족에 대한 천 년의 싸움이 여기서 일단락되는 것이다.

    보통 수능 때가 되면 과도한 입시경쟁을 개탄하거나, 시험을 문제 삼거나, 자살하는 아이들을 애도하는 글들이 발표된다. 아무리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을 독식하는 일류대가 존재하는 한 시험을 보건, 안 보건 문제는 계속된다.

    시험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일류대가 존재하는 대학서열체제를 쳐서 평준화해야 한다. 그러면 입시경쟁과 자살하는 아이들은 저절로 없어진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개탄이나 애도가 아니라 평준화 요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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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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