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잔 속에 갇힌 비정규직의 분노
        2009년 11월 13일 02:26 오후

    Print Friendly

    3개월짜리 노동자가 있다. 신문배달도, 우유배달도 아닌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인데 3개월짜리란다. 산재를 당했거나 출산휴가를 간 자리를 때우는 것도 아닌데, 3개월마다 근로계약서를 쓰라고 한다.  

    현대차 아산공장 얘기다. 회사는 엔진부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른 업체로 넘기면서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처음엔 거부했지만 이마저도 안 받으면 아예 공장에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어쩔 수 없었단다.  

    “싸우고 싶은데 힘이 없는 걸 어떡해요.”

    소주를 연거푸 들이키면서 한숨과 함께 내뱉는 얘기에 가슴이 시려온다. 못 견딘 친구들 11명은 떠나갔고, 20명은 눈물을 머금고 근로계약서에 싸인을 하기로 했다.  

       
      ▲ 지난 7월 정규직-비정규직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진행된 선전전 (사진=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3개월짜리 노동자. 보통 한시하청이라고 부른다. 산재나 휴가로 빈자리에 잠깐 들어와 떼우다가 그 사람이 돌아오면 집에 가는 자리다. 그런데 1년이고, 2년이고 계속 일한다. A업체에서 일하다가 B업체로 갔다가 다시 A업체로 와서 일한다.  

    3개월마다 계약서를 쓴다. 퇴직금도 안줘도 되고, 성과급도 떼먹는다. 겨울방학 두 세달 일하는 대학생 ‘알바’처럼 최저임금만 주면서 부려먹는다. 한시하청은 초단기 계약직이다.  

    “월급은 얼마나 준대요?”

    “4,050원이 준대요.” 

    아산공장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는 그 친구는 그래도 예전에는 주야 10시간씩 일해서 200만원 정도는 받았는데, 이제 150만원을 벌기도 힘들어지게 됐다. 그래도 안 짤리면 다행인가? 

    이 친구들이 속해있던 업체는 현대차 엔진공장에서 물류와 조립, 소재를 담당하던 유진기업이었다. 지난 10월 24일 업체를 폐업하면서, 정규직노조가 회사와 협의를 해 금속노조(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조합원 31명에 대해 아산공장 내 업체에 ‘취업알선’한다고 했다.  

    그런데 면담에 나온 업체 사장은 이렇게 말했단다. “한 두 달 일하고 나서 회사 형편을 봐서 채용할 지 생각해봐야지.” 

    요즘 아산공장은 휴일이 없다. 새로 출시된 YF소나타가 2주만에 5만5천대가 예약됐고, 11월에 주말과 일요일까지 모두 특근이 잡혔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주말마다 공장에 나오야 한다. 특근 ‘한대가리’에 정규직은 25만원, 비정규직은 14만원을 받는다.  

    그렇게 ‘쌩쌩’ 돌아가는 공장에서, 그것도 10년 청춘을 바친 공장에서 유진기업 출신 조합원 20명은 ‘3개월짜리’ 알바인생으로 살아야 한다. 누가, 왜 이들은 ‘알바’ 인생으로 만들었을까? 

     

       
      ▲ 지난 7월 정규직-비정규직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진행된 선전전 (사진=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소주잔이 쉴 새 없이 돈다. 라인을 세우고, 공장을 멈춰서 회사한테 노동자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싸우지 못했다. 비정규직지회 전직 간부도, 대의원도, 유진기업 조합원도 모두 괴로워한다.  

    정규직노조를 욕하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왜 비정규직 스스로 뭉쳐서 싸우지 못했는지를 반성하며 술잔을 돌린다. 제발 서로 힘을 합쳐 다시는 이런 더러운 꼴을 당하지 말자며 또 술잔은 부딪힌다.  

    술잔 속에 갇혀 있는 비정규직의 분노가 언제쯤 공장으로, 거리로 나올 수 있을까?  

    2009년 11월 12일 아산에서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