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산히 부서진 약속…노조, 2개로
    구속 34, 수사 158명, 손배 125억원
    By 나난
        2009년 11월 11일 08: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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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11월 13일이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77일간 농성 파업을 푼 지 100일이 된다. 수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안타까움과 분노, 슬픔과 회한을 남긴 쌍용차 사태는 100일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속에 잊혀져 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끝난’ 싸움이 됐다.

    대타협이라는 이름의 노사 합의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었다. 100일이 지난 후 그 약속들은 지켜지고 있는지, ‘옥쇄 파업’이라는 이름으로 "해고는 살인"이라는 절규로 싸워왔던 조합원들의 현재 모습과 현장의 모습, 그리고 전망 등을 4회에 걸져 연재한다. <편집자 주>

    지난 8월 6일, 77일간 굳게 닫혔던 공장 문이 열렸다. ‘대타협’이란 사회적 약속 아래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노동자들은 스스로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것은 ‘화해’와 ‘환영’이 아닌 ‘배신’과 ‘구속’, ‘징계’, ‘생활고’였다.

    대타협 이후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에는 대대적인 수사와 구속, 손해배상 청구가 이어졌다. 노사 협의를 전제로 한 정리해고자, 무급휴직자 배분은 회사의 일방적 기준으로 나눠졌으며, 노조는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한 쌍용차지부와 독립노조인 쌍용차 노조로 분리됐다.

    되돌아 본 쌍용차 사태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쌍용차 사태는 전체 인력 37%에 해당하는 2,646명 감축을 골자로 한 경영정상화 방안 발표로 본격화됐다. 쌍용차는 최대 주주인 상하이차의 경영권 포기로 지난 1월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였다.

    인력감축, 자산 매각, 복지후생 중단, 순환 휴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이하 노조)는 ‘총고용 보장’을 전제로 두 차례에 걸쳐 자구책을 제시했다. 함께 살기 위해 인건비를 담보로 한 1,870억 원 대출 투자, 비정규직 고용안정 기금 12억 원 출연, 신차개발과 긴급자금 1,000억 원을 노동조합이 담보하겠다는 것.

    이는 "회사 회생을 위해 모든 것을 할 테니 제발 자르지만 말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하지만 노조의 파격적인 자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입장은 "정리해고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쌍용차 조사위원인 삼일회계법인 역시 2,646명에 대한 구조조정을 전제로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4천억 원 정도 더 가치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노조를 압박했다.

    노조는 또 다시 “정리해고만은 안 된다”, “인건비 절감과 순환 휴직 등으로 일자리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사측은 “정리해고 뒤에도 700여 명의 잉여인력이 유지된다”며 이 역시 거부했다.

       
      ▲지난 8월 5일 오전 8시 5분경 크레인 3대에 컨테이너를 연결한 경찰특공대가 조립3,4팀 옥상에 진입하여 조합원들을 연행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사진=노동과 세계)

    결국 2,646명의 유휴인력 중 사무직 희망퇴직 인원을 제외한 2,405명에 대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계획 신고서’가 노동부에 제출됐고, 3명의 노조 간부는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스스로 공장 안 70미터 굴뚝에 올랐다.

    "해고는 살인"

    노조도 옥쇄파업에 들어갔다. “해고는 살인”라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구조조정을 저지한다”며 5월 22일 평택공장 도장1공장과 도장2공장 등 공장 내 핵심 건물을 점거했다.

    하지만 사측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정리해고에서 제외된 4,500여명의 임직원을 동원해 평택공장으로 출근투쟁을 전개하는 가하면, 용역업체 직원을 앞세워 수차례 농성장을 침탈했다. 결국 평택공장 본관과 정문을 점거한 이들은 세상과 농성 조합원들을 분리시켰다.

    이 과정에서 도장2공장으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용역업체 직원과 경찰, 그리고 이들을 저지하려는 농성 조합원들 간의 물리적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노사 양측은 서로를 향해 볼트와 너트를 장전한 새총을 겨눴고, 사측은 수면 가스를 살포해 농성 해산을 유도한다는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수십 년간 함께 일한 동료가 ‘적’이 되는 순간이었다.

    경찰의 강경진압은 사회적 논란은 물론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았다. 경찰은 발암물질인 ‘다클로로메탄’이 함유된 최루액을 헬기를 동원해 하루에도 수차례 농성 중인 도장공장 상공에 쏟아 부었고, 대테러 장비인 테이저 건을 조합원의 얼굴에 조준했다.

    테러진압 방불케 한 경찰진압

    하지만 도장공장에 고립된 농성 노동자들은 사회적 도움으로부터도 철저히 고립됐다. 사측과 경찰은 농성장 내 의료진 출입은 물론 식료품과 식수, 전기까지 차단했다. 이에 농성 조합원들은 영양부족과 탈수증세, 피부병과 화상 등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발생했다.

    금속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 의료진이 식수 및 의약품 반입을 요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에 대한 긴급구제조치를 내렸지만, 경찰과 사측으로부터 가로막힌 공장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7월 30일, 노사는 42일 만에 대화를 재개했다. 하지만 급물살 탈 것으로 보였던 끝장 교섭이 3박4일간 진행됐지만 “노조가 총고용 보장이라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는 사측의 돌연 협상결렬 선언으로 파행으로 치달았다.

    경찰은 농성장인 도장2공장 바로 앞까지 장악했고, 조합원 내 부상자가 속출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노조는 결국 8월 6일 사측에 대화 재개를 요구했고, 다시 마주 맞은 노사는 ‘희망퇴직 52 : 무급휴직 48’이라는 큰 틀에 합의했다. 그렇게 “단 한 명이 공장에 남는 순간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던 노조의 굳은 의지는 ‘대타협’이라는 ‘사회적 약속’ 아래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 지난 8월 6일 오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최종 노사 교섭이 끝난 후 조합원들이 결의대회를 마친 후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그리고 지난달 14일 사측은 당초 정리해고 대상자였던 974명 중 48%인 468명에 대해 무급휴직과 영업전직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방안을 확정하고 선정된 대상자에게 개별 통보했다. 158명은 희망퇴직으로, 506명이 정리해고와 분사로 고용관계가 해소됐다.

    11월 10일 현재, 34명이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 구속된 상태며 이들을 포함해 158명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전담반을 꾸려 채증자료를 분석해 추가 수사를 진행 중에 있다.

    구속 34, 수사 158명, 손배 125억원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에 제기된 손해배상, 가압류 합산금액은 무려 125억 원에 달하고, 77일간 모두 6명의 노동자와 그의 가족이 사망했다. 일부 조합원은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독립노조를 설립했으며, 현재 쌍용차 내 노조는 독립노조 쌍용차노조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2개다.

    민주노총을 탈퇴한 쌍용차노조(위원장 김규한)는 지난 2일 회사의 경영정상화와 고용안정을 위해 일체의 쟁의행위를 하지 않기로 했다. 노조는 평택시청에서 ‘노·사·민·정 한마음 협약식’을 열고 “잘못된 노사문화를 청산하겠다”며 사실상의 ‘무분규 선언’을 했다.

    ‘산 자’들 역시 부서 통합과 부서전환배치로 노동강도는 배가 되고, 임금은 25~30%까지 삭감됐다. 감시의 눈길도 더욱 매서워졌다. 대화시간은 엄두조차 낼 수 없으며, 공장 정문에는 지난 여름까지 볼 수 없었던 카드단말기가 설치돼 출입증 없이는 공장 출입이 제한된다.

    현재 사측은 파업 농성에 참여했던 비해고자 144명에 대해 징계를 추진하고 있다. 사측은 노사 대타협 당시 농성 조합원들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이들에 대해 “노조 지침에 따라 불법파업에 참여했다”며 오는 10일부터 16일까지 8차례에 걸쳐 징계한다는 방침이다.

       
      ▲ 사진=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한편, 서울중앙지법 파산4부(고영한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6일 오후 열린 쌍용차에 대한 2, 3차 관계인 집회에서 회생안을 조별 표결에 부쳤으나 부결됐다고 밝혔다. 회생담보권자 조는 채권액 기준으로 2,594억 원 중 2,587억 원이 찬성해 찬성률 99.75%, 주주 조는 찬성률 100%로 가결 조건을 충족했다.

    쌍용차 사태, 여전히 현재진행형

    하지만 회생채권자 조에서 해외 전환사채권자들이 회생계획안에 반대하면서 채권액 9,174억 원 중 3,782억 원만 찬성(41.21%)해거 부결됐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3개 조의 동의를 얻어 다음달 11일 속행하기로 했다. 

    77일간의 농성 파업은 ‘대타협’ 아래 끝났다. 정상화를 위해 쌍용자동차 공장의 기계는 요란한 소리를 내고 돌아가고 있다. 쌍용차 사태는 100일 전, 노사 합의 하에 ‘평화적’으로 마무된 것처럼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끝났다고 하기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하다. 노사합의에 따라 이행되기로 한 노사 대타협은 헌신짝처럼 버려졌으며, 일방적 정리해고를 당한 수많은 노동자가 여전히 쌍용차 평택공장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다시 ‘복직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이렇듯 쌍용차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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