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정건전성, 정권 재창출 좌우한다
    지출통제에서 세입확대 프레임으로
        2009년 11월 10일 01: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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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부터 국회가 2010년 예산안(정부총지출안) 심의를 시작한다. 올해 예산안은 국회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재정적자, 4대강 사업 등으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향후 예산안 논의 향방이 심상치 않다.

    한국사회 재정건전성 의제의 등장

    내년 예산안과 관련해서 가장 주목해야할 대목은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재정건전성 의제가 중요한 정세 변수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부채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한 나라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재정적자를 두고 난리다.

    정부는 2013년에 재정균형에 도달하겠다고 공언하지만, 만약 정부가 2012년 10월에 그 전망을 담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못할 경우, 재정건전성 의제는 차기 대통령선거 한복판에 등장할 것이다. 그만큼 재정건전성은 이명박 정부에게 정권 재창출까지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재정균형 달성 수단은 높은 경제성장과 재정지출 통제이다. 경제성장을 통해 가능한 재정수입을 늘리고, 재정지출 증가율을 재정수입보다 낮게 관리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향후 이명박정부 임기 내내 강력한 재정지출 통제를 예고하는 것이다. 사회공공예산 확충을 주장해 왔던 진보운동에게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재정적자 문제와 재정균형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나갈 것이다. 야당들도 정부의 재정관리 능력을 비판하기 위해 재정적자를 강조해 나갈 것이다. 이에 진보운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내년 MB예산안을 여섯가지 평가포인트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진보적 대응방향을 제안하겠다.

    펑가 1 – 지출 증감: 2010년 정부예산안, 올해대비 증가가 아니라 감소

    내년 예산안을 평가할 때 가장 핵심적인 수치가 규모 변화이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내년 정부총지출은 291.8조원으로 올해 본예산 284.5조원에 비해 7.3조원 증가한다. 하지만 이 주장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 증감을 계산하는 기준은 작년 12월 정기국회에서 의결된 ‘본예산’ 금액이다. 그런데 본예산 확정 이후 올해 4월 추경예산이 증액되었기 때문에 내년 예산안 증감을 따지는 기준은 올해 최종지출인 추경예산 301.8조원이어야 한다. 이 경우 내년 예산안은 올해보다 10조원, 3.3% 감소한 금액이다. 역대 정부들도 모두 추경예산을 기준으로 다음해 증감을 발표해 왔다.

    이명박 정부가 기본상식을 어기며 본예산 기준을 고집하는 이유는 내년 예산안이 올해보다 증가한다는 착시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 설명 방식을 따르면, 내년 복지지출도 올해 최종지출(추경예산) 80.4조원이 아니라 본예산 74.6조원을 기준으로 6.4조원 증가한다. 실제는 0.6조원 늘어날 뿐이다. 농림수산식품 지출도 올해 16.8조원에서 내년 17.2조원으로 0.4조원 증가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실제는 올해 17.4조원에서 0.2조원이 줄어든다.

    평가 2 – 재정수입: 부자감세로 경제성장에 따른 세입 모두 상쇄

    정부의 재정 수입에 가장 중요한 것이 국세 수입이다. 내년 국세 수입은 171.1조원으로 올해 164.6조원에 비해 6.5조원 늘어난다. 증가금액이 통상 수준에 비해 매우 작다. 왜 이렇게 작아졌을까?

    국세 수입은 한해 부가가치를 세원으로 징수되므로 경제성장 수준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경상성장률 1% 증가할 때 국세수입이 늘어나는 비중을 국세탄성치라고 하는데 정부 주장에 따르면 현재 1.25이다. 따라서 올해 국세수입 164.6조원에 내년 경상성장률 6.6%와 국세탄성치를 곱하면 내년에 경제성장에 따라 추가 확보되는 세수는 13.6조원이다.

    그런데 이 돈은 바로 사라져 버린다. 2008년 강행된 부자감세로 인해 내년부터 추가로 줄어드는 세금이 13.3조원이다. 내년 경제성장 효과가 부자감세로 모두 상쇄되는 것이다.

    내년 국세수입 증가분 6.5조원도 내역을 보면 어이가 없다. 국회가 곧 세제개편안을 심의할 예정인데 여기에는 이자소득 법인세 원천징수분 5.2조원이 포함되어 있다. 이 세금은 원래 2011년 세수에 잡혀온 것인데 한해씩 앞당겨 징수하겠단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세수 증가가 아니다.

    따라서 내년 국세수입 증가분 6.5조원에서 법인세 원천징수분을 제외하면 내년 실제 국세수입 순증가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이러니 재정건전성 문제가 불거질 수 밖에.

    평가 3 – 재정지출: 강력한 재정지출 통제 시작

    내년 경제성장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가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재정지출 통제밖에 없다. 한편에서 4대강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무력화, 과도한 민자사업 등 금고관리를 허술하게 하면서도, 전체 지출은 줄여 나갈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내년 정부총지출은 올해 301.8조원에 비해 꼭 10조원, 3.3% 축소되었다. 올해 추경에서 고려되었던 사업들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여전히 존재함에도 정부는 전체 지출을 줄이는 지출통제를 감행했다. 정부가 자꾸만 본예산 기준으로 내년 예산안을 계산하는 것도 내년 지출 감소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작업이고, 이것의 근본 원인이 감세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시도이다.

    재정지출 통제는 이후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계속될 예정이다. 정부의 ‘2009~2013년 중기재정운용계획안’을 보면 연평균 정부총지출 증가율은 4.2%이다. 같은 기간 정부가 목표로 하는 재정수입 증가율은 평균 6.6%이다.

    향후 재정적자를 줄여나가기 위해 재정지출 증가율을 재정수입증가율보다 2.4%포인트 아래로 잡은 것이다. 이번 2010년 예산안이나 중기운용계획안은 재정수지 적자에 몰린 이명박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제하겠다는 신호탄이다.

    평가 4 – 복지 지출: 자연증가분 제외한 일반 복지사업 삭감

    복지 축소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정부는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유난히 내년 복지지출 증가를 강조한다. 내년 복지지출은 81.0조원으로 올해 본예산에 비해 6.4조원, 8.6%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총지출 평균증가율 2.5%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한술 더떠 총지출에서 복지가 차지하는 비중도 27.8%로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한다.

    우선 총지출 대비 복지 비중이 높게 보이는 것은 실제 복지지출은 큰 변화가 없으나 분모인 총지출이 10조 원 줄어들어 발생한 현상임을 직시하자. 이걸 두고 역대 최고라고 호들갑떠는 정부가 오히려 안쓰럽다.

    총액으로 보면 내년 복지지출은 올해 80.4조원에 비해 0.6조원 증가한다. 하지만 내년 복지지출 81조원에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제도적 자연증가분 3조원, 사실상 복지지출로 보기 어려운 보금자리주택 건설 융자사업비 2.6조원 등 5.6조원이 포함되어 있다.

    절대증가액 0.6조원을 감안하면, 다른 복지사업에서 5조원을 가져와 이 금액을 충당해야 한다. 이는 그만큼 자연증가분이 적용되지 않는 복지사업 상당수에서 5조원이 삭감되었다는 이야기다.

    향후 복지지출은 어떠할까? 논란을 피해 2009년을 제외하고, 2010~2013년 복지지출 증가율만 보면 복지지출 평균증가율이 6.2%이다. 그런데 매년 제도적 증가분이 복지지출 총액의 4%에 달한다. 평균 6.2%의 복지증가율에서 자연증가분을 공제하면 실제 정부의 정책의지가 작용하는 복지지출 증가는 2%대로 낮아진다.

    그런데 물가상승율이 2.6%이다. 결국 제도적 자연증가분을 빼고 물가상승율을 감안하면 다른 정책적 복지사업은 계속 제자리에 머물게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론 복지후진국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평가 5 – 재정균형 달성: 장밋빛 기대, 우려되는 경기부양 거품

    이명박 정부는 2013년부터 재정수지를 GDP 1% 이내에서 관리하여 재정균형을 달성하겠다고 말한다. 수입보다 지출 증가율을 낮추어 재정균형에 이르고, 국가채무 수준도 2013년 이후 GDP 30% 중반에서 유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 장밋빛 전망이 실현될 수 있을까? 이것을 위해서 정부는 오직 경제성장률 하나에 승부를 걸고 있다. 이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향후 잠재성장률을 2010년 4% 내외, 2011년 이후 5% 내외 수준으로 설정하고, 이 잠재성장률을 목표성장률로 잡고 있다. 이를 통해 매년 14~20조원씩 세수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높은 경제성장 수치를 잡았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경제성장률 예측이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로 성장잠재력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어떻게 2010년 한 해만에 잠재성장률이 1%포인트 상승할 수 있는지 등 의문이 한둘이 아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주요 연구기관 및 경제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3% 후반에서 4% 초반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며 정부 전망치에 회의를 표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향후 5년간 잠재성장률은 3%대 후반, 예상 실질성장률은 4% 안팎으로 잡고 있다. 정부보다 대략 1% 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그 결과 정부 총수입도 정부보다 2011년 5.3조원, 2012년 9.9조원, 2013년 11.4조원 더 작게 예상하였다.

    게다가 4대강사업에 22조원에 투자하고, 이 과정에서 예비타당성조사를 무력화시키는 등 정부의 지출관리도 허술하다. 과연 이명박 정부가 2013년에 재정균형을 달성할 수 있을까? 높은 경제성장 여부가 승부수다. 정부가 4대강사업에 집착하는 것도 , 부동산시장을 자극하는 것도 역시 경기부양을 통한 성장률 제고 때문이다.

    평가 6 – 재정적자 편법 대응: 공기업 채무 전가 및 민영화

    재정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동원하는 편법 중 하나가 공기업을 동원하는 일이다. 재정사업 부담을 공기업에게 떠넘겨 재정지출을 줄이고, 공기업을 매각해 재정수입을 늘리려 한다.

    정부는 4대강사업비 22조원 중 8조원을 수자원공사에 떠넘기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정부와 공기업 간 책임이 분담되는 형식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업의 성격이 변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국가재정은 원금 상환을 염두에 두지 않는 순수지출이지만, 공기업 사업은 공사채 원리금을 갚아야 하는 투자활동이다. 국가재정 사업이 공기업 사업으로 전환되면 사업의 성격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이는 4대강사업이 재해를 예방하고 수자원을 공공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4대강 유역 개발이익, 수익형 휴양시설 등의 난개발로 흐를 것을 용인하는 행위이다. 여기서도 4대강사업은 애초 수자원의 공공적 개발이라는 국가전략에 기초하기보다는 건설자본을 위한 비즈니스 프렌들리, 토목사업을 통한 경기부양책으로 기획되었음이 다시 확인된다.

    또한 정부는 공기업 매각으로 재정수입을 늘리려 한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정부는 공기업 사영화(민영화)를 통해 18조원의 재정을 확충할 계획이다. 매각금액이 가장 큰 것은 산업은행 약 8조원이고, 이어 기업은행 약 5조원이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매각 예상수입이 2조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국가 기간자산이 정권의 재정관리 부실을 메우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출통제 프레임을 세입확대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올해 재정적자를 계기로 한국사회에 처음으로 재정건전성 변수가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에게 2013년 재정균형 달성은 정권의 명운이 걸려 있는 일이다. 이후 모든 정책이 경기부양을 위해 배치되고, 재정지출 통제도 엄격해 질 것이다.

    이는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는 경제발전, 복지재정지출의 획기적 증가를 요구하는 진보운동에게 큰 도전이다. 진보운동의 적극적인 예산 대응 활동이 요구된다.

    특히 진보운동은 한국사회에 등장한 재정건전성 문제의 원인이 과다지출이 아니라 과소 세입에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나가야 한다. 한해 GDP를 약 1천조원으로 보면 무려 110조원이 더 늘어야 OECD 회원국 값을 할 수 있다. 그만큼 재정수입 확대가 중요하다.

    2008년 감세를 원상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2008년 감세 조치가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해가 2010년이다. 내년부터 감세 기준년도 대비 약 24조원씩 세수가 감소한다. 이는 GDP의 2%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이를 국채 발행으로 메운다면 매년 2% 국가채무가 누적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근래 진행되는 2010년 예산안 논란을 보면 4대강사업 문제가 전면화되면서 ‘세입(감세)’ 문제가 상대적으로 주변화되고 있는 듯 하다. 감세는 국가재정에 항구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며, 이명박 정부가 쉽게 피하기 어려운 약점이다. 여전히 2008년 감세가 예산안 논쟁에서 핵심 비판 과녁이어야 한다. “감세 철회로 재정을 살리자!”로 정부의 지출축소 공세를 감세 철회 국면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진보운동이 국가재정을 늘리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도 벌여야 한다. 필자는 복지지출과 연계한 목적세로 사회복지세 도입 운동을 제안한다.

    대략 추계해보면, 감세 원상회복으로 매년 24조원, 사회복지세 도입으로 10조원 이상을 거두면 지금보다 매년 약 35조원을 더 확보할 수 있다(여기에 4대강사업의 전면재검토를 통해 연 수조원의 지출을 절감하면 연 40조원의 민생지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이제 진보운동 앞에 재정건전성 문제라는 쉽지 않은 과제가 놓여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빌미로 재정지출을 통제해 나갈 것이다. 진보운동은 재정건전성 문제로 설정된 지출 통제 프레임을 공공재정을 확충하기 위한 세입 확대 프레임으로 전화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다음 글은 ‘고무줄같은 한국의 복지재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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