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 분당후 쇄신 없는 것 놀라워
        2009년 11월 07일 02: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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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그와 함께 일했던 정치인들과 일군의 학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계승 발전시키는 정책연구서를 발간하기로 하고, 현재 그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연말과 내년 초까지 모두 세 권의 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연구책자 시리즈의 제목은 『진보의 미래』다. ‘진보’나 ‘보수’라는 것이 다분히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어떤 정치세력이 ‘진보’나 ‘보수’를 자처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노무현 정권과 그 전신이라 할 김대중 정권을 ‘진보’라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구분법에 따르자면 한국의 민주당들은 전통적이고 완고한 보수정당일 뿐더러,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구사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사회 정책 역시 ‘진보’보다는 ‘보수’이며, 유럽적 기준으로 보면 ‘극보수’에 가깝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진지하게, 스스로를 ‘진보’라 규정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김 정권과 노 정권은 국민을 향해서 자신들이 보수 전통 위에 서있음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간혹 ‘진보’인 척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는데, 이는 주로 극우집단과의 공방에서 오가는 정치적 수사에 한해서였다.

    따라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지’들이 ‘진보의 미래’라는 기치를 높이 들고 나온 것에 대해서는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상대적인 개념이라 해도, 정책으로 나타난 그들의 10년을 ‘진보’로 부르기에는 부적합한 곳이 많다.

    자기 마음대로 이름을 적은 명찰을 패용한다고 진보가 되는 것은 아닐 터, 구체적 비전과 정책을 놓고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진보신당 정책연구소 ‘미래상상’과 <레디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지’들이 발간할 예정인 『진보의 미래』에 대당되는 『미래의 진보』를 기획하고, 12월 초순 경에 발간하기로 한 배경이다.

    『미래의 진보』는 ‘진보’와 ‘보수’에 대한 올바른 정의, 노무현 정부가 펼친 각종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 그리고 ‘짝퉁’이 아닌 진짜 진보의 비전과 정책, 그리고 미래에 대한 토론을 담으려 노력했다. 아래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의 글은 20여 꼭지로 구성될『미래의 진보』의 일부이며, <레디앙> 지면에 3회로 나누어 소개한다. <편집자 주>

       
      ▲필자(사진=기자협회보)

    6.

    민주대연합론이 설정한 민주 대 반민주라는 대립 구도에 따르면 민주세력은 선이며, 따라서 무조건 지지하고 옹호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민주세력이란 누구인가. 민주대연합론은 지난 10년 집권 세력과 그 계승자인 민주당을 민주세력의 대표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과연, 민주당은 반이명박 세력의 구심이 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있을까.

    뉴 민주당 플랜과 민주당의 본질

    민주당은 지난 10년의 공과를 모두 물려받은 계승자임을 자처하지만, 발전시켜야 할 공은 무엇이고, 극복해야 할 과는 무엇인지에 관해 명확히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과 계기에 따라, 유불리를 따라 공과를 언급할 뿐 일관된 자기 노선을 제대로 제시하지도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이 그런 시도를 한 적은 있다. 이른바 뉴 민주당 플랜이다.

    이 뉴 민주당 플랜은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진보적 정책 때문이라는 한나라당 및 보수의 관점을 수용했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 원인이 개혁 포기가 아니라, 진보정책에 있다는 민주당의 시각은 잠시나마 민주당의 본질을 잘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뉴 민주당 플랜에는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담고 있지만, 핵심은 당 노선의 우경화이다. 이제 민주당은 뉴 민주당 플랜을 포기하지 않으면, 한나라당 노선으로의 경도라는 정치적 평가를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침 노무현 ․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정국,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 실용 정책 등의 상황 변화가 민주당을 구제해 주었다. 뉴 민주당 플랜을 유보할 수 있는 명분이 된 것이다.

    민주당은 다시 진보 강화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진보 강화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아마 새로운 뉴 민주당 플랜이 필요할 것이고, 민주당이 현재의 모습 그대로 유지된다면 또 다시 논란에 휩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이렇게 지난 10년 정권의 계승과 극복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10년의 한계와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0년의 실패에 대한 올바른 성찰을 한 적도 없고, 자기의 노선 정비도, 정체성도 바로 세우지 못했다. 반이명박 정권의 구심이 되기에는 자기 중심이 너무 없는 것이다.

    작은 차이를 둘러싼 큰 싸움

    그 때문인지 민주당은 혁신과 자기 노선 정립보다 이명박 정권 반대 투쟁에 주력하고 있다. 민주당은 의회 안팎에서 이명박 정권의 주요 정책과 국가적 의제에 대해 강력하고도 활발한 저항과 투쟁을 해왔다. 의사당에 해머도 등장했고, 가두 시위도 열심이며 저항 현장 방문도 빈번하다. 노선 상 이명박 정권과의 작은 차이를 고려할 때 두 세력 간의 격렬한 대립과 충돌 장면이 자주 목격되는 것은 얼핏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민주당이 ‘작은 차이를 둘러싼 큰 싸움’에 총력을 쏟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반대를 통해 과거 실패를 은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노선과 조직으로 거듭나 시민들의 열정과 기대를 다시 불러내는 방식을 통해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킨 원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투쟁하는 방법을 통해 지난 실정에 대해 시민들의 집단 기억이 망각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 열심히 투쟁하는 우리가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켰으리라고 누가 믿을 것인가’ 라는 계산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의 맞상대는 민주당’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이 전략은 민주당이 이명박 반대세력의 대표권을 독점한 채 민주당 주위에 반이명박 세력 전체를 결집시키는데 유리하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은 이명박 정권과 적대적 공존을 하고 있다.

    민주당의 또 다른 생존법은 민주대연합론의 맥락에서 이른바 ‘민주세력’을 흡수 통합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친노 세력 등 이탈 세력들의 재결집을 통한 몸 불리기를 생존의 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통합은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 관해 성찰하지 못한 과거 정치세력의 재등장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민주당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외부 인사의 영입도 추진하고 있지만, 민주당의 혁신 노력이 없는 상황에서 외부 인사의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사, 친노 및 외부 세력의 흡수에 성공한다 해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열린 우리당 해체 뒤 통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한 경험이 웅변해 주고 있다. 이런 민주당이 이명박 반대세력을 이끌어갈 구심력이 될 수는 없다.

    7.

    민주 대연합론은 지난 10년 집권의 실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10년 집권세력에게 민주세력이라는 훈장을 부여하겠다는 논리이다. 과연, 10년 집권기가 민주주의가 꽃핀 시기인가. 한국 사회가 10년 정권이 이룬 수준이면 충분한가. 더 이상 민주주의 과제는 없는가.

    10년 정권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앞에서 이미 충분히 검토한 바 있다. 지난 10년의 정권은 한국 사회가 돌아가야 할 지점이 아니라, 극복하고 뛰어 넘어야할 대상이라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10년 정권의 실정의 결과로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면서 김대중 ․ 노무현 정권 시기 민주주의의 질적 수준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더욱 분명히 부각된 바 있고, 그에 따라 10년 정권이 왜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했는지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도 높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10년 정권을 민주세력으로 호명하는 것은 10년 정권의 실정을 은폐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 과제를 10년 전, 혹은 20년 전으로 후퇴시키고, 한국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기 위한 그동안의 진지한 고민들을 모두 무위로 돌리는 일이다.

    민주대엽합론, 환상 혹은 착각

    10년 정권, 그리고 10년 정권이 낳은 이명박 정권이 초래한 서민들의 삶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은 민주당을 앞세워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것보다는 좀 더 복잡한 일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정 지지가 낮거나 높은 정도는 야당의 반대 투쟁 수위의 종속 변수가 아니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강력한 이명박 반대 활동을 했지만, 이명박 정권은 그것과 무관하게 지지율의 등락을 거듭해왔다. 이명박 정권이 중도 실용 정책을 강조하면서 지지 상승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 역시 야당이 똘똘 뭉쳐 반대 투쟁을 전개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야당은 그동안 열심히 반대했다. 반대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뭉쳐서 반대 연합을 구축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런데도 민주대연합으로 뭉쳐서 이명박 정권을 반민주세력으로 만들어 ‘타도’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듯이 주장한다면, 그것은 환상이거나 착각, 혹은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이명박 정권을 축출하자는 민주대연합론이 만병통치약인 듯 선전되고 있다.

    8.

    이명박 정권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는 과제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거나 과거 회귀, 혹은 10년 정권의 복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이명박 정권 반대는 이명박 정권을 낳은 노무현 정권의 한계, 노무현 정권의 계승자로서 민주당의 한계를 모두 뛰어 넘어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대를 통해 극복하고 넘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성취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대안 논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반대는 대안으로 조직되어야 하며, 대안으로 반대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는 대안을 만들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 되어야 한다.

    대안이란 이 사회의 거대한 기득권 세력이 자기 이익을 위해 시장의 논리를 옹호하고, 이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시장만능주의, 무한 경쟁의 정글에 내모는 위험한 게임을 반대하고 서민을 위한 복지사회를 구축하며 서민들에게 사회적 시민권을 보장하고, 평등을 확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난 10년의 실정과 이명박 정권의 폭주 모두를 넘는 대안은 진보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대안은 진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사실 다수 시민인 가난한 자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문제는 진보적인 과제이자 민주주의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정치적 선택으로 자기들을 위한 정치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체제이다. 민주주의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민주주의가 완전 붕괴된 것이 아니라면, 이 사회의 다수인 가난한 자의 이익을 지키고 이들의 삶의 위기를 구출할 수 있는 대안을 조직할 수 있다.

    물론, 그 대안은 서민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진보정치가 책임져야 한다. 지난 10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최대 피해자가 서민, 가난한 자라고 봤을 때 반대의 주체도 이들의 정치 조직이어야 하며, 반대의 이익도 이들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적 노선과 정책, 조직, 지도력이 필요하다. 서민이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그럼으로써 자기의 이익을 분명히 정의한 노선과 정책을 갖는다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대안의 힘이다.

    그러나 서민들은 현재 정치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다. 진보적 시민은 있지만 진보적 정당은 없는 시민과 정치적 대표 사이의 불균형이 원인이다. 한국정치의 이 비정상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를 넘어 진보적 대안을 추구하는 일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 사회의 다수파인 서민들을 묶을 수 있는 진보정치를 하는 것, 이것 만큼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고 극복하는 정확한 해답이 없다.

    진보정치의 부재라는 한국 사회의 이런 비정상성은 보수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독점하는 보수 독점 체제라는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진보정치세력의 책임도 적지 않다. 진보정치 역시 다수 서민들의 욕구와 이익을 대변하고 충촉시키는데 실패했다.

    진보정치의 실패

    지난 대통령 선거와 총선 결과가 잘 말해준다. 다수 시민들의 이해와 욕구가 무엇인지 대변하지 못하고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가슴 깊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들의 이념을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현하겠다는 운동권 정당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진보 정치세력은 서민의 욕구에 반응하지 못하는 낡은 진보를 버리고 새로운 진보로 거듭 나야 한다. 진보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지난 10년 정권의 한계를 뛰어 넘고, 이명박 정권의 시장 만능주의를 향한 폭주를 막고 다수의 이익을 실현하자면 그래야 한다.

    진보의 재구성이 없이는 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과의 차별성도 보여주지 못하고, 같은 민주화 운동세력이라는 한 묶음으로 인식되어 민주당의 등락에 직접 영향을 받는 종속적 지위를 벗어날 수 없다. 민주당의 쇠락으로 진보정당이 야당의 대안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동반 몰락하고 있는 현상이 좋은 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낡은 진보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민주노동당이 분열한 것은 놀라운 일이 전혀 아니다.

    놀라운 것은 분열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치세력의 뼈를 깎는 쇄신과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낡은 진보’ 병이 얼마나 심각한 증세인지 보여준다. 진보의 재구성이 없이는 진보세력이 이명박 정권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자라날 수 없다는 엄중한 현실을 깨닫는다면, 다수 서민들이 이익을 철저히 반영하는 새로운 진보로 거듭 나야 한다.

    그러나 진보의 재구성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진보정치세력들의 진보연합을 통해 이명박 정권의 대안이 될 연습을 해야 한다. 진보연합은 이명박 정권의 한계를 폭로할 뿐 아니라 진보적 담론의 확산을 통해 진보적 여론의 형성과 정치적 조직화를 촉진하고 결과적으로 진보의 재구성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진보연합에는 기존 정당의 경계선과 틀을 깨고 민주당 내 일부 진보세력과 시민단체를 망라한 연대 틀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민주당이 진보연합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면, 과거 실정에 대한 반성과 전면적 혁신을 스스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반대의 최전선에 서 있을 자격이 없으며 이명박 정권 반대가 대안 있는 반대로 진화할 수도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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