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비정규직 다시 함께 싸우겠다"
    2009년 11월 13일 10: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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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미터 높이 굴뚝에서, 출입구도 막은 채 86일 간 쌍용차 자본과 공권력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 있다. ‘정리해고’에 맞서 추위와 공포에 떨던 사람들, 서맹섭 쌍용자동차 비정규지회 지회장도 여기 있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이중고에 맞서 목숨을 건 고공농성에 참여했던 그를, 민주노총 평택 사무실에서 6일 만났다.

"회사에 미련없지만…. 끝까지 싸운다"

   
  ▲ 서맹섭 지회장

서 지회장은 86일간의 농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1평 남짓한 곳에서 3명이 생활하며 얻은 ‘요통’과 함께 이보다 더 심각한 ‘정신적’고통을 겪고 있는 그는 “신경안정제, 진통제 등이 없으면 잠자는 것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서 지회장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회사에 미련도 없고, 마음도 없다”면서도 “비정규지회 소속 조합원들을 모두 복직시킬 때까지 싸운다”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처음 굴뚝에 오를 때처럼, 정규직-비정규직이 함께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사측에 대한 분노, ‘대타협’ 당시의 심정, 금속노조에 대한 서운함과 소회를 밝혔다. 서 지회장은 지난 여름 쌍용차 사태 당시 <레디앙>에 [굴뚝에서 온 편지]를 연재하기도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     *

– 건강은 어떤가.

= 좁은 굴뚝에서의 86일간의 농성 후유증으로 허리가 좋지 않다. 농성 당시 헬기가 내 머리와 10~20미터 간격을 두고 저공비행을 하기도 했다. 최루액을 투하할 때는 굴뚝보다 낮게 비행한 적도 있다. 때문에 소음으로 인한 공황장애도 겪고 있다.

신경안정제, 진통제 등이 없으면 밤에 잠자는 것도 어렵다. 신경이 예민해졌고, 메모하지 않으면 어제 일도 곧잘 잊어버리곤 한다. 그때의 기억이 오래갈 것 같다. 몸은 몸대로 좋지 않고, 조합원들 생각하면 마음도 무겁다. 단 한 명도 복직하지 못해 짐이 더 무거워진 상태다.

– 굴뚝에 올라간 이유는 무엇인가.

= 억울했다. 6년간 다닌 회사에서 내가 왜 해고돼야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해고이유를 말해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이유가 될 만한 근거도 없었다. 조합원들 역시 억울한 해고를 겪었다.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2~3년 전 40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바 있다. 비정규직에게 정규직은 하나의 희망이었고, 그 희망을 위해 일해 온 사람들이 바로 비정규직이다.

– 대타협 이후 공장 문이 열리던 날, 굴뚝에서 내려왔다. 그때의 심정은.

= 상당히 망설였다. 노사합의를 이뤘다고 하지만 회사가 약속을 과연 지킬 것인가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조합원들이 농성을 풀고 공장에서 나올 때 경찰들은 이미 도장공장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상태였다.

굴뚝에서 내려오기로 결정했을 때, 동지들이 모여 있는 도장3거리에 합류해 함께 나가는 걸로 얘기를 했다. 동지들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허리가 좋지 않아 헬기를 타고 굴뚝에서 내려오니, 형사들이 바로 경찰차에 태워버렸다.

   
  ▲ 사진=이은영 기자

"’알선’인줄 알았다면 안 내려왔다"

결국 실질적으로 지켜진 것이 하나도 없다. 박영태 쌍용차 공동관리인이 합의서에 사인을 했음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합의서에 따르면 ‘취업을 알선해주겠다’고 명시돼 있다. ‘복귀’, ‘복직’이라는 말이 없다.

문구에는 ‘알선’이지만 박영태 공동관리인과 한상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합의한 것은 ‘복직’이었다. 알선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만약 ‘알선’이라는 문구가 합의서에 들어간 걸 굴뚝에서 알았다면 아마 내려오지 않았을 거다. 당시 ‘복직’으로 얘기했었다.

– 굴뚝 위에서 공장 안팎의 상황을 지켜보며 힘들었을 것 같다.

= 가족대책위가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맞는 장면이나, 경찰에게 저지당하는 모습을 볼 때 많이 힘들었다. 굴뚝 위에서 소리도 많이 질렀다. “가서 지원하라”, “뭐하는 것이냐”, “동지들이 맞아 죽고 있다.”

분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었다. 굴뚝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무 것도 없어 답답했다. 겨우 주위 사람들에게 문자라도 보내 현 상황을 알리는 정도였다. 마음이 아팠다.

구사대가 도장2공장 앞까지 들어왔을 때는 굴뚝 바로 밑에서 볼트를 쐈다. 눈앞까지 볼트가 날아오는데 뭐라도 던지고 싶었지만, 경찰이 카메라를 들고 있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때의 심정은 말할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 금속노조, 민주노총을 비롯해 많은 연대단위가 쌍용차를 지지 방문했다. 하지만 매번 공장 정문까지도 진출하지 못하고 밀려났다. 굴뚝에서는 다 보이지 않았나.

= 공장 앞 도로까지 오는 걸 보고 공장 안 동지들에게 “연대동지들이 왔다. 힘내라”며 소식을 알렸다. 우리는 빨간 깃발을 꽂아 응원했다. 밖에서 연대동지들이 공장으로 밀고 들어오면 승산이 있다며 자신감이 생기곤 했다. “우리만 싸우는 게 아니”라며 힘을 많이 얻었다.

   
  ▲ 서 지회장은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70미터 굴뚝에서 86일간 고공농성을 전개했다.(사진=이은영 기자)

하지만 물대포 한 번에 힘없이 뒤로 밀려버리는 모습을 수차례 보았다. 물론 그 동지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하지만 문제는 분명 있다.

준비 없는 집회는 하지 않는 게 낫다. 지난 5월 총파업 결의대회 당시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에게 “총파업 해달라”고 요구했었다. 정 위원장은 의지를 보였어야 했지만, 사실 그때 알았다. 의지가 없다는 것을.

수많은 비정규직이 길거리에 나와 있다. 쌍용차 사태로 회사에서 쫓겨난 동지들이 상당히 많다. 이런 문제 해소할 수 있는 부분 찾았으면 좋겠다. 말보다는 직접 행동으로 실천이 가능한 부분이었으면 좋겠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 지난 8월 6일 노사 대타협을 이뤘다. 대타협 아래 현재 실천되고 있는 게 있나.

= 국민들은 모든 게 잘 해결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전혀 이뤄진 게 없다. 알리고 싶다. 사측은 자기 입맛대로만 하려 한다. 정말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지난 몇 십 년 동안 쌍용차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 모두 길거리에 나와 있다는 것이다.

"대타협은 모두 거짓말"

살려면 같이 살아야 한다. 차 만드는 사람이 노동자다. 현재 공장 내 노동 강도가 강해졌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차가 만들어질 수 있겠나. 8월 5일 ‘비정규직 다 복직시키겠다’는 말을 듣고 내려왔지만 내려와 보니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다. 다 거짓말이었다.

– 현재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어떤 상태인가.

= 정부는 평택을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지정하고 쌍용차 재취업 전담반을 별도 운영한다고 했다. 해고된 조합원들에게 고용을 돕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다른 회사에 가서 쌍용 출신이라고 하면 받아주지 않는다. 아웃소싱 업체들도 단합해 쌍용차 출신은 받지 않아 생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향후 계획은.

= (쌍용차로)복귀는 어렵다는 판단이 든다. 다시 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아무 것도 없어 길어지고 어려워질 것 같다. 나는 회사에 미련도 없고 마음도 없다. 싸울 만큼 싸웠고 할 만큼 했다. 하지만 우리 조합원 단 한 명도 복직이 안 됐다.

다 복직 되어야 한다. 마음이 너무 답답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싸움을 걸어서라도 복직 약속을 이행시켜야 한다. 우리는 생계문제 때문에 싸우는 거다. 다시 굴뚝에 오르는 일이 있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 복직시켜야 한다.

가족대책위, 정리해고특별대책위, 비정규직 지회, 쌍용차 지부가 매주 수요일 4자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쌍용차 투쟁 처음 시작할 때도 원․하청이 공동으로 투쟁으로 했으니, 앞으로도 공동투쟁으로 가려고 한다. 함께 할 수 있는 동지들이 있기에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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